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55화 (55/323)

55화 완성 (5)

-지하철 탔습니다. 합정 방면입니다.

-잘했어.

-더 따라붙을까요?

-아니, 어차피 현장에 요원 있어. 넌 이대로 빠져.

-네.

요원은 유현이 이미 자신의 미행을 눈치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자꾸 여기저기 들르는 게 좀 이상해 보이긴 했지만, 가는 곳마다 일단 무언가를 사지 않았나.

용무가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각 업장마다 처음 들르는 뽄새가 아니었다.

일단 직원이 유현을 알아보았다.

눈에 띄는 용모이기는 했다.

‘새끼……. 진짜 의사 같은 구석이 하나도 없네.’

요원은 뒤로 돌아선 채 유현을 떠올렸다.

잘생긴 얼굴에 훤칠한 체격.

보고서에 의하면 그 몸을 잘 쓰기까지 한다고 했다.

실제로 병원에서의 탈취 작전은 바로 저놈 때문에 실패하지 않았나.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땐 진짜 병신들이로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더랬다.

훈련을 받다 보면 ‘아, 이제 일반인은 내 상대가 되기 어렵겠구나’ 하는 느낌이 오기에 그랬다.

격투기를 배운 사람들이라면 얘기가 살짝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그래도 상관없었다.

‘반칙으로 정해진 것부터 배우는데……. 뭐……. 저 새끼라면 또 모르긴 할 거 같고.’

손가락을 활용하는 기술은 대개 너무 위험해서 금지되어 있지 않나.

박치기도 그렇고.

또 옷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는 얘기가 아예 달라지는 경우도 많았다.

단지 옷을 잡아 살짝 흔드는 것만으로도 균형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었다.

게다가 요원은 절대 단독 행동을 하지 않았다.

수적 우위마저 확보한 채 싸운다는 얘기였다.

그런데도 실패했다는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설마……. 나 걸린 건 아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유현이 대단하다는 결론에만 이르렀다.

애초에 싹 죽이는 대신 박태식만 날리고 나머지 둘에겐 누명을 씌우잔 계획도 그 때문에 나오지 않았나.

물론 싹 죽이는 게 일단 쉬운 일이 아니기도 했다.

특히 유현이 있는 이 오피스텔은 경비가 삼엄했다.

고급 오피스텔이면서 동시에 강남에 있는 하이엔드급 오피스텔보다는 또 급이 낮아서 세대수도 많았다.

드나드는 사람이 많으면 일 치르기가 쉽지 않은 법이었다.

‘그렇게 들어간다 쳐도……. 지면 어째.’

맞붙어 본 사람들의 증언이 꽤 구체적이었다.

한 대 맞았는데 진짜 무슨 차에 치인 듯했다는 말도 했다.

오버하네 싶었지만, 녀석이 실제로 작전 이후 깁스까지 한 채 병원 신세를 졌다는 걸 떠올려 보면 마냥 과장이라 하기도 어려웠다.

‘X 되는 거…… 아니겠지.’

불현듯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 정유현이 과연 이번 함정에 걸려들까?

분명 기안을 들었을 땐 100% 성공할 거란 확신만 들었더랬다.

하지만 막상 유현을 보고 나니, 저놈이 걸릴까 싶었다.

‘박태식 의원은 아마 죽었겠지.’

요원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오는 불안감을 억누르려 애쓰는 무렵, 유현은 합정역 방면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있었다.

겉으로는 그저 퇴근하는 일반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회 의원의 살해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니, 확신하고 있었다.

‘언론과 접촉했을까? 그게 걸렸을까?’

이유부터 찾아야 했다.

박태식 의원 정도 되는 사람을 죽이고, 이를 이용해 함정을 판다는 건 보통 악독한 계획이 아니지 않나.

모조리 일망타진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것도 꽤 커다란.

‘아냐……. 스스로 알아보겠다고 하고 우리도 모르게 언론을 찾았을 리는 없어. 애초에 약속이 그랬잖아.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숨 쉬듯 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이유도 없이 약속을 어길 거 같진 않은데…….’

언론이 아니라면.

언론에 알렸고 기자가 저쪽에 불은 게 아니라면 뭘까.

‘직접……. 직접 협상에 나섰나?’

김효상의 말이 떠올랐다.

박태식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말.

그리고 정치인은 일반인들하고는 좀 다르다는 말까지도.

생각하기 싫은 일이었으나, 원래 무언가를 추론할 때는 그런 일부터 떠올려야 하는 법이었다.

질환도 최악부터 상정하고 진단 과정을 밟아야 하지 않던가.

‘설마……. 이 건을 협상 테이블에 올렸을까? 차기 대권에 욕심이 있다고 했지……. 누가 봐도 얼토당토않은 욕심이고.’

대선 후보의 면면을 훑어보다 보면 헛웃음이 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대체 이 사람은 왜 나왔을까 싶은 사람이 꼭 있어서 그랬다.

어차피 안 될 걸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딱 그 사람만 모르는 것 같은 느낌에 헛웃음을 넘어 비웃음이 나올 때도 있었다.

유현이 보기엔 박태식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물론 그가 집권 여당의 중진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당 대표가 아닌 원내 대표였다.

당 대표는 현 대통령의 최측근.

그리고 현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 말임에도 불구하고 60%를 넘나들고 있었다.

‘그거 본인도 어렴풋이 알았겠지. 타개할 방법은…… 협박? 아냐. 살아 있는 권력 얘기할 때 모습을 보면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있었어.’

유현이야 이제야 대통령이, 그러니까 살아 있는 권력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있는데 박태식은 어떻겠나.

국회 의원이라는 직위가 가진 힘도 아주 잘 알고 있을 텐데 대통령?

그런 사람을 협박?

한다고 해도 시늉에 지나지 못할 터였다.

그렇다면 박태식은 대체 뭔 짓을 했을까.

‘아마 협상을 하고자 했을 거야. 현 대통령이 지지라도 해 주면 뭐……. 아니면 당 대표를 주저앉히면 다음 대선에 박태식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근데 그걸 협박으로 알아들었나? 아니지, 아냐. 당 대표도 이 일에 연루되어 있다면……. 애초에 그 협상은 들어줄 수가 없겠지.’

뭐가 어떻게 되었을지 구체적인 예상은 불가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박태식이 무언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유현 자신과 오예리 형사도 일당으로 분류되었음도 분명했다.

“시발.”

유현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가득 찬 지하철이었던 만큼, 몇몇이 놀란 얼굴로 유현을 돌아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유현은 사과의 뜻으로 고개를 숙인 후, 생각을 이어 나갔다.

‘하다 하다 이제 대통령까지…….’

어쩌다 일이 여기까지 왔을까.

왜 일개 서민일 뿐인 자신이 대통령과 척을 지게 되었을까.

생각 끝에는 좀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분명 잘못을 저지른 건 저쪽이지 않나.

바이러스를 무기화하겠다니.

미친놈들.

-다음 역은 합정, 합정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황당한 나머지 평소 유현답지 않게 무용한 생각을 이어 나가다 보니, 어느새 합정역이었다.

그래서 일단 내렸다.

오예리는 형사니까 만나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였다.

“아, 교수님.”

막상 만나고 보니 오예리 또한 얼굴이 그리 좋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오예리 또한 평범한 형사이지 않나.

그러다 갑자기 이상한 일에 연루되어 여기까지 왔다.

박태식 의원이라니.

뉴스에서만 보던 사람한테 문자가 왔는데 전화는 안 됐다.

“아, 형사님. 잠시 이것 좀.”

“아……. 네. 이게 뭐예요?”

“일단 한번 봐 주세요.”

“네.”

그리고 유현이 내민 휴대폰을, 정확히 말하면 화면에 떠 있는 영상을 바라보았다.

웬 평범하게 생긴 사람들만 나왔다.

분명 처음에는 그랬다.

해서 이게 뭔지 하는 얼굴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유현은 그저 턱으로 영상을 가리킬 뿐이었다.

‘그래……. 이 사람이 뭐 허튼짓할 사람이 아니지.’

심지어 지금은 박태식 의원 집 근처였다.

장난꾸러기조차 지금은 진지해야만 할 타이밍이었다.

“아.”

그렇게 좀 더 지켜보고 있다 보니 역시나 평범한 차림의 남자가 보였다.

차이가 있다면 계속 보인다는 점이었다.

“지금은 카페예요.”

“이제 편의점.”

“여긴 약국. 모두 2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요. 길도 구불구불해서 걸어서 2분 이상 걸리는 곳들.”

오예리는 그걸 보면서 유현이 하는 말을 들었다.

우연히 이 이상한 행선지가 모두 겹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양자 역학이라도 전공했다면 계산하는 시늉이라도 해 볼 수 있을 테지만 오예리는 형사였다.

‘시발.’

어떻게 봐도 미행이었다.

그 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여긴 없어요. 역 앞에서 사라지더라고요.”

속으로 욕을 내뱉고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려니 유현이 말을 이었다.

“그거 다행. 아니지, 다행이 아니지. 미행이……. 그럼 이거.”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 말은 함정이라는 거겠죠.”

“함정……. 박태식 의원을 함정으로?”

“네. 아마 죽었을 겁니다. 우리한테 누명을 씌울 작정이었겠죠. 그럼 세트로 다 같이 나락 갈 테니.”

“그렇게까지……. 아니지. 충분히 할 수 있는 놈들이지.”

“네.”

오예리의 얼굴은 이미 아까부터 거무죽죽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딱히 표정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심정은 점점 더 나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의원이 죽었다…….’

박태식은 오예리가 태어나서 만난 사람 중에 제일 높은 사람이지 않나.

그런 사람도 죽었다면 대체 이 둘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싶었다.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랄까.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 선 인간이 된 기분 같기도 하고.

하여간 뭔가 희망이 슬금슬금 사라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이 일에 연루된 또 다른 사람이 떠올랐다.

“아……. 그럼 김효상 국장님은요? 그분도 문자를 받았나?”

“아닐 겁니다. 세종에 있잖아요. 우리 둘하고 같이 엮기가 어렵죠.”

“그럼……?”

유현은 오예리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면서 이미 같은 결론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 병원이었다면, 그러니까 오예리가 환자고 무언가 무서운 병을 앓고 있다면 말하지 않았을 터였다.

지금보다는 좀 더 준비된 상황에서 더 예의를 차려서 말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전화를 안 받아요. 이미 죽었을 겁니다.”

“아니, 사람을 그렇게 막 죽인다고요? 거기는 또 누굴 엮어서?”

“우식이는 아예 영문을 모르고 있더라고요. 그럼……. 자살로 꾸미겠죠. 마침 그 사람은 폐인처럼 지내고 있었으니까.”

“하.”

유현은 오예리를 잠시 더 가만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심경은 이해가 가지만 지금은 이해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하여간 우리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함정을 팠잖아요. 안 가면 그만이기는 한데……. 그러자니 좀 아깝단 생각이 들어요. 이거 뭔가 이용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없을까요?”

해서 운을 띄웠다.

형사잖아요? 라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무언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려 주면 좋겠다 싶었다.

“음. 그래……. 이 새끼들. 우리만 당해 줄 수는 없죠.”

오예리는 잠시 고개를 주억거리고서는 입을 열었다.

“배달원에게는 미안한 일이긴 한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아, 그렇습니까? 어떤……?”

“네, 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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