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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31화 (131/323)

131화 테크노 마트 (3)

탕탕탕

아무리 라드가 힘이 세다고 해도, 7층까지 돌을 던지지는 못했다.

가까이 와서 던지면 날아오기는 할 텐데, 그렇게 두지는 않았다.

탕탕탕

이곳에 있던 병사들은 이미 꽤 정예가 되어 있었다.

이 야밤에도 조명탄과 함께 조준 사격을 해낼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라드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냐?

그건 아니었다.

총알을 아껴야 하니, 아무래도 화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접근은 확실히 줄일 수 있었다.

“흠…….”

김태평은 그렇게 주변을 돌아보다가, 총을 쐈다.

야간 투시경을 들고 온 덕에, 사태 발발 이후 이 장비를 원 없이 써 오기도 했고, 애초에 실력도 좋은 덕에 그가 쏘기 시작하자 라드들이 주르륵 쓰러졌다.

그가 데려온 팀원들 또한 에이스들 아니던가.

괜히 청와대에서 이들을 팽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확실히 괜찮군.”

대위는 그런 김태평과 팀원들 그리고 박 중령이 데리고 온 병사들을 살피고 있었다.

김태평 쪽은 정예란 말이 실로 어울리는 이들이었다.

병사들도 괜찮았다.

청와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태 발발에 대비를 해 온 만큼, 물자가 충분하지 않았겠나.

김선태가 이끄는 부대만큼 정예는 아닐지라도 사태 발발 후 실전에서 제대로 훈련을 해 온 덕에 따박따박 적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물러납니다. 20분도 안 되어서……. 완전 다릅니다, 대위님.”

병사 또한 조명탄 사이로 흩어지고 있는 라드를 보며 웃었다.

요사이 이렇게 금세 물러간 게 처음이라 그랬다.

평소엔 몇 시간이고 괴롭히다가 물러가더니, 오늘은 20분이었다.

말이 물러나는 거지 사실상 퇴각이라고 봐야 했다.

이겼다는 생각이 거의 모두의 마음에 번지고 있었다.

“휴.”

“와아…….”

며칠 잠을 못 자 초췌해져 있던 병사들은 총을 내려놓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3, 4층에 거주 중인 민간인들도 안심한 얼굴이었다.

2층만큼은 아니지만 3, 4층에도 돌이 마구 날아들지 않았나.

가까이 있다가 돌에 맞아 죽거나 다친 이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깨진 창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도 고통이었다.

계절은 세상이 어떤 형태가 되었건 변해 가고 있었다.

“후…….”

“그래도 정부에서 온 사람들이 도움이 되기는 하는구만…….”

“데리고 안 가 주려나?”

“우리를 어떻게 다 데리고 가나…….”

그런 와중에 오늘은 꽤 커다란 승리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원래 이곳에 있던 이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김태평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수가…… 이렇게 많다고?’

조명탄이 터질 때마다 드문드문 보이는 라드의 수는 정말이지 어마어마했다.

아니, 투시경으로 확인한 수는 그것보다도 더 많았다.

백을 헤아릴 지경인데,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닐 것 같다는 점이었다.

분명 돌을 던지던 놈들 뒤로도 움직임이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도망가는 건 불가능해.’

장갑차와 탱크로 밀고 나가면 또 모르겠지만, 그걸 내줄까?

절대로 안 내줄 터였다.

전투를 벌이고 한 대 정도 탈취하면 다행일 텐데, 그러한 규모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안 될 것 같았다.

저만한 무리를…….

장갑차로?

‘일단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전투를 벌이긴 해야겠는데…….’

김태평은 대위를 돌아보았다.

대위는 전투가 끝난 후, 지친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딱 봐도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거의 무슨 전쟁 다큐에서 보던 장군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그만큼 능숙했고 병사들의 반응 또한 격렬했다.

“잘했네. 오늘은 정말 잘했어.”

누구라도 알 터였다.

오늘의 성과는 청와대에서 온 사람들이 해낸 것이라는 걸.

그러나 대위는 그저 병사들 하나하나 손을 잡아 가며 격려를 해 대고 있었고, 병사들은 그 격려에 감동한 얼굴이 되어 웃고 있었다.

‘이 집단을 상대로는 절대 못 이기겠어.’

저런 집단은 이길 수 없다.

어쩌면 청와대보다 더 강할 수도 있었다.

‘아니……. 아니지. 거긴 그 괴물 같은 새끼가 있지.’

김선태 때문에 고개가 순간 저어졌다.

그가 이끄는 부대가 온다면, 이곳은 불과 한 시간도 채 지나기 전에 지워질 터였다.

수도 수지만 훈련과 장비 수준이 궤를 달리했다.

그러나 그런 존재들을 제외한다면 아마 이들 집단을 능가할 만한 집단은 드물 터였다.

적어도 김태평과 그가 이끄는 팀원들만으로는 절대 무리였다.

“일단 주무시죠.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내일은 저와 함께 밖으로 나가 보시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대위가 다가와 말했다.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그래서 두려워졌다.

‘회의실에서와는 아예 다른 사람 같군그래.’

병사들이 보는 앞에선 속내를 절대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지 않나.

이런 인간을 김태평은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청와대에서.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해서 김태평은 일단 고개를 숙이고, 원래 있던 숙소로 향했다.

팀원들 앞에서는 당황한 티를 내지 않았다.

그게 팀장의 숙명이었다.

“자자. 내일 나가야 되니까……. 빨리 자자고.”

“아, 네.”

“근데…….”

“일단 자. 어차피 맨몸뚱이로는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

“네, 팀장님.”

그렇게 큰소리를 탕탕 쳐 놓고 자리에 누웠지만 정작 김태평은 쉬이 잠이 들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팀장이라는 존재는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밖에 없는 위치였고 또 동시에 그런 정보를 종합해서 사고하는 능력 또한 뛰어난 인간이 김태평이지 않나.

‘정유현 교수……. 어떻게든 연락을 취해야겠는데…….’

무리 지은 라드.

이러한 존재를 교수는 알고 있을까?

‘그 사람이라면 뭔가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근거는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 때문이었다.

김태평은 아직까지 정유현처럼 뛰어난 정보 분석가를 본 적이 없었다.

아니, 하나 있기는 했는데 그는 사태 이후 연락이 끊겼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허탈해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어딘가에 있긴 하다는 게 중요했다.

‘일단……. 일단은 눈앞의 사태에 집중하자.’

김태평은 그러고도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물론 체력이 좋은 편에 속하는 데다가 긴장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늦잠을 자는 일은 없었다.

“흠.”

김태평은 세수만 하고 대위를 만났다.

대위는 멀끔한 차림새였다.

나름 군복도 다린 듯했다.

확실히…….

여러모로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인간이었다.

‘겉모습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인간이지.’

잘생기고 못생긴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당연히 그러한 것도 영향을 미치긴 하겠지만, 무릇 권위란 후천적인 노력에서도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단정함은 이 사람의 실제 모습과는 별개로 여러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었다.

“오셨군요.”

“네.”

“다행히 어제는 놈들이 금세 물러가서……. 잠자는 데 불편함은 적으셨을 거 같군요.”

“네, 배려해 주신 덕에 잘 잤습니다.”

“좋습니다. 저희가 그간 파악한 바에 의하면 아무래도 놈들의 본거지는……. 이쪽인 거 같습니다.”

“터미널……. 가깝군요?”

“네.”

동서울 터미널.

강변역에 바로 붙어 있다시피 한 시설이고, 동시에 거대한 시설이었다.

안에 나름 식당가도 있고 마트도 있어 초반엔 생존자들이 더러 찾아가기도 했던 곳이지만, 그곳은 입구가 너무 크게 뚫려 있었다.

더욱이 인적이 드물기는커녕 너무 많은 유동 인구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했고.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분대들이 실종된 지점이 다 그 근처였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럼 원래 활동 반경이 거기까지였습니까?”

김태평의 물음에 대위는 고개를 저었다.

“다리만 건너지 못했을 뿐……. 옆에 아파트 단지까지도 수색 대상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거기서 구해 온 사람도 꽤 있고요.”

“아……. 그러다 이렇게 된 것이로군요.”

“네. 열흘도 채 되지 않은 일입니다. 그 전까지 저희는 겨울을 날 준비에 여념이 없었죠.”

확실히 그래 보였다.

이들이 구비해 둔 모포와 식량은 꽤 어마어마하지 않았나.

청와대와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하여간 야생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이곳에서 이 정도라면 대단하다는 칭찬도 부족할 터였다.

“열흘이라.”

그 대단했던 집단이 한순간에 멈추었다.

‘라드 무리가……. 이 근처에서 발생한 건 아니겠는데…….’

숨어서 어제와 같은 무리를 이룬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유현의 말처럼 라드는 좀비가 아니지 않나.

놈들도 배고픔을 느끼고 추위를 느낀다.

잠도 자야 하고……. 아마 나름 공간도 필요할 터였다.

그 말은 곧 경쟁 상대란 얘기였다.

이만한 집단을 곁에 두고 그렇게 성장하는 건 말이 안 되었다.

‘이동을 했다는 건데……. 다리를 건넜을까? 그건…… 좀 이상한 일이지.’

김태평은 자꾸 김선태가 떠올랐다.

그와 함께 펼치고 있던 작전, 즉 효자동에서 시작해 경복궁, 광화문을 비롯해 이제는 명동까지 진행한 소개 작전이 떠올랐다.

그 결과 청와대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자와 생존자 그리고 군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엄청난 수의 라드를 몰살시켰다.

하지만 다 죽이진 못했다.

아마 죽은 수보다는 도망간 수가 더 많을 터였다.

‘우리가 원인이었나?’

김태평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대위의 브리핑을 진중한 얼굴로 듣고 있었다.

그러곤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당연히 장갑차 안에 탄 채였다.

맨몸으로 다니기에는, 이제 이 주변은 너무 위험한 곳이었다.

“조심하셔야 됩니다. 돌멩이로 어떻게 될 차는 아닌 거 같긴 한데……. 분대원 전체가 실종되었다는 걸 유념하십쇼.”

“네, 대위님 감사합니다.”

아니, 장갑차를 탔어도 위험할 수 있었다.

분대원 전체가 실종되었다는 건, 그들이 들고 있던 물품들도 없어졌다는 얘기니까.

“조심하자.”

“네.”

김태평은 일행에게 말한 후, 앞으로 나아갔다.

선두와 후미에는 대위가 이끄는 부대가 있었다.

대위는 그중에서 후미에 있었다.

목표는 터미널이었는데, 그래 봐야 근처에 가는 것이 다였다.

정말로 거기 몰려 있다면 이만한 인원으로 가는 건 벌집 쑤시는 거나 다름없지 않겠나.

“오는군…….”

그걸 보는 이가 있었다.

터미널 옥상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집의 거대함은 가려지질 않았다.

라드 중에서도 초거대 개체로 분류되기에 모자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니들은 아직 이런 거 사용하지도 못하겠지.”

그는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였다.

옆으로는 라드들이 서 있었다.

사내처럼 정제된 자세는 아니었다.

억제되지 않은 본능이 그들의 행동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사내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고 있었다.

“하여간 조심은 해야 돼.”

사내는 몸에 듬성듬성 새겨져 있는 흉터를 어루만지곤, 망원경에서 눈을 뗐다.

해 아래 드러난 얼굴은 정유현도 김태평도 아는 얼굴이었다.

박기태.

1호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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