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행방 (2)
오솔길이었다.
이런 길로만 들어갈 수 있는 마을이 대한민국에 있다니.
아무리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아왔다지만,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때 우식의 휴대폰이 울렸다.
“네, 최우식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최우식 과장님.
“누구……십니까?”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목소리는 낯설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우식에게 그보다 인상적인 것은 낮게 깔린 풀벌레 소리였다.
우연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식의 주변에서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김효상 국장님께 연락받았습니다. 지금 수색에 돌입하신다고요?
“아, 아……. 국장님께요?”
하지만 아는 사람 이름이 나오자 긴장이 확 하고 풀렸다.
김효상 국장이라면, 이번에 좀 실망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일반적인 공무원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인간이었다.
-네, 저는 34사단 기동대대 작전과장 하승균이라고 합니다.
“아, 네네. 작전과장님.”
그런 김효상이 연락을 했다면, 뭐가 되었건 들어 봄 직한 얘기를 할 터였다.
게다가 34사단이라면 이 근방의 군부대였다.
비공개 수색 작전 시, 필요하다면 군부대의 지원 또한 요청할 수 있기에 미리 알아본 바 있었다.
‘군부대까지 필요할까 싶어서 연락을 안 하긴 했는데…….’
굳이 도움을 주겠다고 하면 거절할 이유는 없을 터였다.
작전과장 하승균 대위는 우식의 침묵이 너무 길어지기 전에 말을 이었다.
-김효상 국장님 말씀이 수색 대상인 환자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이런 얘기까지 다 했나.
우식은 김효상의 입이 가벼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 보면 후방 지원을 요청하는 입장에서, 어느 정도의 정보를 알려 주는 것이 예의이기도 했다.
-지금 향하시는 수락 마을은 기천리 토박이들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산골짜기에 고립된 마을입니다. 김효상 국장님은 그 환자가 만약 연고가 이쪽이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찾아갔을까에 대해 걱정하고 계십니다.
“어…….”
전화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걸음을 천천히 걷고 있던 우식은 이제 완전히 멈춰 섰다.
계속 이 환자를 찾아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어서 시야가 좁아져 있었는데, 방금 작전 과장이라는 사람의 말을 듣고 나니 확실히 뭔가 이상하단 느낌이 들어서였다.
‘만약 이 환자가 중국인이고……. 흑룡강성에서 왔다면…….’
출입국 기록이 없으니 밀입국을 했다는 얘기였다.
팬데믹 사태 이후 강화된 검문을 뚫었다는 뜻인데, 그러자면 개인으로는 어려웠다.
브로커를 통해서 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픈 사람이 그럴 수 있었을까?
와서 하필 얼굴이 비슷한 변사체의 신분증을 우연히 습득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아닐 수도 있어. 그냥 우리나라 사람일 수도 있어. 죽은 박기태의 친구이거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우식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작전의 지휘관이라 할 수 있는 우식이 멈춰 서는 바람에 다들 그 자리에 선 채 우식만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이 장소까지 다 생각해서 침투했거나, 누가 보낸 거라고 하면……. 아니면 누군가 그 환자를 여기로 이동시켰다면…….’
위험할 수 있었다.
지금 자기만 믿고 따라오고 있는 사람들인데, 혹 사고라도 나면 어쩐단 말인가.
함정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상 조심해야만 했다.
“다른 말씀은 더 없으셨나요?”
-내일 오전 6시까지 기동 대대 인원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건……. 승인이 필요한 사항 아닙니까?”
-이미 김효상 국장님께서 필요한 공문 모두 보내신 상황입니다.
“그래요……?”
김효상이 원래 이렇게까지 일 처리가 빠른 사람이었나?
과장 시절에는 그랬다고도 들었지만 국장이 된 이후의 김효상은 신중한 편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이미 저희 기동 대대에는 명령 하달이 되어 대기 중에 있습니다.
우식은 차분하기 짝이 없는 하승균 대위의 말을 들으며 유현을 돌아보았다.
유현 또한 바로 옆에서 대화를 다 들은 마당이었다.
“만약 환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는데 놓쳤어. 심지어 수배도 정치적 계산으로 하지 않았는데 벌써 번지기 시작했다면 그 책임을 다 누가 지겠냐? 위에서는 모르쇠 칠 것이 뻔해.”
“그건…… 그건 그렇죠.”
해서 바로 조언을 해 줄 수 있었다.
슬프지만 그것이 나랏일 하는 사람들의 속성이기도 했다.
둘은 이미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너무 많은 경험을 한 바 있었다.
“그렇겠죠. 음. 알겠습니다. 이거……. 너무 어둡기도 하고……. 여기는 어떻게 된 게 가로등도 없네.”
“그래, 일단 중단하고. 부대 오면 내일 다시 돌입해. 어차피 오갈 수 있는 길도 여기 하나라며. 지키고 있으면 되겠지. 하룻밤 늦어진다고 일 그르칠 거면 벌써 틀어졌어.”
“네, 선배. 감사합니다.”
우식은 그런 유현을 신뢰했다.
우식 또한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유현이란 사람이 위기에서 보여 줬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에 그랬다.
약간은 짓궂은 면도 있고 또 허술한 면도 있어 보이지만.
이럴 땐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다.
“알겠습니다.”
-네.
해서 우식은 작전과장에게 그러마 라고 말하곤 긴장한 채 움직이고 있던 일행들에게도 작전 변경을 알렸다.
“음, 일단은 해산하고……. 내일 다시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인력 충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 형사님, 길목만 지켜 주세요. 무슨 일 있으면 신호 보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맡겨 주세요.”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다들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에 이 야밤에 낯선 산길 걷는 일은 누가 좋아라 하겠는가.
물론 오늘 할 일이 내일로 미루어진 것뿐이니, 조삼모사란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낮에 더 많은 사람들과 할 수 있다면, 그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 될 것 같았다.
해서 일행은 길목에 김 순경과 오 형사 및 몇몇 서울에서 내려온 인원만을 남기고 뿔뿔이 흩어졌다.
“하기로 했다고 전화는 해 둬.”
“아 국장님이요?”
“그래.”
“그게……. 그게 좋겠네요.”
우식은 유현의 말대로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이었으나, 김효상 국장은 신호가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아, 최우식 과장. 그렇지 않아도 내가…….
“국장님 말씀대로 군부대 지원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내일 오전에 돌입하려고 합니다.”
-어? 어……. 그래. 그……. 응. 들어 보니까 거기가 아주 위험한 곳이더라고?
“네? 아, 네네. 그런 것 같습니다. 직접 와 보니까……. 밤에는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그래……. 그게 좋겠어. 그럼, 내일 들어가고 어떻게 되는지 보고해 줘.
“알겠습니다.”
우식은 보고를 마치고 유현과 함께 보건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일 수색에 나서려면 체력을 비축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바로 잠자리에 들지는 않았다.
“선배, 근데……. 이거 진짜 중국에서 우리 엿 먹이는 거면 어쩌죠?”
“어쩌긴 증명 못 하면 꽝이지. 상대가 중국이잖아.”
“이런 제기랄.”
그냥 병원에만 있을 땐 사실 중국이 뭐 대순가 싶었더랬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나랏밥을 먹게 되고부터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힘이 강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무려 WHO 권고조차 무시할 수 있었다.
미국이 나서도 그럴 때가 많았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정부 요청이 무시된 적은 셀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유현의 말대로 증거도 없이 함부로 나섰다가는 박살 날 것이 뻔했다.
아니, 애초에 위에서 뭉갤 터였다.
“중요한 건 내일이야. 박 교수 말로는……. 만약 그 호르몬 수치가 계속 유지됐다면 지금쯤 꽤 커졌을 거래. 물리적으로 제압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어.”
“총……. 아예 들고 오지도 않을 텐데.”
“나 트렁크에 야구 방망이 좀 있는데, 그거 빌려줄게.”
“그런 걸 왜 들고 다녀요?”
“스트레스 쌓일 때 타격장 가면 좋더라. 근데 거기 있는 배트는 좀…… 약해서 부러지더라고.”
“부러져? 선배는 진짜 너무 무식하게 힘이 센 게 탈…… 억.”
유현은 타이밍 못 잡고 개기는 우식을 제압한 채로 말을 이었다.
“개기지 말고, 형사들은 지금 상황 정확히 알아?”
“대강은요. 특히…… 오예리 형사는 꽤 심각하게 여기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길목 지키는 일에도 불만이 없죠.”
“그건 다행이네. 군인들은 아마 안 그럴 거야. 어차피 징병으로 왔는데……. 이런 일까지 하면 귀찮겠지. 다치지 않게 주의만 주라고.”
“네.”
“그럼 자자. 내일 빡세겠네.”
“네, 선배.”
유현은 대화를 마치자마자 자리에 누웠다.
침대라고 해 봐야 보건소에 비치된 환자용 침대라 그리 편하진 않았지만.
기천리까지 온 마당인데 이거라도 있는 게 다행이었다.
‘정말…… 이게 누군가 계획한 거라면 내일 어떻게 될까. 나는 의산데…… 어쩌다 여길 온 거야, 이거.’
이런저런 잡생각에 뒤척이다 잠든 유현을 깨운 건 우식이었다.
딱 봐도 잠을 설쳤는지, 하룻밤 사이에 수척해져 있었다.
“너 괜찮겠냐?”
“괜찮아야죠. 어차피 잠 못 자는 건 익숙해요.”
“그래?”
“저 레지던트 때 제일 안 재운 게 선배예요. 그런 말 하면 섭하지.”
“하긴, 그렇긴 하네. 그래, 나가자.”
“네.”
밖으로 나가자, 그저 평화롭기만 한 시골 마을 전경이 펼쳐졌다.
둘의 이론에 따르면 그 사이에 난 오솔길 너머에 무언가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텐데, 이론을 펼친 장본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안 믿길 정도로 조용했다.
“별일 아닌데 오버하는 거 아닌가 몰라요.”
우식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이런 말을 꺼냈다.
새벽녘의 맑은 공기를 들이쉬면서였다.
“그러면 다행이지. 만약 들어갔는데, 진짜 이상하면 그게 큰일이야.”
“그것도 그렇네요.”
“그래도 대비는 하자고. 이거 진지하게 생각할 만한 사람이 많이 있겠냐.”
“네.”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 적막을 깨고 다가오는 일련의 무리가 있었다.
육중한 군용 트럭을 타고서였다.
인근 군부대에서 보내온 모양이었다.
“흠.”
우식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지만, 유현은 아니었다.
‘여기 후방 부대일 텐데.’
고작해야 환자 수색 하나 도우러 나오는데 전원 위장 크림에 저렇게 군기 잡힌 얼굴을 하고 온다고?
게다가 저 체격.
도저히 일반병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군의관 시절 봤던 병사들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휘관이 빡센가?’
하지만 그렇다고 또 국방부에 꿍꿍이속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해서 유현은 어깨나 한번 으쓱하고는 의심을 털어 버렸다.
그사이 앞서 온 지프차에서 내린 간부가 우식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중령 계급장을 달고 있었는데, 장교가 아니라 부사관 같은 인상의 사내였다.
“최우식 과장님? 반갑습니다. 김선태 중령입니다.”
“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당연히 와야죠.”
김선태는 인사를 하고 나서 산을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어딘지 모르게 스산한 빛이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