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관찰 (1)
“좀 어때요?”
“네? 아, 그분.”
유현은 아침으로 수프를 먹다가, 오예리를 돌아보았다.
뭔 소린가 했다.
그러다 지금 안부를 물을 만한 사람이 일행 중 하나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시간이 걸린 건, 유현은 딱히 그를 일행이라 생각지 않고 있어서 그랬다.
“바이털이 흔들리거나 하진 않아요.”
“위험하진 않다는 거죠?”
“네. 이따 양 선생이랑 같이 가서 볼 겁니다.”
유현의 말에 양재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유현과는 달리, 그는 아직 감염자에 대한 측은지심이 크게 남아 있어서 그랬다.
심정의 차도 있겠지만 경험의 차도 있을 터였다.
유현은 정말로 죽을 뻔한 경험이 두 번이나 있었고.
재원은 죽음은커녕, 그동안 이순규라는 정말 특별한 감염자하고만 라포(rapport, 두 사람 사이의 공감적인 인간관계)를 쌓아 왔으니.
‘교수님은……. 치료할 생각이 없으셔…….’
그렇다고 유현의 생각에 뭐라 반박을 하진 못했다.
‘치료할 방법이……. 없나. 아직은 없는 거 같긴 한데…….’
대안 없는 반박이 무슨 의미가 없겠나.
재원은 착한 사람이기 전에 의사였고, 또 의학자였다.
합리적이지 않은 것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말 나온 김에, 갈까?”
“아, 네.”
유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수프를 다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층으로 향했다.
원래 교습소로 운영되었던 이곳은 칸칸이 잘게 쪼개져 있어 누군가를 수용함에 있어 꽤 효과적이었다.
만약 사람이 늘게 되면 침구만 놓고 지낼 수도 있을 정도였다.
물론 냉난방이 위층처럼 잘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저 바깥보다는 아무래도 낫겠지.’
유현은 창문을 통해 밖을 돌아보았다.
전보다 훨씬 더 어지러워져 있었다.
단지 김현철 소위가 끌고 왔던 병력 때문만도 아니었다.
물론 피투성이가 된 트럭과 뜯어 먹힌 군인들도 드문드문 있기는 했지만.
놀랍게도 일반 시민들의 시신도 꽤 많았다.
‘이제 진짜 배고플 시기가 오고 있어…….’
일반 가정집에서 먹을 것을 쟁여 두고 있으면 뭐 얼마나 쟁여 뒀겠나.
군에서 제대로 보급을 해 주었다면야 별문제 없을 수도 있었겠지만.
애석하게도 군은 실패했다.
그 후로 재정비를 하고 있는 건지 뭔지, 움직임이 있지도 않았다.
때문에 갇혀 있던 시민들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태반은 감염자들에게 희생당했다.
어렵게 마트에 닿았다 해도 문제는 마찬가지였다.
감염자들의 식욕은 상상을 초월해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식료품은 거의 거덜이 나 버린 까닭이었다.
“교수님?”
“아, 그래.”
유현은 바깥을 아니, 절망을 보고 있다가 재원의 부름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군인을 바라보았다.
우선을 창을 통해서 바라보았다.
문은 잠가 놓기도 했거니와, 밖에 바리케이드용으로 어마어마한 물품을 쌓아 놨다.
묶어 놨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조치를 해 놨다.
감염이 되면 끝장이니까.
원래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바깥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으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졌다.
“일단 묶은 건 괜찮은 거 같지?”
“네? 아, 네.”
재원은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묶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공격적이니까.
하지만 침대도 없이, 책상에 묶어 둔 것은 좀 그랬다.
실제로 다른 강의실에 옆 병원에서 공수해 온 침대가 있지 않나?
-그건 혹시 모를 생존자들이 쓸 거야.
말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씨알도 안 먹혀서 그렇지.
‘생존자……. 그럼 저 사람은 뭐라고 해야 하지?’
재원은 생존자와 대비되는 단어가 뭐가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유현이 저 사람을 어찌 대하고 있는지를 잘 생각해 보면, 적어도 감염자라는 단어는 아닌 듯했다.
사람으로 대하질 않았다.
재갈까지 물려 두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병원에서 공수해 온 영양제로 대체하고 있었다.
입으로 주는 게 아니라, 정맥으로 주고 있다는 뜻이었다.
“들어가자.”
“네.”
유현의 말에 재원은 잡념을 털어 내고 문 앞을 막고 있던 물품을 치우는 것을 도왔다.
덜컹
그 소리에 감염자가 즉각 반응했다.
“으.”
책상 여러 개를 묶고, 그 뒤에 둘둘 감아 다시 묶고, 손과 다리까지 따로 묶어 놨음에도 소름이 쭉 끼쳐 올라왔다.
일반 사람이라면 저렇게까지 움직일 수는 없다는 걸 재원이 더 잘 알아서 그랬다.
“또 관절 빠지겠네.”
반면에 유현은 그저 여상한 말투였다.
처음엔 그도 놀라긴 했더랬다.
설마하니, 아무리 격렬하게 난리를 친다 해도 관절이 빠질 줄은 몰랐다.
그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통증을 일으키는 일 아닌가.
다행한 것은 유현이 진짜 제대로 묶어 놔서, 관절이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는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아니었으면…….
‘시발…….’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끼익
하여간 유현은 재원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의사 가운 대신 단단한 가죽 잠바와 경찰견 훈련 때 쓰는 장갑을, 청진기 대신 삼단봉을 든 채였다.
“읍, 읍!”
그런 둘을 보지도 못하면서, 군인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재갈을 빼면 무슨 말을 하려나.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얼굴과 단단한 군복이 밧줄에 쓸려 갈려 나갈 정도로 격렬하게 몸부림치는 것만 봐도 별로 좋은 소리가 아닐 것임은 알 수 있었으니.
“관찰 3일째.”
유현은 그런 군인을 보며 말했다.
녹음기에 대고서였다.
“이순규와 비교했을 때, 남아 있는 이성의 정도가 훨씬 낮음. 재원아, 혈액 검사 결과는?”
“아……. 네. 어제 나간 거……. 아드레날린 측정 불가로 나옵니다.”
“오케이. 순규는?”
“이순규 선생님은 이제 다 정상이에요.”
“그래, 그렇더라.”
비교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이순규는 이제 호르몬이 죄다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어서 그랬다.
그런다고 거대화되었던 체격 자체가 쪼그라들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먹는 양도 줄어서 그런가, 근육의 양은 줄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성격도 안정화되고 있었다.
혹 억제대를 풀어도 되지 않나? 싶을 지경이었다.
“일단 재우자.”
“네.”
말이 재운다는 거지, 실신시킨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숨 안 막히려나…….’
재원은 재갈 때문에 질식이 염려되었으나,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적어도 감염자의 이는 흉기였으니까.
아무리 보호의를 착용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사람의 치악력이라는 게 강해서 그랬다.
게다가 지금 이 사람이라면.
푹유현은 할돌을 푹 찔러 주입했다.
그냥 배에 꽂았다.
그래도 자니까.
“위는 내가 들게. 넌 아래로 가.”
“네? 아, 네.”
재원이 불만을 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늘 위험 부담을 유현이 지기 때문일 터였다.
단 한 번도 환자의 머리, 그러니까 입이 있는 쪽으로 재원을 보낸 적이 없었다.
하여간 둘은 장정 하나를 들고서 책상에 올려 둔 체중계에 놓았다.
이렇게 하면 최대한 바닥에 닿는 면이 없어서, 실제 무게를 잴 수 있겠단 계산하에 만든 세팅이었다.
허리가 좀 꺾일 수 있다는 단점은 있었으나 둘 다 그 점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체중이 늘었어……. 변은 본 거 없나?”
“소변 조금 말고는……. 대변은 아예 없습니다.”
“그 말은…….”
유현은 군인에게 달아 둔 영양제, 즉 정맥 주사용 식사 대용제를 바라보았다.
딱 최소 기초 대사만 지킬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근데 체중이 늘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 갔다.
‘뭐지?’
물론 이 ARS-24의 변종은 존재 자체가 이해가 안 가는 놈이긴 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상식을 위반할 수 있는 건가?
‘원상아……. 대체 뭘 만든 거야. 아니, 이걸 네가 만든 거긴 하냐?’
호르몬으로 뭔가 변화가 있는 걸까.
아쉽게도 연구소에 가는 길이 막힌 지금으로선 제대로 검사하는 게 불가했다.
옆에 있는 병원에서는 아주 기본적인 검사만 가능했으니까.
그나마 아드레날린 수치라도 볼 수 있는 게 다행일 지경이었다.
“효율이 너무 좋아요, 교수님. 하긴 그러니까…….”
재원은 창밖을 돌아보았다.
마침 거대화된 감염자 하나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렇게까지…….”
“그래도, 이 사람 체중은 거의 늘지 못하고 있어.”
유현도 같은 감염자를 바라보았다.
차이가 있다면 나름 희망을 찾고 있다는 점이었다.
‘모든 감염자가 다 저리될 수는 없다는 뜻이야.’
생각해 보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저런 개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야 정상이었다.
만약 시간이 간다고 해서 다 저렇게 된다면, 그래야 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여전히 저렇게까지 거대화된 개체는 소수였다.
답은 간단했다.
“먹어야 커질 수 있어. 그리고 식량은 제한되어 있지. 다 저렇게 될 수는 없어. 그럼 총만 있으면……. 어떻게든 몰아낼 수 있다는 건데.”
“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그럼 어떡할 건데. 제압할 수 있을 거 같냐?”
“아뇨, 그건 아니에요. 교수님 말씀이 맞아요.”
“하여간 이 사람은 우리끼리 보는 걸로 해. 괜히 마음 약해지는 사람 나오면 큰일이야.”
“네.”
유현의 말에 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좀비 영화를 떠올리면서였다.
꼭 소수의 트롤이 집단 전체를 위험으로 몰고 가지 않던가?
그따위 일이 현실에서도 벌어져서는 안 될 터였다.
‘안 그럴 거 같기는 해.’
다행히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경찰 출신인 둘도 마찬가지였다.
죽을 뻔했으니까.
특히 이진호는 진짜 죽음을 목전에 두었었다고 들었다.
부우웅
둘은 군인을 다시 책상에 묶었다.
어차피 손발, 다리 몸통 다 묶여 있어서 이대로 바닥에 놔둬도 될 것 같기는 했지만.
혹시 모를 일을 방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랬다.
그렇게 다 묶고 나오려는데, 어디선가 엔진 우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죽으려고 환장했나……?”
감염자들은 점점 더 소리에 예민해져만 가고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유현은 아마 배가 고파서일 거라 여기고 있었다.
실제로 감염자들의 행태는 사람을 감염시키는 데서 먹어 치우는 쪽으로 변하고 있지 않나.
저 앞이 유독 지저분해진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선배.”
강의실에서 빠져나오자, 우식이 서 있었다.
의학 지식과 더불어 행정 지식도 겸비한 녀석이다 보니 살림 전반을 책임지고 있었다.
“왜?”
“밖에 군용 트럭이…….”
“어? 아, 다행이네! 드디어!”
총을 들고 왔구나.
그래, 그래야지.
하고 있는데, 우식의 얼굴이 애매했다.
“뭐야, 아냐?”
“딱 한 대예요.”
“한 대? 어디 봐 봐.”
우식의 말에 유현과 재원은 반대편 창가로 달려갔다.
정말로 차 한 대가 달리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려는 것 같았는데,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감염자들이 더 늘었으니.
“어…….”
아는 얼굴이 보였다.
그때 봤던 소위.
“저 병신이 둘이 와서 뭐 어쩌겠다는 거지?”
아니, 그보다.
본대는 어찌 됐길래 둘이 온 거지?
‘설마.’
덜컥 마음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