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진화 (6)
모체가 된 바이러스는 알파라 부르기로 했다.
그 알파의 특성은 일단 그 자신의 생존을 우선시한다는 점이었다.
“이걸 메틸화하면……. 그 특성이 지워집니다. 그럼 자꾸 변이를 통해 생존하려는 것이 억제되겠죠. 순정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김조은 박사는 우선 3D화 해서 표현한 바이러스를 화면에 띄웠다.
밤을 통으로 새웠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도리어 이 자리에 모인 그 어떤 사람보다도 정신이 또렷해 보였다.
“순정이라는 건……. 바이러스의 변이를 막는다는 것이죠?”
질문한 이는 의무사령관이었다.
승진에 대한 야욕에 불타는 이인 만큼 아주 적극적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변이를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 바이러스가 1호를 감염시키고 변화시켰던 바이러스와는 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알파 개발은 물 건너간 거 아닙니까?”
이번에 질문한 이는 의무사령관 밑에 있는 대령이었다.
육사 출신으로 한국대 의과 대학에 위탁 교육을 받아 의사가 된 이었는데, 마찬가지로 승진에 대한 욕구가 출중했다.
그와 더불어 군 특유의 호전성까지 더해진 인물로, 무기화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의사라고 해 봐야……. 딱히 환자 본 적도 없는 사람이…….’
김조은 박사는 욕심만 있는 이를 경멸했다.
아니, 그 욕심을 내비치는 이를 경멸했다.
그러려면 박원상처럼 능력이 뒷받침을 해 주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표정을 비트는 대신 그저 웃었다.
이들의 전폭적인 후원이 이 말도 안 되는 연구를 가능케 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이 자리에는 VIP가 와 있었다.
본인이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 비대칭 전력을 개발할 욕심에 불타는 이였다.
어차피 어디에 공개할 수도 없는 무기임에도 그랬다.
‘뭐……. 이게 있으면,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될 테지.’
원래 협박이 제일 잘 먹힐 때는 무기를 빼내지 않았을 때 아니던가.
칼집 안에 있는 칼이 제일 무섭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이 무기화된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에 있다는 심증만으로도, 여러 강대국은 태도를 달리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이 자리에 모인 모두의 생각이었다.
아니, 애국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는 핑계라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몰랐다.
물론 가치 판단은 이미 뒷전이 된 지 오래라, 김조은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이 일의 옳고 그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메틸기가 붙은 모든 유전자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바로 이 유전자가 극도의 변화를 일으켰던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그 말은 곧 이 유전자의 메틸기를 풀어 버리면……. 알파가 만들어진다는 거죠. 아니, 알파가 아닙니다. 변이를 일으키지 않을 테니 오히려 더 진보한 바이러스죠.”
“아…….”
오로지 이 프로젝트의 성공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원래 메틸기를 제거하면…… 딱 그 특성만 활성화되지는 않지.’
그래서 김조은 박사가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애초에 유전자에 대해 그만큼 해박한 사람도 없지 않나.
머릿속에 어떤 막연한 그림만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증거가 남지 않고, 상대 나라를 완전히 마비시킬 수 있는 무기.
핵과는 달리 환경이나 자원을 파괴하지 않고 사람만 죽일 수 있는 무기.
그러면서도 약이나 예방 주사를 통해 통제할 수 있는 무기.
그야말로 이상적인 무기가 아닌가?
‘다시 말하면 어떤 놈이 나올지 모른다는 건데……. 어차피 연구가 하루아침에 끝날 건 아니니.’
김조은 박사는 별다른 질문이 나오지 않음에 안심하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들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었다.
욕심에 눈이 먼 채 계속 지원할 수 있도록.
그래서 이 연구가 중단되지 않도록.
“이것이 베타의 예상되는 임상 경과입니다. 우선 감염이 되면 한 시간 안에 심정지가 옵니다. 충분한 양의 바이러스가 들어갔음에도 변이가 일어나지 않고 번식에 열중하기에 가능한 일이죠.”
다음 피피티 화면부터는 박원상의 도움을 받았다.
아무래도 임상에 대해서는 박원상이 전문가여서 그랬다.
사실 그도 그냥 썰 푸는 것에 가깝겠지만, 하여간 자문 의사가 있으면 보는 이는 느낌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랬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 대통령까지도 이 화면이 그저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을 잊은 채 모조리 빠져들고 있었다.
“심정지는 아마 알파 특유의 심장에 대한 친화력으로 인한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게 심근염을 일으킨 바이러스는 심근의 특성을 변화시킵니다. 즉 안드로겐(androgen, 남성 호르몬이나 이와 비슷한 생리 작용을 가지는 물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에 대한 친화력을 거의 제거합니다. 두 호르몬의 치명적인 부작용인 심근 비대를 차단하는 것이죠.”
이건 정유현의 이론을 훔쳐 온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냥 정유현이 커피 마시면서 박원상에게 떠들었던 얘기를 각색한 것이었다.
물론 정유현이 감염내과 의사고 또 ARS-24에 대해 해박한 사람이니만큼 마냥 헛소리는 아니었다.
실제 ARS-24의 변종 중 일부는 심근염을 종종 일으키곤 했다.
“아직 어떤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알파를 비롯한 거기서 파생된 바이러스는 그것이 설령 심장에 대한 친화력이 없었다 해도 뇌에 대한 친화력은 아주 강합니다. 그중에서도 전두엽과 뇌하수체를 공격합니다. 그렇게 되면 숙주는 억제력이 약화되고, 특정 호르몬……. 안드로겐과 아나볼릭 호르몬을 분비하게 됩니다. 그 결과 숙주는 이렇게 되죠. 아, 이건 1호의 영상입니다.”
“세상에…….”
“더 커진 건가?”
“저건……. 저건 괴물이잖아.”
마지막 화면만은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실재하는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바로 박기태가 떠 있었다.
그사이 더 거대해진 그는, 이제 인간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불가해진 상황이었다.
정말로 놀라운 것은 이 와중에도 이성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김조은은 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죄책감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
망설임이 생기면 이 프로젝트가 소거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
“네, 괴물이 됩니다. 그리고 이 괴물은 갇혀 있지 않을 경우 다른 숙주, 즉 사람을 공격해서 감염시킵니다. 똑같은 경과를 밟고, 또 공격을 하게 되고……. 병원부터 마비되겠죠. 심정지가 온 환자는 병원으로 이송될 테니. 국가의 기반 시설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곳부터 망가지는 겁니다.”
“좋군.”
내내 바라보고만 있던 대통령의 입이 움직였다.
간단한 단어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 파장은 간단치 않았다.
VIP의 승인이 다시금 떨어진 셈 아닌가.
게다가 이 많은 사람 앞에서 굳이 저 말을 했다는 건, 단순한 승인이 아니라 의지의 표명이었다.
‘무조건 진행 더 해야겠구만…….’
‘남산 연구실은 어디까지 진행됐지?’
‘곧 이송 가능합니다. 일주일 이내입니다.’
‘그래, 늦지 않게 하라고. 벌써 연구에 어느 정도 진전이 보이는데……. 여기서 또 침입이 있으면 난리나.’
‘네.’
‘김태평은…… 얌전히 잘 지내고 있지? 그 새끼 또 뭐 이송은 안 되네 이 지랄 하지는 않겠지?’
‘네? 아, 네. VIP 의지를 확실히 전달했습니다. 이송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아마 루트 최적화하고 있을 겁니다.’
‘좋아.’
청와대 인근에 위치한 안가에서 이루어진 은밀한 회동이었다.
대통령 일정에도 공시가 안 될 정도로.
당연히 VIP는 곧 자리를 떴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였다.
이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만으로도 수상쩍은 일이라 그랬다.
“가지.”
“네.”
만족스러운 발표를 마친 김조은은 차에 올랐다.
사실 발표 자체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 왜 자신이 연구실을 빠져나와 여길 와야 한단 말인가.
그것도 아무리 얘기를 해 봐야 깊은 이해는 못 할 놈들을 위해서?
하지만 뭐가 되었건 이루려고 했던 바는 이룬 셈이었다.
그렇다 보니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김조은 포착되었습니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와중이었다.
정말로 조심해서.
하지만 물리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 아닌가.
게다가 모든 이목이 지구 병원에 쏠려 있었다.
그중에서도 요인이라 할 수 있는 김조은의 움직임은 일거수일투족이 죄 확인되고 있었다.
-나머지는?
-근처에 돌아다니는 민간인 복장……. 죄 군인입니다. 차량 몇 개가 드나들었는데, 아무래도 VIP가 끼어 있는 거 같습니다.
-무슨 회의를 한 거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도청은 불가했습니다.
-그렇겠지. 아무리 걔들이 얼이 빠져 있어도……. 그거야 방비했겠지.
중국도 미국도 영국도 러시아도.
그 외에 다른 열강들도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김조은이 1호라 부르는 박기태도, 알파라 부르는 그 바이러스도 모두의 관심을 끌고 있기에 그러했다.
무언가 증거라도 나오면 바로 지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모두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건 결과물을 탈취해 아무도 모르게 자신들이 보유하는 것이었다.
환상의 무기를 갖게 되는 건, 그 어떤 나라도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일단 양동은 아냐. 지구 병원에서는 그 후로 빠져나온 게 전혀 없어. 적외선 탐지기로 봤을 때도 그 안에는 딱 두 사람만 타 있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김조은과 기사 둘이 돌아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그럼 더 지켜보다가 뭐 없으면 철수해.
-네.
때문에 별 소득 없는 감시가 연일 계속되고 있음에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중국과 미국이 그러했다.
일정은 모르겠으나, 하여간에 남산으로 이송한다는 첩보를 입수했기에 그랬다.
탈취의 기회가 있다면 그때가 아니겠는가.
그때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저 삼엄한 경비를 뚫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심지어 며칠 전부터는 아예 드나드는 인원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아, 교수님.”
지구 병원 쪽이 소란스러운 사이, 유현은 오예리와 병원 뒷골목을 거닐었다.
딱히 수상하게 보일 만큼 두리번거리진 않았다.
그저 걸었다.
“네, 예리 씨. 일단 들어갈까요? 먹으면서 얘기하죠.”
“그래요.”
어차피 따라붙는 사람은 없었다.
있어도 바로 발각될 터였다.
둘이 들어간 식당은 정말 작은 백반집이었으니까.
게다가 주인 할머니는 유현의 환자였다.
주인부터 손님까지 다 아는 얼굴들뿐.
여기서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면 대번에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쪽에서 연구가 급속도로 진행이 되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유현은 식당에 단둘이 남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신변잡기가 아닌 제대로 된 대화를 시작했다.
“네? 연구가요? 우리가 그때 막았잖아요?”
“네. 근데…… 뭔가 다른 데서 힌트를 얻은 모양이에요. 그거 무기화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럼 역시 공론화를…….”
“저희끼리는 위험해요. 전에도 보셨잖아요? 지금이야 그냥 두고 있지만, 우리가 너무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바로 대응에 나설 거예요.”
“아.”
“높은 사람을 이용해 보죠. 박태식 의원. 혹시 번호 딸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