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만약 그렇다면 (2)
유현은 급히 게시판을 눌러 들어갔다.
옆에는 오예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음악을 틀어 놓고서였다.
작게.
“또 이거 들어요?”
“네. 힘들 때 이거 들으면 좀 나아요.”
일레인이란 이름의 가수의 몽환적인 목소리가 거실을 천천히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어찌나 이 음악을 들었는지 요새는 유현도 혼자 있을 때 간혹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 지경이었다.
-이거 X 된 거 맞지?
대화를 나누며 게시글을 눌러 보니 사진 하나가 떴다.
주변은 역시나 논 아니면 밭이었다.
지금까지 늘 이 사진들만 올리고 있었으니, 배경이 같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도 가꾸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어찌 되었건 올겨울 버틸 정도의 수확은 가능할 듯해 보였다.
그래서 유현이 후보지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고.
“아……. 이거.”
“미쳤네…….”
그런데 그 논밭이 파괴되어 가고 있었다.
감염자들에 의해.
어디서 유입된 것인지 모르겠는데, 수가 꽤 많았다.
그리고 컸다.
아니, 거대했다.
“여기는 못 갈 거 같은데…….”
“네, 어려울 거 같네요. 이거…….”
“이놈들이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지…….”
유현은 옆에 오예리 형사가 있다는 것을 잠시 잊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사진 하나 딸랑 올라와 있긴 하지만.
그냥 하나라고 하기엔 이 사진에서 알 수 있는 정보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 정보가 대부분 절망적이었다.
‘이 풍족한 식량을 이 새끼들이 다 먹게 되면 얼마나……. 커지게 될까. 또 저기 있는 사람들…….’
이 근처 거리에서의 감염자들의 행태는 이미 좀 변한 지 오래였다.
사람을 더 이상 감염 대상으로 보지 못하고 사냥의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나.
하지만 식량이 충분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감염을 시키기 위해 돌아다닐 터였다.
전보다 더 커진 몸과 왕성해진 행동력으로.
그 말은 곧 저 근처에 있는 이들이 죄 위험해질 거란 얘기도 되었다.
‘아무래도 고층 건물이 별로 없다 보니…….’
초거대 개체들은 2층 정도는 그냥 뛰어서 올라갈 수 있지 않던가.
단지 몸집을 보고 상상한 게 아니라, 두 눈으로 목도한 결과가 그랬다.
둔하게 거대해지는 게 아니라 압도적인 완력으로 인해 속도도 빠르지 않았나.
순발력에 왜 힘 력 자를 쓰는지 놈들을 보면서 알았다.
‘2층 건물은 방호력이 아예 없다고 봐야 해.’
창문 부수고 안으로 들어오면 그냥 끝장이지 않겠나.
여기라고 2층으로 돌입해 오는 게 불가하진 않겠지만.
나름의 대응이 되어 있기는 했다.
돌아가면서 망을 볼 수 있는 인력도 있고 또 CCTV도 있고.
무엇보다 총이 있었다.
“교수님.”
“응? 아, 네.”
“여기는 그럼 후보군에서 지워야겠죠?”
“아……. 네. 멀지 않아서 괜찮았는데. 이만한 무리가 어디서 나타난 건지…….”
사진 속에 보이는 것만 해도 열은 넘었다.
지금은 먹느라 정신없어 보이지만, 배를 채우고 나면 슬슬 다른 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할 터였다.
이 사람이 말하는 대로 X 된 것이 맞다는 얘기였다.
“조언해 주실 건가요?”
오예리의 말마따나 유현은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는 편이었다.
어차피 품이 드는 것도 아닌 데다가, 만약에 지역 이동을 하게 되면 도움을 받게 될 수도 있는 노릇이란 판단이 서서 그랬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는 어째야 한단 말인가.
도망밖에는 답이 없어 보였다.
문제는 대체 어디로?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유현이 운영하는 사이트는 생존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소통 창구가 된 지 오래였다.
‘이 사람하고 가장 가까운 데 있는 쉘터는……. 우리 은신처가 유일해.’
가깝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기준에 의함이었다.
절대적인 거리는 10킬로도 넘었다.
예전 같으면 금세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리겠으나.
이순규처럼 감염자가 아니고서는 너무 위험할 만한 거리였다.
아니, 어쩌면 이순규에게도 위험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때……. 사람들……. 다른 사람들한테 당했다고 했지.’
게시판에서 풍족함을 드러내던 그룹이 하나 있었다.
유현은 이런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입장이기도 한 데다가, 정유현이라는 이름을 정부가 싫어한다는 생각에 절대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았을 뿐이라 그런 그룹에 대해 딱히 별생각이 없었다.
문제는 그룹의 위치가 특정되고 나서 발생했다.
공격이 끊이질 않았고, 결국, 해당 그룹은 은신처를 버리겠다는 글을 올렸다.
그 아이디로 올라온 글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옮기고 나서는 눈팅만 하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유현은 어쩐지 다 죽었을 것 같단 생각을 놓을 수가 없었다.
부우웅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 올 만한 곳이 몇 군데 있기는 했다.
서울에 있는 김용일 형사라든지.
제주에 있는 감염내과 교수 친구라든지 하는.
‘음……. 거기 말고는 없나.’
원래는 다른 감염내과 교수들도 이따금 전화를 아니, 거의 매일 전화나 네톡을 나누고 있었으나.
이젠 상황이 여의치 않아진 모양이었다.
아니면 다 죽었거나.
후자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유현은 그들 중 하나이길 기대하며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김태평.’
전화를 건 이는 예상외의 인물이었다.
“네, 정유현입니다.”
-네, 교수님.
죽은 줄 알았더랬다.
편의 봐준 것이 들켜서.
위에서 해 온 일을 생각해 볼 때, 같은 편 하나 묻어 버리는 건 일도 아니지 않겠나.
그런데 이렇게 멀쩡히 살아서 전화를 걸어올 줄이야.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러나 겉으로는 평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저야, 뭐……. 시키는 일 하면서 살고 있죠. 사이트 살려 놓기도 하고요.
“아.”
그러나 말이 이어질수록 놀라지 않기는 좀 어려웠다.
확실히 이 사이트에 허용된 트래픽이 있을 터였고, 그 트래픽을 딱히 늘린 적도 없는데 다운 한번 안 되고 용케 잘 버티고 있다 싶었더랬다.
그러나 누가 도울 리도 없거니와 도울 수 있을 수도 없을 거라 여겼는데.
그 뒤에 김태평이 있었을 줄이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거래 조건이기도 했고. 지금은 위에서도 이 사이트의 존재가 시민들의 안전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물론 김태평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청와대의 묵인이 있었다.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랬다.
‘애초에……. 데이터베이스를 우리가 넘겨받았다는 건 모르겠지.’
김태평은 정유현을 정말이지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일반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의 생존 능력을 보이지 않았나.
게다가 이 사이트만 봐도 그랬다.
일개 의사가 운영한다고 보기엔 너무 잘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문가는 아니라, 중간에서 가로채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나도 살아야 돼서…… 말이지.’
유현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키를 청와대도 잡게 된 지 한참이었다.
물론 김태평이 그렇게만 둘 생각은 아니긴 했지만.
하여간 오늘은 이에 대해 얘기할 생각일랑 전혀 없었다.
그보다 중요하다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만만치 않게 중요하면서 정유현이 솔깃할 만한 얘기가 있었다.
-오늘 전화 드린 건……. 그 때문은 아니고요.
“아……. 네.”
유현도 단지 이거 때문에 전화한 건 아닐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김태평이 한가로운 사람도 아닐 텐데 괜히 전화할 일이 있겠나.
어찌 보면 지금이 생애에서 제일 바쁠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국가 위기 상태니까.
아니, 국가 단위가 아니라 전 세계적 단위의 위기.
-우선……. 본격적인 군사 작전이 시작될 거라는 걸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본격적……? 이미 총 들고 들어오지 않았나요?”
-네, 그리고 실패했죠.
유현은 김태평의 말에서 무언가 기시감을 느꼈다.
보통 사람이 실패를 논할 때는, 특히 그것이 자신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다면 민망해해야지 않나?
그러나 김태평은 그저 담담했다.
그럼에도 유현은 속단하는 대신 김태평의 본질에 대해 생각했다.
‘요원이라서 그런가?’
이 인간은 훈련받은 인간이니까 좀 다를 수도 있지 않나, 싶어서였다.
-의도했던 대로입니다.
하지만 상대는 전혀 예상외의 답을 해 왔다.
“네?”
-교수님. 교수님이 감염자라 부르는 것들……. 청와대에서는 좀비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해 과연 교수님보다 청와대에서 더 모르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아…….”
-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저것들을 제압하려면 얼마만큼의 화력이 필요한지 아주 정확하게요.
김태평의 목소리는 오히려 이쯤에서 격앙되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꽤 반감이 있긴 했던 모양이었다.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나라에 충성했던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했다.
유현도 저들이 의도적으로 나라를 망가뜨렸다는 건 알고 있었지 않나?
‘근데……. 군대까지 소모시켰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저 윗분들은 만고의 역적인 셈이었다.
-명분이 필요했던 겁니다. 지들이 이 일과 연관이 없다는 증거도 필요했을 것이고……. 그래서 천천히 희생시킨 겁니다.
“미친놈들이……. 지금 저놈들이 얼마나 많아졌는데! 그리고 커졌고요!”
유현으로서는 실로 드물게 흥분을 하고 말았다.
그 바람에 다른 사람들도 방에서 뛰쳐나왔다.
우식의 아이까지도.
그러나 유현은 그들에게 신경 쓰지 못했다.
“이 개새끼들이…….”
-대신이라고 하면 이상하지만…….
“이상하지! 너무나 이상하지!”
-주력 부대는 남아 있습니다. 기갑 전력은 대부분 유지 중이에요.
“하…….”
-그리고 공군 기지도 서울 공항, 오산 비행장, 군산 미군 기지 및 청주 비행장 그리고 사천 비행장은 완전하게 지켰다고 들었습니다. 이를 이용한 공습이 있을 겁니다.
“공습?”
계속 흥분하지는 못했다.
공습이라는 말에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공중에서 폭탄을 떨어뜨리겠다는 얘기였으니까.
만약 이 근처가 포함되어 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하지?
-저도 다 알지는 못합니다만……. 우선 강남대로, 테헤란로, 삼성동 인근이 강남에서는 폭격 대상입니다.
“이런 미친……. 거기…….”
-군부대의 피해가 궤멸적이었던 곳 그리고 위성 관찰에서 좀비 개체 수가 가장 많은 곳 위주로 선별이 되었습니다.
“사람도 많이 있다고, 거기! 내 거 사이트 보고 있다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특히 건물이 너무 높은 곳은 진입이 어렵습니다. 그보다……. 교수님 지금 세종에 있죠?
“그…….”
유현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어떻게 알았는지도 궁금했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여기도입니까?”
-네. 청사 근처는 모두 포함입니다.
“아…….”
일단은 다행이었다.
여긴 아니란 얘기였으니.
하지만 연구소는 어떻게 될까?
그 바로 옆이 청사 있는 곳인데.
“연, 연구소는요?”
-거기 연구소가 있어요?
“질병관리부 소속 연구소가 있어요.”
-거기서 뭔가 하고 있군요?
“네. 뭐라도 해야 하니까요.”
-말씀드리길 잘했네요. 제가 한번……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만……. 장담은 못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