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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72화 (72/323)

72화 은폐 (4)

“뭐 하시는 겁니까?”

국정원 요원은, 그러니까 본인을 경찰이라고 밝혔던 요원이 위압적인 태도를 취했다.

속으론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보통 이렇게 나오면, 끝까지 협조를 하기에 그랬다.

막말로 둘이 가족도 아닌데 왜 이런단 말인가.

“그러는 댁은 뭐 하시는 겁니까.”

그런데 고재현은 적반하장이었다.

실제로 화가 난 건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화를 내고 있었다.

“뭐 하긴요. 수사 중이죠.”

“며칠 전에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정유현 교수님 그럴 분이 아닐 거라고…….”

“하지만 그런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짤방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지워져서 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는 건 보지 못했죠. 댁들이 보여 준 것만 봤죠.”

그 짤방에서의 정유현은 확실히 이상했더랬다.

정부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식이었다.

변종이 발생했는데 숨기고 있다고 하면서, 변종에 대해서는 얘기를 해 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방역 정책에 일조를 해 온 데다가, 현장에서 일해 온 교수가 하는 말이라기엔 뭔가 좀 알맹이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경찰이 보여 주는 증거다 보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물린 자국과……. 기이한 공격성.’

유현과 통화를 하지 않았다면.

아니, 유현이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속절없이 믿었을 터였다.

유현을 존경하긴 하지만 틈을 주지 않는 사람이다 보니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으니까.

다시 말해 유현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단 얘기였다.

‘역시……. 정유현 교수는 그냥 그런 사람이야.’

혹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 아닌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보이는 대로인 사람이었다.

“그게 사실인 걸 어쩝니까?”

“일단…….”

그런데 경찰에서는 왜인지는 몰라도 유현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사실 좀 이상한 소문이 있기는 했어.’

세간에 퍼질 만한 소문은 아니었다.

감염내과 교수들 사이에서나 회자되는, 정말로 조그마한 이야기였다.

유현이 질병관리부와의 월례 회의에서 제출했던 케이스, 그리고 그날 최우식 과장이 보여 주었던 흑룡강성에서 리포트 되었다는 케이스 모두 삭제되면서 나온 이야기였다.

-정부에서 뭔가 숨기려는 게 아니냐.

물론 카더라 통신에 불과했더랬다.

게다가 감염내과 교수들은 정부의 방역 정책에 깊이 관여했던 만큼, 적어도 정부가 뭘 숨기진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의 작은 평화조차도 누릴 수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최우식 과장이 갑자기 휴가를 내고, 유현마저 사라지자 다시금 그런 소리가 나왔다.

-오히려 정유현 교수가 이상한 짓을 꾸미고 있습니다.

그때 경찰이 접근했다.

소문을 종식시키기에 충분한 얘기를 하면서.

하지만 유현이 했던 말, 그러니까 환자에 대해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단…….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따로 얘기를 하진 않았으니까 또 전화가 올 수도 있죠. 그럼 연락 드리겠습니다.”

“아니……. 지금 추적을 해야 했는데.”

“제가 용의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강제로 뭘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 않나요?”

“그건…….”

해서 결정을 내렸다.

일단 환자부터 확인을 해 보기로.

그리고 그 환자에 대해서는 이들에게 말하지 않기로.

“제가 좀 지쳐서 그렇습니다. 막말로 그렇지 않습니까? 정유현 교수……. 친분이 대단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존경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무슨 음모라니…….”

고재현 교수는 일부러 털썩 소리를 내며 연구실 소파에 주저앉았다.

누가 봐도 지쳐 보이는 기색이 완연했고, 그게 설령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도 하여간에 축객령이었다.

“그, 알겠습니다. 그럼 연락 기다리죠.”

이렇게 되면 제아무리 국정원 요원이라 해도 별수 없는 노릇이었다.

경찰 수사라는 것도 사실 다 거짓부렁이지 않나.

이러다 열받아서 민원이라도 넣게 되면 모든 게 들통나게 될 터였다.

-너무 압박하진 마. 어차피 대개 다 협조하게 되어 있어. 일부 고집쟁이들까지 품고 갈 필요는 없다고.

게다가 김태평 팀장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긴 했다.

세상에 감염내과 교수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인간 하나에 매달려야 하겠나.

‘흠.’

해서 순순히 물러났다.

고재현 교수는 그런 요원들을 지켜보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을 걸쳤다.

그러곤 병실로 향했다.

‘광견병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지.’

머릿속엔 온통 환자 생각뿐이었다.

사실 광견병이라고 해서 진짜 미친 사람처럼 날뛰는 경우는 드물지 않던가.

물을 기이할 정도로 두려워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저 고열에 시달리다가 사망할 수 있는 위험한 병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고재현 앞으로 입원한 환자는 좀 이상했다.

-밥! 밥 달라고!

일단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보였다.

억제력이 상실된 것처럼도 보였고.

그에 비해 열이나 다른 증상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물린 자리에 국소적인 염증 반응 정도만 있을 뿐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적절한 소독과 항생제 치료를 하고 있으니 걱정할 것은 없어 보였지만, 경과가 이상한 것은 사실이었다.

“아, 어머님.”

병실 앞에는 보호자가 서성이고 있었다.

아들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감히 들어서지도 못한 상태였다.

“아, 밥 달라고! 이 시발 새끼들아!”

저러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제아무리 억제대를 찼다고 해도, 위험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성인 남성이 안위를 가리지 않고 날뛰면 억제대도 끊어지거나 풀릴 수 있으니까.

실제로 간호사 중 하나가 바이탈 체크를 하다가 팔뚝을 물리는 바람에 병가를 내지 않았나.

부상 정도는 그리 심해 보이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고려해서 수간호사도 별말 하지 않고 허가해 주었다.

“어유……. 우리 지원이. 어째요.”

당연히 엄마 눈에서 눈물이 마를 일이 없었다.

멀쩡하던 아들이 남을 물고 저 난리를 피우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정신과 쪽 협진에서도 이렇다 할 의견을 주지 못했다.

그저 섬망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협진을 본 사람도, 그 의견을 들은 사람도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섬망과 저 환자가 보이는 증상은 차이가 너무 심했다.

“일단……. 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 위험할 텐데……. 또 물리면 어째요. 제가 정말 병원분들 볼 면목이 없어서.”

“시큐리티 분들과 함께 갈 겁니다.”

“아. 네네. 모쪼록 좀 잘 좀 봐 주세요.”

고재현은 시큐리티를 대동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을 본 환자는 한층 더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둘이 아니라 셋이고, 그중 둘은 덩치가 좀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살짝 조용해졌다.

‘이런 거 보면……. 어느 정도 사리 분별이 된다는 건데. 설마……. 정말 이게 ARS-24란 말인가.’

한때 열 나는 환자는 죄다 ARS-24 검사를 돌렸던 때도 있었더랬다.

그전에는 아예 입원하는 모든 환자에게 시행했고.

하지만 변종에 변종이 거듭해서 나오고, 그러면서 동시에 바이러스의 독성이 줄어들게 되었다 보니 그 루틴도 종말을 고했다.

이제는 열과 함께 확실히 ARS-24가 의심되는 경우에만 검사를 시행하고 있었다.

이 환자는 아예 의심할 건더기가 없어서 하지 않았더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어려운 것도 아니긴 해. 난동 부리면 좀 그렇긴 하지만. 재우면 그만이지.’

고 교수는 재어 둔 할돌을 환자의 배에 푹 하고 찔렀다.

안 그래도 억제대 주변으로 상처가 가득한 상황이지 않나.

이렇게 재운다고 해서 얘기가 나오진 않을 터였다.

“으……. 으.”

이상한 건 재우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일단 자기는 했다.

스으윽

덕분에 고재현은 어렵지 않게 ARS-24에 대한 검사를 시행할 수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교수님.”

그렇게 시큐리티와 헤어지고, 검체를 검사실에 맡기고 돌아서려는데 익숙한 실루엣이 눈앞을 가렸다.

“어…….”

“이쪽으로.”

유현이었다.

언제 온 걸까.

아니, 어떻게 온 걸까.

온갖 의문이 떠돌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불가해한 환자가 있는데, 그 환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있을 법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나.

-일단 가운 벗고, 안으로 들어가요.

유현은 그렇게 따라온 고재현에게 쪽지를 건넸다.

고재현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지만, 유현의 얼굴이 워낙에 진중했던 탓에 일단 따랐다.

딸깍

불 꺼져 있던 강의실에 불이 켜지고.

모르는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오예리와 이진호였다.

“어…….”

“인사는 나중에 하시고. 제가 말한 거랑 비슷한 환자 본 적 있는 거죠?”

“아, 네. 지금 입원해 있어요. 방금 검사 맡기고 오는 길입니다. 다만…….”

그게 정말 ARS-24가 맞냐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내뱉지 못한 것은 유현이 계속 말을 이어서 그랬다.

“혹시 그 환자에게 물린 사람 없습니까?”

유현은 고재현의 행색을 살피면서 물었다.

가운을 벗어서 수술복 차림이었는데, 팔뚝에는 상처가 없었다.

가운을 살피던 오예리와 이진호는 고개를 저으며 다가왔다.

“일단 도청기는 없어요.”

“그래, 뭐……. 그럴 거 같기는 했어요.”

기껏해야 연구실에나 달았을 것 같긴 했다.

아니면 안 달았거나.

솔직히 감염내과 교수들에게 전화를 걸 거란 확신을 어떻게 했겠나.

유현도 못 했는데.

‘옆에 그놈들이 있을 줄은 진짜 몰랐지.’

혹시나 해서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전화를 걸긴 했지만, 진짜로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더랬다.

“네? 도청기?”

“아니,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혹시 물린 사람 없습니까?”

유현은 문가를 바라보며 물었다.

평소 여유롭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본격적으로 쫓기는 몸이 되었단 느낌이 들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분위기에 휩쓸린 고재현도 덩달아 긴장한 얼굴로 답했다.

“아, 있습니다.”

게다가 있지 않나.

며칠 전에 간호사가 물렸더랬다.

그것도 신규가.

“어딨죠?”

“아마 집에……. 집에 있을 겁니다. 병가 냈습니다.”

“이런…….”

“왜……. 왜 그러시죠?”

“제 짤방 봤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그게 그 경찰이 보여 준 것만 봐서요. 이런 내용은 아예 없었습니다.”

“아, 그렇군.”

유현은 고재현이 본 사람이 경찰이 아니라, 요원일 거라 확신하면서 말을 이었다.

“이 변종은 100% 확률로 감염이 되는 대신, 직접적인 타액 전파를 통해 감염이 됩니다.”

“직접적인……?”

“무는 거요. 지금 환자가 계속 물려고 하지 않습니까?”

“아, 네. 그 말은 그럼…….”

“그 간호사 감염되었을 거예요. 그리고 다른 사람을 물었을 수도 있죠.”

“아.”

그때 고재현이 부르르 울리는 삐삐를 들여다보았다.

구식이지만 병원에서는 여전히 잘만 쓰이는 물건이었다.

“왜요.”

“검사 결과 떴습니다. 양성……. 양성입니다.”

“아, 이것도 양성으로 뜨긴 하는구나. 하긴 뼈대는 같을 테니……. 하여간 그 간호사 어딨습니까.”

“제가…….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요. 그리고 다른 병원 교수들에게 그런 환자 있는지 물어보세요. 아마 여기만의 일이 아닐 겁니다.”

“그럼…….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어떻게 되긴요.”

X 된 거지.

유현은 문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쩐지 저 밖은 이미 지옥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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