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34화 (34/323)

34화 박원상 (3)

“변화가 없군요.”

2호가 1호에게 물린 지 이제 벌써 6시간이 경과한 상황.

아직 2호에게는 그 어떤 증세도 관찰되지 않았다.

‘ARS-24의 초기 증상은……. 원래 기침인데. 이거야 다른 실험체들도 전혀 없으니 넘어가고.’

박원상은 2호와 1호의 CCTV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방금 언급했듯 그 외의 실험체들도 그렇고, 이놈들은 기침 따위의 증세는 전혀 없었다.

-기침은……. 바이러스에게는 필수적인 증상이라고 할 수 있죠. 그걸 통해 다른 숙주를 감염시키고 종을 존속시킬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변종은…… 다릅니다. 물리적인 감염, 즉 다른 숙주를 무는 방식을 채택했죠. 이렇게 되면 기침은 성가신 증상이 됩니다. 오히려 숙주를 약화시킬 뿐이죠.

김조은 박사의 말에 의하면, 이러한 행태 변화의 원인은 위와 같았다.

처음 들었을 땐 말이 되나 싶었다.

이기적 유전자니 뭐니 하면서 유전의 신비를 조금 엿본 적이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아주 길게 보면 유전자의 변화가 생존 또는 번식에 유리하게 이끌어져 가긴 하지만.

이렇게 빠를 수는 없었다.

아무리 바이러스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같은 종이라고 봐야 할지부터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배고파…….”

그때 2호가 입을 열었다.

물린 다음부터,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컨디션이 떨어져서 그런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더니.

처음 내뱉은 말이 배고파였다.

“어……. 이거?”

“검사부터 해 보죠.”

당연히 병동 아니, 연구실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배고프다는 말이 그저 나온 말일 수도 있겠지만.

환자의 행태 변화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져서 그랬다.

지금 저 환자가 처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쪽이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2호. 이리 나와.”

“이름으로 불러!”

“2호. 밥 먹기 싫나?”

“하…….”

2호에게 다가간 것은 의료진이 아니었다.

국정원 요원들이었다.

기계처럼 움직이라는 지침이 있던 만큼, 그들의 눈에는 인간성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거참…….’

박원상은 그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차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랐다.

놀랍게도 거의 흡사한 눈을 하고 있어서 그랬다.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상대는 분명 인간이지 않나.

호칭을 2호니 뭐니 하고 있을 뿐, 인간이었다.

그러나 대우는 실험 쥐에 준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여기 있는 모두가 저런 마인드셋을 가져야만 했다.

‘그래……. 이게 옳아. 나는 의학의 발전을 위해…….’

아마 유현이었다면.

그라면 여기 들어올 일도 없었겠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자각의 순간에 바로 어떻게든 이 프로젝트에서 빠져나왔을 터였다.

사람을 실험체로 보는 것, 그걸 용납할 수 없었을 테니.

하지만 박원상은 이미 흥미에 잡아먹힌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합리화하면서 2호를 지켜보았다.

“어어, 팔을 왜!”

“검사만 하고 밥 줄 거야.”

“아니, 이거! 이거 놔! 이봐 당신들! 거기! 너네 의사 아냐! 이럴 수 있어?”

2호와 눈을 마주쳤으나 흠칫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주변에서 그런 박원상을 응원하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마십쇼. 여자 셋을 강간하고 죽인 놈이에요. 사실상 죽어 마땅한 놈이죠.”

누군가 하고 돌아보니 아까 저 2호를 데려온 사람이었다.

‘하긴, 사형수를 데려온다고 했지.’

집행은 하고 있지 않지만.

판결을 받은 이들은 엄연히 존재했다.

현존하는 법의 틀에서 죽음 말고는 선고할 것이 없는 악한들.

그들이 바로 사형수였다.

박원상의 머리는 빠르게 이를 수용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그러자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검사 결과 언제쯤 나오지?”

이미 그 과정을 한참 전에 거친 김조은의 말에 연구진 중 하나가 답했다.

“호르몬 검사다 보니…… 좀 예민해서요. 대략 4시간 정도 걸릴 거 같습니다.”

“최대한 빨리해 줘. 자네는 궁금하지도 않나?”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피가 뽑힌 2호는 밥도 없이 터덜터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밥 안 줘? 배고프다고!”

그 와중에도 소리도 지르고 하긴 했지만.

이내 기력이 빠졌는지, 잠에 들었다.

그사이 결과가 나왔다.

“이건…….”

박원상은 그걸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미 호르몬 수치가 명백히 오르고 있어서 그랬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었다.

저 인간이 원래도 수치가 높을 수도 있을 테니.

그렇다면 뭘 확인해야 할까?

바로 경향성이었다.

“한 번 더 뽑죠. 근데 협조를…… 할까요?”

해서 박원상은 한 번 더 검사를 요청했다.

살짝 걱정하는 얼굴이었으나, 전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걸 바로 다음 순간 알 수 있었다.

물리지 않도록 무장한 요원들이 우르르 방에 들어가 수면제를 주사해 버린 까닭이었다.

애초에 잠들어 있던 터라 저항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헌데 박 교수님. 시간이…… 늦었는데요.”

그때 김조은이 시계를 슬쩍 가리켰다.

벌써 오후 6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슬슬 나가야 제때 들어갈 수 있을 터였다.

아내의 얼굴과 유현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달리 말하면 책임감과 죄책감이 떠올랐다.

‘아니, 아냐. 이건 확인하고 가야 해.’

하지만 의학적인 흥미가 이 둘을 모두 이겼다.

만약 2호가 이대로 호르몬이 상승한다면, 그만큼 1호가 특별하다는 얘기가 되지 않겠나.

죽었다 살아났다.

의학적인 견지에서 보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여간 그 비슷한 과정으로 보이는 과정이, 1호를 그렇게 만들었을 터였다.

대체 무엇이 그걸 일으킨 걸까.

박원상은 그걸 너무 알고 싶었다.

“괜찮습니다. 좀 늦죠.”

“좋은 생각이십니다. 연락은 따로 안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병원에 있는 몸이라……. 연락 안 하면 알아서 늦을 거라 여길 겁니다.”

“그것도 좋군요.”

실은 그저 거짓말을 하기 싫었을 뿐이었다.

놀랍게도 정녕 마음에 걸린 건 아내가 아니라 유현이었다.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는 데 반해, 유현은 무언가 알고 있었으니까.

안 그래도 감이 좋은 녀석이니 지금 얘기를 꺼냈다가는 들킬 수도 있었다.

자신은 이미 이 연구에 진심이라는 사실을.

또 어떻게든 연구의 끝을 보고 싶어졌다는 사실도.

“그럼 식사나 하실까요.”

“네.”

김조은은 그런 박원상을 묘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이내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서도 일상적인 대화는 없었다.

심지어 음식을 눈앞에 둔 와중에도 음식 얘기조차 없었다.

“아마도 1호의 바이러스는……. 처음에 뇌를 공격했을 겁니다. 심장도요. 심근의 리모델링을 통해……. 호르몬이 붙을 자리를 없앴을 겁니다. 그래야만 현 상황이 납득이 돼요.”

“아……. 리모델링이라. 그럼 확실히 호르몬의 영향이 사라지겠군요.”

“네. 하지만 어떤 원인에서인지 1호의 바이러스는 이미 변이를 일으켜…… 지금 2호나 다른 실험체에 있는 바이러스가 되었습니다. 원형을 찾아야 할 텐데요.”

박원상은 밥을 먹으면서 끊임없이 1호에 대해 떠들었다.

아니, 1호가 아니라 1호를 만들어 낸 바이러스에 대해 떠들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김조은은 감탄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론 확실히 놀랐다.

‘과연……. 추론 능력이 대단한데.’

그는 알고 있는 게 더 있어서 그랬다.

저 1호의 포획이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전원 중국인으로 이루어진 용병 집단이 흑룡강성 병원 내의 연구소를 급습, 바이러스 샘플을 빼 왔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로 누군가를, 선별된 누군가를 감염시켰다고 들었다.

그것이 바로 1호.

‘혹시 몰라 바이러스 앰플도 확인했는데 이미 다 변이했어.’

애초에 그 때문에 이 연구에 합류한 것이 바로 김조은이었다.

대체 중국에서는 어떤 연구를 통해 그 바이러스를 만든 걸까.

‘처음엔……. 별거 없다고 여겼지.’

김조은이 왔을 때 1호는 명백히 죽어 가고 있었다.

귀찮아질 것을 염려한 당국은 1호에 관한 증거를 모두 소거한 후, 한국대학교 병원에 버렸다.

그리고 이변이 일어났다.

‘죽었다 살아났고……. 저렇게 됐지.’

그러나 그 이변은 반복되지 않았다.

애초에 이렇게 설계된 바이러스일 수도 있겠지만.

김조은이 볼 때는 실패작이었다.

실제로 중국 흑룡강성에서도 더는 보고가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뭐 뒤로는 또 다른 연구를 하고 있기는 할 테지만, 적어도 별다른 성과는 없을 거란 확신은 있었다.

만약 뭐가 있었다면 중국 측 요원이 이 근처에 포진하고 있을 이유가 없을 테니.

“결과 나왔습니다.”

두런두런 1호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자니, 결과가 나왔다.

“올랐군……. 아까보다 더 올랐어. 결국, 남들과 같은 경향이야. 1호랑은 달라.”

“그렇군요. 확실히 1호는 특별하군요.”

박원상의 말에 김조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원상은 그 말을 들으며 탄식했다.

호르몬을 저토록 때려 박고 있는데도 생존하고 있다니.

저 방식을 조금 수정하게 되면 인류는 진일보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겠지.

중간에 좀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어차피 죽어 마땅한 인간들이었다.

별 상관은 없을 거 같았다.

“그 원형……. 원래의 바이러스를 구할 수는 없는 겁니까?”

“현재로써는 그렇습니다.”

“결국, 원점이군요.”

하지만 아직은 요원한 일이었다.

1호를 만든 원래의 바이러스를 찾지 못한다면,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그렇게 박원상은 좌절했으나 김조은은 정반대였다.

“아뇨, 원점은 아닙니다.”

“아니라뇨?”

“원형 바이러스의 특징을 잡아내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머리와 심장에 친화력을 갖고, 심근에 작용한다……. 이것을 힌트로 바이러스 유전자 조작을 해 보도록 하죠.”

“아, 제가 뭔가 할 일이 있을까요?”

“많죠. 헌데…… 집은…….”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죠! 실마리가 보이는 상황인데요!”

“하하, 좋습니다.”

그리고 김조은의 열정은 곧 박원상에게도 전염되었다.

그렇게 연구는 재개되었다.

‘이 새끼……. 설마 들켰나?’

그 시각, 유현은 박원상의 아파트에 있었다.

오지 않는 차량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괜한 것을 시켰나 싶었다.

박원상이 똑똑하긴 하지만 좀 부주의한 편이지 않나.

쓸데없는 것을 묻다가, 또는 쓸데없는 것을 찾다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시간 만큼이나 죄책감이 켜켜이 쌓여 나가고 있을 무렵, 전화가 왔다.

무음으로 해 놓긴 했으나 어차피 들고 있다 보니 확인은 빨랐다.

“네, 정유현입니다.”

-아, 교수님.

“재원이? 웬일이야.”

-그…….

“주변이 소란스러운데? 응급실이야?”

-네네. 그……. 아셔야 될 거 같아서…….

“뭘 알아.”

유현은 이미 지하로 향하고 있었다.

심상찮은 일이 발생했음을 직감해서 그랬다.

-이순규 교수님……. 응급실로 오셨어요.

“어?”

-본인 상태가 이상하다고 하면서 오셨는데……. 하여간 지금 오실 수 있으세요?

“가고 있어. 자세히……. 자세히 말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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