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역공 (7)
“주무십니까?”
김일용은 참지 못했다.
늦은 시간이고, 또 정유현, 오예리가 오늘 아주 거친 하루를 보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들었다.
증거와 정황상 증거도 이유긴 했지만, 그 후로 걸려 왔던 전화가 더 결정적이었다.
-VIP께서 면밀히 보고 계신 건이니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수사 상황 일일이 보고해. 서면으로도 하고 대면으로도 하고. 그냥 직통으로 나한테 와. 아, 그리고 언론에는 절대……. 절대 흘리지 말고. 특히 그 영상. 영상은 잘 간수해. 어디 흘러나가지 않게.
경찰청장이라는 존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꾸 나오니까 모를 수도 있는데, 알고 보면 진짜 높은 사람이었다.
10만이 넘는 경찰 중에 정점에 선 사람이지 않나.
이런 식으로 일개 일선에 있는 형사가 막 전화 받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얘기였다.
‘게다가…… VIP……. 이거 진짜 너무 뒤가 구려.’
김일용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답을 기다렸다.
‘뭐지? 이 형사?’
정유현도 생각 중이었다.
애초에 스피커폰으로 해 놓고 받았기 때문에, 그뿐만 아니라 오예리와 후배 모두 같은 생각 중이었다.
대체로 의심스럽다는 반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말하자면 이들은 국가 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경찰은 그 국가 권력의 충실한 개였다.
“아, 네. 아직요.”
그렇다고 답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 유현은 그저 일상적인 대화나 하자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집 근처로 가고 있는데 만날 수 있습니까?
“네? 집이요? 어쩐 일로요?”
하지만 바로 다음 대화에서 생각은 바로 어그러지고 말았다.
집이라니?
거길 왜 가고 있단 말인가.
‘이렇게 와서 바로 칼침 놓나?’
김일용.
유현은 아까 저녁에 보았던 형사를 떠올렸다.
흔히 강력계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인상의 소유자였다.
다시 말하면, 이런 인간이 흉기 들고 미친 듯이 덤벼들면 이기기가 어렵다는 얘기였다.
‘아니, 뭐……. 혼자 오면 제압할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유현이 그렇게 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으려니, 김일용이 말을 이었다.
-아……. 이거 사건을 좀 보다 보니까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요.
“이상한 점이라고 하면…….”
-기밀 사항이 있어서……. 만나서 말씀드리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저 마침 집에 거의 다 왔습니다.
이대로 두면 그대로 집으로 쳐들어올 것 같았다.
오피스텔의 경비가 꽤 철저하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형사가 경찰 배지 들이밀고 들어오는데 막을 수 있는 경비원이 얼마나 될까?
영화에서야 구속 영장 있어요? 라고 어쩐지 띠꺼운 말투로 되묻기도 한다지만.
글쎄, 일반인이 경찰 앞에서 그렇게 나갈 수 있을까?
아닐 터였다.
“그……. 제가 지금 집에 없습니다.”
-네? 안 힘드세요?
“오예리 형사랑 후배랑 같이 있습니다. 같이 있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아.
유현은 일부러 살짝 흘려 봤다.
김일용 형사는 강력계 짬밥이 보통이 아닌 만큼 바로 알아들었다.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확실히 누군가 셋업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조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현명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럴 때 괜히 의연한 척한답시고 혼자 있다가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꼴을 한두 번 보았나.
특히 마약수사대에 있을 땐 증인을 그런 식으로 몇 번 잃은 적도 있었더랬다.
-그럼 제가 그 근처로 가겠습니다. 주소 알려 주시기 좀 그러면……. 만날 장소를 정해서 알려 주시죠. 기다리겠습니다.
김일용의 말에는 배려가 가득했다.
유현은 마이크 부위를 손가락으로 막은 후 입을 열었다.
“어쩌죠?”
“괜찮을 거 같아요.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그냥 넘어갔는데 김일용 형사님 꽤 유명해요.”
“유명?”
“꼴통으로요. 일을 워낙 잘하는 데다가 지금 경찰청장님이 서장일 때 밑에서 사건 엄청 처리해서 정말 잘해 주는 데도 승진이 안 될 정도로요. 그래도 경찰청장님이 의리파라 여전히 챙겨 주세요.”
“음.”
꼴통이라.
다시 말하면 윗사람 말을 드럽게 안 듣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윗사람은 아주 높은 확률로 유현에게 해코지를 하려 들고 있었다.
‘만나는 볼까.’
번화가로 나가서 만난다면 별일은 안 생길 터였다.
돌아오는 길에 미행이 따라붙는 건 주의해야겠지만.
‘형사가 둘이야.’
유현은 오예리와 그 후배를 돌아보았다.
아직 김일용에 비하면야 경험이 일천한 둘이긴 했다.
그래도 형사였다.
뭔가 있지 않겠나.
“그럼 만나 볼까요.”
“네. 제 생각에도 그게 좋을 거 같아요. 김일용 형사님은 저도 알 정도로 유명한 분이라서요.”
“아……. 후배님.”
“이름 불러 주시죠.”
“그.”
“까먹으셨구나. 이진호입니다.”
“아, 맞아. 이 형사님. 그럼 이 근처 뭐 적당한 곳이 있을까요?”
유현의 말에 이진호 형사는 두꺼운 팔뚝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유현은 그 팔뚝을 보며 전혀 엉뚱한 생각 중이었다.
어지간한 놈들은 한 방이겠구나, 뭐 이런 생각이었다.
“술집 몰려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근데 막 먹고 죽자 이런 분위기보다는……. 와인바도 있고 해서 연인들이 많아요. 조용합니다. 뭔 일 나면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예요. CCTV도 많고…… 주차된 차량도 많고요.”
형사가 괜히 형사는 아닌지 팔뚝 매만진 지 몇 분이나 됐다고 바로 적당한 장소를 떠올렸다.
그냥 거기로 갑시다가 아니라 이유도 설명해 주었는데, 확실히 안전하다 할 만한 곳이었다.
“순정포차 앞이라고 하면 됩니다. 전국에 거기밖에 없는 상호예요.”
“네.”
해서 유현은 그 상호를 김일용에게 전달했고, 김일용은 알았다 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이미 발걸음은 다시 지하철을 향해 돌린 참이었다.
-너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이건 진짜 중요한 건이야. 너도 인마…… 어? 올라가야지!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래? 장가도 가고 인마.
경찰청장이 된 옛 선배의 말을 떠올리면서였다.
확실히 친한 사람이기는 했다.
자신에게만 한정하면 좋은 사람이기도 했다.
진심으로 김일용을 아끼는 사람이기는 하니까.
‘하지만 형님……. 이거……. 이거 너무 이상하다고요.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사람을 이런 식으로 묻으려는 게 어디 있어요.’
그냥 뭐 정유현이 이상하다는 말만 들었었다면 그냥 그런갑다 했을 터였다.
원래 제보와 현실이 다른 경우는 많으니까.
‘이건…….’
김일용은 아까 전달받았던 흉기 증거 감식서를 내려다보았다.
정유현의 지문이 검출되었다는 짤막한 문구만 적혀 있었다.
어디서 어떤 식으로 검출이 되었다는 말은 없었다.
이렇게만 보면 100% 정유현이 범인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오라고 했던 문자, 1층에서 호출했을 때 안에서 열어 줬던 사실, 그리고 그 후에 사망한 박태식.
하필 흉기는 박태식 집에 있던 칼이었고 그 칼에는 유현의 지문이 묻어 있다.
‘근데……. 영상 증거는 전혀 다른 정황을 가리키고 있지.’
단순히 시신을 발견한 영상만 있었다면…….
그랬다면 억지로라도 유현을 의심해 보려 했을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에 있었다.
누군가 아니, 분명히 조직적으로 오예리, 유현 그리고 배달 기사까지 죽이려 했다.
백주 대낮에, 그것도 그만큼 세대수가 있는 아파트에서 그러려고 했다는 사실이 좀 기가 차기는 했다.
‘병신들이지만……. 하여간 나쁜 짓에 진심이긴 해.’
김일용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성수역에 내려 순정포차로 향했다.
자동차 공업소와 카페가 공존하는 이곳은 올 때마다 김일용에게는 좀 황당하게만 느껴지는 곳이기도 했다.
이런 데가 뭐 좋다고 젊은 애들은 환장하는 걸까.
하여간 걷다 보니 금세 순정포차가 보였다.
포차라길래 허름한 포장마차일 줄 알았는데 멀쩡한 건물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공장이었던 것을 개조한 것으로 보인단 점이었다.
‘아……. 이런 데 싫은데.’
올드 패션인 김일용은 소위 말하는 힙하다는 곳을 질색하는 편이었으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오면서 보아하니 이 부근이 불안에 떠는 사람이 안심할 수 있어 보인단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아, 형사님.”
안으로 들어가니 포차래 놓고선 모던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놓인 식기나 음식 따위도 그랬다.
심지어 소주를 먹고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아, 네.”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다 보니, 김일용은 서둘러 합석했다.
나머지 셋은 그런 김일용을 그저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왔으니 얘기나 해 보라는 것이었다.
김일용은 오래도록 형사 노릇 하면서, 그러니까 어색한 상황을 많이 겪어 오면서 터득한 대로 후후 웃고는 물을 마셨다.
“크. 걸으니까 덥네요. 하여간……. 집에 가려고 했던 건…….”
“네.”
“기밀입니다. 어디 가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모르는 일이라고 할 거예요.”
“네, 뭐. 어디 가서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언론에 터뜨리는 방법이 있기는 했다.
아니라면 유튜버를 찾아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최후의 수단이었다.
아직은 저쪽에서 배 째라고 나오는 순간 모든 게 끝장날 테니까.
게다가 세상에 자살로 위장되는 죽음이 얼마나 많던가.
-형……. 김 국장님이 자살하셨다는데…….
아까 우식이에게도 전화를 받은 참이었다.
-그……. 일단 내일 내려갈게.
-어. 아니, 근데 이게. 설마 이거?
-자세한 얘기는 내려가서 하자.
김효상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아니, 살해당했다는 소식이었다.
“네. 믿겠습니다. 그……. 박 의원 말입니다.”
김일용 형사는 목소리를 무척 낮추고 있었고, 다른 테이블은 어떻게 봐도 조용하지는 않아서 소리가 새어 나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일용은 주의에 주의를 거듭하며 말을 이었다.
“자기 집 부엌칼로 살해당했거든요.”
“아…….”
“거기서 지문이 나왔는데, 그게 정유현 교수님 지문입니다.”
“네?”
“쉿.”
놀란 것은 오예리였다.
두 가지 사실 때문이었다.
경찰청 데이터베이스에 등록이 되려면, 전과자여야 하지 않나.
일단 그것부터가 이상한데 지문이 나왔다니, 그것도 이상했다.
“그 지문이 며칠 전에 등록이 됐어요. 딱히 사유도 없이.”
“누가요?”
“그……. 김주광 형사요.”
“네? 아니……. 그……. 그 선배는.”
“네. 얼마 전 사고로 죽었죠. 오 형사랑 같은 팀이었으니까 잘 알겠지만. 하여간 그렇게 되어 있어요. 이거 뒤가 너무 구립니다. 누군가 뒤에 있는 게 틀림없어요.”
“음.”
이렇게까지 지랄을 해 놨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였지만, 누군가 뒤에 있다는 건 미리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지 않나.
김일용 외에 누구도 놀라진 않았다.
김일용은 그런 셋을 보면서 확신했다.
‘진짜 뭐가 있구나. 아니, 이 나라에 대체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꼴통 기질이 본격적으로 발휘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