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새 시대 (5)
“어……. 교수님.”
“왜.”
앰뷸런스는 금세 고속도로를 타고 세종으로 향했다.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유현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세종이라고 안전하려나.’
그가 본 괴한은 이성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당연히 이동 수단은 도보일 거라 단언할 수 있을 만큼,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순규…….’
백미러를 통해 본 이순규는 앉아 있었다.
억제대를 착용하고 있기는 했으나, 이렇게만 보면 구속이 필요 없어 보일 정도로 얼굴이 평온했다.
저 정도면 운전이 가능하지 않을까?
혹 다른 감염체 중에도 전두엽의 억제 기능이 워낙에 강한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은 적어도 오락가락할 수는 있지 않을까?
개인에게는 다행일 수도 있는 일이지만.
방역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는 재앙이었다.
“교수님. 왜 대답하고 아무 말도 안 해요?”
“아, 어. 딴 생각했어. 그래서 무시했어.”
“솔직해서 괜찮다고 생각하시죠.”
“어. 거짓말 치는 것보다는 낫지.”
“틀린 말은 아닌데…….”
양재원은 이 지경이 되어서도, 이 지경이라고 하기엔 사실 실감이 나진 않았지만 하여간 한결같은 교수란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하고는 원래……. 원래 이렇지.’
막 억압하거나 권위적인 교수는 아니었다.
근데 정신 차려 보면 시킨 대로 하고 있었다.
수완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혀를 잘 놀리는 건지.
하여간 재원은 열 받은 가슴을 식히고 나서야 아까 하고자 했던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아무튼, 아까 교수님 말 듣고 올만에 레지던트 단톡방 봤거든요?”
“단톡방이 있어?”
“네. 뭐 보통은 정전인데요. 요새 좀 글들이 올라왔네요.”
“왜 안 봤어? 신비주의야?”
“아니, 알람 꺼 놨죠. 너무 바쁘니까. 교수님 안 계신 동안 진짜…….”
“그래, 능력이 모자라면 몸이 고생이지. 나 있을 때 얼마나 편했는지 이번 기회에 알았길 빈다.”
유현은 일부러 이죽거렸다.
그래야 머리가 좀 더 편안해질 것 같아서였다.
자꾸 엉망이 된 서울과 엉망이 된 대한민국 더 나아가 박살 난 세계 등등이 떠올라 말 그대로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와.”
속내를 말 안 해 주니 재원이야 알 턱이 없었다.
해서 열은 받았지만.
어쩌겠나.
상대는 교순데.
“이거 봐요. 이게 떴는데……. 이거 진짜일까요?”
게다가 방금 톡방에서 받은 영상은.
그러니까 유튜브 링크는 무시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나 운전 중인데. 옆을 보길 바라? 고속도로에서? 정말?”
유현은 아직 영상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또다시 이죽거렸다.
재원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볼륨을 올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흘러나왔다.
다만 어디 문화권인지는 알 수 있었다.
“이슬람……? 너 종교 있냐?”
“아니, 그게 아니라요. 이게 지금 전 세계에서 무차별적으로 돈대요.”
“영상이야?”
“네.”
“내용이 뭔데?”
유현은 찜찜한 느낌을 받았다.
그날.
박원상이 경고해 주었던 바로 다음 날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서 그랬다.
타다다당
총소리.
그리고 폭발음.
서울 한복판에서 테러가 벌어졌더랬다.
이제 와 정부의 발표를 믿기란 참 어려운 일이지만.
하여간 테러 집단이 벌인 일이라 보도되지 않았나.
“위구르에 대한 압제를 규탄하기 위해 중국과 이를 묵인했던 국가 모두에게 벌을 내릴 거라고……. 테러 따위가 아니라 신이 내리는 벌이 될 거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화질이 진짜 별로긴 한데, 뒤로 뭐가 보이거든요. 근데 그게 엄청 큰 사람 같아욧! 와. 사고 나는 줄.”
엄청 큰 사람.
테러가 아니라 신이 내리는 벌.
유현은 그 순간 갓길에 차를 세워야만 했다.
가슴이 벌렁거려서, 도저히 운전을 더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운전 X같이 하네!”
성질이 더러워진 이순규가 뒤에서 소리 질러도 어쩔 수 없었다.
“영상. 봐 봐.”
유현은 손을 내밀었다.
표정이 진중했기에 재원은 하릴없이 폰을 건네주었다.
뒤따르던 이진호 형사와 오예리 형사도 급히 갓길에 차를 세우고 달려왔다.
혹 이순규 때문에 뭔 일이 났는지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삼단봉을 뽑았다.
-너희는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것은 이순규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한 무언가였다.
-너희는 우리의 비명을 무시했다.
아니, 어쩌면 예정된 파멸이었는지도 몰랐다.
-이제 우리는 너희와 대화하지 않겠다.
바이러스를, 예측 불가능한 인류의 적을 통제 가능한 무기로 만들겠다는 발상을 했을 때부터 예고된 파멸.
-이것은 전쟁이 아니다. 이것은 테러도 아니다. 신이 너희에게 내리는 벌이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유현은 신이 너희에게 내리는 벌이라는 말이 어쩐지 폐부 깊숙한 곳을 찌르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 내가 하고 있던 생각하고 비슷한데.’
이제 와 신의 존재에 대해 얘기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무신론자인 유현에게 신에 대한 탐구는 무용했으니.
그러나.
자연의 법칙 중엔 절대로 거스르면 안 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동의하는 바였다.
이번에 인간은 그 금기를 건드렸다.
“이거…….”
유현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이 오예리가 입을 열었다.
열린 창을 통해 본 화면이지만.
그래서 무척 흔들렸지만.
자막을 보기에 무리가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동시에 뒤에 어른거리는 거한들을 보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이거…….”
그래서 오예리도 말을 더 잇지는 못했다.
“이거 혹시 이 바이러스…… 감염체일까요?”
오히려 유의미한 말을 꺼낸 건 양재원이었다.
그제야 유현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아니……. 이거 우리나라에 있는 걸……. 어떻게?”
“이건 어찌 보면 나 때문일 수도 있어.”
“네?”
유현은 죽었다 살아난 환자, 박기태를 떠올렸다.
그가 보였던 여러 행태와 결국엔 사라져 버렸던 일까지도.
“그 케이스……. 너무 특이한 변종이었지. 그래서 질본에 보고했어. 질본에서도, 그래. 우식이도 그걸 WHO에 공유했지. 너무 순진했어. 그게 어떤 연구에 의한 결과물이었는지 생각했어야 했는데.”
후회가 되었다.
그걸 숨겼어야 했는데.
하지만 돌아간다고 해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지금껏 쌓인 정보 없이 그럴 수 있을까.
의사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터였다.
전에 없던 변종이 나타났다면 숨김없이 공유하고, 이를 막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테니까.
“그게 교수님 잘못은…….”
“이제 와 하는 말이야. 소용없는 말이지. 하여간……. 내 보고가 결국, 모두의 관심을 끌게 된 셈이지. 애초에 ARS-24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게 인위적인 연구에 의해 탄생한 바이러스가 아니냔 의심에서 붙인 거잖아.”
“그렇긴 하죠. 이 바이러스……. 처음부터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으니까요.”
처음 2차, 3차 감염이 나올 때.
중국은 이상하리만치 은폐에 최선을 다했다.
그 때문에 결국엔 도시가, 꽤 거대한 도시가 폐쇄되는 일이 생겼을 정도로.
“하여간……. 다들 관심이 있는 상황에서 감염자가 죽었다 살아났다는 보고가 나온 거야.”
“의학계에서는 무시했잖아요.”
“의학계는 의사의 상식으로 움직이는 곳이니까. 하지만 다른 곳은 달랐을 거야. 이걸 이렇게 사용하고 싶어 했던 사람들.”
유현은 이제는 멈춰 버린 영상, 그러니까 재원의 휴대폰을 두드렸다.
화면에는 여전히 수염을 기른 노인이 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다른 가능성을 봤을 수도 있어. 처음부터 아예 다른 접근을 했을 수도 있거든.”
“네? 어떤 접근이요?”
재원은 유현의 말을 아예 이해하지 못했다.
그 또한 방역의 주체 중 하나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의료진에게 바이러스란 막아야 할 적이었을 뿐, 달리 어떤 의미도 갖지 못했다.
“이거 퍼지고 사회가 어떻게 됐어. 망가졌잖아.”
“그건……. 그렇죠. 저야 레지던트니까 사실 잘 모르겠긴 한데.”
교과서에 쓰여 있던 팬데믹과 실제로 겪은 팬데믹엔 차이가 있었다.
사람들이, 아픈 사람들부터 죽어 나갔다.
후유증에 시달렸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병상이, 의료진이 징발되었다.
그 결과 다른 질환을 앓던 환자들이 또 죽어 나갔다.
이뿐만이 아니라,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거리에서 사람들이 사라졌다.
사회가 마비되었다.
“바이러스는 우리를 망가뜨렸어. 그것도 오랫동안. 근데 사람들이 누굴 욕하지?”
“뭐……. 정부나 의료진?”
“그래. 바이러스 자체를 욕하진 않아. 소용이 없어. 근데 이 바이러스가 항간에 떠도는 음모론처럼 누군가 만든 거라면? 그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우리나라를, 적국을 망가뜨리기 위해 바이러스를 뿌렸다면?”
“네? 에이……. 다 망가졌는데요?”
“이번엔 아니라고 치자. 하지만 언젠가 이런 무기를 만들 수 있다면? 그럼 그 누군가는 얼마나 강한 힘을 갖게 될까.”
“어……. 아니, 그럼 교수님 보고를 보고 이걸 무기화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거예요?”
“그렇지. 그 결과 진짜 무기가 됐지. 엉뚱한 사람 손에 들어간 거 같지만…….”
유현은 다시금 멈춰 버린 영상을 내려다보았다.
수염 기른 노인은 여느 시골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이 사람은 알까?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하는지?
“이거 근데 정말 테러가 일어난다면, 그럼 어떡해요?”
“달라지는 건 없어.”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저 노인에 대한 염려는 지금 유현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대한민국은 셀프로 테러를 당한 상황이니까.
말 그대로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만 다른 나라들도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이 차이일 뿐이었다.
“네?”
“우리는 세종으로 가서……. 연구해야 해. 비축물도 사고.”
“근데 세종에 가면 그게 가능해요?”
“우식이 도움을 받아야지.”
“아, 최우식 선배님.”
그렇게 유현은, 일행은 어두운 마음을 뒤로하고 액셀을 밟았다.
우선 세종에 가기 위해서였다.
가 봐야 별 소용없을 수 있었다.
그래도 가야 했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이건……. 이건 호재로군.”
그 시각 대통령 또한 예의 그 영상을 보고받았다.
민정 수석은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단 얼굴이었다.
호재라고?
우리가 만든 바이러스가 지금 전 세계를 타격하게 생겼는데?
말하자면 통제를 벗어난 핵이 적과 우방을 가리지 않고 때린단 얘기였다.
“머리가 안 도나? 이미 막을 수 없다며? 우리나라에도 다 번졌다며?”
“네, 그렇습니다. 아쉽지만…….”
“이대로 가면 우리가 독박 썼을 거야. 안 그러나? 아무리 막아도 사실 이런 세상에 다 잡아내서 지우는 건 불가하지. 벌써 영상 흐르고 있다던데.”
“네. 그래서 저도 김태평 팀장을 좀 더 닦달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어.”
“네?”
“범인이 나타났잖아. 이 이슬람 단체인지 뭔지. 이놈들이 테러한 걸로 가자고. 그렇게 되면 이놈들을 규탄할 수 있잖아. 우리는 빠져나갈 수 있다고.”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