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33화 (33/323)

33화 박원상 (2)

‘후우우…….’

박원상은 어제 일을 떠올렸다.

유현과의 만남, 그리고 아내와의 대화.

최근 들어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거짓말을 했던 적이 있었나?

하늘에 우러러 부끄럼 한 점 없는 삶은 분명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거짓으로 점철된 생 또한 결코 아니었다.

‘이게 뭔 짓이냐…….’

해외 학회 갔다가 급하게 돌아오느라 선물을 못 샀다는 핑계.

학회에서 스트레스받을 일이 있어서 담배를 피웠다는 핑계.

말이 좋아 핑계지 사실상 그저 거짓부렁이었다.

망할.

박원상은 머리를 감다 말고 욕설을 중얼거렸다.

레지던트 때 이후론 이렇게 의도치 않게 욕이 튀어나온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이거…… 진짜 의미 있는 연구야. 놓칠 수 없는 기회…….’

이 모든 것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

잠시 그런 의문도 들었지만.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박원상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후련해 보였다.

ARS-24.

최근 몇 년간 세상을 뒤흔든 바이러스이지 않나.

의학계에서 이 바이러스에 관한 관심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바이러스가 일반적인 행태를 보이지 않아서 더더욱 그랬으며, 일부 비관론자들은 전 세계가 초연결사회로 진입하면서 이제 계속해서 다른 팬데믹이 발생할 거란 예언을 했더랬다.

사실 예언이라기 보다는 현상에 대한 분석에 가까웠다.

이게 자연발생된 바이러스라면 당연히 세상이 그리 될 테니.

‘그런데 정작…… 나오는 건 이 바이러스의 변종들뿐이지.’

다른 인수 공통 바이러스가 아예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신종 플루도, 조류 독감도 계속해서 대두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중 어느 하나도 각국의 감염병 감시 체계를 뚫지 못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2차 감염조차 보고된 바가 없었다.

‘그만큼 특별한 놈이야. 이 바이러스를……. 이 측면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단언컨대 없을 터였다.

어떻게든 들러붙어야 했다.

이 연구에서 빠진다?

이제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다.

박원상은 세계 유일의, 동시에 최초의 발견에서 배제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늘 좀 늦을 수 있어. 학회 때문에 일이 좀 밀려서.”

“아……. 알았어. 담배는 절대 안 돼.”

“어, 알았어. 어제 다 버렸잖아.”

“그래. 그럼 다녀와.”

“어, 여보.”

박원상은 신들린 듯 거짓부렁을 내뱉은 후, 문밖으로 나섰다.

그러곤 습관대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뒤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교수님.”

“어, 시발. 깜짝이야.”

“어제 여기서 만나겠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 아……. 아, 그랬지. 참. 그래요. 갑시다.”

“네. 모시겠습니다.”

의전인가.

아니,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감시 한번 열심히 한다……. 확실히 어제 담배 피운 게 잘한 일이었던 거 같아.’

집에서 나오는 순간부터는 단 한 순간도 혼자 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가.

의지라기보다는 악의가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타시죠.”

“네.”

고민하는 사이 박원상은 검정 세단 앞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결론을 내린 후였기에 망설임 없이 차에 탈 수 있었다.

일말의 양심은 유현에게 전달하기로 한 쪽지로 맞바꾸었다.

‘그래, 그만하면…… 나도 내 할 일 다 하는 셈이야. 그리고…… 거기 안전해. 가스 폭발이었다고 하잖아?’

어제 낮에는 정말 놀랐더랬다.

지근거리에서 폭발음이 들렸을뿐더러 총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자꾸 가스 폭발이었단 얘기를 듣다 보니 그런가 싶었다.

게다가 나오는 길에 본 지구 병원 입구는 이미 깔끔해져 있었다.

폭탄이었다면 그렇게 멀쩡하진 못할 것 같았다.

“이쪽으로.”

지구 병원에 도착한 박원상은 운전해 준 요원과 함께 지하로 향했다.

계단으로 내려간 후, 지하에만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실험실로 내려갔다.

그렇게 도착한 실험실은 어제와 정확히 같은 광경이었다.

아니, 오히려 더 활기차 보였다.

아마 박원상 덕분일 터였다.

그가 온 이래 호르몬 수치 재정립이 빠르게 이루어졌고, 모든 인원은 그걸 현실화시키기 위해 뛰고 있었다.

“그럼 오늘 하루도 부탁드립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요원이 조용히 인사하고 뒤로 물러났다.

처음 며칠간은 이렇진 않았는데.

딱 어제부터 무언가 바뀌었다.

실험실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저 요원들의 태도는 변했다.

엘리베이터를 따라 들어온 적이 있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기시감이 들 뿐이었다.

‘아니,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박원상은 찝찝함을 뒤로하고 김조은 박사부터 찾았다.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는 말조차 부족한 상태인 그는 퇴근조차 하지 않았다.

늘 그렇게, 실험실의 인테리어라도 된 듯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다.

오늘도 그랬다.

“박사님.”

“아, 박 교수님. 뭐 하실 말씀이라도…….”

“네, 잠시 시간 괜찮을까요?”

그냥 있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무척 바쁘게.

“물론이죠.”

하지만 박원상의 요청에는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상대 연구원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유전자 연구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지 않았지만.

호르몬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박원상이 합류하고부터 연구가 물꼬를 튼 듯 활기차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1호 말입니다.”

박원상은 자연스레 연구원이 있던 자리에 대신 앉으며 입을 열었다.

눈은 모니터에 두고서였다.

CCTV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안에 1호는 자리에 앉은 채, CCTV를 노려보고 있었다.

처음이었다면 섬찟한 기분이 들었겠으나 지금은 그저 신기하단 느낌뿐이었다.

이제 박원상에게 1호는 1호일 뿐, 사람이 아니었다.

“네, 말씀하세요.”

“1호와 다른 감염체 사이에 중대한 차이점이 하나 있다는 걸……. 어제 깨달았습니다. 그게 아무래도 행태 차이의 원인이 될 거 같습니다.”

“으음? 그런가요? 어떤……?”

“1호는…… 죽었다 살아났다는 보고가 있지 않습니까?”

“아……. 그렇죠.”

김조은은 조금은 실망이라는 얼굴이었다.

이건 당연히 생각했던 주제여서 그랬다.

“바이러스에게 장악된 뇌는 아무래도 다른 뇌와는 다른 행태를 보일 겁니다. 호르몬 세팅에서도 숙주의 생존을 배제할 수 있죠.”

“으음……?”

“또 뇌사에 빠졌던 심장도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지 알 수가 없어요. 실제로 1호…… 심장이 그리 비대해지지 않고 있어요.”

“그건 맞습니다.”

속 시원히 알아보려면 부검을 해 봐야 할 터였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선택지였다.

1호는 말 그대로 1호.

현재까지는 저런 행태를 보이는 유일한 실험체였기에 그랬다.

“하지만……. 2차 감염자들이 죽었다 살아나지 않았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당시 수락 마을은 군의 통제하에 있었을 뿐……. 그 과정을 의료진이 관찰하지 못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때는 그저 2차 감염이 가능한가만을 봤으니까요. 게다가 감염자들의 행태가 비슷하기는 했어서 더더욱 관찰에 소홀했을 겁니다. 우리는 이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확인……이라?”

김조은의 눈이 묘해졌다.

그런 김조은을 마주하고 있는 박원상의 눈엔 묘한 열기가 있었다.

아니, 이걸 열기라고 해야 할까.

차라리 광기가 어울릴 법했다.

“3차 감염자에서는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과정이 없었음을 확인했습니다. 만약 이 형질이 2차 감염자에게서 소거되었다면……. 그것만 찾아내면 수정 가능할 겁니다.”

“그렇다면 2차 감염자의 초기 행태……. 즉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겠군요.”

“그게 문제입니다.”

광기는 쉽게 전염되는 법이었다.

특히 이미 미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그랬다.

“문제라……. 그 점은 해결이 가능할 거 같은데요?”

“네?”

“정부랑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 공언한 바 있습니다. 요청해 보죠.”

“어떤…….”

“일단, 제게 맡겨 주십쇼.”

김조은 박사는 미소라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는 표정을 짓더니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방금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상대는 별다른 고민도 없이 알겠다고 했다.

“한 시간 내로 온다고 하니……. 세팅하죠.”

“어……. 세팅이요?”

“따라와 보면 압니다. 자, 다들 모여 봐요.”

비어 있던 병실 하나가 환자 받을 준비를 마쳤다.

‘무슨……. 이게 뭘 의미하는 거지. 1호는 여기 있는데. 다른 데서 2차 감염자가 어떻게…….’

박원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다고 해결될 의문은 아니었다.

결국, 기다려야만 했다.

띵한 시간 이내라더니.

정말 40분이 채 가기 전에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어제 그 사태 이후, 아예 전력 공급을 끊어 놨다고 들었으니 작동이 되었다는 건 무언가 왔다는 뜻일 터였다.

“어…….”

박원상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몇몇 연구원 중에서도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특히 김조은은 숫제 기대 중이었다.

‘죄수복……?’

죄수복을 입은 사내가 복면을 쓴 채, 세 명의 사내에게 이끌려 들어오고 있었다.

심지어 목적지가 새로 마련된 병실이 아니었다.

1호.

1호의 병실을 향하고 있었다.

“박사님?”

“어차피 사형수입니다.”

“우리나라……. 사형 불법입니다! 판결이 났다고 해서…….”

“박 교수님. 이 아이디어, 박 교수님 거예요.”

“아니, 나는.”

“솔직해집시다, 우리. 보고 싶잖아요?”

“그…….”

보다 못해 잠시 항의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니, 소용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설득이 되었다.

확실히.

박원상은 이 결과가 너무 궁금했다.

과정이 얼마나 끔찍하건 간에 관계없이.

“애국하는 길입니다. 나라에서 원하고 있어요.”

“하긴……. 그렇긴 하네요.”

김조은의 말도 안 되는 애국 팔이에 은근슬쩍 넘어가 줄 정도로 궁금했다.

“흐흐.”

철창 밖으로 죄수가 다가오자, 1호가 문가로 다가왔다.

“물러나!”

군인들이 그런 1호를 작대기로 뒤로 밀었다.

전기 충격기 따위는 쓰지 않았다.

그러다 망가지기라도 하면 안 될 몸이라서 그랬다.

특별 대우받는 몸이라는 걸 아는지, 1호는 딱히 그런 군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버티지도 않았다.

얌전히 뒤로 물러났다.

끼익

곧 문이 열리고.

죄수가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 와중에 창살에 복면이 걸려 벗겨졌다.

그제야 죄수는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런다고 상황이 파악되지는 않았을 터였다.

“어어, 어! 이놈 뭐야!”

그 순간 공포에 사로잡혔으니까.

먹잇감을 눈앞에 둔 듯, 입맛을 다시며 달려드는 1호 앞에 죄수는 무력했다.

“으, 으아아아악!”

그대로 물렸다.

가슴께를.

더 두면 저대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성을 잃고 날뛰는 괴물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1호는 그렇게 물기만 하고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뒤로 물러났다.

데려가라는 손짓까지 하면서였다.

이 모든 일이 마치 1호의 아니, 바이러스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끌어내!”

“네!”

하지만 계획이 중단되는 일은 없었다.

이제 모두가 새로운 병실에 누운 채 치료받고 있는 2호를 주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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