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성동격서 (3)
삼청동 인근은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거용 임대 부동산이 갑자기 나가고 있었다.
“임대요?”
“네.”
“네, 그……. 잠시만요.”
일반인들이나 상권이 느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몇몇 부동산이 좀 바빠졌을 뿐이었다.
“이상한 점이요……? 글쎄……. 그냥 학생 같던데. 예산도 후달리는지 전화도 하고요.”
“그렇습니까?”
“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전혀…….”
“알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임대 장소를 알 수 있겠습니까?”
“음. 그게.”
딱히 부동산을 빌리는 사람이 이상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상하기로 따지면 오히려 이쪽이 훨씬 이상했다.
형사는 맞나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까 들이밀었던 배지는 확실히 그럴싸하지 않았나.
별다른 얘기도 아니니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아 떠들어 주고 있었다.
“그……. 가서 해코지하고 그럴 건 아니죠?”
“아뇨. 아닙니다. 찾아가지도 않아요. 다만 확인이 필요해서요.”
“거참. 알겠습니다. 그……. 여기예요.”
“여기?”
“네.”
“감사합니다.”
일개 소시민이 형사 말을 함부로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영장 가져오라는 말은 영화 속에서나 자연스럽지, 일상 속에서는 영 어색하기만 했다.
아니, 그런 말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시야에서 형사가 사라지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떠올랐다.
‘진짜 그럴 걸 그랬나……? 찜찜하네…….’
부동산 주인의 떨떠름한 표정을 뒤로하고 형사는 골목길을 걸었다.
추리닝 차림에 털모자를 쓰고 있는 데다가, 멋지게 기른 콧수염 때문에 그냥 인근에 사는 힙한 젊은이로만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절대 힙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오 선배 말대로…… 최근에 지구 병원 근처에 비어 있던 사무실, 상가……. 심지어 주택까지 다 나갔어. 내려다볼 수 있거나 적어도 지구 병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볼 수 있는 위치야.’
유현과 오예리 형사는 근처 카페에 앉아 그런 형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화로 물어보면 좋은데……. 하면 안 된다는 거죠?”
오예리는 답답하다는 얼굴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분명 대학 병원 의사라고 했는데, 행동하거나 말하는 폼은 어째 어디 요원 같았다.
“그렇죠. 아무튼, 이거 맛있죠?”
지금도 그랬다.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 나가는 틈틈이 종이에 진짜 메시지를 전해 왔다.
-일상적인 얘기만 하는 것이 좋아요. 애초에 여기 왔다는 것만으로도 의심을 살 수 있어요.
하아.
오예리는 한숨을 쉬었다.
잠입 수사라고 하는 걸 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몇 날 며칠을 숨어서 밤새 본 적도 있다는 얘기.
하지만 감시 대상이 되어 본 적은 없었다.
‘다 이렇게 조심하면……. 시발, 범인 못 잡겠는데?’
그런 오예리가 볼 때 유현은 프로 그 자체였다.
지금도 자연스럽게 내려놓은 숟가락과 포크엔 그의 지문이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알코올 솜으로 닦아서 그랬다.
그냥 보면 손 닦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지문을 지웠다.
식당에서 밥 먹는 것조차 이렇게 주의를 기울이는데, 마음먹고 범죄라도 저지르게 된다면 그날 대한민국 경찰은 X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네이버 부동산으로 봐도 이 근처 임대만 싹 나갔어요. 거래 완료 일도 공교롭게 사고 난 당일 이후니 확실히 이상하죠.
-진짜로 무기를 만들고 있다면 큰일 아니에요? 이제라도 언론에 알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하여간 둘은 지금 마시고 있는 음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나누면서 동시에 필담을 나누었다.
겉으로 볼 땐 잘 어울리는 한 쌍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따금 타이밍 좋게 웃음을 터뜨리곤 하는 유현 때문에 더 그랬다.
‘그러게……. 태평 선배가 뭣도 없는 새끼들이라고 했는데 뭘 감시를 붙이는 거야. 민간인 사찰이라고 걸리면 나만 옷 벗을 텐데……. 하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국정원 요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것보다 급한 일이 하나 가득이지 않나.
그 증거로, 요 며칠간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불려 왔다는 것을 이유로 입이 사발만큼 나와 있던 김태평 선배가 신나서 죽으려 했다.
확실히 이 일대 움직임이 이상해서 그랬다.
-언론이요? 증거가 없는데……. 믿어 주겠습니까?
-사람이 죽었고, 이런 정황 증거가 있는데요?
-그래 봐야 소용없을걸요. 유튜브에 흘리면 모를까……. 근데 이런 거 다뤄 줄 만한 유튜브는 신뢰도가 떨어질 테니……. 게다가 그 사람도 죽을 수 있어요. 아시잖아요.
-하아……. 답답하네…….
답답하다.
유현도 그랬다.
온 인류가 힘을 합쳐서 바이러스에 대항해도 모자랄 판에 이게 다들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무기라니.
바이러스를 무기로 쓰겠다니.
아직은 추정이지만…….
이 부정한 움직임은 유현의 의심을 자꾸만 확신으로 이끌고 있었다.
“네? 저 지금 감……. 아, 네. 그럼 바로 가겠습니다.”
게다가 지금도 분명 둘을 쳐다보고 있는 시선이 있었다.
유현은 조금 전까지 신문 보는 척하면서 이쪽을 힐끔거리던 사람이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전화를 받는가 싶더니만 어느새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교대인가 싶었으나, 그런 낌새는 없었다.
‘요새 신문 보는 놈이 어딨다고……. 저렇게 어린 놈이…….’
옛날 매뉴얼대로 하는 건가.
유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나가죠. 슬슬 직접 물어봐야겠어요.”
-왜 말로 해요?
“보던 사람 나갔으니까, 좀 편하게 움직여도 됩니다.”
“아……. 그걸 어떻게?”
“대충 감인데, 제 감이 잘 맞아요, 원래.”
그러곤 오예리와 함께 밖으로 향했다.
오예리는 경복궁 앞에서 보자고, 후배에게 문자를 남겼고.
답은 없었다.
알았다는 뜻일 터였다.
“선배.”
아니나 다를까, 힙한 차림의 형사가 손을 들고 나타났다.
“넌 옷이…….”
“잘 어울리죠? 잠복 형사의 정석이잖아.”
“그……. 아무튼, 어때?”
형사는 장난기를 지우고, 가까이 다가왔다.
오예리 형사 말로는 죽은 형사들과 꽤 가깝게 지냈던 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단순한 선배의 부탁 때문에 움직인다기보다는 개인적인 원한에 의해 움직인다고 봐야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자세한 일은 말하지 않기로 했지만.
‘오예리 형사는 사람 믿으면 그냥 믿는 스타일이니까…….’
아무리 생사의 고비를 같이 넘겼다 해도,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유현에게도 흉금을 터놓지 않던가.
나라도 말을 아끼잔 생각에 유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대신 귀를 열고 주변을 살폈다.
“확실히……. 병원 근처로 임대 다 나갔어요. 이게 그 사진인데, 제가 붉은색으로 표기한 게 최근에 나간 거예요. 엄청 많죠?”
“어……. 빈방이 이렇게 많았나?”
“삼청동이 언제 적 삼청동이에요. 이제 다 죽었지. 근데 딱 여기만……. 여기만 이래요.”
“계약하러 온 사람들은 어땠대?”
“특별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대요. 중국인도 있고, 영어 쓰는 사람이 있기는 했는데……. 대부분은 한국인이었대요.”
“음.”
오예리는 해명을 바라는 얼굴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긴 했다.
대리인으로 계약을 했을 테니까.
그 말은 곧 지금 저 삼청동 지구 병원 근처는 죄다 외국 정보기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뜻일 터였다.
* * *
쾅회의에 소집된 국정원 요원 김태평은 발로 문을 거세게 걷어찼다.
“진정하게.”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중요한 일이라면서요! 예산을 그럼 넉넉하게 편성했어야죠! 며칠 새에 지금 이 근처 사무실이며 상가 다 나갔어요. 이거 다 누가 들어갔겠습니까?”
“확실한 것도 아니지 않나.”
“하…….”
김태평은 평생 한국에서만 돌다가 자기 위에 선 국장을 바라보았다.
실력이 아니라 정치질과 아부로 올라간 인간.
이 병신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고 있는 건가?
‘하긴……. 외국 새끼들이 뭔 짓까지 할 수 있는지 봤어야 알지.’
국력으로만 따지면 대한민국에 비해 한참 처지는 태국의 NIA도 대중국 전략에 일환으로 움직일 때는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휴전국인 주제에 평화에 젖은 선배가 곱게 보일 수가 없었다.
“일단 위에서도 위험을 인지했어.”
“인지해요? 이제 와서?”
“지금이라도 인지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리고 사실……. 경찰 병력이 그렇게 많은데 뭔 일이 나겠나?”
“경찰이요? 태반이 의경인데 걔들을 어떻게 믿습니까? 기동 타격대도 믿을 수 있을까 말까 한데. 대체 특임대는 어디 간 거예요?”
“그건……. 나도 모르네. 군 내부 사정이야.”
“하.”
내부 사정이라.
알 만한 얘기였다.
군대는 전쟁을 위한 조직이지 않나.
미국처럼 실제로 전쟁을 치르고 다치는 사람이 발생하는 군대라면야 또 모르겠지만.
70년 가까이 책상 위 전쟁만 치러 온 똥별들에게 의무사령부는 그저 하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바이오 생화학 테러 무기 개발의 단초가 보이게 되었으니 의무사령부의 몸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뭔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 결과, 특임대가 배제되었다.
‘김선태……. 그 양반같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김태평은 고개를 가로젓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인원 충원…….”
지금이라도 국정원 측 인원을 늘리자는 말을 하려던 때였다.
쾅그때 소음이 들렸다.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수 있었다.
단순 소음이 아니라, 폭발음이라는 사실을.
어디서?
“지구 병원! 지구 병원이다! 빨리!”
“어, 어!”
“이 병신들아! 빨리 달려! 경찰에도 연락 때리고! 안에 무전 쳐서 안전 확인해!”
김태평은 얼타는 선배를 대신해 현장으로 달렸다.
나머지 요원들을 추스른 채였다.
국장 입장에서는 완전히 짬 처리된 상황.
그럼에도 한동안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너무 당황해서 그랬다.
“뭐야, 방금.”
폭발음은 작지 않았다.
경복궁에 입구에 있던 유현이나 오예리에게도 들릴 정도였다.
“이거 폭발음인데요?”
“시발……. 설마?”
“가 봐야 되겠죠?”
“일단……. 일단 얼굴 눈에 띄지 않게. 되지도 않는 의심 살 수도 있어요.”
“그럼 어떻게?”
“정황을 봐야죠.”
유현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의심받고 있는 마당에 이럴 때 얼굴을 들이민다고?
안 될 일이었다.
저놈들의 연구 결과가 인류를 파멸시킬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엄한 오해로 잡혔다간 내 인생은 100% 확률로 파멸되지 않겠나.
해서 억지로 일행을 만류했다.
그사이 현장에 도착한 김태평이 마주한 것은 피떡이 된 헌병 시체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쩡히 버티고 서 있는 철문 그리고 뒤늦게 달려오고 있는 경찰 부대였다.
“일단 주변 샅샅이 뒤져! 무장했을 가능성 있으니까 주의하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보기관을 상대한다고 상정한 놈들이 몽둥이나 들고 있다니.
치안 강국의 아이러니였다.
“안쪽은 어때?”
“아직 파악 안 되었습니다.”
“그럼 니들은 따라 들어와! 권총 들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