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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00화 (100/323)

100화 탈출 (2)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을 막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하진 않았다.

애초에 유현이 그런 성품이었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겠나.

그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나서야 건너는.

‘일단 게시판 글을 이렇게 분류해 봐야겠군…….’

우선 글 내용을 토대로 작성자의 위치를 파악했다.

도시 아니면 시골.

둘 중 선호되는 지역은 이제 시골이었다.

도시는…….

‘이 근방은 이미 거의 끝났어.’

군부대가 진입하기에도 시가지는 별로지 않던가.

그러나 시골은 탁 트인 시야부터가 총기류를 지닌 군인들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환경이었다.

그 일례로 총기를 가지고 진입했던, 그러니까 바로 얼마 전의 작전 끝에 구출 받았다는 글들이 몇몇 올라오고 있었다.

이전 글을 보면 대개 시골로 짐작되는 곳에 있었던 이들이었다.

‘내 판단이 하나 엇나갔어…….’

사실 유현이 도시를 고집했던 건 각종 물자 수급에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적어도 도시는, 유현의 삶에 있어 풍족함의 상징이었다.

물론 서울처럼 이미 감염자가 창궐할 것이 예상되는 곳은 풍족하고 나발이고 뒤질 위험이 더 클 테니 아예 배제했지만.

이곳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감염자는…… 좀비가 아냐.’

감염자는 좀비가 아니다.

이 명제를 제일 먼저 말했던 건 아마 유현일 터였다.

그는 감염내과 교수고, 가장 친한 친구 이순규를 옆에서 관찰해 온 바 있었으니.

비록 죽었다 살아나는 과정이 관찰되긴 했으나,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단지 꺼졌다 켜지는 과정이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지금은 생략된 듯하고.

‘이걸……. 알고 있었으면서…….’

그러나 그런 유현조차 한 가지 간과했던 사실이 있었다.

영화 속, 또 드라마 속 좀비는 죽어 있는 존재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무언가를 먹어 치우지를 않았다.

사람을 먹어 치우는 놈들은 있을 수 있으나, 식료품점을 뒤지는 놈들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유현의 눈앞에 비치는 것들은 어떤가.

‘이런 망할…….’

텅 빈 듯 보이는 거리엔 감염자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놈들은 끊임없이 식량을 소모하고 있었다.

사태가 터지고, 제일 먼저 편의점이나 마트를 습격한 건 놀랍게도 일반인이 아니라, 놈들이었다.

“사, 살려 주세요!”

그리고 이젠 사람을 사냥하고 있었다.

지금도 보라.

비쩍 마른 사람 하나가 놈들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지 않나.

딱 봐도 어떤 상황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백 프로……. 굶주림에 지쳐 나온 거야.’

어디서 나왔을까?

아마 이 근처 어딘가일 터였다.

상가 주택만 있는 게 아니라, 다세대 주택 또한 꽤 있는 블록이니까.

그 또한 창문을 통해 바깥 상황을 살폈을 테니, 이쪽 블록은 다 털렸다는 건 잘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에 비해 저쪽 상가 지역은 그나마 나을 거라 믿지 않았을까?

사실은 저기야말로 지옥인데.

“사, 살……. 어, 어어어어어!”

사람을 끌고 가던 감염자를 다른 감염자가 공격했다.

목표는 살아 있는 비감염자였다.

빼앗아 먹기 위함이었다.

처음엔 별 소용 없었다.

이미 처음 비감염자를 질질 끌고 가던 감염자부터가 다른 감염자들을 제치고 사냥에 성공했으리만큼 커다란 개체였으니.

“크아악!”

배고픔에 지친 감염자 따위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수가 늘어남에 따라, 거대한 개체 또한 슬슬 힘에 부치는 모양이었다.

딱히 전술적인 움직임은 없어 보였다.

아니, 집단을 이루지도 않았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지들끼리 싸우기까지 했다.

‘다행이지.’

저것들이 만약 동족 의식을 넘어 진정한 집단행동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나.

끝장이었다.

말 그대로 끝장.

“어…….”

창밖의 소란은 비단 유현의 주의만 끌어낸 것이 아니었다.

안에 있던 이들 모두가, 우식의 아이를 제외한 모두가 창에 붙어 있었다.

그나마 아이가 어려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부모의 만류 따위는 소용없었을 터였다.

“저거…….”

오예리 형사가 손가락 끝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아수라장이 벌어진 거리가 아니라, 그 근처였다.

그제야 유현도 그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가.

학원이 있던 층이었다.

와장창

창이 깨지고, 커튼을 묶어 만든 줄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꽤나 큰 소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염자들은 그쪽을 감히 쳐다볼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굶주린 감염자들 사이의 먹이 쟁탈전으로 시작되었던 싸움은 어느새 전면전이 되어 가고 있었다.

“크아아악!”

사냥에 성공했던 놈이 너무 거대한 개체였기에 그랬다.

이미 녀석의 손에 잡혀 있던 비감염자는 팔만 남아 있었다.

나머지 부위는 다른 놈들이 찢어 갔는데, 그것마저 지키기가 쉽지 않았다.

폭주하는 호르몬으로 인한 배고픔과 그로 인해 배가 된 공격성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툭그사이 커튼이 땅에 닿았다.

중간중간 매듭이 묶인 커튼은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붙잡고 내려올 수 있을 것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내려오지는 못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걸리면.

걸리면 끝장이니까.

“크아아아아!”

“으, 으아아아!”

기회라고 여겨졌을 내분은, 너무도 끔찍했다.

군인들을 습격했던 광경도.

때때로 사냥에 성공해 오던 광경도 이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군인들 때문에 이놈들이 아주 굶주렸던 시기가 없어서일까?

유현도, 이 자리에 있던 누구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감염자들과 비감염자들 간의 싸움도 무서웠으나 저들끼리의 싸움엔 인계를 초월한 부분이 분명 있었다.

팔, 다리, 손에 쥘 수 있는 모든 것 그리고 물어뜯을 입까지 모조리 동원한 싸움.

“이거……. 어쩌면 우리한테도 기횐데.”

길거리의 작은 소요로 시작된 싸움은, 어째 끝 모를 정도로 격화되고 있었다.

“그래, 저것들. 지금 아마 주변이 보이지 않을 거야.”

유현의 말에 이순규가 끼어들었다.

어쩐지 좀 흥분한 기운이 있다 싶어서 돌아보니, 과연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왜……?”

“나도 흥분이 돼. 싸우고 싶어져.”

“호르몬……?”

“그래. 검사 결과 봤지? 내 테스토스테론을 비롯한 다른 호르몬들이 너네 두 배야. 그리고 저놈들은 내 몇 배나 되지. 나조차도 이렇게 흥분이 되는데……. 저놈들은 어떻겠어?”

“뭐가……. 저렇게 흥분하게 만드는 거지? 동족 의식까지 잃게 만들 정도로?”

“피…… 아닐까?”

피.

붉은 피.

일반인들조차 피를 보면 흥분이 되지 않나.

본능의 영역이라고 보면 되었다.

오랜 세월, 생존을 위해 각인된 본능.

그 본능은 바이러스도 어찌할 수 없을 터였다.

아니, 오히려 그놈 때문에 더 통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숫자를…… 줄여 볼까.”

이 은신처는 영원할 수 없는 곳이었다.

애초에 뭘 심어 기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아주 넓은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물탱크의 물이 다 사라지면, 확보할 수 있는 수원도 없었다.

비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할 텐데,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어찌 될까.

‘옮기려면…… 이 사람들을 다 옮기려면…….’

그래, 쥐.

호르몬을 지닌 쥐에 의지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완벽한 대응이 될까?

게다가 옮길 곳이 마땅치 않다면?

그때는 이 근처를 계속 돌아다니면서 남아 있을 무언가를 찾아야만 할 터였다.

‘뭐가 되었건 숫자를 줄일 수 있을 때 줄이면 좋은데.’

유현은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닥에 드리워진 커튼은 여전히 홀로 애처로이 방치되고 있었다.

그 주변은 아비규환이었다.

죽어 나가는 감염자들의 수가 늘어 가고 있었다.

“지들끼리 찢어 죽이고 있어요.”

“이제……. 시신은 관심도 없어 보이는데요?”

“좋아. 좋아…….”

유현은 먼저 밖을 살폈다.

아무리 기회가 온 것 같단 생각이 들어도, 여기서 총을?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저놈들, 기억하니까.

이쪽으로 몰려와 대기를 타게 된다면 언제든 위험해질 수 있지 않겠나.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어.’

지금까지는 어그로를 저쪽, 지금 커튼을 드리운 그룹이 다 끌어 주고 있었지만.

만약 오늘 탈출에 성공하거나, 또는 실패해서 다 죽는다면 다음은 주변으로 시선이 분산되지 않겠나.

“오 형사님. 김현철 소위님. 그리고…….”

“제가 갈게요.”

“너?”

“네. 제가 갈게요.”

“얘기는…….”

“됐어요. 쟤도 사명감 있는 애예요. 명색이 나도 4급 공무원인데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잖아.”

“그래, 그럼…….”

총은 총 네 정.

그렇다면 지원에 나선 사람도 유현, 우식, 오예리 그리고 김현철까지 넷이어야 할 텐데, 유현을 한 명 더 낑겨 넣었다.

“순규야. 네가 앞장서 줘. 옆옆 블록에서 저격해 보자.”

“여기서 나가자고? 저길……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드냐? 아마 나도…… 안전하지 않을걸?”

아까까지 흥분을 느끼고 있던 이순규는 이제 공포에 젖어 있었다.

저놈들 사이에 가면, 과연 저들이 가만히 둘까?

그럴 리가 없었다.

알량한 동족 의식보다는 본능에 충실할 테니.

오히려 그 때문에 이순규는 먹잇감이 될 터였다.

그의 냄새는 옅고, 그 말은 곧 약하단 증거로 보일 것이 분명했다.

“위험하다 싶으면 돌아올 거야. 하지만 여기를 노출시킬 수는 없고, 지금이 기회기는 해.”

“기회라…….”

“지들끼리 싸우고 있잖아. 지금 저 커튼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어. 게다가…….”

“게다가?”

“저기로 사람들이 내려올 수도 있잖아? 수가 줄면 그들도 살 수 있어.”

살 수 있어?

유현은 추호도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지금이야 싸움이 한창이지만, 저 안에 일반인이 하나라도 낑겨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부족한 식량으로 인해 벌어진 싸움이니만큼, 그 일반인은 호랑이 사이에 낀 노루처럼 찢겨 죽을 터였다.

“음.”

그러나 이순규는 유현과는 사고 구조가 다른 사람이었다.

합리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었다.

이타적인 사람이었고.

“그래, 그럼……. 내가 먼저 가 볼게.”

“그래도 조심해. 이거라도 들어.”

“알았어.”

해서 유현이 건네준 쇠파이프 하나를 덜렁 들고는 밖으로 향했다.

끼이익

소리가 나지 않게 주의했다.

결론적으로만 보면 그럴 필요는 없었다.

길거리의 전투는 점점 더 치열해져만 가고 있었다.

다들 어디 숨어 있었던 건지, 거대한 개체만 셋 아니, 넷이나 있었다.

놈들은 다른 놈들과는 아예 움직임의 위력이나 정도가 달라서 주변에 있던 놈들이 싹 녹아내리는 수준이었다.

“돌아……가지 않을래?”

이순규는 그 모습을 보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물론 유현도 겁은 났다.

‘시벌.’

해서 계획을 바꿨다.

“요 앞 건물. 거기서 쏘자. 혹시 모르니까……. 제일 잘 쏘는 사람만. 나머지는 접근해 오는 놈들 제압하면서 튈 수 있도록 하자고.”

“그래, 그게 좋겠다.”

만장일치였다.

창문 너머로 보던 것과 실제 눈으로 보는 현장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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