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상실 (3)
“어쩌죠?”
비는 그치지 않았다.
언젠가 그치기야 하겠지만, 날이 어둑해지도록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망할.’
유현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고는 방금 질문을 던진 오예리를 돌아보았다.
아마 별다른 답을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 터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 누구라 하더라도 별수 없을 테니.
“일단은…… 기다려야죠. 문제는…….”
“여기가 아주 안전하지는 않을 거라는 거죠?”
“네.”
입구는 하나뿐이긴 했다.
제대로 된 입구는 그랬다.
드나들 만한 구멍은…… 뒤져 보니 몇 더 있었다.
물론 거대화된 것들이 드나들 수는 없을 터였다.
이순규까지 갈 것도 없이, 유현만 해도 드나들기 어려울 정도로 비좁았으니.
그러나 라드들이 어디 덩치가 큰 놈만 있다던가?
조심은 해야만 했다.
“우리가 그간 너무 안전한 곳에만 있긴 했어요.”
유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기가 안 들어오는 거대한 건물은 어두컴컴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아까까지는 천장에 뚫린 구멍을 통해 빛이 내리쬐기라도 했는데, 이제 그 구멍을 통해 떨어지는 건 오직 비뿐이었다.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비는 그저 어둠을 가속화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불은 어떻게 하죠?”
그러다 보니 이제는 모여든 이들의 얼굴을 확인하려면 아주 가까이 들러붙어야만 했다.
아마 날이 더 어두워지면 이것조차도 어려우리라.
“불……. 밖에서 보이려나? 그러면 위험할 수 있어요.”
“그렇겠죠? 아무리 비를 싫어한다고 해도…….”
오예리는 비 얘기를 하면서 이순규를 돌아보았다.
그를 보면서 라드를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아까 해 준 얘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비를 싫어하는 건 그냥 찝찝한 게 싫은 거예요. 좀비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물이잖아요. 이성이 강한 놈들이라면…… 젖은 상태의 위험성을 고려해서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라드는 본능이 이성을 우선하지.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무리가 알게 되면 반드시…… 올 거예요.
‘반드시’라는 말을 썼다.
비록 오예리가 유현만큼 이순규를 오래 겪은 건 아니지만.
지금껏 겪은 것만으로도 이순규가 퍽 신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환자 상태를 살피긴 해야 해. 이대로……. 그냥 내팽개쳐 둘 수는 없어.”
유현이 입을 열었다.
그는 오예리가 아니라 병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차하면 버리려고 했던 이지만, 뭐가 되었건 그는 아직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상태에서 다쳤다.
심지어 자신의 손을 거치기까지 했고.
이렇게 된 이상 일단 살아나는 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 한켠은 정말로 그랬다.
‘죽는 게 나을 수도 있긴 하지.’
그러나 또 다른 마음 한켠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단지 병사가 지금껏 보여 주었던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현은 무리를 이끌게 된 이로서, 지극히 현실적인 고려를 하고 있었다.
‘그나마 순규가 중간에 나았다고 판정되면서…… 의료품에 여유가 남게 되기는 했어. 하지만…….’
이순규에게 들어가던 약은 그냥 일상적인 약들이지 않았나?
그에 비해 이 병사에게 들어가야 할 약은…… 굉장히 치명적인 약일 터였다.
혈압도 잡아야 하고, 항생제도 써야 하고.
지금 떠오르는 약만 해도 하나 가득이었다.
‘너무 많이 다쳤어.’
애초에 약을 준비할 때, 좀비와 싸우고 난 후를 상정하지 않았더랬다.
유현이 본 라드들은 너무나 강해서 그랬다.
실제로 그렇지 않나.
딱 한 방.
한 방에 사람이 이렇게 됐다.
배 안이 완전히 망가져서, 죽을 위험에 빠졌다.
‘사람이 다칠 만한 상황이…… 라드들과 싸울 때만 생기는 건 아니지…….’
불쌍하긴 했다.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기도 했고.
하여간, 한 사람 때문에 다른 이들 모두가 피해 보는 걸 감수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일단은……. 불을 이 근처에는 하나 켜 두죠.”
그럼에도 유현은 노력도 해 보지 않는 건 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쯤은 하늘에 맡기고 있었지만, 하여간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남들에게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세상이 망하긴 했지만 그는 의사고, 무엇보다 다른 이들 또한 유현을 의사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도 옳은 일일 터였다.
“아, 네.”
과연 유현의 말을 들은 오예리의 표정이 일순간 밝아졌다.
이진호의 얼굴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병사가 죽어도 괜찮다 여기고 있어서 그랬다.
그러나 감히 유현의 말에 거스르지는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순규야, 이진호 형사님. 돌아가면서……. 경계 서도록 하죠.”
“그래. 나는 좀 덜 자도 괜찮더라고.”
“무리하지 말고. 싸움 벌어지면 네 역할이 중요해.”
“알았어.”
이순규는 늘 그러하듯 희생을 자처했고, 유현은 그것을 말렸다.
그냥 말리면 별 소용이 없을 걸 알아서 현실적인 이유를 댔다.
그래 봐야 반쯤은 핑계였지만 그래도 잘 먹혔다.
“네, 저는 이쪽 보고 있겠습니다.”
“네.”
이진호는 군말 않고 반대편을 향해 섰다.
총을 들고서였다.
“혹시 나타나면……. 일단 쏘세요. 지금은 뭘 고려하기 어려운 상황이니까.”
“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유현은 환자 옆에 누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기가 마트고, 그간 이 마트를 털러 왔을 이들과 라드들 모두 먹을 것을 중점적으로 노려 왔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일상 용품은 꽤 많이 남아 있었고, 그것들은 대부분 1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룻밤 지새우는 것에 도움이 될 만한 물품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 형사님도 눈 좀 붙이세요. 오늘은 고생 좀 할 거 같으니.”
“네. 교수님.”
해서 유현과 오예리 형사는 환자를 가운데 두고 누워서 누웠다.
어차피 깜깜하기도 했거니와 오늘 워낙에 고생을 해 놔서 그런가, 잠은 잘 왔다.
둘 다 어지간한 일로는 당황하지 않는 이들이기에 금세 코를 골며 잠에 빠졌다.
이순규는 그 소리를 들으며 살짝 어이가 없었다.
‘진짜 신경 굵네…….’
미친놈들인가 싶을 지경이었다.
‘쥐들……. 저거 내일도 괜찮으려나?’
벌써 한 마리가 비실거리기 시작한 마당이었다.
저 작은 몸을 하고 라드로 위장을 하려니 얼마나 많은 호르몬을 내뿜어야 하겠나.
오래 감당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냄새가 달라졌어.’
한 마리는…… 괜찮을 터였다.
혹시 모른단 생각으로 여분을 두 마리 들고 왔으니.
게다가 내일까지 저 환자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 여부도 알 수 없었다.
만약 살아남지 못한다면 한 마리 더 세이브될 터였다.
‘아니, 아냐. 이런 생각은…… 하지 말자.’
유현이 할 법한 생각이란 생각이 들어서 이순규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 교수님.”
“네?”
그러고 있으려니 이진호가 말을 걸어왔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아, 졸려서요.”
“아, 네.”
“군대 군의관으로 다녀오셨죠? 저는 경계 서다가 졸릴 때 입 털면 좋아지더라고요.”
“아……. 저는 경계는 서 본 적이 없는데, 확실히 피곤한 하루긴 합니다.”
여길 하루에 두 번이나 오게 될 줄이야.
식량을 나르기 위함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하나가 다쳤다.
아니, 죽으려나.
이순규는 다시 고개를 가로젓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까 저희 제대로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네요.”
“네……. 뭐……. 저희 입장에서 이런 말 하기는 그래도…….”
이진호는 여전히 반대편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두워진 지 오래다 보니 더 이상 개구멍은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뭐가 움직이면 그 흔적은 보일 터였다.
“그동안 살아남기 바빴으니까요.”
“그렇죠. 세상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그에 비하면 이순규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었다.
그가 마주한 입구는 제대로 된 입구다 보니 넓었고,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정도도 더 커서 그랬다.
그래 봐야 어둡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네. 이게 인재(人災)라는 거……. 아무리 얘기해도 모르는 사람도 많겠죠?”
“네. 지금 라디오만 되는데……. 라디오에서 떠드는 말은 완전 정부 측 의견이라……. 세뇌가 되긴 할 겁니다.”
일행은 거의 안 듣고 있긴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 그랬다.
그러나 유혹을 완전히 떨쳐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습 이후 완전히 통신이 아예 박살이 나 버린 터라, 다른 곳과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유일한 방안이 라디오뿐이라 그랬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쪽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유혹을 느끼고 있으니, 다른 이들은 어떨까.
점점 라디오에 매달리다 보면 세뇌도 가속화될 터였다.
“유현이는…… 그런 목적도 있었을 거라고 해요. 공습한다고 통신이 아예 다 나갈 리가 없다고.”
“확실히…….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네요.”
“그렇긴 한데……. 유현이가 원래 너무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는 편이라 아닐 수도 있어요.”
“맞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교수님이 딱히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순규는 서로 뒤통수를 맞대고 대화를 나누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듣다 보니 세뇌라는 게 정부 측에서만 벌인 일이 아니란 느낌이 들어서 그랬다.
유현이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행은 대개 유현에게 경도되어 있었다.
아니, 홈페이지가 운영되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그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이들 대부분은 유현에게 경도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통신을 날린 걸 수도 있어. 어쩌면……. 우리가 정부 통제하에 들어가는 날 통신이 돌아올 수도 있지.
이순규는 유현의 또 다른 말을 떠올렸다.
정부가 그렇게까지 할까 싶었지만, 설득력은 있었다.
확실히 정부에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생존자들을 움직이고 싶어 할 테니까.
그러나 반대 측에 있던 스피커 중 가장 커다랗고 신빙성 있는 유현이 걸림돌이 되었을 테고.
“네, 맞아요. 유현이가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교수님도 정말 많은 도움이 되셨습니다.”
“형사님도 그렇죠. 처음부터 많이 도우셨다고 들었는데.”
“저야 뭐……. 오 선배랑 워낙 친했었어요. 그때…… 죽었던 선배들도 다 친하게 지냈고…….”
“아, 그때. 이거…… 죄송합니다.”
“아뇨. 오래된 일이죠. 그리고 저는……. 교수님이 그 새끼들 다 잡아 주실 거라 믿습니다.”
믿는다.
‘과연…… 그럴까?’
유현은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인간이었다.
복수가 정당하다 해도 당시 상황에서 합리적이지 않다면…….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순규는 굳이 입 밖에 그런 생각을 내지 않았다.
아니, 내지 못했다.
“잠깐.”
“네?”
“뭐가……. 움직였어요. 입구 쪽…….”
무언가가 있었다.
개?
쥐?
아니, 그것보다는 훨씬 컸다.
사람…….
아니면 라드.
둘 중의 하나가 입구 쪽을 서성이고 있었다.
“깨, 깨울까요?”
“잠시……. 잠시만. 일단 제가 주시하고 있어요. 있는데……. 아,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