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41화 (141/323)

141화 겨울 (2)

회의실은 적막에 휩싸였다.

각기 이유는 달랐지만, 여하간에 방금 본 장면은 지나칠 정도로 폭압적이었다.

세상에 그런 움직임이 가능한 놈이 있을 줄이야.

게다가 그러한 발상이라니.

다른 사람을 방패로 쓰고, 민간인부터 습격해 혼란을 야기했다.

이건…….

‘이건 숫제…… 인간이잖아?’

대위는 그런 생각을 하느라, 김태평이 몸을 일으켜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다른 병사들 또한 김태평을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모양새가 담배 한 대 땡기러 가는 느낌이라 그랬다.

이걸 봤으니 뭐 어쩌겠나.

그런 심정으로 옆으로 비켜서기만 했다.

‘1호가 살아 있어……. 이 시발. 이 미친!’

김태평은 그길로 숙소로 향했다.

숙소라고 해 봐야 팀원들과 함께하는 작은 방이었지만, 그 안에 있는 장비들은 썩 대단한 것이었다.

그중엔 나름의 통신 기기도 있었다.

쌍방으로 통하기는 어렵겠지만, 일방 송출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청와대는 여기서 절대적인 거리로만 따지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강변 테크노 마트. 1호 발견. 무리 수백 이상. 구원군 요청.

김태평은 그 송출기를 이용해 방송을 열었다.

약속된 주파수를 이용했으니, 청와대 측에서도 확인을 곧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인력 문제도 있고 할 테니 한 번 보낸다고 단박에 확인을 하진 못할 거란 생각에 반복 송출을 시켜 놓았다.

1분에 한 번.

‘이런 X 같은.’

표정 관리가 이토록 안 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김태평은 평정심이 무너져 있었다.

처음 1호를 봤을 땐, 그저 놀라움뿐이었다.

그러나 그 놀라움이 두려움이 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였다.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건…… 라드가 아냐……. 저건 군대다.’

비록 훈련도는 떨어지기야 하겠지만.

지휘관이 저 정도의 통제력과 지능을 갖추고 있다면 군대라 봐야 했다.

게다가 대위의 말과는 달리, 무리를 이루는 형태의 바이러스가 발생했다고 봐야 할 것 같았다.

저들의 행태는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질 않았다.

후방에 있는 놈들은 돌을 던지고, 전방에 있던 놈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달려들었다.

이건…….

‘그냥 우연히 묶인 놈들은 절대 일방적인 희생을 할 수가 없어……. 제아무리 대의가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

국정원 요원인 김태평은 누구보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았다.

요원들은, 민족과 국가로 묶인 데다가 그중에서도 애국심과 애착이 강한 인간들은 그야말로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 외에, 그러니까 묶인 정도가 약한 놈들은 그러지 않았다.

이득이 어마어마하거나 대개는 안전이 보장될 때나 움직였다.

‘이건 위험해……. 이곳이 오래갈 수 있을까.’

저기를 묶은 건 뭘까.

바이러스?

아니면 1호의 카리스마?

뭐가 되었건 이곳 테크노 마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곳은 이미 꽤 무너져 가고 있었다.

-강변 테크노 마트. 1호 발견. 무리 수백 이상. 구원군 요청.

김태평이 초조한 얼굴로 서성이는 동안에도 송출은 지속되고 있었다.

이게 닿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현대인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던 사회에 대한 신뢰는 사라진 지 오래니까.

그러나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그는 만약 응급 구조 요청 또는 마트에 대한 보고가 있을 경우 송출 후 대답을 듣기로 약정된 주파수로 라디오를 조정했다.

‘들을 거야. 권력에 미친 건 이놈들만이 아니야.’

대통령은 그야말로 권력욕의 화신이라고 보면 되었다.

대위는 기껏해야 이곳 하나를 희생시키려 들고 있지만 대통령은 무슨 짓을 했나.

다름 아닌 나라 전체를 망가뜨린 인간이었다.

아니, 어찌 보면 세계를 망가뜨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약 테러 집단에게 라드를 탈취당했을 때 바로 정보 공유에 나섰다면, 대통령과 관련된 이들 몇 감방 보내는 것을 끝으로 사태도 끝났을 수 있었을 텐데…….

슈우욱

이제는 다 끝나 버렸다.

대신 대통령은 그 자리에 건재했다.

심지어 선거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가 바라는 바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졌다는 얘기였다.

슈우욱

이런 생각을 깊이 이어 나가는 것도 어려웠다.

돌이 날아들고 있었다.

딱 하루 만에.

김태평은 한숨과 함께 라디오 음량을 0으로 맞추고, 대신 녹음을 눌러 놓은 채 밖으로 향했다.

슈우욱

라드들이 던지는 돌멩이는 기껏해야 3층이나 4층에 닿을 뿐이었다.

타다당

군인들이 총을 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가까이 올 수 있는 놈은 없었다.

물론 어제처럼 놈들이 희생을 감수하고 달려온다면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어제보다 오히려 방어 병력이 늘어난 지금, 그리고 충분히 자란 라드가 줄어든 지금 제대로 생각이 박힌 놈이라면 공격을 지시하진 못할 터였다.

그리고 실제로 라드들은 돌멩이만 던지고 있었다.

‘젠장.’

김태평은 역시나 저 무리는 군대란 생각과 함께, 그러나 우선 급한 것은 눈앞에 놓인 위기라는 생각을 하며 총을 쏴 대기 시작했다.

탕저격에 가까운 총질이었기에 김태평과 요원들이 따라붙자마자 라드들의 공격력이 확 줄어들었다.

삽시간에 대여섯 놈이 쓰러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야투경에 더해 사격 솜씨까지 대단해 가능한 일이었다.

“물러가는군……. 다행이야.”

대위는 김태평이 합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물러가는 놈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진심이 담겨 있다고 봐도 좋았다.

이러한 와중에 돌멩이까지 밤새 날아든다면, 그건 이미 지옥이었다.

안 그래도 민간인, 군인 가릴 것 없이 그제 여기 있던 이들 중 일부가 불안 증세를 호소하고 있었다.

“일단 수고했네. 혹시 모르니 계속…… 경계는 서 주게.”

“네.”

“부탁하지.”

“네, 대위님.”

대위도 사실 잠시간은 불안 증세를 겪었다.

하지만 욕심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덕일까?

그는 벌써 부하를 격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처럼 기민하진 못했다.

확실히 김태평은 어느 정도 놓여 있었다.

느슨하게나마 끈으로 묶여 있는 느낌이긴 하지만, 눈에 띄는 짓만 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얘기였다.

해서 그는 방으로 돌아가 라디오를 수신하기 시작했다.

유의미한 내용이 들어와 있진 않았다.

‘자나……? 시발……. 이게 말이 되나.’

아직 소식이 닿지 못해서일 터였다.

‘설마 송신이 안 되는 건 아니겠지.’

불안감이 일었다.

만약 이 메시지를 저쪽에서 보지 못한다면, 대위가 통제하는 통신 기기로만 대화가 통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곳은 조만간 무너질 수도 있단 생각이 일었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김태평의 음성은 분명히 송신되고 있었다.

심지어 저 멀리 충청도에 있는 유현에게도 드문드문하게나마 전달이 되고 있을 지경이지 않나, 서울에 있는 이들에게는 당연하게도 꽤나 똑똑히 소식이 들어갔다.

그중엔 남산도 끼어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박원상은 격양되어 있었다.

비록 실험에 경도되어 미친 짓거리를 하긴 했지만, 그건 외부의 시선에서 그러할 뿐이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박원상은 애처가였다.

폭격이 있기 전에는 나름 매일 또는 이틀에 한 번꼴로는 통화도 했다.

그 이후로도 종종 처의 안전에 대해 확인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걱정할 것 없다는 말이었다.

테크노 마트는 남산처럼 관리가 되고 있다는 답을 들었다.

“무슨 소리요?”

박원상의 말에 남산을 관장하던 군인, 정진영은 퉁명스러운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사실상 밥이나 축내는 존재가 되어 버린 지 오래라 그랬다.

물론 정부 측의 프로파간다에 쓰이고 있긴 하지만, 정진영이 보기엔 누구든 대체할 수 있는 존재였다.

“테크노 마트가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안전합니다. 거기 군인이 몇이나 있는지 아세요? 식량도 나름 공수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 이건 뭡니까!”

박원상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강경하게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굽실거리는 축에 속했다.

딴에는 아내의 안전을 확인하는 행위도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여길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스스로도 놀랄 만큼이나 큰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강변 테크노 마트. 1호 발견. 무리 수백 이상. 구원군 요청.

하여간 그런 박원상이 들이민 라디오에서는 꽤 깨끗한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진영 대령은 당장 알아듣지 못했다.

“1호?”

“1호도 모르는 놈이……!”

“가만, 가만.”

박원상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끼어든 것은 김조은 박사였다.

박원상이 실험에 경도되어 인간성을 저버렸다고 한다면, 그는 애초부터 인간성이 좀 결여되어 있던 인간 아닌가.

그렇기에 도리어 이런 상황에서조차 여전히 쓸모를 증명하고 있었다.

나름 정진영이 신뢰하는 조언자로서, 남산의 주축에 당당히 끼어 있었을 지경이었다.

“응?”

때문에 그의 참견은 유효했다.

둘 다 입을 다물고 김조은을 바라보았다.

“1호는 라드의 조상 격 되는 놈입니다. 이 목소리는…… 김태평 같은데, 잘못 봤을 거 같진 않군요. 유실되었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살아 있다라…….”

“중요한 정보입니까?”

대령의 말에 김조은은 박원상을 돌아보았다.

그의 아내가 마트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뭘 움직인다는 건 지나치게 위험한 일이고 또 무용한 일이었다.

애초에 정말 주요 요인으로 분류되었다면 지금까지 거기 있을 턱이 없었다.

“중요합니다. 백신 개발이 불가능한 것은…… 이미 바이러스가 너무 많은 갈래로 진화했기 때문인데……. 이놈은 그 원형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그럼…….”

그러나 1호는 중요했다.

이놈은 확보해야 했다.

단지 김조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확보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네, 그렇죠.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라드 무리가 수백이라는 건데…….”

“무리라는 건 또 무슨 소립니까? 설마 그…… 열몇 명 모여 다니던 게 수백이 되었단 얘길까요?”

김조은은 즉각 답하는 대신, 정찰병을 통해 들은 얘기를 떠올렸다.

남산의 최우선 목표는 청와대 측과 직접적인 연결을 이어 내는 것, 즉 둘 사이에 있는 라드를 박멸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없는 자원을 털어 밖으로 나돌고 있었는데, 그 결과 최근의 변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다.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확실히 이 바이러스는 진화가 빠르군요. 우리만으로는 무리입니다. 청와대 측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렇겠군요. 거기라면 군을 동원할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럼 마트는 무사하겠군요!”

잠자코 듣고 있던 박원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유가 뭐가 되었건 군이 출동한다면 마트는 구원받을 테니까.

김조은은 그런 박원상을 보며 가타부타 말을 잇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1호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게다가 그런 무리에서 발견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면 역시 이성이 남아 있다고 봐야겠지. 대규모 군을 보면 도주할 여지가 있어. 흠…….’

박원상의 바람과는 많이 어긋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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