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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39화 (39/323)

39화 단서 (5)

박원상은 김태평을 통해 검체 확보 지시를 내린 후에도 한동안 자리에 앉지 못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김조은 박사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배회하는 그를 불렀다.

알고 지낸 지 불과 며칠 되지 않은 사이이기는 해도, 어느 정도는 파악이 끝났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원래 같이 나쁜 짓을 하다 보면 정이 좀 빨리 통하는 법 아니겠는가.

법이 허락하지 않는 일에는 묘한 쾌락과 함께 불안감이 있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 아니, 혹시 검체를 탈취 못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네? 하하. 국정원 요원들이에요. 사람들이 국정원 무시하는데…… 우리 같은 책상물림들하곤 달라요.”

“뭐……. 그야 그럴 거 같습니다만.”

박원상은 지금도 연구실 안을 지키고 있는 요원들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일반인들은 아니었다.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건 유현이도 마찬가지야. 아니, 그 걔는 좀 더 특별하지.’

학생 때 동아리를 하면서 알았다.

뭘 해도 빨리 배우고, 잘하는 사람이 바로 정유현이었다.

머리가 좋아서도 있겠지만 일단 피지컬이 좋았다.

게다가 정유현에게는 그 이상 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뭐라고 딱 짚지 못할, 그러나 오랜 시간 함께한 이에게는 느껴지는 무언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대비라. 우리 박 교수님은 진짜 이 연구를 어떻게든 성공하고 싶으신 모양이군요?”

“당연하죠. 이건……. 이건 희대의 발견이에요.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키는 경우는 많았죠. 하지만 이렇게까지……. 거의 점핑이라고 할 수 있는 변이를 일으킨 것은 처음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세대를 거듭할수록 이렇게까지 빠르게 변이하는 건…….”

“그건 그렇죠. 저도 유전자 박사로서 이만큼이나 흥미로운 객체는 처음입니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야죠. 그 검체 등록 번호만 알면 바로 기록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유현이니까…… 뭔가 수를 써 놨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얻을 수 있으면 얻는 게 좋겠습니다. 왜냐면…….”

박원상의 눈에 기이한 열기가 감돌았다.

어떤 생각.

기껏해야 한 문장으로 갈음할 수 있는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기에 그랬다.

“지금 이 환자는 박기태와 접촉한 병력이 있다고 했죠? 그 말은 2차 감염이라는 얘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경과를 보이고 있어요. 그 말은 이 환자가 감염된 경로 또는 환경 또는 숙주의 유전학적인 특성이 무언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죠.”

“검체 외에…… 기록만 봐도 환경이나 경로는 유추가 가능하다는 얘기가 되겠군요.”

“맞습니다.”

“확실히……. 의미가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전하죠.”

김조은의 눈에도 광채가 감돌았다.

듣고 보니 그럴싸한 정도가 아니라, 확실히 그래 보여서 그랬다.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일러두죠. 하지만 탈취가 우선이겠죠?

“네, 그렇습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입니다. 게다가 막상 탈취한 검체가 사망하거나 말을 못 하게 될 경우도 있지 않겠습니까? 특수한 경우이니만큼 더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해서 김조은 박사는 김태평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이가 없네.’

김태평으로서는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는 요청이었다.

아니, 그 저변에 깔린 걱정이 그랬다.

‘아무리 그래도……. 얘네도 요원인데?’

물론 본인이 끌고 다니던 요원들과는 좀 다른 애들이긴 했다.

그런데 지금 걔네들 다 연구실에 가 있지 않나?

그렇다면 이 김조은이라는 놈이 본 요원들이 다 자기 부하들이라는 얘긴데…….

그걸 보면서도 불안해할 수가 있나?

세계 최고까지는 그래, 그건 불가능하다고 인정할 수 있었다.

CIA처럼 돈을 처바르는 것도 아니고, KGB(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나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Ministry of State Security)처럼 인권 신경 쓰지 않고 마구 훈련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주어진 여건에서는 최대한 훈련을 시킨 녀석들이었다.

‘아무튼, 불안하시다는데……. 신경 쓰기는 해야겠지.’

짜증은 났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어찌 되었건 본청, 그러니까 국정원에서 명이 내려온 마당이라 그랬다.

어쩌면 건국 이래 가장 중요한 작전일 수 있으며 그에 관여한 인물들도 VVIP니 최대한 협조하라는 명이었다.

‘왜 중요하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중요하다잖아?’

일의 무게를 생각하는 건 요원의 도리가 아니었다.

훌륭한 요원이라면 모름지기 주어진 지시가 있다면 무조건 이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했다.

-전력 확보했나?

“아직입니다. 지금 확보 중입니다.”

하여간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이런 답이 나왔다.

‘아……. 오바하는 건 아닐 수도 있겠네.’

확보하고 보고하라고 한 게 언젠데 아직도?

김태평은 애써 한숨을 참고는 입을 열었다.

-전력 내리기 전에 지금 환자 의무 기록 확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할 수 있겠나?

“아, 네. 정보만 주신다면…….”

-등록 번호 20211115. 어려운 일은 아니지?

“네. 바로 따겠습니다.

-좋아. 거기 비상 전력 가동까지 걸리는 시간이 불과 1분이라니까……. 그 안에 빼내야 해. 할 수 있겠지?

1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아니, 짧다고 하는 게 옳았다.

어지간한 국가 기반 시설도 비상 전력 복구 시간이 이렇게까지 빠르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병원이라는 특수한 점이 전력 복구만큼은 빠르게 되도록 만든 모양이었다.

“네, 할 수 있습니다.”

-비상 전력까지는 건드리지 말고. 타겟 외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덮기 어려워.

“알고 있습니다.”

-좋아. 의무 기록 확보 시 알파, 전력 확보 시 베타로 보고해. 이행 명령은 저녁 식사로 한다.

“네.”

김태평의 지시를 들은 국정원 요원은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쳤다.

생각보다 전력 확보가 쉽지 않아서 그랬다.

병원 전체 전원을 내리는 거라면 솔직히 어려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랬다가 진짜 호흡기 병동이나 이런 데서 사망 사고가 나면 어쩐단 말인가.

추후 문책도 문책이지만 죄책감도 문제였다.

김태평 같은 현장 요원이라면 모를까, 한국에서 데스크 업무만 해 온 사람에게는 무리였다.

-찾았습니다.

“확실해?”

그때 부하 놈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리 준비해 둔 병원 직원 복을 입은 지원팀이었다.

-네, 확실합니다. 센터 전원만 내려갑니다. 신호 주시면 내리겠습니다.

“오케이, 대기.”

확실하다는데 확실하겠지.

요원은 베타 보고를 한 후,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다른 부하가 의무 기록 확보에 대해 보고를 올렸다.

-확보했습니다.

“오케이, 대기.”

확실히 이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니 금세 이루어졌다.

만족스러운 얼굴이 된 요원은 알파 보고도 올렸다.

-저녁 식사.

그러자 곧 이행 명령이 내려왔고.

뚝전원이 나갔다.

“어?”

여전히 이순규가 있는 베드 3호실 앞을 지키고 있던 정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대한 눈을 크게 뜨면서였다.

하지만 소용은 없었다.

전등뿐 아니라, 모니터, 벤틸레이터 등 모든 전자 기기가 나가서 그랬다.

새어 나오는 빛이 조금도 없는 상황에서 육안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법이었다.

특히 조금 전까지 밝은 빛 아래 놓여 있었다면 더더욱 그랬다.

“오! 이쪽으로!”

정전이 우연일까?

그럴 리가 없었다.

센터를 비롯해 벤틸레이터, 그러니까 인공호흡기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전력은 절대 우연히 끊길 수는 없게 설계되어 있었다.

우회로만 세 개씩 마련되어 있지 않나.

이건 누군가 고의로 끊은 것이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럿이서.

정유현은 바로 휴대폰의 손전등 기능을 켜고는 외쳤다.

“네!”

그 빛으로 오예리가 달려왔다.

이것으로 준비 완료라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센터에는 이순규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

다른 환자들도 지켜야 했다.

“의료진 전원 수동으로 인공호흡! 휴대폰 손전등 켜고!”

“아, 네!”

유현의 명이 있고 나서야 당황하던 의료진들이 우르르 흩어졌다.

그러곤 담당 환자 중 인공호흡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달려들었다.

“시큐리티 연락하고, 전원 상태 보고!”

“네!”

유현은 끊임없이 지시를 내렸다.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누군가를 바라보면서였다.

무언가 장치를 끼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어둠 속에서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이건 밖에서 볼 때나 그랬다.

‘이런 젠장. 왜 이렇게 밝아?’

‘휴대폰…….’

‘불 나간 지 2, 3초밖에 안 됐는데 대응이 이렇게 빠르다고? 저 새끼 의사 맞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제압해야 합니다.’

요원들은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두움을 기대하고 적외선 장치까지 꼈는데, 생각보다 앞이 밝아서 그랬다.

다행한 것은 이 장치를 끼고 있으면 눈뽕에 당할 염려는 없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정유현이 벌써 눈 부위를 향해 손전등을 여러 번 비추었으나, 온도에만 반응하는 물건이다 보니 그저 하얀 점이 추가될 뿐이었다.

“뭐, 뭐야 저거!”

“저 사람들 뭐야!”

다만 빛에 비친 그들의 모습을 본 간호사들이 놀란 얼굴로 외치는 것은 방해가 되었다.

물리적인 방해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의 짐이 되었다.

‘이거 퍼지면…….’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돌입해!’

불과 몇 초 되지도 않는 시간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개중 나은 선배가 있어, 요원들은 우르르 3번 베드를 향해 달려들 수 있었다.

팍그러나 그것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분명 훈련받은 요원이고, 손에 봉도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에 막혔다.

‘뭐, 뭐야……. 저거?’

중환자실에서 쓰이는 철제 차트.

그게 방패로 쓰이고 있었다.

퍽게다가 발차기도 예사롭지 않았다.

요원 하나가 명치를 맞은 건지 뭔지 뒤로 물러나 전선에서 이탈했을 정도였다.

정유현만 그런 게 아니라, 여자 쪽도 만만치가 않았다.

뭘 정식으로 배운 모양인지 뚫을 수가 없었다.

아니, 죽일 생각이라면 둘 다 어떻게든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1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는 상황에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죠?’

순식간에 30초가 날아가고, 팀원 하나가 물어 왔다.

아무리 계산을 해도 각이 안 서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어마어마한 문책이 뒤따르겠지만.

여기서 뭐라도 들통나는 것보다는 문책이 나을 터였다.

‘이제 27초 남았습니다!’

고민하는 와중에도 시간이 흘렀고, 성공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다.

‘퇴, 퇴각! 물러나!’

‘네!’

해서 요원들은 뒤로 물러났다.

의사와 형사 그리고 타겟을 두고서였다.

“뭐라고?”

-죄송합니다. 그게…….

“이 병신들이!”

보고를 받은 김태평은 당연히 불같이 화를 냈다.

-일단 의무 기록이라도……. 보냈습니다.

“그게……. 그게 할 말이야? 이런…….”

-죄송합니다.

하지만 화를 내면 뭐 하겠는가.

이미 실패했는데.

해서 김태평은 우선 김조은에게 의무 기록부터 보냈다.

실패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였다.

“네? 실패를 해요?”

“죄송합니다…….”

당연히 지랄을 했다.

“기록도 이거 가라잖아요? CPR 했다는 기록밖에 없는데!”

정유현이라는 놈이 기록도 대강 써 놔서 더 그랬다.

실패한 마당이니 밤새 욕먹어도 할 말이 없기는 했다.

그렇게 각오를 다지고 있었는데, 의외로 지랄은 금방 끝났다.

박원상 때문이었다.

“검체 이름이…… 이순규였어? 아, 설마, 설마 그때?”

단지 이름만으로도 뭔가 단서를 잡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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