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갈등 (2)
“네?”
병사는 당황했다.
유현이 그에게 다가와 같이 나가자고 했기에 그랬다.
‘갑자기 뭐지? 왜……?’
멤버 중엔 이진호 형사도 끼어 있었다.
유현이 자기 사람으로 찍고 매일 같이 다니는 오예리 형사도 있었고.
“같이 나가자고요. 여기 들어와서 뭐 한 일이 없잖아요.”
유현은 두리번거리는 병사를 향해 말했다.
평소처럼 단호하면서도 망설임 없는 말투였다.
먹는 양을 줄였다고는 하지만, 그래서 몸이 더 탄탄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키도 훨씬 커서 병사는 위압감을 느꼈다.
아니, 그가 속으로 품고 있던 생각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뭔가 알았나?’
하지만 자기 속을 돌아보니 조금씩 떳떳해져 오기 시작했다.
‘뭘 알 거라고 생각하기엔……. 나 아무것도 안 했잖아?’
물론 저 김현철이 좀 불안하긴 했다.
전에 그의 앞에서는 한번 속내를 드러냈으니까.
씨알도 안 먹혔고, 심지어 김현철은 지금 명백히 유현 쪽에 붙은 상황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같이 살아남고 싶다면, 유현에게 붙어야 유리할 테니.
‘저 양반이 그래도……. 의리는 있는 사람이지.’
솔직히 사단 박살 나고 같이 도망 나오게 되기 전까지는 아예 모르던 사람이었다.
혼자 나오는 게 나았을 터였다.
운전도 김현철이 했고.
심지어 이 은신처도 김현철이 알아서 찾아오지 않았나.
그에 비해 병사는 그저 빌붙어 온 게 다였다.
그렇다면 아직 아무 말도 안 하지 않았을까?
희망 회로를 불태우고 있으려니 유현이 말을 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세요?”
말이야 존대지만, 사실상 강요였다.
유현에게는 그럴 만한 힘도 명분도 있었다.
“아, 가. 가야죠.”
해서 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죠. 순규야, 같이 가자. 쥐 잘 챙기고요. 이게 구명줄이야.”
“응.”
“네.”
“가시죠.”
유현은 그런 병사에게 케이지를 건네주었다.
실험실에서 들고 온 건 아무래도 좀 커서 여기서 따로 제작했다.
대충 만든 건 아니고, 제대로 만들었다.
철사를 꼬아 가지고 아주 작게.
어지간히 흔들려서는 열리지도 않았다.
애초에 뚜껑이 아니라 그냥 꼬아서 막아 둔 것이다 보니 억지로 열려고 해도 어려웠다.
쥐가 아무리 사납게 날뛰더라도, 여기서 탈출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그럼에도 김 주무관은 팀이 나가기 전에 아주 진중한 얼굴로 다가와 말했다.
“진짜 주의하셔야 합니다. 얘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되게 불안정한 상태예요.”
김 주무관의 말이 없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쥐들은 불안정해 보였다.
안 그래도 호르몬과 신경 전달 물질의 과다로 인해 난리가 난 상태 아니었던가.
아까 김 주무관이 큼지막한 장갑으로 애들을 통에 넣는데, 어찌나 지랄을 하던지.
아마 쥐가 아니라 고양이 정도 크기만 되었어도 오금이 저렸을 터였다.
“이 안에 갇힌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과다로 인해 죽거나 혼절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순규 교수님이 함께 가니까……. 실시간으로 대응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저랑 같이 왔던 이 주무관을 떠올리면 될 겁니다. 저것들이 둘러싸면 방법 없어요.”
“아.”
“실험 결과, 단순히 혼절하는 것만으로는 당장 냄새가 어떻게 바뀌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죽으면 그건 문제예요. 불과 몇 분 안에 냄새가 변합니다. 이건 제가 확인한 건 아니고…….”
김 주무관의 눈이 이순규를 향했다.
이순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변합니다. 길어야 10분? 그 안에 안전지대로 이동해야 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 밖에는 안전지대라고 할 만한 곳이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각별히 주의해야 해요. 그 전에 쥐 상태 잘 보시고. 너무 흔들지 말고요.”
“네.”
이순규의 경고를 끝으로, 일행은 건물 밖으로 향했다.
“우식아, 잘 보고 있어.”
“네, 형.”
유현은 우식에게 뒷일을 맡긴 후 거리에 나섰다.
쥐를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유현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오예리도 이진호도 심장이 아주 심하게 나대지는 않았다.
그러나 병사는 좀 달랐다.
“이름이 뭐죠?”
이순규는 걱정 어린 얼굴이었다.
‘이 사람이……. 안 좋은 생각을 품고 있는 건 맞아. 유현이가 여차하면 죽일 생각인 것도 알고…….’
직접 벽을 사이에 두고 이 병사가 했던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선은 도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냐. 세상이 망하기 전에도 그랬는데 지금은 더하지.
유현에게 이런 말을 들었음에도 그랬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란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과의 의사이기에 그랬다.
“아, 저는……. 김병규입니다.”
“네, 병규 씨. 지금 너무 긴장한 거 같아요. 심장이 너무 빨리 뜁니다.”
“아, 네. 저도 안 그래도…….”
병사는 나올 때만 해도 여차하면 도망가거나 슥삭 해 버릴 심산이었다.
솔직히 총 안 줄 줄 알았는데.
이순규를 제외한 넷 모두 총으로 무장시켜 준 덕이었다.
그러나 딱 거리에 나오자마자 이순규의 말대로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너무 긴장이 되어서 사방이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일단 이거 드시죠.”
이순규는 그런 병사를 향해 알약 하나를 건넸다.
“이건…….”
김병규가 덥석 집어 먹질 않자, 이순규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흉악한 몰골로 변한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느낌이 들었다.
진심이어서 그랬다.
김병규조차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인데놀이라는 약이에요. 강제로 심장 박동을 느리게 만드는데……. 마음이 몸 따라간다는 말 들어 본 적 있죠? 이것도 그래서 긴장을 좀 완화시켜 줘요.”
“아…….”
“드세요. 먹고 졸릴 수도 있는데, 그럼 말씀하시고. 저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순규는 순순히 약을 입에 넣는 김병규의 손을 꾹 잡아 주었다.
‘헛짓 아닌가, 저거.’
유현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지만, 우선은 지켜보고 있었다.
뭐 고쳐 쓸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니겠나.
젊은 남자를 지금 이 시점에 어디 가서 잡아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은신처라면 몰라도, 새롭게 얻는 곳에서는 사람이 얼마나 필요할지 좀체 알기 어려웠다.
“자, 가자.”
유현은 계산을 애써 멈추고 입을 열었다.
손에는 지도가 들려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통신이 훨씬 빨리 끊길 줄 알고 사 둔 건데, 이제야 쓰임새가 생긴 참이었다.
“아, 응.”
이순규는 약 먹은 병사를 두고 유현 옆에 바로 붙었다.
아무래도 감각이 더 예민한 만큼 앞장서는 것이 유리하기에 그랬다.
물론 무턱대고 걷기엔, 길을 몰라서 유현과 나란히 걸어야 했다.
그 뒤를 오예리, 병사 그리고 이진호 순으로 따랐다.
“사주 경계 철저히 하면서 걷되……. 어지간하면 총은 쏘지 마세요.”
유현은 마지막까지 당부의 말을 하면서 걸었다.
사방은 조용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그러나 유현을 비롯한 일행 모두는 알고 있었다.
저 건물 안쪽에 꽤 많은 수의 라드들이 있을 것이라는 걸.
저벅저벅
그저 햇빛을 피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 있거나, 쉬고 있을 뿐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바닥엔 얼마 전 벌어진 살육 때문에 이리저리 튄 피와 살점이 눌어붙어 있었다.
한때 사람이었을 것들이 파편이 되어 흩어져 있는 모습은 잠시 바라보는 것만으로 끔찍했다.
“으…….”
신음을 흘린 건 의외로 오예리였다.
한때 이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던 기억이 나서 그랬다.
그때 구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 사람들 구했으면 우리도 위험했을 겁니다. 군대가 오질 않잖아요.
물론 유현이 했던 말도 같이 스쳐 지나갔다.
언제나 사실에 기반한 말을 하는 사람이기에, 차갑게 느껴지는 동시에 위로도 되었다.
“음.”
그렇게 거리를 벗어난 일행은 유현의 안내를 따라 다리 근처에 다다랐다.
이 너머에는 세종시 정부 청사를 비롯해 아파트, 상가 건물들이 즐비했다.
아니, 즐비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이라고는 그저 폐허뿐이었다.
시커먼 연기가 여전히 솟구치는 지역도 있었다.
그러나 일행이 눈길을 두고 있는 곳은 다리 너머가 아니라, 다리 근처에 위치한 커다란 건물이었다.
“홈플러스……. 저기 남은 게 있을까요?”
“알 수 없지.”
이쪽 방향으로 오는 건 이순규도 처음이었다.
그가 주로 건너던 다리는 이것보다 더 남쪽에 있었으니.
은신처로 삼은 사람이 뜸한 상가 단지가 세종시에서도 구석에 위치한 까닭이었다.
은신처에 비하면 홈플러스는 거의 세종시 중앙에 있다고 해도 좋았다.
“일단 가 봐야 알겠지.”
유현은 주변에 위치한, 높다란 아파트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예 밖으로 나가는 것도 답이긴 해.’
은신처 주변에서는 이런 아파트 단지를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한 블록 정도만 더 가면, 바로 시골길 같은 곳이 나올 정도로 외진 곳이기에 그랬다.
그쪽으로 처음부터 가지 않은 것은, 우선 은신처에서 비빌 수 있으면 더 비벼 볼 생각이 있어서 그랬다.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일단 파밍부터 하자.’
해서 유현은 일단 홈플러스 쪽으로 향했다.
이쪽도 공습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기에, 이곳저곳에서 검은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애초에 아파트 단지도 불에 탄 동이 그렇지 않은 동보다 많아서, 마치 지옥에라도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주변에 뭐 있는 거 같아?”
“냄새가 뒤섞여서……. 그보다 이 건물 이거 괜찮을까?”
유현은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입구를 찾아내고는 순규에게 물었다.
순규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모르겠다는 뜻이었다.
다만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세게 쥐었다.
안에 뭐가 있건 간에 일단 후려칠 생각이었다.
“그래, 손전등 켜고……. 들어가자.”
유현은 앞으로 향했다.
불 꺼진, 을씨년스러운 홈플러스가 그들 앞에 놓여 있었다.
딸깍
안은 아주 어두워서 손전등 없이는 잠시도 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바닥에는 무언가가 엄청 떨어져 있었는데, 대부분 물건의 파편이었다.
“쓸모 있어 보이는 건 일단 없네.”
“당연하지. 1층은 생필품만 판다고, 보통은.”
“그럼 여기서 지하로 가야 한다는 건데…….”
유현은 한숨을 쉬었다.
손전등으로 비쳐 본 건물을 보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천장은 반쯤 무너져 있었다.
보통의 마트가 그러하듯 여기도 위가 주차장이었는지 무너져 내린 천장 사이로 차량들이 보였다.
1층 바닥엔 거기서 떨어진 차량 잔해가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바닥에 구멍도 나 있었다.
그 사이로 지하가 보여야 할 것 같았지만, 그렇진 않았다.
빛이 닿질 않았다.
“그냥 돌아갈까?”
심연을 들여다본 유현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 안 걸렸다고는 해도 수십 분은 지난 마당이었다.
게다가 살얼음판을 걷느라 심력을 제법 소진한 상황이기도 했다.
근데 돌아가?
보통 화가 나야 정상일 텐데, 모두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무서운 광경이어서 그랬다.
“아니, 안 돼. 그래도 성과를 내기는 해야지. 확인은 하자.”
해서 다행이다 하고 있는데 이순규가 나섰다.
“유현아, 너랑 나랑 둘만 일단 내려가 보자. 여차하면 너도 자기 보호는 되잖아?”
눈치 없는 새끼.
유현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일단 따라나섰다.
그래, 여기까지 온 이상 확인은 해야만 했다.
통조림 몇 개는 남아 있겠지 하는 기대를 품고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