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51화 (51/323)

51화 완성 (1)

“김조은 박사. 이 사람 합류했다고……. 행적 좀 알아봐.”

“네, 의원님.”

“절대 흘리지는 말고. 못 알아보는 건 괜찮아. 들키는 건 안 돼.”

“네, 명심하겠습니다.”

박태식은 비서관 중에서도 제일 신뢰하는, 실제로 다음 총선 때 자리 하나 내줄 생각이 있는 이에게만 지시를 하달했다.

식사, 그러니까 교제 보조에서 빼 주면서까지 그랬다.

솔직히 아까 그 영상을 본 다음부터는 음식 맛도 잘 모르겠단 생각만 들었다.

또 그 음식은 뒷전이고 자신과 대화 한마디 하려고 나서는 이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 큰 건이야…….’

진짜 큰 건이지 않나.

바이러스 무기화라니.

아마 이거 국민 투표하면 꽤 흥미진진하지 않을까?

완전 익명으로 이루어지게 된다면 결과를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게 드러나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현 대통령은 지탄을 받을 게 뻔했고, 어쩌면 탄핵을 받을 수도 있었다.

동시에 박태식은 영웅이 될 터였다.

‘미친놈 아닌가. 개헌이라도 꾀하고 있나?’

어차피 단선제인데.

연임이라도 노리지 않는 이상 정권 말에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기회지. 이건 잡아야 해.’

물적 증거가 더 확실했다면 좋았겠지만.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랬다면 애초에 기회는 박태식에게 오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냥 유튜브에 올리면 되는 세상이니까.

그러니까 증거가 없어서 박태식에게 기회가 왔다는 얘기였다.

하늘이 도운 셈이 아닌가 싶었다.

-의원님.

그렇게 시간 때운다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려니 비서관에게 연락이 왔다.

-잠시 후 찾아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그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이 친구를 신뢰하는 이유가 바로 신중해서이기에 그랬다.

뭔가 있지 않으면, 독대를 청하는 일이 없었다.

“어, 들어와.”

“네, 의원님.”

곧 비서가 들어왔다.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무엇인가 문 모양이었다.

“그래, 뭐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

“일단 김조은 박사가 합류한 것은 확실합니다. 그 박사가…… 백신 전문가인데요. 이것 좀 보시죠.”

“음……. 봐도 뭔지……. 아, 유전자학을 전공했네?”

“네. 유전자 분석해서 그에 맞는 백신 업데이트하는 데 있어서……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근데 갑자기 잠적했습니다. 공식적인 이유는 암으로 되어 있는데……. 보시면 기록도 있긴 합니다. 진료 기록인데요. 같은 날 CCTV를 받아서 돌려 봤는데, 김조은 박사라고 하고 진료받은 사람이…… 김조은이 아닙니다.”

“비슷한데?”

“네, 근데 아니에요. 인상착의는 비슷하지만, 진료 본 의사가 김조은 사진을 못 알아보더군요.”

“치밀하네. 이거…….”

이건 그냥 대통령 비서실이나 군대에서 하는 짓은 아니었다.

“네, 국정원 공작이 의심됩니다. 이 사람……. 수소문해서 찾아보니 이미 해외로 날랐습니다. 그 직전에 계좌로 거액이 송금됐고요.”

“그럼 찾을 수는 없고?”

“비행경로가 여러 갠데……. 중간에 너무 자주 환승을 해서 어디서 빼돌렸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군. 이렇게까지 해서 김조은 박사를 끌어들였다는 건 뭔가 있었다는 얘긴데.”

“아마도요. 하지만 정확히 그게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전에 김선태 중령……. 그 사람과 엮어 볼 수는 있을 겁니다만.”

김선태.

특임대 중령.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경력만 봐도 무서운 인간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엮어 보려면 엮을 수도 있겠지만 별 소득은 없을 것 같았다.

현 대통령은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니니까.

“뭐 더 없나?”

“아……. 네. 하나 더 있습니다. 사실 이게 중요할 거 같습니다.”

“뭐지?”

“박원상 교수 말입니다.”

“아……. 그래, 그 정유현 교수 친구라는. 대단한 사람이라던데?”

“네. 호르몬 쪽으로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확실히 정유현 교수 말대로 지금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헌데…….”

“헌데?”

“집에 전화를 했던 적이 있더군요.”

“아.”

원래 뭔가 거사를 치르려면 상대의 약한 고리를 노려야 하는 법이었다.

김조은 박사 쪽이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구석에서 구멍이 나왔다.

‘하긴 그냥 의사잖아. 세계적인 명성이 있다 해도……. 호르몬 박사한테 뭐 우리나라에서 대우를 해 주나.’

생각해 보면 그렇게 의외인 것도 아니었다.

김조은에 비해 실력이 처지진 않겠지만 사회경제적 위치는 엄청나게 뒤처지지 않나.

다시 말하면 그냥 평범한 의사와 별다를 게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몸가짐에 있어 조심성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도 본인이 특별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을 테니.

“뭐라고 했지? 집 전화로 한 건 아닐 거 아냐. 그랬으면 알지도 못했겠지.”

“네. 그 아내 휴대폰으로 했습니다. 꽤 오래 통화를 했는데……. 들어 보시죠.”

“그래.”

전화를 했다.

아내 폰으로.

이게 참 얄궂은 일이었다.

생각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족 때문에 덜미를 잡히던가.

애초에 사람들에게 별 애착이 없는 성품인 박태식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주 벌어지는 현상이기에 그냥 그런갑다 하고 있었다.

-곧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아. 이게 생각보다 진척이 빨라서.

하여간 통화 내역 중 중요한 내용은 몇 문장 안 되었다.

-이건 진짜…… 뭐, 문제 내러 들어와서 이런 말 하는 게 좀 그렇긴 한데. 하여간 이번에 진짜 다들 놀랄 거야. 말할 수 없는 게 아쉽다.

대화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급해졌다.

‘완성이 되어 간다……. 이거, 이렇게 되면 나가린데?’

박태식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바이러스 무기화를 시도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무조건으로 옹호 받을 터였다.

하지만 이미 바이러스 무기화에 성공했다면 어떻게 될까.

괜히 그걸 터뜨려서 국익에 반하는 일을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게다가 박태식은 방역에 더불어 국가 안보에 대해 지금껏 아주 강한 어조로 얘기해 온 바 있었다.

어차피 불가능할 거란 생각으로 미사일 개발 등 무기 개발을 해야 한다고 정권을 공격했다.

같은 당임에도 공격을 해서 그런가. 개인적인 지지는 꽤 굳힐 수 있었다.

영리한 방법이라 여겼는데 그게 여기서 발목을 잡았다.

“이 증거를 병원 영상이랑 묶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 비서가 말했다.

별로 답할 생각이 들지는 않아서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비서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영상 하나만 가지고서는 뭘 만들 수 없을 겁니다. 이 통화 내역도 그렇죠. 하지만 김조은 조작 건에……. 현재 전문의 시험 출제 의원 명단에 박원상이 없는 점 그리고 통화 내역과 더불어 병원 영상까지 털면……. 어떻게 될까요?”

“잠깐, 잠깐만.”

“네.”

박태식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여전히 정황상 증거가 대부분이긴 했다.

명확한 증거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추론에 힘을 줄 수 있을 뿐, 그것만으로는 공격 수단이 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잘 엮으면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이건 괜찮은데.”

“기자들한테 뿌릴까요?”

“어? 아니, 아니지.”

기자들에게 뿌리는 건 안 될 일이었다.

그건 진짜 다 죽자는 얘기나 다름없으니까.

상대를 너무 궁지에 모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힘 있는 놈을 궁지에 몰았다가는 오히려 이쪽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잘 만들어 봐. 자리 만들어서 얘기 꺼내 봐야지.”

“아……. 협상입니까?”

“그래. 원래 정치라는 게 힘으로 해결할 만한 일을 말로 해결하는 과정 아니겠어? 옆에서 잘 보고 배우라고. 이걸로 현직 대통령의 지지를 받게 되면, 그럼 당내 입지 다지는 건 끝이야. 하여간 지금도 지지율이 60프로를 넘어가는 양반이잖아. 애매하게 공격하는 것보다는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훨씬 유리하지.”

“그건 그렇습니다.”

오히려 이 길이 더 확실한 길이었다.

물론 대통령을 박살 내고 영웅이 되는 방법도 있기야 할 테지만…….

‘굳이?’

영웅이 되어서 뭐 할 건가.

남의 원성 들으면서 올라간 자리에는 오직 비명만 있는 법이었다.

지금껏 대한민국의 역사가 이를 반증하고 있지 않나.

어떻게 된 게 대통령 말년 중에 부러운 말년이 하나도 없었다.

‘좋게좋게 갈 수 있으면 이게 좋지.’

박태식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일단 미팅 자리를 주선하고자 전화를 걸었다.

원내 대표쯤 되면 하나씩 받게 되는 대통령 핫라인을 통해서였다.

부우웅

본래 같으면 바로 받는 게 맞았다.

대통령이 들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옆에 비서관이 들고 있으니까.

그들은 설령 이 전화가 낮 아니라 새벽에 걸려 와도 받아야만 했다.

업무였으니까.

“이상한데?”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별일이 다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일이었다.

정말로 별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이게……. 이건 예상보다 더 강하지 않나?”

대통령은 지금 안가에 있었다.

그 안에 앉아 영상을 보는 중이었다.

“네, 아무래도……. 유전자 메틸기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김조은 박사는 그 영상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잔뜩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베타라 부르기로 한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유전자가 조작된 바이러스는, 아마도 원래 알파 때문인 듯한데 자연 상태에서는 지속해서 사멸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숙주 안에 있어야 한다 이건데 너무 급작스러운 변화를 일으키는 바람에 통제가 쉽지 않았다.

단 하나의 숙주, 박기태에게 주입했을 때만 안정적이었다.

-으. 으아아아아아!

안정적이라는 말도 상대적인 것이었다.

이제 박기태는 남아 있던 일말의 이성조차 거의 다 잃어버린 참이었다.

베타는, 그러니까 완성된 베타는 전두엽뿐만 아니라 여러 호르몬의 작용 때문에 사람을 더없이 폭력적인 상태로 몰아갔다.

“물린 지 얼마 만에 저렇게 된 거지?”

“1초 내지는 2초입니다. 그리고 거대화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짧습니다. 훨씬 많이 먹기 때문에……. 보통 1주일이면 원래의 덩치에서 이렇게 됩니다.”

“원래 170이었는데…… 182가 됐군. 더 지나면?”

“더 커집니다. 2미터까지 자라는 데 한 달도 걸리지 않아요.”

“저렇게 흉포한 개체가 2미터라……. 어마어마하겠군.”

대통령은 눈앞에서 날뛰는 감염체들을 보며 눈을 감았다.

영상일 뿐인데도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공포심을 심어 주었다.

이런 게 도시에서 날뛰면 어떻게 될까.

설령 진압에 성공한다 해도 사회는 얼어붙을 터였다.

“저…….”

그렇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비서가 다가왔다.

“왜 그러지?”

분명 앞뒤 스케줄 모두 잘라 두었는데, 왜 그러나.

언짢은 기분이 확 들었다.

“박태식 의원입니다. 급한 용무로 미팅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안 된다고 해.”

“그것이.”

“뭐.”

“변종 건에 대해서라는데 말투가 아무래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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