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탈출 (3)
유현은 이순규를 앞세워 건너편 건물로 진입했다.
말이 건물이지, 이 건물은 1층이 통창으로 뚫려 있던 곳이었기에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곳이었다.
이렇게 1층이 뚫린 건물이 대개 그러하듯, 사방에 피 묻은 옷가지와 이런저런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웁.”
동시에 썩은 내가 훅 하고 끼쳐 왔다.
유현이 그 때문에 코를 막고 있는 사이, 오예리 형사는 찬찬히 현장을 살폈다.
“괜찮아요?”
“네? 아, 네. 뭐……. 이것보다 더한 곳도 많이 가긴 하니까요. 그보다…….”
유현도 그렇지만 오예리 형사 또한 밖에 나오지 못한 지 오래되지 않았나.
이순규를 제외하면 모두 안에 갇혀 있지 않았나.
때문에 오예리 형사는 생경하다는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보다요?”
그에 반해 유현은 그럴 만한 여유가 아직 없었다.
사방에서 감염자들이 싸우고 있고, 또 냄새도 워낙에 지독해서 그랬다.
해서 코를 쥐어 싸맨 채 물었다.
오예리는 여전히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이 사태가 벌어진 지 이제 고작해야 한 달 남짓이지만 그사이 관리가 아예 안 된 데다가 무차별적인 파괴가 이루어져서 그런가. 건물 자체도 엉망이었다.
“원래 이렇게 조각이 있거나 하면 쥐가 있어요.”
“아……. 쥐.”
그 말은 쥐가 사람을 먹는다, 이 말인가?
유현은 간신히 내색하지 않았지만 뒤따르던 최우식과 김현철 소위는 구역질을 해 댔다.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다행히 거리에 있던 감염자들이 이쪽을 돌아보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싸움은 점점 더 격렬해져만 가고 있었다.
“근데 쥐가 하나도 없어요. 똥도 없고. 제가 이래 봬도 이런 현장 많이 와 봤는데 이런 건 처음 봐요.”
“쥐가 없다라…….”
유현은 속으로 두 가지 가설을 세웠다.
하나는 식량이었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이들에게 아니, 바이러스에게 사람은 감염을 퍼뜨려야 하는 대상이지 식량은 아니지 않겠나.
그러니 쥐나 들개 등을 먼저 노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 바이러스 때문일 수도 있지.’
사람인 자신은 아무리 코를 벌름거려도, 악취 외에 다른 건 전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순규는 다를 수도 있었다.
쥐들 또한 다를 수도 있고.
‘뭐가 되었건……. 다행이지.’
쥐.
고대로부터 쥐는 전염병의 온상이었다.
그게 현대라고 해서 다르겠나.
‘그게 꼬이지 않는 것만으로 뭐…….’
유현은 이제 냄새도 좀 정리됐겠다, 얘기도 들었겠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순규만이 그들이 들어온 문가 곁에 선 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혹 다른 곳에서 감염자가 오면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최우선 순위는 저놈들이에요.”
길거리에 나와 있는 감염자들은 물경 백을 헤아렸다.
이미 쓰러져 버린 놈들도 적지 않았으니,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기는 할 터였다.
그러자 그중에서 눈에 띄는 건 단연코 셋이었다.
맨 처음부터 싸움에 나섰던, 사냥에 성공했던 개체와 더불어 그보다 결코 작지 않은 개체 둘까지.
“거의 3미터는 되겠는데요?”
“정확한 크기는 재 봐야겠지만……. 대강 눈으로 볼 때는 그렇게 보여요.”
아직 뭐라 불러야 할지 정의는 내리지 않았지만.
유현은 나름대로 저것들을 초거대 개체라 부르기로 했다.
아마 인간의 골격상 더 자라지는 못할 터였다.
다시 말하면 저것이 감염자들의 최대치란 얘기였다.
“저것들은……. 근거리에서 우리들만으로는 절대 상대할 수 없어요.”
원래 절대라는 말은 사회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하지 않게 되는 법이었다.
하지만 유현은 단언할 수 있었다.
사실 저것보다 작은 개체라 해도, 일단 거대화가 진행된 개체라면 근거리 상대는 어렵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단순히 덩치와 근력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순발력까지 올라가니.
심지어 죽었다 살았던 이순규와 같은 초기 개체와는 달리, 오히려 천천히 전두엽이 꺼져 가면서 억제력이 더 사라져 버린 놈들이었다.
망설임 없이 공격을 해 오는 거대한 개체.
“네……. 어우. 저건…….”
그 위력을 해당 개체들은 지금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주변에 박살 난 채 날아가는 감염자들 또한 적어도 180cm에서 2m는 되는 놈들일 텐데, 그야말로 한주먹거리도 못 되지 않나.
누군가를 감염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파괴하기 위해 움직이는 놈들은 그저 공포 그 자체였다.
“순규야, 너도 안 되겠지?”
“나? 내가 되겠냐…….”
“그래. 저놈들을 어찌하긴 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우리……. 이 거리를 빠져나갈 수가 없어.”
“으음.”
거리를 빠져나간다.
오예리 형사야 유현과 대부분을 공유하고 있고, 우식 또한 신중한 사람이라 그 생각을 늘 하고 있었지만.
김현철만큼은 생각지 못했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애초에 군부대가 여길 진입하려고 했던 이유를 떠올렸다.
다름 아닌 식량 및 다른 물자 부족을 염려한 탓이지 않나.
“김현철 소위님. 총 잘 쏘신다고 했죠?”
“아, 네. 제가 사격은 잘합니다. 소위 짬찌라 소총 사격도 계속하니까요.”
그런 생각조차 더 이어 나가기 어려웠다.
유현이 말을 걸어왔기에 그랬다.
“병사는 어때요?”
“그 친구보다는 제가 나을 겁니다. 아시잖아요. 멘탈이…….”
“하긴. 알겠습니다. 그럼……. 저놈들을 쏴야 해요. 다른 개체는 사실 어떻게든 상대는 가능하니까요.”
상대가 가능할까.
말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초거대 개체에 비하면야 아무것도 아닌 놈들이긴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강함은 상대적인 것 아닌가.
저놈들도 총 없이 마주하면 맹수 그 자체일 터였다.
상상은 필요 없었다.
군부대가 어찌 당했는지 회상만 해도 충분할 일이었다.
“후우.”
하여간, 김현철은 총을 들고 길거리의 적을 겨누었다.
가만히 있는 놈은 단 하나도 없었다.
격렬한 싸움이 한창이지 않나.
초거대 개체들은 그 큰 몸을 이끌고도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만히 있기를 기다리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싸움 끝나면 튀어야지.’
이 생각은 비단 총을 겨누고 있는 김현철만의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저 싸움이 여기로 번지거나 저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게 되면?
그건……. 그건 끝장이라고 봐야 했다.
“어. 소위님.”
김현철은 그런 생각과 함께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때 유현이 툭 쳤다.
깜짝 놀랐다.
“네?”
“저기.”
다행한 것은 방아쇠를 당기진 않았단 점이었다.
애초에 당길 생각도 못 하고 있었기에 그랬다.
총 쏘는 데 자신이 있다고 했지만 막상 쏘려고 하고 보니 움직이는 건 쏴 본 적이 없지 않나.
하여간 김현철은 유현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다.
그 끝엔 커튼이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가만히 있던 커튼이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내려오고 있어서 그랬다.
“어…….”
그야말로 뼈만 남은 사람이 커튼에 매달려 있었다.
팔이 저래서 버틸 수 있나 싶은데, 버티고 있었다.
“크르르르.”
“으?”
그리고 그 순간.
주변에 있던 감염자들이 커튼 위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왜……. 왜 갑자기 나온 거죠?”
“아마 영양 결핍 때문일 겁니다.”
“배고파서 저런다고요?”
“그보다는…….”
우리 몸에서 영양분을, 그러니까 에너지를 제일 많이 소모하는 부위가 어디인가.
여러 곳이 떠오르겠지만 머리가, 뇌가 그중 한 부위라는 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먹는 게 없어지면 사리 분별이 어려워져요. 뇌가 일을 못 하니.”
“아…….”
“그게 아니면…….”
“아니면요?”
“아닙니다.”
유현은 저 창 안에서 벌어졌을 일에 대해 생각했다.
하필 커튼에 매달린 이가 너무 마른 몸을 하고 있다는 것, 그게 좀 걸렸다.
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럴까?
‘강압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
생존이 어려워질 경우,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
그건 이미 역사에 의해, 그것도 여러 차례 증명되었지 않나.
하지만 유현은 그 말은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저 커튼에 매달린 사람 때문에 감염자들의 시선이 일부라도 쏠렸다는 것, 그중에 초거대 개체도 끼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뭐가 되었건…….”
유현은 잘됐죠? 라는 말을 애써 삼켰다.
그러나 어떤 말이 끊어졌는지, 적어도 이 자리에 있던 이들은 다 알았다.
당연하게도 비난하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어쩔 수 없다라는 말.
살아오면서 몇 번은 썼던 그 말이 지금처럼 어울리는 때는 없었으니.
“후우…….”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누군가가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생명을 던지면서 만든.
탕천을 둘둘 감아 소리를 죽인다고 죽였지만, 적어도 옆에 있던 이들에게는 굉음이라 해도 좋을 만한 소음이 울렸다.
그러나 감염자들은 살짝 두리번거리기만 했을 뿐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놈들이 주시한 곳은 따로 있었다.
쿵초거대 개체가 무릎을 꿇었다.
“더 쏴야겠죠?”
“아니, 잠시만요. 맞은 곳이.”
여기서 거리까지의 거리는 고작해야 6,700미터가 될까 말까 할 터였다.
k2 소총이라면 당연하게도 살상이 가능해야 했다.
쿠웅
곧이어 초거대 개체가 뒤로 넘어갔다.
“어디……. 어디 쏜 거예요?”
유현의 판단으로는 저만한 개체라면 여러 방을 맞혀야 할 것 같았다.
과연 한 방에 저만한 몸통이 뚫리겠나?
안 그럴 것 같았다.
“원래는……. 원래는 몸이었는데.”
“몸이었는데?”
“머리에 맞은 거 같아요.”
“아. 머리. 머리는 한 방이구나. 하긴. 하긴, 그건 그렇겠네요.”
유현은 이순규의 머리를 떠올렸다.
머리뼈는 더 두꺼워지지 않지 않았나.
턱뼈가 길어지면서 머리가 커진 느낌이야 들었지만.
그건 느낌일 뿐, 두개골 자체는 그냥 그랬다.
“다음도 가능하겠어요?”
“아뇨. 안 될 거 같은데…….”
“하긴. 그건 그렇죠. 하여간……. 본의 아니게……. 저 사람도 살 수도 있겠는데요?”
유현의 말에 김현철을 비롯한 나머지 또한 커튼에 매달린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내내 매달려 있기만 하다가 이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감염자들이 모조리 쓰러진 초거대 개체에 달려들고 있어서 그랬다.
먹을 것이 부족해진 와중에도 이것저것 잘 주워 먹고 다녔는지, 살에 근육이 살벌하게 붙어 있지 않았나.
살아 있을 때야 사냥 대상이 될 수 없었겠지만, 이제는 저것보다 나은 사냥감도 없을 터였다.
‘역시……. 자의로 내려온 건 아니었네.’
아직 깡마른 사내, 아니, 학생으로 보이는 애가 다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커튼에 달려든 이가 보였다.
그의 몰골은 맨 처음 나선 사람과는 정반대였다.
통통하다고는 못해도, 적어도 말라 보이진 않았다.
‘하여간……. 신경 꺼야 해.’
유현은 여전히 한눈 팔려 있는 김현철의 어깨를 두드려 다른 놈을 가리켰다.
“하나. 하나만 더 처리하고 뜹시다. 할 수 있겠어요?”
“해 볼게요.”
“괜히 머리 맞혔다고 또 머리 노리지 말고요. 그냥 몸통만 맞혀도……. 이 분위기면 알아서 죽여 줄 거예요.”
“아, 아……. 그렇네요. 알겠습니다.”
“자, 나머지는 혹시 어그로 끌리면 대응 사격하면서 튈 준비 하시고. 특히 순규야. 네가 잘 봐. 네가 제일 예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