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서북쪽으로 (1)
치직
치지직
유현은 라디오를 이리저리 돌려 보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박원상이나 다른 정부 측 인사가 나오는 방송을 듣기 위함은 아니었다.
딱히 방송 시간이 아니라 해도 이런저런 정부 측 의견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기만 하는 방송이지 않나.
이제 와 그런 것을 들으며 위안받기에 유현은 너무 많은 길을 걸어온 참이었다.
“형, 또 뒤져요?”
“아. 응. 혹시 모를 일이니.”
유현이 찾는 건 개인 방송이었다.
아무 주파수라도 좋으니 방송이 되고 있다면 좋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최우식을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는 그냥 그렇게 말했지만 유현이 기대하고 있는 방송은 두 개 정도가 있었다.
‘김일용 형사님이나…… 김태평 정도는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역시 어렵나?’
사실 이쪽도 라디오 방송을 생각했던 적이 있지 않나.
생각보다 구조가 간단하다 보니, 멀리 퍼져 나가지 않더라도 해 볼까 했더랬다.
하지만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중에서 라디오는 후순위로 계속 밀렸다.
“역시 없군.”
“밖은 진짜 지옥이잖아요. 우리도 슬슬 뜨긴 해야 해요.”
그런 속내를 모르는 최우식은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창밖을 가리켰다.
라드들의 숫자가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추워서 얼어 죽은 건 아니었다.
확실히 날씨가 나날이 추워지고 있긴 해도, 아직 겨울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놈들은 사냥당하고 있었다.
군인들에게?
아니, 같은 라드들에게 당하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야. 그나마 서북쪽으로는 별거 없으니……. 그쪽으로 향해야 해.”
“네. 뭐……. 무리가 그렇게 크진 않지만…… 그래도 여기에 더 있긴 어렵겠죠.”
최우식은 여전히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당장 사냥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사냥은 밤에 이루어졌다.
그때……. 그 마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리는 따로 떨어진 라드를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나가고 있었다.
“가자.”
“네.”
하여간 지금은 낮이었다.
벌건 대낮.
여름과는 달리 낮이 더 활동하기 좋음에도 불구하고 라드들은 쥐 죽은 듯 숨어 있었다.
당연했다.
이것들이 비록 제대로 된 지성체는 아니더라도 두려움은 느끼고 있을 테니.
“교수님. 준비됐습니다.”
“네. 우식아. 너는 애 챙겨.”
“아, 응.”
“어차피 그렇게 멀지도 않고……. 나랑 오예리 형사님이랑 순규랑은 몇 번 왔다 갔다 했던 곳이니까……. 그렇게 위험하진 않을 거야.”
유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일행을 돌아보았다.
모두 9명.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수 있는 숫자였다.
구성은 어떻게 봐도 다양한 편이었다.
남녀만 얘기하는 게 아니었다.
애도 있지 않나.
심지어 라드로 분류될 만한 이순규도 있었다.
‘쥐……. 쥐는 충분해. 8시간이면 갈 수 있어.’
도착할 때도 9명이어야 했다.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혹 모를 일이라 중간에 숨어 갈 수 있는 곳도 선정해 놓지 않았나.
텅 빈 건물인데, 나름 엄폐물로 쓸 만한 것들이 꽤 놓여 있었다.
뭣하면 하룻밤 정도는 지낼 수 있을 터였다.
“갑시다.”
“네, 교수님.”
사태가 벌어지고 밖으로 처음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최우식의 아들이 그랬다.
아니, 김 주무관도 이곳에 오고 나서는 처음 나가는 참이었다.
그러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김 주무관……. 떨고 있구나. 하긴, 무섭겠지.’
오다가 죽을 뻔하지 않았나.
아니, 함께 있던 동료는 죽었다.
그것도 처참하게 이리저리 찢겨서.
그에 반해 아이는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조용히 해야 해. 알았지?”
“네.”
동시에 침착했다.
기질이 그런 모양이었다.
최우식보다는 제수씨를 닮은 것 같단 생각을 하면서, 유현은 문을 열었다.
끼이익
육중한 철문 그리고 밖에 있던 이중문까지 다 열렸다.
선두에 선 것은 이순규였다.
그는 큰 키를 이용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속으론 거리를 가늠하면서였다.
‘기껏해야…… 8킬로.’
8km.
정말이지 얼마 안 되는 거리였다.
아마 차라도 타면 10분도 안 걸리지 않을까?
멀쩡한 세상이었다 해도 딱히 막힐 만한 도로는 아니었으니.
하지만 이 망할 세상에서 8킬로는 어마어마한 여정이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딸려 있다는 것이 커다란 부담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우리 집단을 증명할 수 있었다고……. 유현이가 말했지.’
아이.
이순규에게도 최우식은 후배고, 따라서 그의 아들은 조카 같은 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애초에 냉담한 편에 속하는 정유현과는 달리 이순규는 정을 뚝뚝 흘리며 사는 인간이지 않나.
몇 번인가 장난감을 사 준 적도 있을 지경이었다.
그 덕에 아이가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똑똑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무서운 놈……. 그래도…… 나쁜 놈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야.’
그렇다고 해도 아이는 아이였다.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라도 이런 세상에서 당장은 짐일 수밖에 없었다.
집단에 있어서는 당연히 부담이었다.
그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중요했다.
아이가 부담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거.
-우리가 뭘 믿고 자네들을…… 받아들이지?
유현과 이순규 그리고 오예리, 이진호 형사가 찾아낸 곳은 보건소였다.
시골이 다 그러하듯 보건소가 인근 건물 중 가장 거대했고, 나름 읍내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 봐야 인구가 원체 적었기 때문에 라드는 거의 없었다.
-우리 일행에 아이가 있습니다. 부디 받아 주십쇼.
그 덕일까?
보건소에는 선객이 있었다.
공중 보건 의사와 간호사는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을 이어 나가던 노인이 둘이나 있었다.
사실 물리력을 행사하려고 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상황이긴 했다.
무기도 완력도 이쪽이 앞서니까.
-우리도…… 농사지으려면……. 인력이 부족하긴 했는데…….
그러나 그쪽도 내세울 것이 있었다.
바로 농사에 대한 경험과 지리에 대한 이점.
유현은 그 점을 이용하고 싶어 했고, 아이를 무기로 썼다.
-저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랑 여기 이 친구는 의사고, 여기 이 둘은 형사예요. 그리고 아이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부디 도와주십쇼.
의사, 형사 그리고 아이.
그 말에 노인들은 마음을 열었다.
올 테면 다 데려오라고 했다.
먹을 것이 풍족하진 않을지언정 겨울을 날 수는 있을 거란 말도 했다.
날붙이를 들고 나타났던 것에 비하면 정말이지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우선 도로를 타야 합니다. 여기서 우측으로 조금만 더 가면 커다란 도로가 있어요. 그거 따라서 한두 시간만 걸으면 돼요.”
“응. 별로…… 위험했던 적은 없으니까 걱정 말고. 우리 총도 있고 해서 어지간한 놈들은 오지도 못할 테니까 더더욱 걱정 말고. 게다가 쥐도 있잖아요?”
이순규는 그런 생각을 뒤로하고 일행을 이끌었다.
제일 커다란 난관이 되었을, 도로 건너편에 있던 라드들은 고요했다.
기웃거리는 놈들조차 없었다.
그럴 만했다.
어제.
아니, 정확히는 오늘 새벽에 초거대 개체 하나가 죽어 나갔으니까.
-끄아아아아아!
모를 수가 없었다.
그토록 처참한 비명이라니.
대체 어떻게 그렇게 거대한 놈을 사냥할 생각을 했을까.
아니,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알고 싶지 않구만…….’
하여간 그 후로 쭉 고요했다.
무리가 그 시신을 언제나 그렇듯 도로에 늘어놓았기에 그럴 터였다.
이 일대의 왕처럼 군림하던 놈이 사지가 찢긴 채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활기찰 수 있는 놈이 어디 있겠나.
‘설마 우리를 쫓아오진 않겠지.’
유현은 일행의 후미에 서 있었다.
덕분에 거의 뒤를 보고 있어야만 했다.
딱히 시야에 걸리는 부분에 라드는 없었다.
없어도 불안했다.
하여간 여기까지 따라오지 않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따라오는 놈들……. 그놈들의 눈은 분노로 차 있었다.
‘짐승들이라 해도 감정이 없는 게 아니거늘……. 저놈들은…….’
집착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왜 이쪽의 라드들을 사냥해 가면서까지 건너오려고 하겠나.
그나마 어제까지는 초거대 개체의 존재로 인해 세력의 균형이 맞는 느낌이었으나, 오늘 무너지고 말았다.
시간문제긴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무리 측의 라드들이 늘어나고 있었으니.
“차들이 좀 있네요?”
그런 걱정을 하면서 걷다 보니, 누군가 입을 열었다.
아이였다.
이름이…….
그래, 최지민.
그런 이름이었지.
“응. 버리고 도망간 거 같아. 사실 한두 명만 버리고 튀어도 도로는 마비되거든.”
그 말에 답한 건 옆을 지키고 있던 우식이었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귀는 열어 두었으되 사방을 경계하고 있느라 입 열 여유가 없었다.
“아……. 영화에서 보면 도로는 비어 있던데.”
“그건 영화니까…….”
“아. 여긴 괜찮아요, 그럼?”
“응. 좀비가 아니라고 했잖아. 먹을 게 없는 곳엔…… 라드도 없어.”
최우식은 애써 쾌활하게 얘기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래 봐야 객관적으로 보면 침울하기 짝이 없는 얘기긴 했다.
“근데 교수님.”
그래서 그럴까.
그 후로 한동안 대화가 확 끊겨 있었다.
침묵을 깬 것은 오예리였다.
그녀만은 이 망할 세상에서도 나름의 활달함을 지키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네.”
물론 유현도 별로 변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너무 삭막했던 것은 아닐까 싶긴 했지만, 하여간 오예리로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유현을 대하는 것을 제일 편해했다.
“그쪽엔 왜…… 라드들이 적을까요?”
“그쪽? 아……. 보건소요?”
“네. 먹을 게 없지도 않잖아요. 사실…… 거긴 되게 뭐가 많던데.”
“뭐……. 저도 고민을 좀 해 봤어요.”
심지어 쓸데없어 보이는 고민마저 해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유현은 머릿속에 여유가 있었다.
여전히 뒤를 쳐다보며 무리를 걱정하고 있기는 했지만.
하여간 유현은 말을 이어 나갔다.
“라드는 좀비가 아니다. 이 말은 제가 여러 번 했죠?”
“뭐 요새는 라디오에서도 떠들죠.”
“그렇죠. 그래요.”
좀비는 기본적으로 죽은 존재가 돌아다니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그에 반해 이놈들은 죽은 게 아니었다.
살아 있었다.
지금까지는, 먹을 것을 가지고 경쟁해야 한다는 단점만 부각되고 있었다.
좀비보다 훨씬 무서운 것들이 아니냐는 생각만 들었다는 얘기.
“놈들도 나이를 먹겠죠. 실험을 해 봐야겠지만……. 아마 일반적인 사람보다 수명이 훨씬 짧을 거예요.”
유현은 이순규가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용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예민한 놈이니까.
다만 강한 친구이기도 하니, 괜찮을 거라 여겼다.
“아…….”
“특히 기저 질환이 있었을 경우……. 그 기저 질환의 경과도 가속화될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목표로 두고 있는 보건소 주변은 대부분 노인 인구죠.”
“아……. 그럼…… 설마.”
“자연사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어디까지나 제 추정이지만요.”
유현은 말을 내뱉으면서 그나마 이 사태가 있기 전, 한번 팬데믹 사태를 겪어 봤다는 게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생전 처음 보는 감염병이지만.
이런 상황이 처음인 것은 아니지 않나.
‘이러한 추정이……. 우리의 생존율을 높여 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