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악화일로 (3)
유현은 병사들이 감염자를 묶는 것을 감시하다가, 이내 시내 쪽을 바라보았다.
불과 한 시간여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곳이었다.
감염자들이 좀비처럼 무의미하게 돌아다니지 않기에 그랬다.
‘이성이 남아 있어.’
그들은 효율적이었다.
해가 나면 피할 줄 알고, 감염시켜야 할 사람이 없거나 먹을 것이 없으면 쉴 줄도 알았다.
‘상가로 들어가고 있어……. 저기 숨어 있던 사람들, 괜찮으려나?’
지금까지는 틀어막은 문과 바리케이드를 뚫는 것보다는 쉬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을 터였다.
그러나 저렇게 수가 늘어난 이상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 되어 버렸다.
‘오지랖이지…….’
도울 수 있나?
절대 무리였다.
저만한 수는커녕, 그 앞에 있던 감염자 하나.
그러니까 거대화된 감염자 하나도 뚫지 못했더랬다.
아니, 하마터면 그날 이진호 형사를 잃을 뻔했다.
지금도 다리를 다쳐서 앓고 있고.
“일단……. 묶었습니다.”
유현이 잠시 상념에 잠겨 있던 사이, 병사들이 감염자 병사를 묶었다.
그나마 매듭법을 제대로 배웠는지 절대로 혼자서는 못 풀 만큼 단단해 보였다.
유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매듭을 손으로 당겨 보고는 몸을 일으켰다.
“이거, 풀어! 이 시발 놈들아! 풀어!”
그사이에도 감염자는 욕설과 함께 발버둥을 쳐 댔다.
그냥 우리가 일상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범주의 발버둥이 아니었다.
안위를 염두에 두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불편하다거나 매듭에 살이 쓸리는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군복이 아니라 살이 드러나 있던 모든 부위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올 지경이었다.
“으……. 얘……. 얘 왜 이러는 거예요?”
그나마 가깝게 지냈던 몇몇조차 가까이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만큼 흉험했다.
짐승이라 해도 좋았다.
아니, 이건 맹수였다.
“아드레날린이 폭주해서 저래요. 화가 나기도 하고……. 통증에도 둔감해지죠. 그에 더해…….”
아마 전두엽도 억제가 되어 있을 터였다.
아니, 억제라는 말로는 좀 부족했다.
일부 괴사하지 않았을까?
이순규는 옆에서 관찰한 결과 어느 정도 선에서 멈추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관찰되는 변종 바이러스의 특성은 그걸 넘어선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사람이 사람을 씹어 먹을 수 있겠나.
그것도 생으로.
“뭐 그렇습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었다.
해서 유현은 더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얼버무렸다.
그래도 됐다.
어차피 눈앞에 병사들과 김현철 소위는 전문가가 아니었으니.
전문가라 해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너무 큰일을 겪지 않았나.
“그……. 아, 저는 김현철 소위입니다. 육군 3X 사단 소속입니다.”
김현철은 그런 유현을 멀뚱히 보고 있다가 손을 내밀었다.
유현은 그 손을 잡은 채 답했다.
“네, 저는 정유현입니다.”
이름을 말해 줄 생각은 없었다.
정부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적이었으니까.
사실 이 사태는 반쯤 그들이 일으킨 것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겠나.
이제 와 개발한 것까지 탓할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탈취당했을 때.
그러니까 유현이 애써서 알리려 할 때라도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일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터였다.
“아, 네. 그……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운전하는데 덮치면 다 죽을 게 뻔해 보여서요.”
“네네. 정말……. 근데 이게 대체. 저희가 들었던 거랑은 너무 많이 다른데……. 정확히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정확한 설명이라.
유현은 대답하는 대신 우선 한숨부터 쉬었다.
‘그걸 지금 누가 말해 줄 수 있겠나…….’
상황이 한심스러워서만은 아니었다.
이제 유현도 모르는 일이 너무 많았다.
아니, 애초부터 그랬다.
정부가 작정하고 숨긴 것을 일개 민간인이 어찌 다 알 수 있겠나.
다만 그의 남다른 추론력과 박원상 등의 협조인 등으로 인해 파악한 것은 있었다.
‘군은……. 알아야 해. 이대로 갔다간 죄 몰살이야.’
총이라는 비대칭 전력이 있어도 이게 될까 말까이지 않겠나.
특히 이런 시내에서는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총알도 없이 빈총으로 상대를 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보셨겠지만……. 감염자들은 이렇게 아드레날린이 폭주하는 것 외에 식욕이 폭발하고 그렇게 먹은 음식을 죄다 근육으로 합성하는 특성이 있어 보입니다.”
유현은 최대한 전문 용어를 쓰지 않으려 애썼다.
덕분에 김현철은 대화를 따라가는 데 있어 크게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아까 저 상가에서 봤던 거대한…….”
“아, 그 괴물이요. 그……. 웁.”
다만 심리가 좀 불안했다.
부하들 앞이라 애써 의연한 척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래 봐야 20대 초중반 아닌가.
사회에서 오만가지 일을 다 겪은 유현이나 오예리도 이 상황이 감당이 안 되는데, 애한테 군복 입힌 게 다인 신임 소위에게 그러한 것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배려하기에도 마땅치 않은 시절이었다.
“일단 들으세요. 침착하게. 잘 기억해요. 여기만의 상황이 아닙니다. 아니, 여기는 그나마 나아요. 아파트 단지나…… 청사 근처는 더 해요. 듣고 있어요?”
유현은 허리를 숙인 채 애써 토악질을 삭히고 있는 김현철에게 말을 이었다.
그사이 시내 쪽을 보고 있던 오예리가 슬쩍 다가왔다.
“교수님.”
“네?”
“저기 흩어지기 시작하는데요. 이쪽으로 올지도 모릅니다.”
이쪽으로 온다.
놈이.
어쩌면 놈들이.
가뜩이나 근육까지 늘어난 놈들이, 아드레날린의 힘까지 받으면 얼마나 빨라질 수 있는지 유현은 지난 며칠간 두 눈 똑똑히 보았다.
1층 상가를 강도질하던 이들이 해체되는 것도.
그중 몇몇이 감염되어 주변에 숨어든 것도.
“소위님. 총이 없으면 절대로 안 돼요. 할 수 있으면 탱크라도 요청하세요. 아시겠어요?”
“그, 네. 네.”
“지금 놈들 올 수도 있으니까. 일단 자리를 피해요.”
“그, 저. 저 친구는 어떻게…….”
“저 친구? 아.”
감염자.
김현철의 손가락 끝에는 방금 감염된 병사가 있었다.
‘음.’
청사로 갈 방법은 없다.
말마따나 탱크라도 몰고 가면 모를까.
일반 SUV로는 절대 무리였다.
‘그래도……. 이건…….’
유현의 시선이 상가 주택 주변에 있는 병원에 가닿았다.
우식에게 협조해 준 병원장이 운영하던 병원이었다.
그는 우식의 조언을 허투루 여기지 않았고,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지금 상가 주택 은신처에 있는 의약품이나 기구 대부분이 저기서 온 것이기도 했다.
‘검진도 했다고 했지.’
CT가 있었다.
혈액 검사도 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의 연구는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해도, 이순규과의 차이점 정도는 알 수 있을 터였다.
이들의 행태를 파악하게 되면 거창하게 연구까지는 가지 못해도 생존에 도움이 될 터였다.
“두고 가요. 일단 우리가 돌보고 있을 테니.”
“그…….”
“어차피 못 데리고 가요. 이렇게 날뛰는데 트럭에 태운다고? 그러다 물리면. 물리면 또 감염이고 그러면 몰살이야.”
“아, 알겠습니다.”
“하여간 총. 총알 가져오라고. 안 그러면 안 돼.”
“네네.”
김현철은 유현의 말에 황급히 병사들을 수습해 차에 올랐다.
몇몇은 전우를 두고 간다는 생각에 찝찝함을 느끼긴 했다.
하지만 데리고 가자는 말을 하진 못했다.
“이 씨발 풀어!”
전우였던 이의 흉포함.
그리고 아까 죽어 나간 이들을 떠올리면 오금부터 저렸다.
“읏차.”
한편, 유현은 병사의 입에 재갈을 물리곤, 어깨에 둘러멨다.
오예리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그의 뒤를 따랐다.
“안 무거워요?”
안으로 들어와 쇠문을 내리고, 유리문도 잠그고 계단을 올랐다.
엘리베이터도 있긴 하지만.
전기가 들어오고 있는 상태긴 하지만.
언제 나갈지 모르지 않나.
계단으로 올랐다.
“네, 뭐. 그렇게 무겁진 않습니다.”
“힘이 진짜 세시네.”
“운동해서요.”
“근데……. 이 사람 어디다 두죠?”
상가 주택은 한 층을 통으로 쓰고 있었다.
그래 봐야 대지 면적 60평 남짓한 곳에 지어진 건물이다 보니 전용 40평대였다.
방 하나는 이순규에게 주었고, 다른 방엔 물품이 가득해서 남은 두 방은 그저 남녀로 나누어 쓰고 있었다.
“3층에 두죠.”
“3층……. 거기 사람 살 수가 있나?”
유현은 오예리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 아직 사람으로 보고 있네.’
명색이 의사라서, 감염자라는 말을 쓰고는 있었지만.
유현은 이순규를 제외한 감염자들을 딱히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치료가 가능할까?
이들이 다시 온전히 사회생활이 가능한 사람으로 돌아올까?
지금껏 보아 온 바이러스의 행태를 생각해 보면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유현은 굳이 오예리에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휴머니스트를 나무랄 생각도 없어서 그랬다.
“어쩔 수 없어요. 격리가 우선이에요. 순규는 그래도 안정제 쓰면 조절이 된다는 걸 우리가 확인을 했지만……. 그리고 몸집도 더 안 커지고 있고요. 심지어 먹는 양도 지금은 줄었잖아요.”
“네, 그건 그런데……. 하긴. 이 상태로는.”
유현은 우선 3층에 있던 작은 교습소 입구에 감염자를 내려놓았다.
“으, 으으읍!”
재갈을 물려 놨음에도 불구하고 감염자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재갈을 너무 세게 물어서 그런가. 피가 줄줄 새어 나왔다.
이걸 사람들이 있는 곳에 데려다 놓는다고?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일단 여기다 두긴 해야겠어요. 근데……. 음.”
오예리도 동의하는 바이긴 해서, 팔짱을 끼고는 감염자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봐도 사람이기는 했다.
위험하긴 해도.
또 피해자였다.
원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니니까.
적어도 오예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먹을 건 어쩌죠?”
“일단 뭐……. 제한해서 줘야죠. 지금이야 충분해 보일지 몰라도……. 군인들이 아까처럼 싸우면 사태는 더 장기화될 겁니다.”
“그래도……. 총 이제 쏘지 않을까요?”
“그래야 할 텐데……. 그러길 바라야죠. 제정신이라면.”
아마 방금 본 부대만 그런 일을 겪은 건 아닐 터였다.
오히려 재수가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트럭이 제때 움직여 주긴 했으니까.
하지만 다른 곳은 어떨까.
여기보다 감염자들이 훨씬 많은 곳이라면.
먹을 것이 풍족해 거대화된 놈들이 더 많은 곳이라면.
‘전멸한 곳도 있을 거야. 그럼 대응에 나서겠지.’
유현은 그렇게 확신하고는 발로 감염자를 밀어 강의실 안에 넣었다.
“으으으으!”
재갈을 빼진 않았다.
설마하니 여기서 소리친다고 놈들이 들을 것 같진 않았지만.
혹시 모를 일 아닌가.
오히려 묶은 것을 더 단단하게 묶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을 살릴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이순규와의 대조 실험.
그것을 위해, 이 감염자를 희생시킬 생각이었다.
그 전에 군인들에 의해 시내가 안정화된다면 또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확신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정했다.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