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27화 (27/323)

27화 성동격서 (1)

“안녕하십니까. 의무사령관 이종범입니다.”

“어…….”

“경례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 군의관도 아니시지 않나요?”

“네, 네. 그럼. 그. 네. 안녕하십니까.”

박원상은 전에 없이 당황하고 있었다.

10억 원.

연구비로 준다는 건 줄 알았는데, 자세히 읽어 보니까 그냥 보수였다.

그것도 일이 한 달 안에 끝나든, 두 달 안에 끝나든 상관없이 주어지는 보수였다.

연구비는 이미 연구실이 받아 놨고 그 예산은 수백억에 달한다고 쓰여 있었다.

말이 수백억이지, 부족하면 더 태울 수 있다고 들었다.

그 말은 곧 무제한이라는 얘기였다.

‘놓칠 수 없는 기회야.’

대한민국의 의료 수준은 명실상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보면 되었다.

하지만 임상이 아닌 연구 부분으로 들어가면 형편없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돈을 쓰는 정부와 기업의 한계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제한이라고?

‘유현이가 했던 말이 좀 걸리긴 한데…….’

그 녀석…….

병원에서 사는 놈이 웬일로 저녁도 안 먹고 밖으로 나돌고 있었다.

그것만 해도 이상한데, 저번엔 전화까지 해서 국방부 용역 받고 있는 게 있냐고 묻지 않았나.

타이밍이 공교로웠다.

하지만 박원상은 학자로서의 호기심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 이곳 지구 병원에 들어왔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거물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조은 박사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의무사령관도 꽤 놀라운 상대긴 했다.

하지만 기껏해야 군바리 아니겠나.

별이 있어서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선 이 인간은……. 차원이 다른 거물이었다.

“미국에 계신 줄 알았는데…….”

“귀국한 지 좀 됐습니다. 아주 재미난 연구를 하게 되어서요.”

원래는 인체 유전학을 전공하고 정말이지 엄청난 논문을 쏟아 냈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ARS-24가 등장하고 나서부터는 아예 바이러스 조작 쪽으로 진로를 틀었다.

변종마다 추적 관찰해서 무력화시키는 백신을 개발하는 데 있어 일인자였다.

그 결과 세계적인 제약 회사 제이시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고 들었었는데 여기서 만날 줄이야.

“재미난 연구라고 하시면…….”

김조은은 바로 답을 해 주는 대신 아직 소개도 하지 않은 정장 차림의 사내를 돌아보았다.

머리칼이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스워 보이지 않는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이 느껴졌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여기서 제일 높은 사람이 이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지경이었다.

“좀 더 확인을 받고 말씀드리는 게 좋겠군요.”

“네, 그렇게 하시죠.”

목을 함부로 굴렸는지, 쇳소리가 났다.

귀에 다소 거슬렸으나 당사자가 너무 신경을 안 쓰다 보니 그마저도 일종의 장치로 여겨졌다.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장치.

본래도 좀 소심한 편인 박원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박원상…… 교수님.”

“네.”

“이 안에서 보고 들은 일은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어……. 네.”

“당연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면……. 저희로서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네네. 명심하겠습니다.”

“일단 수락하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병원엔 저희가 알아서 조치하도록 하죠.”

“어……. 네.”

조치라.

무슨 조치를 취한다는 걸까.

박원상은 의문을 품기도 전에 몸을 일으켜야만 했다.

사내가 손짓을 하자, 다른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다가와 박원상을 어디론가 안내했기 때문이었다.

“보시다 보면 왜 기밀을 지켜야 하는지 알게 될 겁니다.”

“네.”

우선 엘리베이터에 타고, 지하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 의외로 병동이 나타났다.

간호사들이나 의료진이 가운 안에 군복을 받쳐 입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리 특별할 것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박원상에게는 이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모습이 오히려 더 생경하게만 느껴졌다.

‘대체 이런 병동을 왜 지하에…….’

엘리베이터에는 1층과 지층만이 표기되어 있었다.

그 말은 곧 해당 엘리베이터는 오로지 이곳을 오기 위해서만 만들어졌다는 뜻이 되었다.

또 밖을 나가기 위해서는 저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한다는 뜻도 되었는데, 박원상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러한 사실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앞서가는 무리를 따라잡기 위해 하릴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이었다.

“폐쇄……. 병동입니까?”

“네, 그렇죠.”

“죄수……. 죄수들인가요?”

병동 스테이션을 벗어나 병실이 늘어서 있는 복도에 이르자 비로소 다른 병실들과의 차이가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무슨 감옥처럼 쇠창살이 쳐져 있었다.

“죄수라.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희는 실험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실……험체?”

“일단 보시죠.”

“어…….”

사내는 그중 한 병실 앞으로 박원상을 데려갔다.

안쪽이 워낙 밝아서 딱 서자마자 안에 있는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키가 2미터를 넘고, 어깨너비도 어마어마한 사람이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서 있었다.

딱히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지극히 위험해 보였다.

“알아보시겠습니까?”

“네? 저는 무슨 소린지.”

“저 실험체……. 박원상 교수가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요?”

어디서?

박원상은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다시 환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저와 비슷한 인상조차 떠오르는 게 없었다.

외형을 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사람인데도 그랬다.

‘저……. 손도 그렇고. 턱도……. 완전 아크로메갈리인데. 내가 봤던 환자……. 아니, 아냐. 잠깐. 잠깐만.’

그러나 사람 관찰하는 게 일인 의사다 보니 금세 어떤 가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설마……. 저 사람.”

“박기태. 한국대학교 병원에 입원했었죠.”

“그 사람이 이렇게 됐다고요?”

“그렇습니다.”

“허…….”

박원상이 당혹스러움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을 때, 환자가 다가왔다.

“XXX XXXX!”

무슨 말인지 모를 단어를 외쳐 대면서였다.

성장 호르몬 때문인지, 아니면 남성 호르몬 때문인지는 몰라도 성대가 변형이 되었는지 목소리가 너무 낮아서 더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중국어일 겁니다. 이제는 해석이 불가할 정도인데, 아마도 그럴 거예요.”

“한국인 아니었어요?”

“중국인이었을 거라고 추정합니다. 아무튼…… 다음 병실로 가시죠.”

“어……. 네.”

박원상은 얼빠진 얼굴로 다음 병실로 향했다.

거기에도 덩치가 커다란 사람이 있었는데, 박기태하고는 좀 달랐다.

훨씬 작았다.

그리 흉포해 보이지도 않았고.

“박기태에게 물린 사람입니다.”

“어……. 물려요?”

이 말에는 김조은 박사가 나섰다.

작은 눈을 빛내면서였다.

“네. 타액으로 박기태가 감염되어 있던 ARS-24가 이 사람에게 전염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확인?”

“네. 유전자 타입이 같습니다.”

“근데 나타나는 형질은 다른 거 같은데요?”

“네, 그렇습니다. 다른 환자들도 모두 같은 타입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습니다. 물론 바이러스마다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긴 해요. 이것도 흥미로운데, 1호…… 아니지. 박기태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단 하나도 없어요. 덩치가 커지긴 했지만 뭔가 모자랍니다.”

“호르몬 양은요?”

“그게 차이가 납니다. 바로 그거 때문에 저희가 교수님을 부른 겁니다.”

“음.”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21세기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기껏해야 최악은 사기일 거라 생각하며 나왔던 박원상은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어야 맞았다.

하지만 그의 머리 일부는 분명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는데……. 각기 다른 형질을 보이고 있다. 이건 분명 숙주의 차이겠지……. 가설을 세워 보자면……. 아니, 잠깐만.’

동시에 본능적인 거부감 또한 느끼고 있었다.

“근데 이 사람들……. 동의는 받은 겁니까? 제가 볼 때는 이거…… 감금 같은데요.”

“풀어 줄 수는 없어요. 엄청나게 사납습니다. 1호, 박기태의 행태를 알고 계시지 않나요? 여기 감염된 사람들 모두 박기태가 감염시킨 겁니다. 풀어 줬다간 미증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김조은의 말을 듣자 그 거부감이 다소 해소되었다.

깊게 생각했다면 여전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터였다.

일단 박기태 환자의 도주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

하지만 박원상은 유현만큼 자세히 사정을 알지 못했고.

이미 흥미를 느낀 참이었다.

거기서 죄책감마저 해소되었으니, 일종의 브레이크가 제거된 차량 비슷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렇군요. 하긴 팬데믹은 위험하죠.”

“네. 그렇습니다.”

“근데, 그럼 제가 할 일은 뭘까요?”

“우선 저희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이 바이러스는 숙주의 생존을 대단히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박기태를 감염시킨 1호 바이러스는 그렇지 않았던 거 같은데……. 그다음 세대에서는 해당 유전자에 메틸기(Methyl group, 메테인에서 수소 원자 하나를 제거한 일가의 원자단)가 붙은 것이 아닌가……. 저희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어요.”

“박기태에 대해서는 생명체의 한계에 가깝게 또는 넘어서는 호르몬을 분비시켰지만……. 다른 숙주들에 대해서는 다르다는 얘기죠?”

“네, 바로 그렇습니다.”

바이러스라고 하면 반드시 숙주를 죽이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유구한 세월 동안 사멸하지 않고 남은 바이러스들의 특징은 강한 전염력과 약한 병원성이었다.

숙주가 죽게 되면 바이러스 또한 죽게 되기에 그러했다.

때문에 바이러스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약독화되기 마련이었다.

“근데 이게 단 한 세대 만에…… 이루어진 변화라고요?”

“네, 그것이 이번 변종 바이러스의 특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이거…….”

“어떻습니까. 흥미가 생깁니까.”

“의학자로서 어찌 안 그럴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생기죠. 해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박원상이 확답을 하는 순간 모습을 감춘 이가 몇 있었다.

모두 무장한 사람들이었다.

거절은 곧 죽음이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병동은 감염체 아니, 실험체들이 내는 소리로 인해 시끄러웠고.

박원상은 이곳이 아예 처음이었기 때문에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 시각 유현은 박원상 교수의 연구실에서 빠져나왔다.

‘해외 학회……. 전화는 아예 안 되고……. 제수씨도 그렇게 알고 있고.’

설마 이 새끼가 거기에 협력하는 건가.

배신감이 치밀어 오르다가, 곧 수그러들었다.

박원상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모르지 않나.

호르몬밖에 모르는 멍청한 놈이니만큼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신나서 연구에 빠져 있을 게 뻔했다.

‘이건 억측이지만…….’

그때 보았던 감염자들의 위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게 적진에서 퍼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 군대는 단숨에 무너지지 않겠는가.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테러에 쓰이게 되면 어떻게 될까.

군대가 아니라 사회가 아니, 세계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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