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29화 (129/323)

129화 테크노 마트 (1)

“저 앞에…… 원래 마트가 있던 곳은……. 이제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대위는 창가를 통해 내다보이는, 상대적으로 낮고 넓은 형태의 건물을 가리켰다.

롯데마트를 비롯한 주요 시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그에 비해 일행이 자리한 건물은 상대적으로 소외된 곳이었고.

“원래는 들어갈 수 있었단 말씀이시군요?”

김태평은 창가에 대강 마련한 의자에 앉은 채 물었다.

‘들어갈 수 있었다면……. 이쪽도 화력이 장난이 아니었단 건데?’

마트.

먹을 것이 넘쳐나는 곳.

신선식품이야 전기가 나갈 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우선적으로 사라졌겠지만.

어디 마트에 그런 음식만 있던가.

딱 먹고살 생각만 하면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차고 넘치는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생존자뿐 아니라 라드들도 노리는 곳이 되었다.

마트의 구조가 생존자들에게 딱히 유리하지 못하다 보니 감염의 온상이기도 했다.

“아……. 네. 군인들로 밀고 들어가면…… 가능했죠. 사실 이쪽에 기틀을 마련했던 분들도 거기서 일하던 분들입니다. 먹을 것들과 생필품을 들고 이쪽으로 도망 와서 지내고 있었죠.”

“처음엔 그랬군요. 그런데…… 그게 상황이 바뀐 건가요?”

“네.”

대위의 눈에 회한이 서리기 시작했다.

저기서 무언가 실패를 경험한 모양이었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사태가 터지고, 모든 생존자는 실패에 익숙해져 가고 있지 않나.

멀리 갈 것도 없이 김태평도 그랬다.

‘분명 통신에 재밍(신호의 내용을 알지 못하게 하려고 전파를 발사하여 수신을 고의로 방해하는 일)이 있어…….’

다 끊겼다고?

그럴 리가 있나.

대한민국 인프라라는 게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날렸거나 제한하고 있는 것일 텐데…….

현재 김태평이 지닌 힘으로는 복구는커녕 원인을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사실 더 이상 진입이 의미가 없어지긴 했습니다. 제가 합류하고 얼마 안 되어서 마트를 한번 밀었거든요.”

“아……. 삼성동에서 올라오신 분이 대위님이셨군요?”

“네. 그렇습니다.”

삼성동.

대한민국에서 유동 인구 많기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한 곳이지 않나.

지금은 폭격이 진행되었을 테니 어찌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듣기론 지옥 그 자체였다고 했다.

대위도 그때를 떠올리기 싫은지, 고개를 가로젓고는 말을 이었다.

“그때 어지간한 식품이나 생필품은 다 가지고 왔습니다.”

“그걸로 충분했습니까?”

김태평의 말에 대위는, 명찰에 강민석이라 적힌 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시다시피 이곳엔 천 명이 넘는 거주민이 있습니다. 턱도 없이 부족하죠.”

“그럼……?”

“주변부 수색을 이어 나갔습니다. 할 수 있다면 한강 공원을 경작지로 만들려 했지만……. 그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랬을 것 같았다.

개활지이지 않나.

모든 곳이 뻥 뚫린 곳에서 지낸다?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었다.

“청와대 측에서 흘러나온 정보에 의하면 이번 겨울만 버티면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해서 그때까지만 버티잔 생각으로 주변에서 먹을 것들을 찾아내고 있었죠.”

“음.”

김태평뿐만 아니라 박 중령의 입에서도 신음 비슷한 것이 흘러나왔다.

이유는 각기 달랐다.

‘백신이라…….’

박원상?

그 모자란 병신 새끼가?

만약 그렇게 대단한 인재였다면, 애초에 아내가 여기 있지도 않았을 터였다.

진즉에 모든 것이 풍족하다 못해 넘쳐 흐르는 청와대로 옮겨 줬을 터였다.

‘주변부 수색이라…….’

그에 반해 박 중령은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단 점에 주목했다.

물론 청와대에서도 수색은 하고 있었다.

명분은 생존자 확보였지만 대개 주변부를 정리하고 안전지대를 늘리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간혹 초거대 개체로 분류되는 놈들이 나타나면 위험해지긴 했지만, 대다수의 라드들은 총에 대응하지 못했으니까.

‘나도 나가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중령은 그러한 임무에 자원하지 않았더랬다.

애초에 김선태가 주도하는 일이기도 했거니와, 두려움이 치밀어서 그랬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사단이 박살 나던 때가 선명히 떠올랐다.

군인으로 평생을 살아왔지만 누군가 죽고 죽이는 광경은 그때 처음 봤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슬슬 병사들도 라드를 인간으로 보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침묵 속에 강 대위는 말을 이었다.

내내 현장에 있던 사람답게 말 속에 핵심이 담겨 있었다.

라드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

어찌 보면 이것이야말로 군에게 핵심적인 일일 터였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 봐도 인간이긴 했으니까.

그러나 행동 양식이나 덩치로 구분이 가능하기도 했다.

그걸 해내는 데 그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총알을 갈길 수 있을 것, 그것이야말로 현시점 군인에게 있어 필수적인 덕목이었다.

“물론 희생이 뒤따르긴 했습니다. 일단 물리면 회생이 불가능한 데다가……. 그렇게 된 동료를 죽인 병사들도 트라우마에 시달렸죠. 다행히 민간인들 중에서도 끊임없이 지원자가 나온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강 대위의 얼굴엔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그럴 만했다.

가진 것도 없이 이만한 무리를 이끌어 온 사람이니까.

단지 몇 주에 불과하긴 하지만, 그 몇 주가 영원처럼 느껴지는 요즈음이니 실로 대단한 일을 했다고 보면 되었다.

‘대통령은 그만한 물자를 가지고도……. 밑에 아직도 천 명이 안 돼.’

그마저도 거의 다 군인이었다.

김태평은 입맛이 쓰게 느껴져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 대위는 자기 얘기에 집중하느라 그런 김태평을 보지 못했다.

“헌데……. 며칠 전부터는 그게 잘 안 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만전을 기하기 위해 총 10명으로 이루어진 분대 단위로만 수색을 진행합니다. 이만한 인원이 통째로 실종이 되는 건……. 사실 드문 일이죠. 상대가 총으로 무장하고 있지 않은 이상에는……. 게다가 이 근방은 오시면서 느끼셨겠지만 어지간한 대로는 뚫어 놓아서 차로 이동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만한 이야기였다.

분대가 통으로 실종이라니.

그것도 열 명으로 이루어진 분대라면 작은 규모도 아니었다.

“무장 상태는 어떻소?”

박 중령은 어딘지 불안감이 잔뜩 느껴지는 얼굴로 물었다.

강 대위는 여상한 얼굴로 답했다.

한 무리의 수장으로 서게 된 이후 자연스레 습득한 침착함인지 뭔지는 몰라도,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정이 되게끔 만드는 힘이 느껴졌다.

“적어도 나가는 인원에 대해서는 완전무장을 시킵니다. 청와대에서 오신 여러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라드에게는 일대일로도 밀리지 않을 겁니다.”

라드는 비록 무서운 놈들이지만 대부분 기껏해야 몽둥이로 무장하고 있지 않던가.

무언가를 집어다 던지는 놈들도 있지만 소수였고, 정확도도 형편없었다.

무엇보다 놈들의 협동이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단편적이라, 각개 격파도 쉬웠다.

“그럼에도…… 실종된 분대가 총 세 분대입니다. 통으로…….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세 개의 분대가 실종이라니.

박 중령은 아까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

‘역시 오면 안 됐어. 거기 있을걸…….’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거기서 좀 더 열심을 낼 걸 그랬다.

아니, 김선태와 척을 지면 안 됐다.

육사 선배가 다 뭐라고 뻗댔을까.

그는 여기서조차 뻗대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 채, 반말로 물었다.

“탈영일 가능성은 없나?”

여유를 잃어서 그런가 마지못해 갖추고 있던 예의조차 잊은 듯했다.

‘하필 저런 새끼랑…….’

김태평은 차라리 김선태랑 왔으면 뭐가 되어도 됐을 거란 생각을 했다.

부질없는 생각이니만큼 곧 털어 버렸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대위는 그럴 수가 없었다.

미친 소리여서 그랬다.

“아니, 탈영은 원래……. 병사들이란 탈영을 늘…….”

“누가 그런 소리를 합니까? 게다가 이런 세상에 탈영을 하면 대체 갈 데가 어디 있다고 합니까?”

그렇지 않나.

탈영을 하면 도망칠 곳이 있어야 할 텐데.

적어도 서울 동쪽에서 이곳보다 나은 곳은 없을 터였다.

물론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지내는 곳이다 보니 잘 찾아보면 규모는 작으나 더 나은 곳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찾을 시간이 있을까.

그 전에 죄 죽을 터였다.

총이 있다고 해도 잠은 자야 하니까.

또 먹을 것을 먹어야 하고.

“으음. 그래도 말을 그렇게 하나. 내가 명색이 중…… 읍.”

김태평은 드디어 개소리만 일삼기 시작한 중령의 입을 틀어막았다.

손을 쓰지도 않았다.

아까부터 성심성의껏 구겨 놓은 버려진 옷 조각을 입 안에 넣었다.

“읍, 읍!”

“대위님. 대화는 저랑 하시죠.”

그러곤 발로 차 의자에서 떨어뜨렸다.

함께 온 병사 중에 움찔하는 이가 있었으나 움직이지는 못했다.

지속적으로 수색을 나갔다 온 이곳의 병사들의 눈빛 때문이었다.

무언가.

무언가 다른 구석이 있었다.

무엇보다 김태평의 눈은 그보다도 더 깊어 보였다.

“아, 네.”

대위는 중령을 다른 병사들을 이용해 묶어 두고는 대화를 이어 나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김태평이었다.

“실종이 아니라 죽임을 당했다고 봐야 할 거 같군요.”

“그렇습니다. 문제는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이고 있냐는 건데…….”

“가능성은 두 가지겠죠. 생존자 아니면 라드.”

“생존자…….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대위의 말에 김태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기야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무장이 훌륭했다면……. 빼앗고 싶었겠죠.”

“흐음……. 하지만 열 명입니다. 어지간한 매복으로는 어렵습니다. 상대의 화력이 더 뛰어나다면 모를까…….”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라드인데, 이것도 납득이 잘 가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죠.”

대비가 된 군대에 라드가 위협이 될까?

되기야 하겠지만, 이전만큼은 결코 아니었다.

이제 군은 교리가 아닌 몸으로 라드와 싸우는 법을 익혀 나가고 있었으니.

“하지만……. 라드는 진화하는 존재죠.”

김태평은 언젠가 정유현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정유현 교수는 진짜 ‘교수’라는 직함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모르는 것은 깔끔하게 인정하되, 적은 정보로도 충분한 추론을 해내는.

‘그가 여기 있다면 도움이 될 텐데.’

갈 수 있을까?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높은 확률로 거기 계속 있을 터였고.

“제가 어디서 들은 얘긴데……. 바이러스가 숙주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숙주의 생존 능력이 향상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정유현…… 교수님 홈페이지 말씀이시군요.”

“아, 아시는군요.”

“폭격 이전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럼 얘기가 빠를 텐데……. 혹 라드 중에 지능이 발달한 놈들이 생긴 건 아닌지, 그런 걱정이 드는군요. 아니, 지능이 아니라…… 집합을 이룰 수 있는 놈들 말입니다.”

김태평은 정유현에게 들었던 또 다른 말을 떠올렸다.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이길 수 있던 이유가, 집단행동에 있었다는 설이 있다고 교수님이 그러시더군요.”

“너무…… 무서운 얘기 아닙니까?”

대위는 떨떠름한 얼굴이었지만, 부정은 하지 못했다.

그도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바였고.

이 대화는 그걸 구체화하는 일이었을 뿐이어서 그랬다.

잠시 회의실은 공포에 짓눌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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