7화 이변 (2)
심각해진다라.
우식은 유현이 여간해서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덩달아 어두운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유현은 그런 우식을 보며 말을 이었다.
“잘 생각해 봐. 만약 바이러스가 그런 호르몬을 낸다고 하면…… 그 목적이 뭐겠어.”
“네? 바이러스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겠어요. 당연히 전파를 위해서……. 어…… 잠시만.”
모든 생명체는 번식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바이러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 숙주에 잘 전파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숙주 내에서 적어도 번식하는 기간 동안에는 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변화하는 생명체라는 뜻이었다.
그놈이 숙주 안에 들어와 무슨 짓을 한다면, 그것은 무조건 번식 즉 전파를 위해서 하는 짓이라고 보면 되었다.
“나도 긴가민가하고 있었어. 그런데 네가 보여 준 영상을 보고 나니까 점점 확실해지는데…….”
“물리적인 타액 전파를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 얘기죠?”
“그래. 바이러스가 숙주의 행동 양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게…… 우리 학계에서는 아주 이상한 얘기는 아니잖아?”
“톡소플라스마(Toxoplasma) 이후로는 뭐 정설이라고 해도 좋죠.”
톡소플라스마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을 감염시킬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고양잇과 동물을 종숙주로 삼는 원충이었다.
종숙주란 그냥 그 안에서나 살아남을 수 있기만 한 게 아니라 번식이 가능한 숙주를 지칭하는 말인데, 다시 말해 고양이를 감염시키는 것이 이 톡소플라스마의 지상 과제란 얘기였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톡소플라스마는 고양이 안에서 번식한 후 분변을 통해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알다시피 고양이는 똥을 먹지 않는다.
이 똥을 누가 제일 많이 먹냐고 한다면, 바로 쥐다.
그런데 쥐는 고양이를 두려워하지 않는가.
만약 쥐가 계속 고양이를 피해 다니기만 한다면 톡소플라스마는 절대 고양이 내부로 들어갈 수 없을 터였다.
“학회에서 공개되었던 그 영상…… 쥐가 고양이한테 달려드는 거. 그게 반복되는 영상은 진짜 충격이었지.”
“저는 그 영상보다 나중에 실험실에서 증거가 나왔을 때가 제일 충격이었어요.”
그래서 톡소플라스마는 묘책을 내었다.
바로 자신에게 감염된 쥐의 행동 양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쥐가 더 이상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게 되고 도리어 호기심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상적인 쥐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 그러니까 고양이에게 다가가는 미친 짓거리를 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이후, 감염원이 숙주의 행동 양식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란 가설은 정설이 되어 감염학계에서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아무튼, 이…… ARS-24의 변종도 그럴 수 있다는 거야. 봐, 이 호르몬 수치를. 박원상 교수가 첨부해 준 자료를 보면……. 이거 보여?”
“네. 이거 뭐예요? 이 수치도 정상은 아닌데?”
“미국에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Anabolic steroid, 스테로이드의 일종) 유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검사 결과야. 경향성이…… 지금 이 환자랑 비슷하지?”
박원상은 호르몬 관련한 일이라면 만사 제쳐 두는 인간이었다.
돌아간 후에도 이 환자가 너무 뇌리에 박혀 있었던지, 경향성을 그래프로 그려서 보내 준 참이었다.
덕분에 우식은 아까 유현이 박원상에게 직접 설명을 들을 때보다도 더 손쉽게 경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확실히 둘은 닮아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 환자 쪽이 훨씬 더 수치가 높고 과격하다는 것 정도였다.
“어, 그렇네요. 그렇다면 지금 이 호르몬 변화가 확실히 환자의 몸집이 커지는 것을 유도하고 있겠네요.”
“그래. 실제로 체중이 엄청 늘었어. 근데 남성 호르몬이 너무 높아서 지방은 거의 없고 근육질이야. 원래는 환자가 좀 말랐었거든. 그래서 지금도 뭐 우락부락한 수준은 아니지만……. 확실히 커졌어.”
“만약 그 환자가 물리적인 타액 전파를 위해 다른 사람을 물려고 한다면…… 훨씬 유리한 신체 조건을 갖게 되었네요.”
“미친 소리지, 미친 소린데…….”
“이미 벌어진 현상이네요. 이거……. 이거 만약에 중국 변종도 그랬다면…… 이걸 왜 공유를 안 했을까요? 학계에서 모두 주목할 텐데? 의사라면 논문에 너무 내고 싶을 내용 아니에요?”
“그렇지. 그런데…… 응?”
유현은 대화를 하다 말고 재킷 안 주머니를 뒤졌다.
하필 가죽 재킷이라 빳빳해서 그런지 시간이 좀 걸렸다.
-교수님!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그래도 전화 건 사람이 화낼 정도로 오래 걸리진 않았는데.
이상하게 상대방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동시에 익숙했다.
“장 선생님이에요?”
장효숙, 지금 환자가 입원한 병동의 수간호사였다.
“뭐야, 사귀어요? 전에도 이분 아니었나?”
우식이 지금은 비록 공무원 신분이지만 한때는 대학 병원에서 열심히 수련받은 전문의가 아니던가.
그런 그에게 수간호사의 전화는 결코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수간호사는 관리자이지 실무자가 아니기에 그랬다.
물론 엄청 큰 사고가 터졌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연속으로, 그것도 우식을 만나고 있을 때마다 터진다고는 믿기 어려웠다.
“억.”
유현은 그런 우식의 쇄골 밑을 꾹 눌러 단번에 제압한 후, 입을 열었다.
“웬일이에요? 나 지금 질병관리부 왔는데.”
-어휴…… 지금 큰일 났어요, 큰일.
“큰일……? 환자가 또 누구 공격했어요? 약 들어갔을 텐데? 다리도 묶어 놨고……. 손도 한쪽은 묶었잖아요.”
-없어졌어요, 환자.
“네?”
없어졌다니?
환자가 어디로 사라진단 말인가?
잠시 이런 의문이 들었지만, 마음먹고 나가려고 한다면 못 할 것도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환자의 유일한 증상은 배고픔이지 않은가.
대부분의 경우 배고픔은 움직임의 원동력이 되지 제한이 되진 않았다.
“지금 수배는 했어요?”
-당연하죠. 없어진 거 보자마자 했죠! 근데…… 진짜 귀신 곡할 노릇이에요.
“격리 병실이잖아요. 밖에서 열어야 열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누가 열어 주지 않고서는…….
상식적으로 격리 병동에 있게 된 환자는 당연히 안에 있어야 하는 게 맞았다.
근데 그 상식을 벗어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분명히 당신이 밖으로 나오면, 당신은 감염원이 되고 다른 환자들의 생명이 위험해질 거란 얘기를 수없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열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평소라면 병원 인력으로 어떻게 관리 감독이 되었겠지만.
ARS-24로 인한 팬데믹 사태에서는 그게 안 되었다.
해서 많은 병원에서 정부 차원의 관리 감독을 요청했고,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것이 밖에서 열어야 하는 문의 설치였다.
-다행히 몇 분 전에 우리 간호사랑 마주친 모양이에요.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고 하던데…….
“마주쳐? 물리진 않았어요?”
-네?
“아니, 아닙니다. 음.”
말투로 볼 때 공격은 당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면 도망가기 바쁜데 언제 물겠나 싶기도 했다.
“아뇨, 아뇨. 그럼 바로 병원 폐쇄한 거죠?”
-네, 일단 셧다운 했어요. 외래에서 뭔 일이냐고 난리긴 한데…… 어쩌겠어요. 보안팀 총출동하고……. 난리도 아니에요.
병원 출입문이 싹 닫히는 경우가 아주 드물긴 한데 종종 발생하기는 했다.
ARS-24 이전에도 있었다.
유현은 동기 녀석이 자살하고 싶다는 문자를 남긴 채 사라졌던 때를 기억했다.
온 병원 출입구가 폐쇄되고, 손이 비는 모든 내과 교수, 레지던트, 인턴 그리고 보안팀이 총출동해서 녀석을 찾아낸 곳은 계단 어귀였다.
오래돼서 색까지 바랜 넥타이를 난간에 걸고 있는 녀석에게 태클을 걸어 결국엔 전치 4주 손상을 입혔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선했다.
“일단 지금 갈게요.”
하지만 지금은 추억이나 되새김질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환자 도망이라니.
이건 유현도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그 환자가 장애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호르몬이 날뛰는 상태 아닌가.
뭔 일을 저지를지 감히 짐작도 가지 않았다.
“야, 우식아. 너도 가자. 프로토콜 1209 상황이야.”
“1209? 그게 뭐지?”
“네가 만든 거잖아, 인마!”
“아? 아! 변종 감염자 탈출이에요?”
“그래. 난 이런 걸 왜 만드나 했는데……. 진짜로 탈출하는 사람이 있네. 하, 돌겠네.”
“알겠어요. 저도 바로 발동시킬게요. 차 있죠?”
“넌 없어?”
“어유. 세종에서 어떻게 운전하고 와요. 기차 타고 오지.”
“알았어, 어차피 빨리 움직이려면 그게 낫지. 빨리 와!”
“네!”
유현은 전화를 끊자마자 일단 뛰었다.
한 손으로는 우식을 잡아끌고 있었는데, 악력이 좋아서 그런가 우식은 팔뚝이 끊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으아, 아직도 운동해요?”
“퇴근하고 나면 운동 말고 할 게 없다.”
“노, 놓고 뛰어요.”
“안 돼. 너 벌써 처지는 게 느껴져. 운동 안 하냐? 명색이 내과 의산데?”
“형도 애 낳고 세종에서 서울 왔다 갔다 해 봐요. 운동이 하고 싶나.”
“음.”
애와 장거리 이동이라.
유현은 실언을 했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으나 손은 놓지 않은 채 그대로 차를 향해 달렸다.
“타!”
“으아.”
“엄살 부리지 말고.”
“으어.”
그러곤 우식을 구겨 넣고 액셀을 밟았다.
“아, 안 돼.”
그제야 우식은 유현이 좀 밟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평소라면 당연히 교통 수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지만.
ARS-24로 인한 팬데믹 사태 이후로 감염내과 의사 중에서도 유현처럼 큰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정 조건에 부합하는 경우, 밟아도 되는 법안이 생긴 지 오래였다.
부아앙
유현은 즉시 뒷좌석에 놓아뒀던 사이렌을 차에 붙인 후, 도로를 내달렸다.
예전에야 사람들이 네가 뭔데 하고 안 비켰지만, 이제는 이 사이렌 소리 또한 국민들에게 익숙해졌더랬다.
“으아.”
“전화나 해. 인마.”
“아, 네.”
해서 차는 그야말로 나는 듯이 달릴 수 있었다.
“아, 네. 질병관리본부 감염 관리과 최우식 과장입니다.”
-네, 무슨 일이시죠?
“프로토콜 1209 발동합니다. 대상은 한국대학교 병원입니다.”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즉시 출동하겠습니다. 예상 인원은 몇입니까?
“한 명으로 추정됩니다.”
-네!
그사이 우식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채, 경찰에 연락해 상황을 알렸다.
팬데믹 이후 관련 상황은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을 한 바 있으니, 이제 곧 관할 경찰서로 연락이 갈 터였다.
병원과 강남 경찰서는 꽤 가까운 편이니 거의 동시에 도착하거나, 오히려 그쪽에서 먼저 올 수도 있었다.
“보건소에는 연락 안 하냐?”
“했어요.”
“온대?”
“온다고는 하는데…… 사실 이쪽은 제가 제일 잘 아니까. 일단 지휘는 제가 맡기로 했어요.”
“와…… 출세했네?”
“권력의 핵심이죠. 사실 선배도 내 앞에서 이렇게 뻗…….”
“뭐?”
“아뇨. 한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죠. 앞에 보세요, 앞에. 시내에서 100키로 밟으면서 옆 보지 말라고. 앞 봐.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