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공황 (2)
유현의 은신처에서는 실로 드물게 누구도 잠들지 못하던 밤이 지나고, 이순규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이거 가져가. 그리고 이것도.”
“이건 뭐야?”
“무전기. 혹시 몰라서 사 둔 건데……. 아마 될 거야. 거기랑 여기랑 그렇게까지 멀진 않아서.”
“아……. 그래, 이거라도 있으면 훨씬 낫긴 하겠네.”
유현은 그런 이순규에게 총과 무전기를 건넸다.
무전기는 솔직히 혹시 몰라 구매만 해 둔 것인데, 진짜로 쓰이게 될 줄은 몰랐더랬다.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이순규를 보다가 오예리 형사를 돌아보았다.
“형사님이 사자고 한 거야. 의외로 꽤 쓰일 일이 있다고.”
“아, 정말 다행입니다. 거기……. 안 그래도 참……. 좀 그래요.”
“네, 제가 생각했던 목적이랑은 다르긴 한데……. 하여간 잘된 일 같습니다.”
이순규는 오예리에게 슬쩍 묵례를 한 후, 밖으로 빠져나왔다.
‘음.’
그러자 곧장 탄내가 코를 찌르고 들어왔다.
안에 있을 때도 사실 냄새가 심하게 나긴 했다.
애초에 더 예민하기도 한 데다가 폭탄이 지척에 떨어져 내린 상황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밖에서 나는 냄새랑은 비교할 게 아니었다.
‘살 탄내에……. 피 냄새까지…….’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도로는 어느새 한적했다.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피와 살점들만 아니었다면 평화롭단 생각마저 들었을 것 같았다.
아마 유현이나 다른 이들이 와서 봤다면 필경 그랬을 것 같았다.
‘수가 확실히 늘었어…….’
그러나 이순규는 알 수 있었다.
건물 안에 득실대고 있는 놈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물론 원래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곳이었다 보니, 절대적인 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유현 일행과 비교하자면 수십 배는 될 터였다.
싸우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총이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 무장한다고 해도 필패였다.
좀비처럼 생각 없이 두리번거리다가 죽어 나가 줄 것도 아니고, 숨어 있다가 달려들 테니 당연했다.
‘일단은 가자.’
이순규는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저놈들에게서 안전해지려면 쥐가 필요했다.
정확히 말하면 저 실험실에서 탄생한 쥐가.
그러자면 연구실에 사람이 있어야 했다.
저벅저벅
걸을수록, 그러니까 연구실 쪽이 가까워져 올수록 냄새는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아니, 냄새뿐 아니라 열기도 어마어마했다.
폭발에 의해 붙은 불길은 쉬이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도심 전체가 새카만 숯덩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리저리 새카맣게 탄 팔다리 등등이 놓여 있었다.
‘끔찍하구만…….’
끔찍하다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살아 움직일 때는 감염자였지만 죽고 나니 그저 사람으로만 보였다.
아니, 어쩌면 이들은 남아 있던 생존자였을 수도 있었다.
공습은, 폭격은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으니까.
‘연구소는……. 아이고…….’
그렇게 조심조심 잔해를 피하고, 또 불길을 피해 걷다 보니 연구소가 보였다.
그 앞을 가득 메우고 있던 차량과 사이사이 숨어 있던 감염자들은 불구덩이 속에서 재가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불은 연구소에도 침범해 있었다.
그나마 직접적인 폭격은 없었던 것 같았지만.
저래서야 밖과 다를 게 있나 싶을 지경이었다.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죄 깨져 있었다.
‘1, 2층만 그런 게 아니라……. 위가 다 깨졌네.’
아마 열 때문이었을 걸로 생각됐다.
화염 폭풍이 휘감아 올라갔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부터는 진짜 조심해야 해…….’
연구소가 건재하다는 건, 지능 있는 개체들 또한 건재하다는 뜻일 터였다.
다른 곳으로 피했을 가능성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럴 것 같진 않았다.
여긴 냉장고가 있으니까.
다시 말해 식량 창고가 있는 곳이지 않나.
유현 무리와는 달리 현지 조달이 가능한 놈들이니만큼 이런 곳을 버리고 갔을 것 같진 않았다.
자박
그렇게 주의하며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도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초거대 개체가 하나 서 있었다.
‘언제…….’
총을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뻥튀기된 자율 신경 톤 덕에 즉시 조준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눈을 마주하고 나니 도저히 방아쇠를 당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 이렇게 많아.’
폭격이 있던 곳인데.
뒤로 셋이나 더 있었다.
나머지는 초거대 개체는 아니었지만 작은 개체들도 아니었다.
달려들면 어떻게 될까.
하나? 둘?
그 정도는 죽이겠지만, 나머지는 자신이 없었다.
“음…….”
찰나의 순간 맨 앞에 있던 초거대 개체의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이순규를 보며 뭔가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으음…….”
코를 킁킁대더니 뒤로 돌아 사라졌다.
다른 놈들과 함께였다.
어떻게 봐도 지성 있는 개체가 보일 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뒤지는 줄 알았네.’
이순규는 식은땀을 닦아 낸 후, 안으로 향했다.
2층으로 그리고 복도를 따라 걸었다.
냉장고는 여전히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바닥을 살펴보니 무언가 질질 끌려간 자국이 잔뜩 나 있었다.
안에 들어가 보면 더 확실해지긴 할 텐데, 이번 폭격으로 발생한 감염자 시신이나 사람 시신들 중 일부를 노획한 모양이었다.
“음?”
이제 코너만 돌면 바로 냉장고고 그 너머에는 바로 연구실이 있는데.
냉장고 앞에 뭐가 있었다.
‘지키고 있어.’
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지키고 있을까?
‘폭격 때문에 이쪽으로 몰려든…… 놈들 때문인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누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놈이…….
‘작다.’
그리 크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시발, 어쩌지?’
제압하려면 제압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굳이 총을 쏘지 않더라도, 이건 쇳덩이니까.
한 대 치면 쓰러지지 않을까?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누군가 쓰러져 있다는 걸 들키고 나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서게 되지 않을까.
“으음?”
고민을 이어 나가려는데, 그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상대가 이미 일어나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어서 그랬다.
“너.”
그것도 모자라 딱 이순규를 가리킨 채 고개를 저었다.
“시발.”
뭔 뜻일까?
“아……. 또 쳤네.”
궁금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턱주가리를 사정없이 돌리고 난 다음이었다.
심지어 주먹도 아니고 개머리판으로.
그렇다 보니 기껏해야 일반인보다 조금 더 체격 좋은 편에 속했던 상대는 단 한 방에 눈을 까뒤집고 쓰러져 버렸다.
‘죽지는 않았는데…….’
숨을 살펴보니, 쉬고 있었다.
‘이걸 어쩐다…….’
교대 시간이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되는지 따위는 하나도 알지 못하지 않나.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놈도 그리 지성이 뛰어난 개체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근데도 식량 창고를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어쩌면……. 지성 있는 놈은 몇 안 될 수도 있어. 그럼…….’
이걸 숨기면 안 걸릴 수도 있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해서 냉장고 문을 열었고, 이순규는 간신히 토악질을 참았다.
“시발…….”
안에는 시신이 20구도 넘게 널려 있었다.
옷을 입은 것도 있고 벗고 있는 것도 있었다.
‘내가 살다 살다…….’
아마 의사가 아니었다면.
특히 해부학실 경험이 없었다면 덜덜 떨면서 그냥 도망이나 쳤을 터였다.
그러나 이순규는 멘탈을 부여잡고, 쓰러진 개체를 끌고서 냉장고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곤 개머리판으로 상대의 얼굴을 내리쳤다.
다른 시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겨다가 얼굴을 싸맨 후였다.
퍽퍽옷이 아니었다면 피가 이리저리 튀었을 터였다.
그럼 여기서 피가 난 것임을, 적어도 지성이 있는 개체라면 알아차릴 게 분명했다.
하여간 이순규는 마치 공부라도 하듯 성실한 태도로 상대의 얼굴을 부쉈다.
절대로 알아보지 못하게.
처음 몇 번인가 내리칠 때는 버둥거리더니 어느새 축 늘어져 있었다.
“후…….”
사람 살리려고 의사 된 건데.
누군가를 죽이게 될 줄이야.
이순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자신을 돌아보며,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망할.’
변하긴 변했구나 싶었다.
유현이라면 몰라도 자신만은 상황이 어떻게 되건 이렇게 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유현이는……. 오히려 아직 누굴 죽인 적이……. 없지 않나?’
변이된 병사.
잡아 둔 개체가 빠른 속도로 죽어 나가고 있긴 했다.
하지만 아직 살아 있었다.
그러니 유현보다도 자신이 먼저 살인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후우…….’
생각과는 달리 몸은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방금 죽인 감염자의 머리에서 피와 살점이 잔뜩 튄 옷을 벗겨 내고, 시신을 다른 시신 사이에 낑겨 넣었다.
사람 시신이라는 게 그렇게 가벼울 리가 없는데 힘들지는 않았다.
확실히 덩치가 커지면서 힘도 세진 모양이었다.
하긴 방금 하나 작살 내는 데도 좀 어이없다시피 수월하지 않았나.
자기도 이런데 초거대 개체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똑똑
이순규는 그렇게 뒷정리를 하고, 피에 젖은 셔츠를 잔뜩 구겨다가 손에 쥔 채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였다.
‘빨리, 빨리…….’
혹시나 자살이라도 했으면 어쩌나 싶었다.
그랬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어제는 정말이지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으니까.
게다가 연락도 안 되고.
망할.
“저 이순규입니다.”
급한 마음에 두드리면서 말도 했다.
그러자 안쪽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불과 며칠 사이에 반쪽이 된 주무관 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 살아 있으셨군요.”
둘도 이순규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게 어마어마한 일이어서 그랬다.
슬쩍 안을 살펴보니, 기다란 노끈이 보였다.
‘죽으려고 했구나.’
이순규의 눈길이 거기 닿자 주무관 중 하나가 슬쩍 그걸 숨겼다.
굳이 뭐냐고 캐묻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순규가 건재하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자살할 생각은 하지 않을 테니까.
물론 옆에 늘어난 시신을 보면 타살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얘기할 기회조차 없었다.
“연구는……. 어찌 되고 있나요?”
주무관은 이순규의 말에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한숨이었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연구요? 말도 마십쇼. 지금 하게 되면 아마 죄 폐사할 겁니다.”
“폐사요……?”
“소리요. 어제 그 폭격 소리 때문에 애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가지고……. 앉은 자리에서 똥 싸고 오줌 싸고…….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했다간 다 죽어요.”
“아……. 이런…….”
이순규는 주무관의 시선을 따라 연구실 한켠에 있는 사육장을 바라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전에는 그렇게 활발하게 움직이던 애들이 쥐 죽은 듯했다.
“얼마나……. 걸릴까요?”
“공습이 또 없다면……. 그나마 낫습니다. 한 이틀? 그 정도면 재개할 수 있을 거예요.”
“이틀……. 이틀이면……. 어, 잠시.”
“왜, 왜요?”
“조용. 지금 복도에 놈들 나타난 거 같습니다.”
이순규의 말에 주무관은 딸꾹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입을 쳐 막고서.
이순규는 그런 주무관을 두고 냉장고가 보이던 틈을 향해 걸었다.
이제 쥐가 아니라 이쪽이 쥐 죽은 듯 있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저쪽에서 이변을 알아차린다면, 정말이지 위험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