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22화 (22/323)

22화 지구 병원 (1)

“수고했네.”

“아닙니다.”

김선태 중령은 담담한 말투와는 달리 미소를 띠고 있었다.

딱히 오늘 치른 임무가 보람차거나 해서는 아니었다.

‘국방부 장관…….’

눈앞에 있는 사람의 지위 때문이었다.

장관이 중령에게 직접 와서 치하할 일이 얼마나 될까.

“VIP께서도 아주 흡족해하시네.”

심지어 군 통수권자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의 귀에도 들어간 듯했다.

아까보다도 더 미소가 진해졌다.

그사이 장관은 다른 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군복 위에 짧은 의사 가운을 걸치고 있는, 의무사령관이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우선……. 직접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격리 병동으로 가시죠.”

“음.”

지구 병원은 기존보다 규모가 배 이상 커진 참이었다.

그 이유가 팬데믹 사태였기 때문에 격리 병실도 충분하게 있었다.

격리 병실만 놓고 본다면 전국에서 이곳이 제일 많을 수도 있었다.

해서 장관은 꽤 기다란 복도를 걸어야만 했다.

군 병원치고는 조경이 좋아서 다행이었다.

입원실 중앙으로는 작은 중정까지 있었다.

“으으으으!”

하지만 그 누구도 정취를 즐기진 못했다.

굳게 닫혀 있던 병동 문이 열리자마자 들려오기 시작한 괴성 때문이었다.

“이건 누구지?”

“1호입니다.”

“아, 1호.”

1호.

박기태라는 이름으로 한국대학교 병원에 입원했던 이.

흑룡강성에서 발원했다고 의심되는 ARS-24 변종 감염자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생화학 무기로서의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진 ARS-24에 대한 국방부와 국정원의 관심은 비상한 것이었다.

특히 중국에서 숨기는 변종에 대해서만큼은 어떤 식으로든 감염자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곧 사망할 겁니다.

-중국인이라는 거 밝혀져서 좋을 거 없으니……. 한국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가서 처리하도록 해. 신분증은 대충 무연고 사망자 거 이용하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죄다 꽝이긴 했다.

지금 입에 담은 1호도 그랬다.

죽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국에서 확보한 테이프 때문에 기대를 걸었으나, 별다른 특이점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살아났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뭐라고? 그게 말이 되나? 한국대학교 병원 실수 아냐?

-장관님, 한국대학교 병원입니다.

-음.

죽고 나서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다시 살아났다는 보고뿐만 아니라, 그 후에 보인 수치들 또한 그랬다.

-바이러스를 추출해서 생화학 무기로 쓸 게 아니라…….

-연구해 볼 가치가 있겠어. 추진해. 병원에서 쓸데없이 보고 못 하도록 하고. VIP께는 내가 말씀드리지.

이걸 전 세계 사람들이 알게끔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해서 필요한 조치를 취했고, 이제 눈앞에 그 결과물을 두고 있었다.

장관이 빙글거리는 미소와 함께 병실로 다가가자, 의무사령관이 그의 팔을 살짝 잡아끌었다.

“이 안에 있는데…… 너무 가까이 가진 마십쇼.”

“철창이 처져 있는데?”

“보수 공사를 해야 할 겁니다.”

“보수……. 어, 어!”

1호는 처음 유현이 봤을 때와 비교도 안 될 만큼이나 거대해져 있었다.

2미터에 달하는 키도 키지만, 1미터에 가까운 어깨너비가 더더욱 인상적이었다.

장관은 보고서에 붙어 있던 사진에서 본 1호와 지금의 1호를 쉬이 연결 짓지 못했다.

쾅공격성은 또 어떻고?

뻔히 단단한 쇠창살로 닫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저돌적으로 돌진해 왔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함께 들렸기에 장관은 뒤로 한참 물러섰다.

군인 출신이라는 자각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엄청나군. 검사는 어떻게 하고 있지?”

“할돌(Haloperidol, 조현병 치료제)을 주사하고, 재워서 검사하고 있습니다.”

“아…….”

“호르몬 수치를 보면 살아 있는 게 기적입니다.”

“다른 감염자들은 어떻지?”

“이 정도로 스파이크를 치는 실험체는 없습니다. 초창기 1호는 이것보다도 더 높았습니다.”

“흠.”

무언가 또 변이가 일어난 걸까?

사관학교 출신으로 평생 군에서 있어 온 장관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모두 이렇게 만들 수는 없다는 건가?”

“인위적으로 호르몬 주입을 했던 검체는 모조리 사망했습니다.”

“이번에 확보한 검체들은 어떻지?”

“자연적으로 일어난 감염의 결과물들이라 조금 다르긴 합니다만……. 검체들마다 결과가 상이합니다. 우선 더 두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뭐 새어 나갈 일은 없겠지?”

장관은 지금도 혈액 샘플이 담긴 통을 들고 지나간 간호 장교를 힐끔 바라보고는 물었다.

그 말에 의무부 사령관이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작전 시행 이후 이쪽 인원은 다 교체했습니다. 신원 및 사상 검증까지 다 끝난 인원들뿐입니다.”

작전의 시발점은 중국의 한 연구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순진하게 방역에만 신경 쓰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을 비롯한 이른바 강대국들 중에는 생각이 좀 다른 나라들이 있었다.

바로 군사 목적의 연구를 진행한 것인데, 그것을 확인한 이후론 대한민국도 뒤늦게 대열에 뛰어든 참이었다.

“그래도 주의하게.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 하나라도 새어 나가면 죄다 나라 뒤집힐 만한 일이야. 자네랑 나 옷 벗는 걸로 안 끝나.”

“명심하겠습니다.”

“오늘 일은 아주 좋았네. 질본 쪽도 이만하면 발 빼겠지.”

“증거는 없을까요?”

“없어.”

눈앞의 장관이 아니라 다른 이가 없다는 말을 했다면 미심쩍어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 사람의 말이라면 신뢰할 만했다.

‘있더라도 없어진다, 뭐 이런 뜻이겠지.’

전례 없는 위기가 닥치면서 통제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비단 질병관리부뿐만이 아니었다.

국방부 또한 그랬다.

소규모 방역에서는 질병관리부 또는 경찰력만으로도 충분했지만.

하루 감염자만 만 명이 넘어가고, 그로 인한 사망자가 하루 700, 800명까지 치솟았을 땐 군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뿐만 아니라 ARS-24에 거의 궤멸되다시피 한 북한 측 탈주자들에 대한 통제에 있어서도 군은 필수적이었다.

이들의 힘이 세지고 목소리가 커진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네, 그럼 변동 사항 있으면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 내 기다리지.”

해서 의무부 사령관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장관을 배웅했다.

한시름 던 셈이었는데, 그렇다고 끝은 아니었다.

오늘 확보한 검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진행해야만 했다.

지금까지는 내내 실패하기만 한 실험이었다.

‘유전자학이 모자라서는 아냐. 김조은 박사 이상 가는 사람은 구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봐도 천벌을 받을 만한 실험이지 않은가.

ARS-24 변종 감염자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글쎄, 김조은 말고 또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호르몬……. 이쪽으론 잘 모르겠다고 했지.’

게다가 사달이 나는 건 호르몬 때문이었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호르몬은 조금만 조정하려 해도 생명을 앗아 가기 일쑤였다.

모든 실험체를 1호처럼 만들고 싶은데, 그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 안 받아 이놈.”

의무부 사령관이 이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쯤, 유현은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래 군에서는 한국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을 유독 좋아하지 않던가.

유현도 내과가 아니라 좀 작은 과였으면 아마도 지구 병원으로 바로 가게 되었을 터였다.

“형…… 의외로…….”

“아, 받았다.”

“받아요? 다행이네. 억.”

유현은 깐죽거리는 우식의 정강이를 후드려 깐 후, 말을 이었다.

“어, 잘 지내?”

-군바리가 다 똑같죠. 교수님은 좀 어떠세요?

학번 차이는 꽤 나는 편이었으나, 같은 동아리 출신에 회장단 출신인지라 퍽 가깝게 지내는 녀석이었다.

이놈이라면 어느 정도 지침이 있다 해도 귀띔 정도는 해 줄 거라 믿었다.

“나도 똑같지. 뭐 좀 물어보려고.”

-아, 네. 뭐든지요.

“오늘 너네 병원에 트럭 몇 대 안 들어갔냐?”

-네?

“트럭 안 들어갔어?”

-어…….

유현의 말에 후배는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이었다.

연기는 아닐 터였다.

여기도 아닌가 해서 끊으려는데, 후배가 입을 열었다.

-교수님, 혹시 지구 병원 얘긴가요?

“어? 그렇지. 너 지구 병원 아냐?”

-아……. 1년 차 때는 그랬는데요.

“잘렸어? 아니, 거기서 뭔 사고를 쳤길래…….”

-사고가 아니라요, 교수님. 거기 이제 장기들만 갈 수 있어요. 그것도 사관 학교 출신들로만 채워졌어요.

“뭐……?”

유현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장기 군의관 부족을 메우기 위해 사관 학교에서 위탁 교육을 시행한 것은 퍽 오래된 일이었다.

하지만 본래 취지와는 달리 대부분의 위탁 교육생들은 군에서 필요로 하는 응급의학과, 내과, 정형외과가 아닌, 영상의학과, 피부과와 같은 소위 말하는 인기과로 진학하고 있었다.

독소 조항을 걸어 봤자 별 소용은 없었다.

그까짓 장학금 뱉지 뭐, 하고 다른 과를 택하면서 그나마 확보할 수 있었던 인기과 장기 군의관조차 잃게 되었다.

해서 여전히 군 병원 대부분의 전문의들은 단기로 채워져 있었고, 그건 지구 병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저도 어이가 없는데……. 갑자기 사단 의무대로 가라고 하더라고요. 가라는데 어쩌겠어요……. 지침이 바뀌었대요.

“그게 얼마나 됐는데?”

-1년도 더 됐어요. 항의는 했는데, 뭐 여기 단기 군의관 다 모여 봐야 서른 명도 안 되는데 어쩌겠어요.

“그럼 지구 병원에는 장기 군의관만 있다, 이거지?”

-네.

“음.”

유현이 두루두루 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긴 하지만.

군에서는 예외였다.

특히 장기 군의관들하고는 별로 말을 섞어 본 일도 없었다.

애초에 첫 사회생활을 군대에서 시작한 사람들과 사회에서 전문의까지 따고 군대에 들어간 사람들이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란 기대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둘 모두 서로를 별세계에서 온 사람 취급을 하기 일쑤였다.

-왜요? 거기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간호 장교한테라도 물어볼까요?

“아니, 아냐. 넌 신경 꺼. 내가 따로 알아볼게.”

-음……. 알겠습니다. 도움 못 되어서 죄송합니다.

“아냐. 조만간 보자. 내가 밥 사 줄게.”

-네, 교수님.

전화를 끊자, 옆에서 듣고 있던 우식이 바로 입을 열었다.

“지구 병원으로 갔겠죠? 괜히 장기로 다 바꿨겠어요?”

“그랬겠지. 진짜로 실험이라도 하는 건가?”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오늘 있던 일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냐?”

“그건…….”

“만약 진짜 실험하고 있다면……. 그거 새어 나가면 다 죽은 목숨이란 거 각오하고 하는 일일 거야. 그러니까……. 우리도 조심해야 해. 아니면 관심을 끄거나. 안 그럼 우리도…….”

유현은 말없이 병원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형사님들처럼 된다고요?”

“그래, 인마. 처자식도 있는 놈이…….”

“난…… 난 그래도 이대로는 못 넘어가겠는데.”

“일단 국장님 오면, 오면 얘기해 보자. 서두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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