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34화 (134/323)

134화 서북쪽으로 (3)

“음…….”

이순규가 신음을 흘렸다.

냄새를 맡아서는 아니었다.

무언가를 봐서 그랬다.

‘발자국…….’

그가 본 것은 발자국이었다.

사람의 발자국이었는데, 꽤 컸다.

게다가 크기보다도 더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다름 아닌 땅이 파인 깊이.

‘무게가 어마어마할 거 같은데……. 초거대 개체다.’

그렇다면 냄새도 멀리까지 퍼져야 할 텐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딱히…….

당장 가까이 있는 건 아닌 듯했다.

언젠가 한번 여기를 온 적이 있다 정도일까.

“발자국이 저기로…… 이어지는데.”

유현도 같은 발자국을 보고 있었다.

그 발자국을 마을을 지나 더 서쪽으로 이어졌다.

“흠……. 뭐지?”

딱히 보건소 쪽으로 향한 것 같진 않았다.

그냥 쭉 앞으로 내달린 모양이었다.

이곳은 그냥 지나쳤다.

“쫓겼던 거 같지도 않은데.”

“그러니까.”

초거대 개체는, 물론 가까이에서 제대로 관찰한 적은 없지만, 그간 보아 온 바에 따르면 다른 개체들보다 아무래도 흥분을 더 잘하는 편이었다.

싸움이 벌어질 때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지 않았나.

전에 있던 곳에서 죽어 나간 라드 중 거의 3분지 1이 초거대 개체에 의해 죽었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뛰어?

“쥐들도 얌전하고……. 일단 당장은 안전해 보이는데……. 가까이 가 볼까?”

“그래. 그게 좋겠어.”

유현의 의견에 이순규가 동의했다.

나머지 일행 중에는 오예리가 둘을 따라 앞장섰다.

다른 이들은 사방을 경계하며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아……. 이거……. 저기서 이어지는데.”

“산을 넘어왔구나. 그리고, 여기.”

“이거……. 뭔 발자국이지?”

“모르겠지만…… 동물이야. 고라니 같은 건 아니겠나?”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야생 동물인 거 같긴 한데요?”

셋은 천천히 발자국 근처에 도달해 그 주변을 탐색했다.

아니, 사실 탐색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쓸 것도 없었다.

라드는 딱히 자기 흔적을 숨기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그에게 쫓기던 것이 확실한 동물도 그럴 만한 여유는 없었을 테니까.

그냥 대놓고 다 보였다.

라드는 산에서부터 야생 동물을 따라 이곳을 지나쳐 저쪽으로 달렸다.

“돌아오려나……?”

“그럴 가능성이 크지.”

유현은 안 돌아오길 바라며 물었고, 이순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간이 좀 지나기도 했거니와 딱 봐도 안전해 보이기도 해서 나머지도 다 같이 와 있었다.

때문에 모두가 해명을 바라는 표정으로 이순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순규는 딱히 당황하지 않은 채 답했다.

“라드가 무슨 야생 동물이 아니잖아요. 어디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감염체일 뿐이에요. 그 형태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 왔던…… 것들과 너무 달라서 그렇지, 본질적으로는 사람이에요.”

그렇다고 길바닥에서 긴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해서 일행은 여전히 사방을 경계하며, 보건소를 향해 걸었다.

이미 3층 창가에서 기웃거리던 노인이 일행을 발견한 후였다.

무심하게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늙었다고는 하나 이들도 어찌 되었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들 아니겠나.

다들 신중하기 짝이 없었다.

“저처럼 기억이 거의 온전히 남아 있지는 않을 겁니다만…….”

그렇게 이동하면서 이순규는 유현과 최우식 그리고 재원 등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어찌 보면 탁상공론에 불과한 이야기들이었다.

제대로 된 실험을 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할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나 권위자가 끼어 있지 않나.

다들 의사인 데다가, 정유현은 최전선에 있던 의사요 학자였다.

최우식 또한 다른 관점에서 전문가였고.

“수행 기억이라고 하죠? 자전거를 타거나 운전을 하는 등의 기억. 이건 좀 다른 영역에 저장이 됩니다.”

게다가 기억은 정신과 의사인 이순규의 분야였다.

덕분에 이쪽으로 추론을 할 때만큼은 이순규의 지식이 절대적인 도움을 주었다.

“여기엔…… 비가 오면 피하는 습성, 그리고 더 안전한 곳을 찾는 습성 또한 일부 포함이 됩니다. 저들에게 숲보다는 당연히 건물이 훨씬 안전하게 여겨지겠죠. 확실히 이쪽으로 올지는 모르겠지만, 건물을 찾아다니긴 할 겁니다.”

“아……. 그렇군요. 딱히 좋은 소식은 아니네요.”

입을 연 것은 최우식의 아내, 서하나였다.

최우식과는 달리 행시를 붙은 엘리트 공무원인 그녀는 늘 그러하듯 냉정한 얼굴이었다.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요가 인다면, 무조건 좋지 못한 소식일 테니.

끼이익

하여간 일행이 문가에 도착하자 문이 열렸다.

차르륵

그리고 셔터도 올라갔다.

꽤 방호력이 있어 보이는 모양새였지만, 사실 본격적인 공격이 행해지면 살아남을 수 없을 만한 곳이기도 했다.

도심이었다면 노인들은 다 죽었을 터였다.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중 나온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유현 대신 아이를 바라보았다.

“정말이로구만. 그래, 안으로 들게.”

아이를 데리고 있는 집단은 선하다.

이 명제가 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노인은 이 명제를 철석같이 믿는 듯했다.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 집단은 악행을 저지르진 않았으니까.

뭐 그렇다고 딱히 희생을 자처하진 않았지만.

“네, 감사합니다.”

“아니……. 노인네 둘이 지내기가 적적하기도 했네. 사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친구들도 다 죽어 버렸는데.”

노인은 터덜터덜 안으로 향했다.

불이 들어온 지 오래된 보건소 복도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청소라고는 못 하지 않았겠나.

뭐가 보여야 하지.

게다가 노인 둘은 거동이 가능할 뿐,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아휴……. 이게…… 라드인지 뭔지 하는 거 아닌가?”

아니, 다른 노인 하나는 전보다 더 거동이 불편해 보였다.

여전히 3층 창가에 있었다.

이제 보니 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의자 두 개를 겹쳐서, 그 위에 앉아 있었다.

“아…….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순규를 보자마자 다소 무례한 말을 했는데, 이순규는 늘 그렇듯 그냥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럼 나은 건가? 정부에서 떠드는 치료제가 정말로 있는 건가?”

앉은뱅이 노인은 그런 이순규를 보면서 희망 어린 눈이 되어 물었다.

그러자 안내차 나왔던 노인이 그런 그를 타박했다.

“그게 말이 되나? 있으면 서울부터 썼겠지. 그리고 있으면 뭐 하나. 이미 다 죽었는데.”

벌써 죽었다는 얘기를 두 번이나 했다.

‘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딱히 더 수다스러워져서 이런가?

그건 아니었다.

노인은 전부터 사람이 고팠는지 말이 많았다.

경계를 하고 있음에도 입을 쉬지 않고 놀려 댈 지경이었다.

‘지금 물어봐도 되나?’

유현이 고민하는 사이, 이순규가 나섰다.

“죽어요? 누가 죽었단 말씀이십니까?”

정신과 의사답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너무 직설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나 노인은 그리 괘념치 않았다.

오히려 말하고 싶어 혼났는데 잘됐단 얼굴이었다.

“누구겠나. 마을 사람들이지. 평생 얼굴 보던 이들이 다 죽었어.”

“그건…….”

“이미 오래된 일 아니냐는 거지? 아냐. 아니야. 그렇게 생각을 했을 뿐이지. 눈으로 확인한 건 최근일세.”

“확인을…… 했어요?”

“그래. 자네들도 먼 길 온다고 고생했겠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고생했네. 사람이 확 는다는데 들고 있는 것만 믿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일흔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곤 나이에 비해서는 꽤 두꺼운 팔뚝을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서울 사람들이야 농사를 겨울에는 아주 논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네. 양파니 마늘이니 하는 것들은 가을에 심어. 시금치도 그렇고. 그것도 심고, 무나 배추도 그대로 남은 것들이 있어서 캐기도 했지. 그러다 저치가 좀 다친 거야.”

앉은뱅이 노인은 다리에 난 상처를 보여 주었다.

살짝 덧난 듯했는데, 항생제를 쓰면 금세 나을 것 같았다.

‘잘됐군.’

아이도 하나 보살피고 있는데 노인 수발까지 들게 되면 어렵지 않겠나.

유현은 치료가 가능한 상태라는 데에 만족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뭐 그것만 있는 건 아니지 않겠나. 원래 노인이 되면 집에 뭘 막 쟁여 두거든……. 나도 그랬고. 해서 집들을 좀 돌아봤어.”

“위험하진 않았습니까?”

“낫도 들고 있었네. 사실 뭐……. 최근 몇 주간 움직이는 걸 못 봐서 다닌 거긴 하지. 우리가 그리 담이 큰 사람들도 아닌데.”

“네, 그렇군요.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하여간……. 집집이 가는데…… 그 집에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더라고. 라드라고 하지? 그것들 시신 말여.”

“아…….”

집에 들어가 죽었다.

모두의 눈이 이순규를 향해 돌아갔다.

아까 말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라 그랬다.

뭐 태반은 본능에 의한 것이긴 하겠지만.

“놀라운 건…… 자기 집에 들어가 있더라고……. 그리고 찬찬히 뜯어보면 생전 모습이 있어. 누군지 알아보겠더라고. 망할…….”

그렇다고 해도 자기 집으로 갈 수 있다는 건 정말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 기억이 남아 있다는 거니까.

제길.

듣고 있던 모두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특히 이진호와 오예리가 그랬다.

전에 보았던 모자 라드가 떠올라서 그랬다.

“그 후로 좀 기분이 그렇네. 뭐 우리가 직접 죽인 놈들은…… 없긴 한데, 하여간 이게 영 사람 같아 보여서…….”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시죠. 사람이 다른 사람을 그렇게 죽이면 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아야 하는 법이니까요.”

“아파서 그런 건데도 그런가? 거 뭐……. 그런 법이 있지 않나?”

심신 미약을 말하는 듯했다.

유현은 그 말을 하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눈을 바라보았다.

아직 인간성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아니, 이걸 뭐라고 할까.

희망?

뭐 그런 것이 진하게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뭐……. 상황이 다르긴 하지.’

도심에 있었다면 이럴 수 있었을까?

아니, 살아남을 수 있긴 했을까.

어려웠을 터였다.

거기에 뛰어다니는 라드들은 그야말로 강력했으니.

‘이런 거야 뭐 찬찬히 얘기하면 될 일이고…….’

하여간에 집을 뒤졌다는 것 아닌가.

그 말은 물자를 더 얻어 냈다는 얘기일 터였다.

심지어 농사도 지었다고 했다.

거기에 대해 묻고 싶었다.

“그, 어르신.”

해서 입을 열려는데, 앉은뱅이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는 여전히 눈을 창가에 두고 있었다.

“잠깐. 잠깐만.”

그렇다고 변화가 없는 건 아니었다.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뭐가 오는데……. 눈이 침침해서……. 뭐가 저리 큰지.”

무언가를 본 모양이었다.

모두의 눈이 반사적으로 창가를 향했다.

‘초거대 개체…….’

2미터가 훌쩍 넘는 키, 떡 벌어진 어깨, 지나치게 발달한 근육.

녀석은 쿵쿵 소리를 내며 여유로운 태도로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일행은 그러한 녀석을 보며 기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저 새끼……. 냄새 맡고 있는 거 같지 않아요?”

이진호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총구를 창밖으로 내밀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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