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박태식 (3)
김효상의 얼굴은 삽시간에 더 어두워졌다.
아니, 아까는 어둡다기보다는 그저 정신이 없어 보였던 것이었으니 이제야 심각해졌다는 말이 더 어울릴 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의사가 들을 때는.
그중에서도 방역의 최전선에 있던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러니까……. 그걸 군대에서 데려간 게…… 무기화하려고 그랬다는 말씀입니까?”
“네.”
“설마……. 그럴라고요. 이거 때문에 우리나라가…… 아니, 전 세계가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다. 아니지. 하고 있습니까?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팬데믹은.”
“같은 현상을 본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죠. 실제로 그 안에서도 그렇지 않았나요?”
“음.”
유현의 말에 김효상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질병관리청 내에서도 알력 다툼이 더 심해져서 그랬다.
본래 비주류였던 의사 출신 공무원들의 힘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행정이 아닌 실제 임상을 정책에 접목해야만 했던 그 전대미문의 사태에서 기존에 힘을 쥐고 있던 이들과 그렇지 않았던 이들의 싸움은 제법 처절했다.
어디에서도 인정하려 들지는 않겠지만.
그 싸움의 산증인인 김효상만큼은 절대 부정할 수 없었다.
“저 위에 계신 분들에게 팬데믹이 뭐……. 피부로 와닿을 만한 일은 아니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저도 몇 번 회의에 참석했다가 기함했던 적이 있는데요. 국장님은 더 잘 아시겠죠.”
“그건……. 그렇긴 하죠.”
정치인에게 중요한 건 표였다.
그걸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건 간에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정치인이었다.
설마 그럴라고 했던 생각은 회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박살 났다.
어느 하나 또는 어느 한 집단을 꼭 집어서 할 수 있는 말도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들 비슷했다.
“팬데믹을 보세요. 이만큼 인류에게 피해를 준 사례가 최근 50년간 있었습니까? 세계 대전이 아닌 이상에는 어렵습니다. 리먼 사태조차 이에 비할 바는 아니에요.”
“그건 그렇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책임지지 않죠. 그저 사태일 뿐입니다. 근데 이걸 누군가 의도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더 무서운 사태를 통제할 수 있다고…….”
“말이 안 되는 얘깁니다! 바이러스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어요!”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없다고 생각하세요?”
“그…….”
유현의 말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김효상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믿음과 진실은 얼핏 보면 연관이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본래 같으면 그런갑다 할 일이었겠으나 팬데믹은 그러한 사실관계를 수면 위로 떠올려 보냈다.
그리고 김효상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바이러스에 대한 생각이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을 겁니다. 의사라고 해서 꼭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 있는 건 아니죠. 오히려 시야가 넓은 사람들이 더…… 임상을 간과하기 마련이다 보니……. 사회적으로 명성이 있는 의사들이 더 그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그거 반발하다가 이단아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그럼 설마 이게…….”
“네. 제 친구도 관여하고 있어요. 박원상 교수라고……. 호르몬 전문가 아시죠?”
“아, 알죠. NEJM(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이나 란센(The Lencet) 주요 저자 아닙니까. 근데 그분이 왜…….”
“뭐……. 이렇게까지 제한 없는 연구가 가능한 상황이 다시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겁니다. 실제로 전쟁 중에만 허가되었던 연구들이 있죠.”
“그게 사실이라면……. 이건……. 이건 안 됩니다.”
김효상이 왜 김선태 중령이 박기태를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렸겠나.
그 또한 나름대로 알아본 바가 있었다.
특히 우식을 통해서 많은 것을 알아냈더랬다.
누군가 죽었고, 또 어떤 케이스가 목표였는지.
‘사실 알고 있었어.’
군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동시에, 본인은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았다.
군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동시에 정말로 누군가를 죽여 본 사람이었다.
소속은 알 수 없지만, 하여간 그런 놈들이 관여하는 일이었다.
‘무기……. 그거 말고는 없지.’
그럼에도 애써 무시하려고 했다.
무서웠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유현의 입을 통해 다 듣고 나니 외면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어느새 두려움에 가득 차 있던 머릿속은 분노로 메워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사람을 하나라도 더 살려 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누군가는 그 바이러스를 이용해 무기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나.
“이건……. 제가 직접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네? 박태식 의원에게요?”
“네.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당내 기반이 아주 강한 사람은 아니에요. 애초에 사람을 잘 안 믿어서 더 그런데……. 아마 아무리 교수님이라고 해도 이런 말 하면 곧이곧대로 안 들을 겁니다.”
“음……. 그래도 이걸 의원님께 국장님이 말씀드리게 되면 너무 깊숙이 관여하는 거 같은데요.”
유현의 말은 이 일에 더 나서게 되면 위험해질 거다, 뭐 이런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김효상 국장도 바보가 아니다 보니 바로 알아들었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사실 이 일이 정유현의 일이라 할 수는 없어서 그랬다.
오히려 국가 기관에서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김효상의 일이라고 해야 했다.
“상관없습니다. 해야 할 일이니까요.”
“하지만…… 여태 국장님은.”
“겁을 먹었습니다. 네, 맞아요. 지금도 겁은 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어요. 국장급이 움직이는 게 맞기도 하고요. 설령 박태식 의원이 말을 안 들어준다고 해도……. 저는 제 스스로 언론을 움직일 수 있어요. 장관님이 보통 브리핑에 나서긴 했지만, 국장이 된 후로는 저도 브리핑 많이 했으니까요. 아는 기자 많습니다.”
유현은 바로 김효상의 말에 반응하는 대신, 그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젊은 시절 객기가 좀 보이네.’
예전에 알고 있던 김효상의 눈을 하고 있었다.
아직 변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그의 마음속에 있던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확실히 유현 본인이 나서는 것보다는 김효상이 나서 주는 것이 더 나을 테니까.
“그럼……. 그렇게 하시죠. 언제 가실 겁니까?”
“지금 당장 가야죠. 시간이 될지는 의문인데, 중요한 건이라고 하면 만나 줄 겁니다. 사실 그 양반 연락도 씹은 지 좀 되어서요. 이상하다 싶을 거예요.”
“그거 좋군요. 그럼 가시죠.”
“같이 가시려고요?”
“그냥 근처에 있으려고요. 어떻게 되나 궁금하기도 하고……. 하여간 이 일의 끝이 어떻게 될지 이제는 꼭 알아야 하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유현의 말에 오예리 형사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빠지기에는 너무 멀리 온 둘이었다.
김효상이 생각하기에도 그랬다.
어떤 결말이 오건 간에 지켜볼 권리가 둘에게는 있었다.
그 과정이 완전히 우연이라고 해도, 이제는 그랬다.
“알겠습니다. 일단 전화해 보죠.”
“네.”
김효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곤 박태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김 국장! 이 사람 이거. 뭐 하느라 이제야 연락을 했어!
“아…….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난 자네 죽은 줄 알았어, 이 사람아. 그때 어? 그 얘기 해 주고 바로 연락이 안 되니까 말야.
“아…… 네.”
죽은 건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죽을 뻔했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그날 김효상은 죽음에 한발 걸쳤다 나오지 않았나.
하지만 자질구레한 얘기는 전화상으로 하기가 좀 그랬다.
직접 만나야 했다.
어쩌면 박태식도 그 나름대로 뭔가를 더 알아냈을 수도 있었다.
‘이 사람 욕심이……. 말도 안 되게 크지.’
위험을 따지기는 할 터였다.
실제로 대통령이 관여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땐 한발 물러서기도 했고.
하지만 이게 정말로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고, 그 결과 차기 행보에 있어서 유리해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면…….
‘반드시. 반드시 나선다.’
김효상은 그간 보아 온 박태식의 행보를 떠올리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의원님. 제가 이렇게 전화를 드리게 된 건……. 그때 그 건에 대해 더 상세한 내용을 알게 되어서입니다.”
-아, 그건.
김효상의 말투와는 반대로, 그 건이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박태식의 목소리는 싸늘해졌다.
너무 위험하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니, 실제로 위험했다.
말은 안 했지만, 김효상이 대강 뭔 일을 겪었는지 알고 있어서 그랬다.
혹 뭔 일 나려나 해서 미행을 붙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협박을 당하지 않았나.
고속 도로라 차를 움직이지 않을 수 없어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지만.
하여간 이 일은 위험했다.
“의원님. 이거……. 진짜 큰 건입니다. 일단 들어 보셔야 해요.”
발을 빼는 게 맞았다.
살아 있는 권력과 맞서는 건 미친 짓이었으니까.
아무리 민주주의 국가라고 해도, 대통령이 갖는 권한은 어마어마하지 않던가.
그가 작정하고 개인을 망치려고 들면 진짜 방법이 없었다.
-큰 건?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욕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사실 당내 계파 분쟁으로 인해 대선 후보 정도로 만족하려던 참이지 않나.
근데 이게 일발 역전의 계기가 되어 줄 수 있다면?
하다못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준다면?
‘오히려 대대적으로 언론에 알리고 기자 회견을 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는 죽이지 못해.’
정치라는 게 그렇지 않나.
거물이 되면 될수록 독해지기도 하지만 또 물러지기도 하는 법이었다.
이미 손에 쥔 것이 너무 많아서 그랬다.
‘뭔가 있을 것처럼 기자 회견을 하고……. 접촉해서 협상을 하게 되면……. 그래서 지금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날 밀어주게 만들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사이 박태식이 떠올린 생각은 적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결론에도 도달했다.
일단은 들어 보자.
뭐 이런 쪽이었다.
“나 오늘 시간 얼마나 있지?”
“네? 지금 저녁 모임 후로는 뭐 없기는 합니다만……. 모임 자체가 길게 늘어질 소지가 있습니다.”
“식당이?”
“긴자입니다.”
“옆에 방 하나 비워 두라고 하지. 하나 더 예약하고, 왔다 갔다 하면 되겠지.”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해서 일단 비서에게 지시를 내린 후, 김효상에게 말했다.
-7시 반 합정 긴자에서 보지.
가능하냐, 괜찮냐 뭐 이런 얘기는 없었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게 박태식이어서 그랬다.
“아, 네.”
김효상도 그걸 알았다.
그래서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이미 옆에서 대화를 다 듣고 있던 유현과 오예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늘 일식 먹겠네.”
“그러니까요.”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벌써 셋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차역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