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붕괴 (3)
“후…….”
강 대위는 살아남았다.
지금 당장은 그랬다.
“얼마나 남았지?”
“서른…… 둘입니다.”
부상자?
그런 건 없다고 보는 게 좋았다.
물리면 그건 부상자가 아니라 감염자가 되어 버리지 않나.
물론 싸우다 보면 물리는 게 아니라 그냥 다치기도 하긴 했다.
그러나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부상이 아니면, 어차피 죽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나마 이곳이 제대로 돌아갈 때였다면 좀 달랐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하아.”
대위는 한숨과 함께 해가 닿는 곳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
그야말로 그가 쌓아 두었던 모든 것이 전부 다 파괴되어 버렸다.
사방에 핏자국이 있었고, 라드들이 미처 챙겨 가지 못한 시신도 군데군데 널려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 사지가 찢겨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도시락처럼 찢어 갔을 터였다.
개새끼들.
“어쩌죠?”
남은 이들은 병사들이 태반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민간인들은 이곳에서 마구잡이로 죽어 나가거나 감염이 되었으니까.
운이 좋거나 발 빠른 사람들은 도망쳤다.
태반은 그러다 죽었겠지만, 하여간.
“어쩌긴.”
대위는 혀를 차다가, 이내 눈길을 돌렸다.
라드들의 습격이라서 무너졌지만, 또 그들의 습격이라 남은 것들이 있었다.
우선 뽑자면 차가 남았다.
“잠실……. 잠실로 가지.”
“네? 거기는…….”
“어차피 여기는 너무 위험해. 여기만큼 라드가 많은 곳이 있을 거 같아? 대체 왜 끝장을 안 내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이 안에 있다가는 독 안에 든 쥐 신세야.”
“그건…… 그렇습니다.”
이동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사실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면 차라리 남산이나 청와대 쪽으로 향하는 게 나을 터였다.
거기는 뭐가 되었건 인간의 세상이니까.
하지만 대위를 위한 세상은 아니었다.
‘김태평의 흔적이 없었지. 뭐……. 못 찾은 걸 수도 있지만.’
대위는 당연하게도 김선태가 개입했다는 사실 따위는 알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자리를 차지한 알보병 출신인 그와 애초부터 초엘리트 부대를 이끌었던 김선태와의 간극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일 테니.
‘그놈이 튀어서…… 입을 털었다면 난 죽어.’
부하들?
얘들은 아마 살아남을 공산이 컸다.
아무리 청와대에 여력이 있다고 해도 훈련된 군인의 수는 부족할 테니까.
그나마 이놈들은 인간처럼 보이는 라드에게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이들 아닌가.
설령 그렇게 죽어 나간 게 라드처럼 보이던 인간이었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터였다.
대위 일행이 마주했던 현실은 그런 것에 흔들리는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녹록지 않았다.
“일단……. 남쪽으로 가지.”
“네.”
그렇게 해서 대위 일행은 잠실로 향했다.
여의찮으면 또 옮겨 다니면 될 일이지, 라고 생각했다.
병사의 수는 전에 이끌던 부대에 비하면야 적지만.
총 든 병사 서른이 지금 시대에 정말 적은 것이겠나.
부우웅
그 시각 김태평은 남으로, 남으로 향하고 있었다.
될 수 있으면 너무 큰 도로와 너무 좁은 도로는 피하고 있었다.
너무 큰 도로는 평소 오가는 차량이 많은 만큼, 습격의 대상이 되었을 것 같아서 그랬다.
너무 좁은 도로의 위험성이야 딱히 말할 필요도 없었다.
특히 구도심으로 내달린다는 건 그냥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군부대조차 견디지 못한 곳이 구도심이지.’
그중에서도 수원은 발군이었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도로망은 그 자체로 군부대에게 악재였다.
골목길로 들어서는 순간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당연하게도 폭격의 대상이 되었다.
“완전 다 날아갔군그래.”
“엉망이네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비행장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흐음.”
비행장은 당연히 피해 갔을 터였다.
거기를 일부러 박살 냈을 리는 없지 않겠나.
비록 신형 전투기가 배치되어 있는 곳은 아니라지만, 세상이 이렇게 됐는데 신형이고 나발이고가 뭐가 중요하겠나.
기동할 수 있는 전투기가 있다면 그걸로 족해야 했다.
‘공군 비행장이라면……. 안이 뭐 거의 작은 마을이지.’
마트도 있고, 숙소도 있다.
무엇보다 군인들도 있을 터였다.
총과 총알도.
‘청와대의 영향권 아래 있어도 문제고…….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어도…… 문제야.’
폐허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그나마 큰 곳일 터였다.
그곳은 뭐가 되었건 철조망이라도 처져 있으니까.
게다가 도심으로 작전 나가는 데 있어 공군은 대개 배제되었다.
그러니 인력을 그렇게 크게 소모하지 않았을 거란 얘기였다.
일단 폭격 자체를 그쪽에서 시행했으니, 그전까지는 멀쩡했을 거라는 건데…….
‘그 후에 무너질 리는 없겠지.’
폭격이 필요한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청와대에서조차 갑론을박이 꽤 있던 것으로 기억했다.
자기 땅에 폭격이라니.
시민이 죽어 나가는 건 필연 아니겠나?
그러나 일단 폭격을 하고 나서 확인된 효용성에 대해서는 딱히 이견이 없었다.
확실히 라드는 줄었다.
“지나가지. 마주쳐서 좋은 일보단 안 좋은 일이 많을 거 같으니.”
“네, 팀장님.”
만약 그렇다면 수원 비행장은 더 공고해졌을 터였다.
변화를 원할까?
글쎄.
물론 김태평은 어디를 가건 유용함을 증명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도 질렸다.
누군가에게 유용한 수단으로서의 의미만 갖는 삶은.
부우웅
다행인 것은 그를 따르는 이들은 어찌 되었건 간에 절대 충성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그는 별반 어려움 없이 폭격 전 최악의 도심지 중 하나였던 수원을 지나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여정에 더 커다란 어려움은 없을 터였다.
차량 여러 대가 이동하고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달랑 한 대뿐이라 더더욱 수월했다.
-1호 확보해서 남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잘했네. 김태평은?
-김태평은……. 구조팀을 살해하고 도망갔습니다.
-살해? 아니, 이놈이……. 은혜를 모르고.
시간을 잠시 돌려, 김태평이 아직 짙게 깔린 어둠을 헤치며 다리를 건너고 있었을 무렵 김선태는 대통령에게 보고를 올렸다.
워낙 중대 사항이었기에 지체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일단은…… 남산으로 가게. 하는 수 없는 일이지.”
-네, 각하. 죄송합니다.
“아니, 아닐세. 제일 중요한 일을 해내지 않았나. 자책하지 말게.”
-감사합니다.
대통령은 그 전화를 받으며 인상을 구겼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나라의 녹을 받아 처먹었다는 놈들이…….’
김태평 하나만 통제에서 벗어난 게 아니라서 그랬다.
비행장 중 그나마 연락이라도 되는 놈들은 청주밖에 없었다.
김해니 사천이니 군산이니 하는 곳들은 애초에 사태 발발 자체를 견디질 못했다.
제일 사정이 나았던 것은 수원과 서울이었는데, 두 곳은 폭격 이후 연락이 뜸해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숫제 끊겨 버렸다.
‘망했다? 말이 안 되지.’
특히 괘씸한 곳은 수원이었다.
상주 인원도 많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도심이 있다 보니 물자도 풍부할 터였다.
애초에 군부대는 안에 마트도 있지 않나.
예비군 훈련도 상시로 하는 곳이다 보니 숙소도 충분한 곳이었다.
‘2차 폭격만 제대로 하면……. 서울 수복도 꿈이 아니거늘…….’
라디오에서 예고했던 2차 폭격이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수원만 제대로 말을 들어줬다면, 가능했을 터였다.
“어쩌시렵니까?”
“뭘 어쩌긴 어쩐단 말인가. 일단은 둬야지.”
하지만 대통령은 일말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확실히 폭격 이후 통신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건 맞지 않나?
라디오로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보고가 없다는 건 좀 이상하긴 했지만.
김선태가 돌아오면 일단 수원 정찰이라도 보내 볼 생각이었다.
“그러다 놈들이 폭격을 감행하면 상황이 어려워집니다.”
그건 대통령의 생각일 뿐이었다.
밑의 군 장성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이게 공군에 대한 육군의 뿌리 깊은 적개심 내지는 피해 의식에서 발로한 의견인지 아니면 정말 합리적인 의견인지는 판단이 필요하겠지만, 하여간 그의 눈앞에 선 장군은 강경한 편이었다.
“폭격을 하면 어디를 한단 말인가. 설마 군인이 서울에다가 명령도 없이 폭격을 한다, 이 말인가?”
“명령 체계에서 벗어난 군인은 이미 쿠데타를 꿈꾸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어쩌잔 말인가.”
“청주가 있지 않습니까?”
“흐음.”
청주 비행장에 명령을 내려 수원을 폭격해라.
혓바닥이 긴데, 그걸 요약하면 딱 이랬다.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이미 나라 아니, 세계를 자기 권력 하나 지키겠다고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는데 비행장 하나 날리지 못할까.
‘같은 공군이고…… 비슷한 기수지.’
다만 대통령이 망설이는 데에는 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청주의 반발이었다.
수원보다 오히려 더 먼 곳에 있지 않나.
조절이 될까.
수원은 그나마 청와대의 무력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도 있을 텐데.
“그건 좀 더 고민해 보도록 하지.”
“음…….”
“왜. 자네도 쿠데타를 꿈꾸시는가?”
“네? 아니, 아닙니다. 저는 단지…….”
“그럼 일단 기다리시게.”
“네, 각하.”
대통령은 그 고민이 해결이 되지 않는 이상 섣불리 나서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결국, 남산에 달렸군그래.’
만약 남산에서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칼자루를 온전히 들고 올 수 있을 터였다.
어차피 남산에 있는 자들은 먹물들 아닌가.
그 샌님들이 판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모두가 모두에 대한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을 때, 유현은 평화로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아니면 라드들에게 야생 동물들이 잡아먹혀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조용했다.
그리고 이 고요가 마음에 들었다.
“교수님. 커피?”
“어, 그래.”
모두의 얼굴에 여유가 감돌기 시작했다.
양재원도 커피를 타 올 정도였다.
“날이 좋으니 쥐도 잘 자라고 아주 좋네요.”
김 주무관도 마찬가지였다.
일행 중 제일 표정이 어두웠던 이들이 이러고 있을 정도니, 나머지는 어떻겠나.
풀어질 대로 풀어지고 있진 않아도, 확실히 느슨해져 가고 있었다.
경계 서는 인원들조차 그랬다.
괜찮았다.
대개의 경우, 유현이 보고 있으니.
‘음?’
이순규 또한 완전히 긴장을 내려놓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호르몬의 탓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이랬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둘은 여전히 옥상에 오를 때면 언제나 사방을 둘러보았다.
차디찬 바람이 불어오고 있음에도 그랬다.
“유현아.”
“어, 나도 본 거 같은데.”
그 때문일 터였다.
둘은 사태가 터진 후 정말로 드물어진 광경을 놓치지 않았다.
부우우웅
차량이 달리고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도로에서.
“어, 어쩌지?”
차량은 하나.
뒤따르는 건 없었다.
이렇게만 보면 특별할 것은 없어 보이지만, 창가에 얼핏 비친 저거.
“총……?”
“총?”
“일단 숙여. 다들 숙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