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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46화 (146/323)

146화 붕괴 (2)

“빨리, 빨리!”

“하, 하악.”

박원상의 아내, 심현경은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간신히 참고 달리고 있었다.

뒤를 돌아볼 시간 따위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죽을 터였다.

죽음 그 자체에는 익숙해진 지 오래이긴 했다.

아직 낯설다고 말하기엔 너무 많은, 정말로 많은 죽음이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빨리, 빨리!

방금 들었던 톤과 정확히 같은 톤의 외침을 내뱉고, 아버지가 죽었다.

어머니?

어머니는 조우하지도 못했다.

연락이 닿지 않은 채, 그대로 끝이었다.

운이 억세게 좋았다면 어딘가에 살아남아 있을 수도 있겠지만 글쎄…….

-여보. 조금만 기다려. 조금만 기다리면 차례가 갈 거야. 남산은 훨씬 살 만해……. 그러니까 희망을 가지고…….

남편, 그러니까 박원상은 남산에 있었다.

그는 테러가 일어나기 직전, 남산으로 갔고 그 후로는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이쪽으로!”

“후우, 후우.”

지금 그녀와 함께 있는 사람은 박원상의 동생이었다.

그를 만난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다.

마트에서 만난 거니까.

“형은, 연락 없어요?”

“없어요.”

“이런 망할. 그 새끼……. 개새끼.”

시동생은 끊임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주로 형, 그러니까 심현경의 남편에 대한 욕이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럴 만하지 않나?

자세한 연유는 여전히 설명을 안 해 주고 있지만, 그녀도 동생도 바보는 아니었다.

박원상은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을 터였다.

그러면서도 가족은 챙기지 않았고.

“일단 가요.”

“네. 하아……. 이런 시발.”

둘은 어둠 속을 향해 뛰었다.

달빛에 의지한 채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쪽은 폭격이 진행되지 않아서 바닥에 뭐가 깔려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아스팔트가 군데군데 파이기에는 세상이 멸망한 지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 쭉 뻗은 길을 달릴 수 있었다.

“흐아아!”

단점도 있었다.

추격자에게도 조건이 같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라드는 같은 조건에서 일반적인 사람보다 훨씬 빨리 달릴 수 있었다.

심지어 같은 광량에서도 더 많은 빛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런 시발! 이쪽으로!”

“네, 네!”

둘은 필사적으로 뛰었다.

뛰면서 동생은, 그러니까 박원준은 벌써 몇 번이나 했던 생각을 떠올렸다.

‘버릴까…….’

천벌 받을 생각이라는 건 알았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고개를 젓고, 죽을 고비를 무릅쓰고 형수를 구해 냈더랬다.

그 덕에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끝이라고 생각했다.

테크노 마트는 안전해 보였으니까.

비록 좀 비굴하게 굴어야 했지만, 이따금 박원상의 아내와 동생이라는 이유로 주어지던 혜택도 점차 줄어들어만 갔지만.

그래도 죽을 걱정은 덜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만족스러웠다.

‘남편이란 새끼도 버리고 튀었는데…….’

그러나 테크노 마트는 무너졌다.

건물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었다.

그저 그 안에 거주하던 집단을 일컬을 따름이었다.

‘망할.’

박원준은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형수가 보였다.

솔직히 지금껏 짐만 되어 온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꼼꼼한 편이었던 형수는 그 자체로도 생활에 도움이 되었지만, 처음엔 박원상의 아내인 것만으로 일종의 특권층이었다.

그러나 이젠 끈 떨어진 연이었다.

“어, 어!”

“빨리 따라와요!”

“소, 손 좀!”

끈 떨어진 연이 어떻게 되던가.

그저 제멋대로 날아가다 바닥에 처박히지 않던가.

그 기세처럼, 박원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이런……. 이런…….”

“흐…….”

그리고 심현경 앞엔 쉼 없이 달려온 라드가 있었다.

거대한 개체는 아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비무장한 일반인 정도는 얼마든지 찢어 죽일 수 있는 존재였다.

문제가 있다면 그 뒤로도 꽤 많은 수의 라드가 눈에 띈다는 점이었다.

사실 이건 김선태 때문이었다.

1호, 그러니까 구심점이 사라진 라드 무리는 조각조각 찢겨 나가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밖으로 내달렸고, 그 결과 오히려 라드 무리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거리가 극도로 위험해져만 가고 있었다.

“어쩌죠?”

“음.”

김태평과 그 팀원들은, 그러니까 살아남은 5명은 이 광경은 고스란히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눈에 비치는 모습만 따지고 보면 심현경이나 김태평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김태평은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는 데 도가 튼 사람 아닌가.

‘1호가 잡혀갔구나.’

1호가 왜 마트에 집착했겠나.

아마도 거대한 식량 창고화를 꿈꾸고 있었을 터였다.

그렇기에 천천히 말려 죽일지언정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지 않았더랬다.

물론 대위 쪽에서도 경계를 철저히 하고 있어서 그렇기도 했을 텐데, 그것도 다 허사였다.

작정하고 공격을 감행한 특수 부대를 일반 알보병으로 이루어진 부대가 어찌 막겠나.

그것을 신호로 몰려들었던 라드가 갑자기 흩어지는 이유가 뭐겠나.

‘구해?’

김태평은 야투경을 통해 심현경과 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놈뿐이라면, 총알 하나쯤 소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 뒤로 따르는 놈들이 문제였다.

“협상 대상이 될까?”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정부 측에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여기 남아 있을 이유가 없죠.”

“그렇지.”

청와대에 있던 이들, 그러니까 현 정부의 핵심 인력은 그 본인들은 물론이거니와 가족들조차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남산 측에 자리한 이들도 그러했다.

하지만 박원상은 예외였다.

별 쓸모가 없다고 판단된 모양이었다.

‘프로파간다에는 써먹으면서 말이지……?’

어쩌면 박원상 본인이 강하게 뭘 요구했다가 팽당할까 봐 숙이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딱히 뭐…… 대가 강해 보이는 인간은 아니었지.’

김조은과 박원상.

둘 다 먹물이고,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인 건 같았다.

하지만 김태평에게는 차라리 뻔뻔하면서도 대가 강한 김조은이 더 나았다.

굳이 숙이지 않아도 될 때조차 팔랑거리는 박원상은 신뢰할 수 없는 놈이었다.

‘하지만…… 정유현에게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김태평은 스코프를 통해 라드를 조준했다.

놈은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그리고 눈앞의 작은 인간이 공포에 젖어 있다는 사실에 고양된 듯했다.

아마도 본능에 따를 게 분명해 보였다.

물겠지.

바이러스가 그렇게 시키니까.

퉁녀석이 입을 쩍 벌리는 순간, 김태평의 저격총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소음기가 달려 있었지만. 주변으로는 둔중한 소음이 번졌다.

보통의 총소리처럼 찢어지는 듯한 폭발음은 아니었지만.

하여간에 주변에 있던 라드들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정리해.”

“네.”

대략 열은 되었다.

적은 수는 아니란 얘기.

그러나 팀원들은 그럴 줄 알았건 몰랐건, 마치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별 망설임 없이 총을 쏘았다.

퉁퉁소음기에 의해 답답해진 총소리가 사방으로 울렸다.

아마 조용한 밤이었다면 꽤나 눈길을 끌었을 터였다.

건물 안에 있던 놈들이 뛰어나올 수도 있었을 테고.

그러나 오늘은 아니었다.

탕타다다다당

구심점을 잃은 라드들은 마구잡이로 날뛰고 있었다.

병력을 한데 모아 층계 쪽을 오를 것처럼 보였던 놈들이 갑자기 민간인을 물기 시작하질 않나, 멀쩡한 시신을 들고 튀질 않나…….

그야말로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고, 강 대위에게는 기회로 여겨졌다.

민간인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싸운다면 어쩌면 이길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런 이유로 인해 민간인들은 라드와 더불어 총탄에도 죽어 나가고 있었다.

“심현경 씨?”

그 모든 소란을 뒤로하고 김태평은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박원상의 아내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어, 어…….”

아직 제대로 된 의사소통은 어려워 보였다.

김태평은 한숨과 함께 뒤를 돌아보았다.

당장은 조용했다.

김선태도, 라드도 김태평의 돌발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일단 가면서 얘기하죠. 여기는 너무 위험합니다.”

“어…….”

해서 김태평은 심현경을 일으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를 구하기 위해 김선태가 보낸 팀이 타고 온 차량을 타고서였다.

안에는 나름 이런저런 물자가 실려 있었다.

애초에 김태평도 안에서 뭘 좀 들고나온 참이었고.

‘세종시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겠지.’

김태평은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저 멀리 어디에선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소름 끼치도록 늘 같은 모습이었다.

“근데, 팀장님.”

“응?”

“정유현에게 가면 뭐가 달라질까요?”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으려니, 옆에 있던 팀원이 물어 왔다.

모든 위험이 당장은 사라졌다는 판단이 서자마자였다.

안 그래도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아서, 김태평은 순순히 입을 열었다.

이런저런 걸 다 떠나서 여기까지 따라온 놈들에게는 자격이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전부 들어도 좋을 자격이.

“우린 이미 팽당하기 직전이야. 알고는 있지?”

“네, 그렇죠. 안 그랬으면 여기까지…… 왔을 리가 없죠.”

마트를 구원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정작 무슨 일이 있어도 구원이 가능했을 전력은 뒤로 빠졌다.

그리고 김선태 대신 선택된 것이 김태평이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 건지 모르면 요원 자격이 없었다.

“근데 우리를 구하기 위해 김선태가 왔어.”

“1호를 포획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그것만 목적이었으면…… 우리를 신경 썼을 거 같아? 성가신 일인데, 우리를 구하려 했잖아. 아끼는 마음에서일까?”

“그럴 리는 없겠군요.”

팀원은 머리를 두드리고 있는 김태평을 바라보았다.

“이 안에 든 거…….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의미 있어 보이는 건 정유현뿐이야. 그 사람 정확한 소재는 나만 알고 있잖아.”

“그렇죠……. 하지만 그 은신처에 계속 있을지, 없을지는…….”

“뭐 근처 어디에 있겠지. 애도 딸린 일행이야. 그 양반 성격에 버렸을 리는 없고……. 멀리 못 갔을걸.”

김태평은 머릿속으로 은신처 주변 지도를 떠올렸다.

차량을 이용할 수 있었다면 아마 40km 근방에 있을 테고, 도보로 이동해야만 했다면……. 진짜 근처에 있을 게 뻔했다.

“우선은 내려가는 데 집중하자고. 경기도는 상황이 어떨지……. 우리도 전혀 모르잖아.”

“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차량은 어느새 다리를 건너 잠실을 지나고 있었다.

한때 수많은 차들로 붐볐을 거리는 그저 비어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롯데 타워가 괜히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근처에 가 볼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저런 곳은 마굴일 테니까.

“이 개새끼가…….”

그 시각, 김선태는 시간이 지나도 복귀하지 않는 부대를 기다리다 못해, 김태평과 접선했을 장소로 이동한 참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한때 자신의 부대원이었던 이들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흩어지던 라드 놈들이 들고 뛴 것 같았다.

“라드의 습격을 받은 건…… 아닐까요?”

“우리가 주력 다 붙잡고 있었는데 무슨 라드. 얘들에 김태평까지 붙어 있는데 라드한테 당했다고?”

“아. 그럼…… 쫓을까요?”

김선태는 인상을 쓴 채, 다리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와 저기를 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

-최우선 순위 목표는 1호야.

그는 대통령의 말을 떠올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 우선은 남산으로 간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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