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21화 (121/323)

121화 상실 (2)

뿌득

뿌드드득

병사.

환자는 온몸을 부르르 떠는 데 그치지 않고, 팔다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댔다.

아니, 흔들었다기보다는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이게 맞는 표현일 터였다.

원해서 흔드는 건 아닐 테니.

“이런 젠장!”

그건 이해할 수 있었다.

출혈이 지속되면 당연히 머리로 가는 혈류가 부족해지고, 그러다 보면 이런 식의 경련이 일어날 수 있었다.

뇌는 흥분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또 억제하는 역할도 하고 있으니까.

그건 아는데…….

“잡아!”

“잡고 있어! 근데 이건…….”

열어 놓은 상처에서 피가 마구잡이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이미 피가 차 있던 상황에서 쨌으니까 당연해.’

처음엔 이런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나.

피가 차 있다가 흘러나오는 것.

그게 전부라 여겼는데, 피 색깔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이건 새로 나는 피였다.

‘피가 차서…… 압력이 증가해…… 누르고 있었나?’

그럼 이건 피가 빠져나오면서 출혈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뜻인가?

“아, 멈췄다.”

“숨……. 숨 확인해.”

“숨은 쉬어. 하지만…… 너무 얕아.”

“혈압은?”

“아직 잡혀. 약하지만……. 정확히 알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이순규의 말을 들으며 유현은 겨우 안정을 되찾은 병사의 상처를 헤집었다.

“불 좀.”

“아, 네.”

안정이 아니라 아예 뻗어 버렸다.

죽어 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다행인 것은 아예 움직임이 멎었다는 점이었다.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해서 오예리가 다리를 잡는 대신, 뒤로 다가와 불을 비출 수 있었다.

“여기 이걸로 당겨 줘.”

“숟갈로?”

“그럼 뭘로 당겨.”

“하긴.”

이순규 또한 숟가락으로 상처를 당겨 줄 수 있었다.

덕분에 안쪽이 아까보다 훨씬 잘 보였다.

‘지금 내가 수술하는 게 사람인지 시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현은 그 안을 더 깊숙이 헤집었다.

“아, 여기!”

그러다 결국, 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혈관이 터진 게 아니라 비장이 박살 나 있었다.

얼마나 박살이 났는지 그냥 핏덩이인 줄로만 오인할 정도였다.

설마 해서 당겨 보니 혈관 다발과 함께 한때 온전한 장기였을 무언가가 당겨져 나왔다.

‘이건 못 살려.’

사실 비장을 꿰매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떼어 낼 생각이긴 했는데, 이렇게 보니 더 확실해졌다.

‘폐렴 구균(球菌, 둥근 모양으로 생긴 세균) 수막(뇌와 척수를 둘러싸고 있는 세 층의 막) 구균,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백신 놔야 할 텐데……. 그건 찾을 수 없겠지.’

내과 의사다 보니, 당장 망가진 비장을 보고 있으면서도 절제술 이후 내과적으로 꼭 해야 할 처치가 떠올랐다.

별 의미 없는 생각이었다.

당연했다.

지금 당장 살아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추후 있을 수도 있는 감염을 예방하겠다고?

게다가 백신이라니.

“후우.”

그 와중에도 유현은 침착함만은 잃지 않고, 미끌거리는 비장 조각을 놓치지 않았다.

벌려진 절개 틈새로 비장이 온전히 보이도록 잘 당겼다.

그러자 비장으로 연결되는 혈관 다발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좋아.”

절제술을 어떻게 한다?

어찌하는지 알 게 뭐란 말인가.

다만 해부학적인 고려를 할 뿐이었다.

“모스키토로 그게 돼?”

“어차피 묶어서 자를 건데. 그럼 공구로 하냐?”

“공구 중에는 이렇게 잡아 둘 게…… 없나?”

“몽키스패너 떠올리는 거면 그냥 당기기만 해.”

유현도 수술 기구의 부족이야 통감하고 있었다.

애초에 절개 배농 세트만 달랑 챙겨 나온 게 그이지 않나.

사실 배를 다치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기껏해야 찢어지는 거나 생각했지, 안이 터져 나가는 건 정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몽키스패너는 안 돼?”

“그거 대가리가 인마 주먹만 한데. 그걸로 혈관을 잡아?”

“왜 화를 내.”

“잘 안 되니까, 지금.”

몽키스패너는 간혹 영화나 드라마에서 흉기로도 쓰일 만큼 육중한 물건 아닌가.

물론 그걸로도 뭔가 붙들어서 고정할 수는 있겠으나, 주목적이 되는 대상은 쇳덩이였다.

이렇게 가는 혈관이 아니라.

몽키스패너에겐 가늘었으나 장기 하나를 통으로 먹여살리는 혈관이다 보니 모스키토로 잡기엔 또 애매하게 굵었다.

“실, 실 줘 봐.”

“어어.”

“그리고 비장에 들어가는 동맥이 몇 갠지 떠올려 봐.”

“떠올리라고? 나 정신과 의사야.”

“그래도 해부학은 배웠잖아. 빨리!”

“아니, 내가. 아우.”

그렇다 보니 마음이 점점 급해지고만 있었다.

허둥지둥 대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소처럼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지는 못했다.

지이익

실.

그나마 절개 배농 세트에 실크 실이 들어 있던 게 다행이었다.

봉합사나 아니면 그냥 마트에서 파는 실로 묶을 뻔했다.

‘아니……. 혈관이 더 있으면…… 그걸로라도 묶어야 해.’

유현은 혈관 하나를 묶으면서, 이진호에게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실 좀. 실 좀 가져와 줘요.”

“실이요?”

“네. 바느질할 때 쓰는.”

“아, 네.”

유현의 얼굴과 옷에는 온통 피가 튀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까 환자가 경련을 일으키던 당시, 유현은 본인이 그은 절개 앞에 있었으니까.

그것도 안을 정확히 보기 위해 고개까지 푹 숙인 채로.

원래도 유현의 말에 충성을 다하던 이진호는, 피 묻은 유현의 말을 허투루 넘기지 못하고 우당탕 소리를 내며 마트를 향해 달렸다.

“괜찮아요. 들어온 놈은 없어요.”

뒤에서 불을 비추면서도, 내내 문가를 살피던 오예리의 말을 뒤로하고 유현은 타이를 이어 나갔다.

하다 보니 어이가 없었다.

‘10년도 더 된 거 같은데……. 그래도 기억은 나네.’

피케이.

그러니까 실습 학생 때 이걸 어찌나 시키던지.

-야, 너 내과 지망이라고? 그래도 인마 언제 어떻게 쓸지 모르는 거야. 기술 익혀서 후회하는 법은 없어. 의사가 의학 기술 익히면 좋지.

그때 외과 레지던트 선배가 했던 말도 생각났다.

당시엔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정말 사람 앞일은 모른단 생각만 들었다.

이걸 진짜로 쓸 일이 있을 줄이야.

“잘하네?”

이순규는 타이가 그럴싸하게 이루어지는 걸 보면서, 감탄했다.

“너도 이 정도는 하지 않냐?”

“아니. 난 타이 못해서 외과 포기했는데.”

“아……. 그렇게 룰 아웃 되는 과들도 있지.”

정신과가 감탄하는 내과의 타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유현은 애써 냉소적인 생각을 뒤로하고, 매듭까지 묶어 낸 혈관을 내려다보았다.

묶인 와중에도 통통 튀는 진동이 장난이 아니었다.

‘동맥……. 이거 터지면…….’

터지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 따위는 의미 없는 것이었다.

바로 죽을 터였다.

“하나 더…….”

가뜩이나 타이에 자신이 없다 보니, 여러 번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위쪽으로 유현은 타이를 두 개나 더 해야만 했다.

그동안 시간은 계속 흘렀다.

피도 흘렀다.

‘살 수 있을까.’

그제야 마음이 좀 가라앉은 이순규는,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떠올렸다.

아직 차갑거나 하지는 않았다.

따뜻했다.

하지만 시신도 죽은 직후에는 따뜻하지 않던가.

정신과라 해서 죽음을 목도할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수많은 면담과 대화로 정든 환자가 병실에서 자살했던 때를 이순규는 아직도 잊지 못했다.

“실.”

그에 반해 처음부터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던 유현은, 도리어 죽음을 잊고 있었다.

눈앞의 죽음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short gastric artery(단위 동맥)도 있잖아. 그것도 묶어야 해.”

“아.”

“태평하게 있지 말고 너도 좀 생각해 봐!”

여차하면 병사를 배제하려고 애썼던 유현이지 않나.

심지어 빈 탄창을 주었다.

배신을 염려해서.

그러나 지금의 유현은 유현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의사였다.

누워 있는 자 또한 병사 김병규가 아니라 환자였고.

지이익

손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집중력?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순규는 유현이 머리도 좋지만, 몸으로 하는 것은 대부분 곧잘 하는 편이었다는 걸 떠올렸다.

아니, 체육관 관장이 유현의 머리 좋음을 한탄했을 정도로 재능이 넘치는 놈이었다.

수술도 결국, 지식을 바탕으로 펼치는 피지컬의 향연이다 보니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이익

하여간 유현은 비장 동맥 외에도 두어 개의 동맥을 더 묶어 낸 후, 정맥마저 묶어 냈다.

자신이 없어서 여러 차례 타이를 시도했기 때문에 이진호가 찾아온 실도 써야만 했다.

감염이 걱정되었지만, 지금 그따위 걱정은 사치였다.

여전히 묶인 동맥에서는 진동이 잘게 느껴지고 있었다.

아깐 터질까 봐 걱정이 됐지만.

지금은 다행이란 생각만 들었다.

아직 환자가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

“후우.”

이제 중요한 건 다 한 셈이었다.

이곳이 진짜 수술장이었다면 마취과는 슬슬 환자 깨울 준비를 하고 있거나, 중환자실로 갈 거라면 침대 부를 준비라도 하고 있었겠지만.

유현의 손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자른다……. 혈관……. 동맥을…….’

유현은 정말 경험 많은 의사였다.

그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의 손을 거쳐 간 환자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니까.

게다가 최근이라고 하기에도 뭣할 정도로 오래된 팬데믹 사태는 반강제적으로 감염내과 의사들을 갈아 넣었고, 그 선봉에 있던 유현이 쌓아 낸 경험은 10년 위 의사들조차 닿기 힘든 경지에 가 있었다.

‘시발……. 처음이라고, 이런 거.’

그러나 동맥 절단은 처음이었다.

언제 해 봤겠나.

동맥을 잘라?

보통은 금기 아닌가?

“야, 괜찮아. 해.”

손이 달달 떨려 왔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떨렸다.

그 손을 이순규의 거대한 손이 덮었다.

살짝 설렜다.

“응?”

“해. 여기서 못 살아난다고 해도 네 책임은 없어.”

“음.”

거기에 더해 용기가 되었다.

그래, 최선을 다했다.

그 와중에 나름 잘하기도 했고.

의사라고 해 봐야 제대로 메스 한번 잡아 본 적 없는 사람이 여기까지, 그것도 과도로 했다면 대단한 거 아닌가.

툭고민이 끝났다면, 이젠 행동으로 나설 차례.

유현은 가위로 혈관을 하나하나 잘라 나갔다.

툭, 툭.

소리가 반복될 때마다 유현은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괜찮았다.

다른 이들도 덩달아 아니, 더 움찔거리고 있었으니까.

“후……. 시발.”

유현으로서는 드물게, 입 밖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손에는 박살 난 비장이 들려 있었다.

배 안이 아니라, 배 밖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떨어져 나왔다.

“후…….”

여운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수술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으니까.

비장 절제술이라고 해서 비장 떼고 끝이겠나.

이제 안에 남은 피를 정리하고, 찢긴 살을 꿰매야 했다.

수술장이라면 석션 들고 설치면 대개 끝이겠지만 지금은…….

“시발.”

손으로 피를 긁어다 빼야 했다.

완전히 빠질 리가 없었다.

쏴아아아아

유현이 욕을 하는 사이에도 비는 쏟아지고 있었다.

쉬이 그칠 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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