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81화 (81/323)

81화 사태 발발 (2)

“아니, 왜 밟다 말아요!”

김일용의 차량은 SUV였다.

그것도 대형.

캠핑이 유일한 낙이라 그랬다.

당연히 토크가 좋은 차라 밟으면 나가야 했다.

근데 꿀렁하고 멈춰 버렸으니, 순구의 입에서 사나운 소리가 나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행동을 함께하기로 한 후배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비명 때문에? 위험하다는 거잖아요!”

“우리는……. 대비가 되어 있잖아요.”

“무슨 대비가 되어 있어! 존나 무서운데!”

김일용은 순구의 욕에도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건물 쪽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제발, 누가 좀!”

비명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어쩐다.’

이들 말대로 위험한 상황이기는 할 터였다.

내빼는 게 옳을 것 같았다.

당장 정유현 교수만 해도 아예 서울에서 몸을 빼지 않았나.

그게 벌써 거의 일주일 전이었고, 나름의 은신처를 만들겠다고 했으니 요새를 지어 놨을지도 몰랐다.

그 와중에 나는 저기로?

경찰이라는 이유로?

-야, 김일용. 너 시말서 쓰고 한동안 나오지 마라.

그 정점에 선 사람, 그러니까 청장에게 3일 전에 들었던 말이었다.

유현이 자신과 통화한 내역을 영상으로 만들어 올린 것이 그 이유였다.

다시 말해 경찰은 이 사태를 막으려 애쓰는 게 아니라, 그저 덮으려 애쓰고 있다는 얘기였다.

-위에서 내려온 지침이야. 알아서 다 할 텐데 네가 뭔데 그 일에 재를 뿌려! 너 때문에 지금 경찰청이랑 서 업무 다 마비야! 시위대가 들끓는다고! 저것들 다 어? 네 말대로 이게 변종이면 저기서 번지고 있지 않겠어?

아무래도 청장은 제대로 아는 게 별로 없는 듯했다.

그랬다면 저따위 얘기나 늘어놓겠나?

절박한 시위대에게 버스 장벽을 세웠겠나?

답답한 심정을 알겠나?

-이거 그런 게 아닙니다! 변종에 감염이 되면 괴물이 된다고요!

-또 그 소리! 이게 무슨 좀비 영화인 줄 알아? 자네 정말 정유현인지 뭔지한테 브레인 워싱이라도 당한 거야, 뭐야?

-정말이라니까요? 지금 이 사이트 접속해서 보세요. 여기 사진들을 보시라고요, 영상도 있습니다. 조작이 아니에요.

-불법 사이트지 않나.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경찰로서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나?

말도 안 통했다.

이미 이 사태를 가짜라 믿기로 작정했기에 그랬다.

아니, 그보다는 윗사람의 뜻대로 하려고 마음먹은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살아서 청장까지 된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할 터였다.

“형사님! 빨리 도망가자고! 나 진짜 존나 무서워. 이러다 우리 다 죽어!”

정신을 차려 보니 욕쟁이, 그러니까 순구가 어깨를 마구 패고 있었다.

손으로 뭘 가리키면서였는데 괴물이었다.

그것도 체구가 2미터가 훌쩍 넘는.

유현의 표현에 따르면 감염된 지 한 달 가까이 되었을 가능성이 큰 진또배기였다.

‘저런 건 정면에서 상대할 생각일랑 하지 말랬지.’

격투가와 보디빌더가 싸우면 어떻게 될까 라는 질문을 들어 본 적 있는가?

커뮤니티를 떠도는 유명한 떡밥 중 하나이니 반드시 들어 봤을 터였다.

여론도 그렇거니와 상식적으로 격투가가 유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보디빌더처럼 근육을 키우려면 근육을 따로따로 움직이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 근육의 협응력이 중요한 대다수의 운동과 정확히 배치되는 사안이라서 그랬다.

다시 말하면 각각의 정해진 근력 운동을 수행함에 있어서는 당연히 보디빌더가 더 강하지만, 다채로운 방향으로 힘을 쓸 때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얘기였다.

“시발, 시발 놈아! 빨리 밟아!”

“알았어!”

그러나 저건 예외였다.

몸집이 커지는 동시에 머리에서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의 양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있어서 그랬다.

저걸 움직이게 하는 건 본능이었다.

심지어 몸이 일부 무너지는 것도 감수했다.

그 결과,

“뭐야. 밟고 있어요?”

“어, 밟고 있지!”

“근데 왜 안 멀어져!”

“존나 빠른 거야, 저게!”

저 몸뚱어리를 하고서도 놀라운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아, 멀어진다.”

“정유현 교수님 예상대로네……. 휴.”

다행인 것은 그 폭발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점이었다.

물론 차가 아니라 맨몸으로 마주치는 경우엔, 다행이라는 말 따윈 쓸 시간도 없을 터였다.

그 자리에서 피할 생각도 못 하고 물릴 테니까.

“아니, 이 미친 양반이 왜 돌아왔어!”

순구는 그대로 도망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김일용은 한 바퀴 돌아 오피스텔 앞으로 돌아왔다.

“아니, 아까.”

“아까 뭐! 저런 게 돌아다니는데 잘도 살았겠네!”

“뭐가 떨어졌어.”

김일용은 백미러로 봤다.

분명히 무언가가 6층에서 완강기를 타고 내려오는 걸.

제대로 탈 시간은 없었는지 그냥 손으로 붙잡고 있다가 중간에 떨어지기는 했지만.

죽지는 않았을 터였다.

“뭐가 떨어…….”

“살려 주세요.”

“아우, 시발 깜짝이야!”

그때 누군가 다가와 창문을 두드렸다.

떨어지다가 다쳤는지, 다리를 절뚝거렸다.

그러나 적어도 그 외의 다른 부분은 괜찮아 보였다.

“자리도 없잖아요!”

“트렁크에 태우면 되지.”

“아까 그놈 오면?”

“그러니까, 자네가 태워. 나는 액셀 밟아야지.”

“두고 도망가겠다는 건가, 지금?”

“설마 내가 그러겠어? 그런 놈이면 애초에 여기 안 왔어! 아니, 은신처에 너네 데려가겠다고 안 했지!”

“아니, 왜 또 화를 내. 무섭게.”

순구는 투덜대면서도 일단 차에서 내려 트렁크 문을 열었다.

그러곤 방금 구원 요청을 해 왔던 이를 태우려 했다.

쿵쿵그때 뒤에서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괴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2미터가 다 뭔가.

그거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었다.

‘X 됐다.’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

순구는 저도 모르게 트렁크 위에 올라탔다.

“어, 저도!”

다친 사람은 하필 다리가 다쳐서 올라오질 못했다.

“이거, 이거 잡아요!”

해서 순구는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야, 이제 밟아야 해. 당겨!”

“여기 뭐 지탱할 게 없어서!”

“운동 좀 하지, 새꺄! 안 돼, 이제! 너까지 뒤져!”

김일용이 액셀을 밟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주 빠르게 달리진 않아도 되었다.

괴물이 아까보단 지쳤는지 그저 평범한 속도로 달려와서 그랬다.

“어어, 더 온다. 더!”

문제가 있다면 소음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주변에 있던 놈들이 합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순구는 잔뜩 쫄아서 소리치다가, 무리 속에 낯익은 사람 하나를 발견했다.

“어…….”

“왜 그래?”

“후배가…… 저기. 저 새끼…….”

덩치가 괴물처럼 커지진 않았다.

하지만 멀리서 봐도 핏발 선 눈은 확연했다.

이건 유현이 알려 줘서 알게 된 사실이 아니라, 그냥 괴물을 지나쳐 가며 알게 된 일이었다.

감염이 되면 눈에 핏발이 선다.

고로 후배는 이미 감염이 됐다.

“왜 이렇게 빨라, 저 새끼!”

“쟤 고등학교까지 육상부였대요. 시발. 그 다리로 튀지. 왜…….”

다른 후배 놈도 후배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탄식했다.

그래 봐야 지금 손을 잡은 채 올라서려 애쓰는 사람만큼 처절하지는 못했다.

“나, 나 더 못……. 못 뛰…….”

“안 돼! 내가 잡았잖아!”

“다리가, 억!”

아무리 차가 천천히 달린다 해도 차 아닌가.

사람이.

그것도 다리 다친 사람이 어찌 따라올 수 있을까.

“으아!”

잡고 있던 순구도 뭐 제대로 훈련받거나 한 적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체격이 좀 좋을 뿐.

“놓쳤…….”

“뭐야, 왜!”

뒤를 볼 수 없던 김일용이 외쳤다.

순구는 그런 김일용을 향해 잠시 멈추라고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으, 으아아아!”

비명이 그의 입을 막았다.

서서히 핏발이 서기 시작한 사내의 눈도.

아픔을 잊고 뛰어오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말문이 트였다.

“밟아! 밟아!”

“뭐야, 갑자기?”

“밟으라고!”

김일용은 여전히 뒤가 잘 보이진 않았다.

사이드미러에 보이던 괴물은 여전히 그 속도로 달려오고 있을 뿐,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김일용은 형사이지 않나.

그것도 꽤 경험이 많은.

‘이건 진짜다.’

순구의 목소리에 깃든 감정.

저 공포는 무시해서는 안 될 무엇이었다.

자초지종은 나중에 들어도 될 일이었다.

부우우웅

해서 차량은 속도를 높여 달려 나갔다.

은신처를 향해서였는데, 말이 은신처지 그렇게 거창한 곳도 아니었다.

유현의 조언에 따라 집 근처에 있던 상가 주택을 빌린 게 다였다.

“오……. 철문도 중간에 있네요?”

“어. 밖으로 비상계단도 있고. 여차하면 옥상을 통해서 옆 건물로 갈 수도 있어.”

“아……. 역시 형사님.”

“아니, 이건 정유현 교수님이 말해 준 건데.”

“그분은 뭔데 이런 걸 다 알아봐요?”

“몰라, 나도. 하여간 보통 사람은 아니지. 지금도 정부랑 싸우고 있잖아.”

“하긴……. 아, 나도 그냥 세종으로 갈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가려고?”

“아뇨, 지금은…….”

순구는 고개를 저어 대고는 집 안으로 향했다.

오면서 본 서울은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각 커뮤니티 창도 난리였고.

조용한 것은 이럴 때 제일 시끄러워야 할 언론과 유튜브 그리고 개인 방송 등과 같은 플랫폼이었다.

아예 접속이 안 됐다.

* * *

“소식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됐지?”

“뉴욕, 엘에이, 뉴멕시코 인근 등……. 미국에서만 총 마흔두 곳에서 감염자 보고되었습니다.”

“아직 소요 사태가 있거나 하지는 않고?”

“그냥……. 아직은 사람을 무는 광견병이 돈다라거나 하는 식의 말만 있습니다.”

“막을 수 있을까?”

대통령의 말에 민정 수석 그리고 국정원 황 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보를 알고 있던 한국도 못 막았다.

안 막은 측면도 있긴 하지만.

하여간, 나름 동원할 수 있던 공권력은 다 동원하지 않았나.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라면 아마 불가능할 터였다.

“못 막을 겁니다. 저쪽에서도 그냥 변종 바이러스가 있고, 새로운 형태다 라는 것 정도만 파악 가능했을 테니까요.”

“안에서 새어 나간 거……. 정말 없어?”

“네. 없습니다. 게다가…….”

“게다가.”

“김조은 박사 측에 따르면 이미 그쪽에서 만든 것과는 또 다른 바이러스라고 합니다. 보다 완성형에 가까운 형태라고…….”

“그럼 백신은?”

“처음부터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망할!”

대통령은 탁자 위에 있던 재떨이를 집어 던졌다.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는 곧 미소 지었다.

“계엄령 내려. 이제 우리도 제대로 막아야지.”

“아, 네!”

게엄령이라는 명령에 미소 지을 수 있는 부하가 몇이나 있을까 싶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다들 반가워하는 얼굴이었다.

‘그래, 이제라도 내리면…….’

계엄령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조치라고 보면 되었다.

때문에 대통령을 비롯한 모두는 이제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늦었나…….”

세종시에 있는 유현은 생각이 달랐다.

“저거……. 감염자죠?”

“어. 그것도…… 최소 3주는 지났어. 이러면 이거…….”

“이미 전국 팔도에 다 있겠는데요…….”

“일단 차 돌려. 오잖아! 돌려, 돌려!”

“네!”

늦어도 한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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