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북상 (2)
이쪽을 보고 엎어진 라드.
작은 개체도 아니었다.
꽤 컸다.
같은 라드끼리라 해도 싸우면 두셋은 그냥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놈들이었다.
그런 게 셋이나, 무기에 당해 쓰러져 있었다.
“이거……. 사람이 찌른 건 아닐까요?”
같은 광경을 보다가, 최우식이 이리 말했다.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어서 그랬다.
각기 다른 무기에 당한 라드.
그걸 라드가 했다고 하면…….
무리를 지은 라드들이 무기를 쓴다고 하면…….
그건 너무 무섭지 않나.
“사람이 찔렀다기엔 이거 방향을 보세요. 수평도 아닙니다.”
시신에 난 상처는 확실히 위에서 아래로 나 있었다.
죽어 넘어져 있는 라드의 신장은 190 또는 2미터가량.
네덜란드면 또 모르겠지만, 세종시 인근 시골에 기골이 이만큼 장대한 사람이 있을까?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위에서…… 아래. 어디 올라가서…….”
그럼에도 우식은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별 소용 없는 일이었다.
정보 다루는 것이 업인 사람이 들고 온 정보 아닌가.
이미 검증이 끝났단 얘기였다.
“굵기도 너무 굵어요. 보통 사람 손으로는 쥐지도 못할 겁니다. 게다가……. 이 세 구 모두 이 비슷한 상처가 나 있습니다. 커다란 놈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으음.”
우식은 한숨과 함께 입을 다물었다.
대신 나선 것은 이순규였다.
그는 침착한 얼굴이었다.
“말씀 안 드린 게 있는데…… 아니, 잊고 있던 게 있는데.”
김태평은 그런 이순규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걸 타고난 사람이 연습까지 한 탓일 터였다.
‘이 인간은 또 다른 형태의 알파일까.’
물론 유추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이순규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케이스였고, 김태평은 정부 요원이니까.
유현은 아마 새로운 연구 대상으로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으리라 여기고 있었다.
이순규도 딱히 거부는 하지 않을 터였다.
인권 유린만 없다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단 사실에 기뻐할지도 몰랐다.
“원래 겨울을 견딜 작정으로 은신처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늘면서……. 그건 불가능해졌죠.”
이순규의 말에 김현철 소위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이순규는 그런 김현철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미 다 지난 일이란 뜻이 아니었다.
그걸 다 감안하고서 받아들였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그 후로 김 주무관도 들이지 않았나.
‘폭발 때문에 옥상에 있던 작물을 잃은 것도 있고.’
지척에서 벌어진 폭격은 생각보다 주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제 와 그런 것을 떠올리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현재도 고통스럽고, 미래는 더 고통스러울 세상에서 과거에 신경 쏟는 건 미련한 짓인 것 같았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떠나야 했던 이유가 있어요. 같이 다니던…… 김병규 씨라고 있었는데. 그분을 마트에서 잃었어요. 명백한 습격이었고, 무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라드가 저희를 쫓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영역을 확장하려 하고 있었죠.”
아침이 되면, 아스팔트에 놓여 있던 시신.
또는 이리저리 걸려 있던 내장과 사지.
비록 사람이 아닌 것들의 조각이었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보는 이의 두려움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이순규를 비롯해 이 자리에 있던 모두는, 그러니까 그 자리에도 있던 모두는 여전히 떠올리는 것만으로 몸을 떨었다.
“그 증거로 근방에 있던 라드를 하나둘 죽여 나가고 있었습니다. 공포로 인해 라드 중 많은 놈들이 도망갔죠. 아마 이 근방에 자리한 놈들도 있을 겁니다.”
“음……. 그 무리가 북상하고 있다는 뜻인가요?”
“가능성……이 있다는 얘깁니다. 이 정도로 압도적으로 라드를 해칠 수 있는 놈들이 많이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니,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별로 위로는 안 되는군요.”
김태평은 말만 듣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대화를 나누면서 주변을 살피는 것에 도가 튼 사람이었다.
특히 유현을 살피고 있었다.
‘이 침착한 인간이……. 흠.’
유현조차도 그 끔찍한 기억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모양이라고, 김태평은 생각했다.
‘그 말은 곧……. 그놈들이 보통 흉악한 놈들이 아니란 얘긴데.’
무리.
원래 무리를 이룬 놈들은 무서운 법이었다.
개인은 아무리 강해 봐야 한계가 있지 않겠나.
그러나 무리는, 그중에서도 규율이 있는 무리라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군대와 깡패를 나누는 것은 사실 무기가 아니라 규율과 규범 그리고 그들이 나누고 있는 공통된 목적이 아니었던가.
‘라드 무리가 북상할 이유는 전혀 없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만약 이 집단을 노리고 올라오고 있다면……. 이것들의 지능이 어떨지 감히 예상도 안 가는데.’
자세히 물어보니 습격이 있던 날 녀석들도 많이 다쳤다고 한다.
치명적인 상처였을 거라고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정유현이.
그 말은 곧 놈들이 복수를 위해 움직이고 있을 거란 얘기가 되었다.
아니, 아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무리 지은 놈들……. 동서울에서도 그랬지. 그 새끼들……. 생존자 무리를 급습해서 분명 무리를 늘리고 있었어. 놈들이 확인한 세종시 인근 생존자 무리가 여기뿐이라면……. 그 목적도 있겠지. 뭐가 되었건 간에……. 음.’
김태평의 얼굴 또한 드물게 굳어져 있었다.
욕설이 안 나온 게 다행인 상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라드의 사체를 발견한 곳은 그야말로 지척이었다.
놈들에게 쫓겨 도망치다가 죽은 곳이기야 하겠지만, 그 정체불명의 라드 무리도 이 근처에 와 있을 거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김선태보다는 이놈들을 더 주의해야겠군요.”
그때 유현이 입을 열었다.
밖을 내다보면서였다.
뭐 보이는 건 없었다.
하지만 표정은 마치 뭔가를 보는 듯했다.
“네, 저도 동의합니다.”
김태평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옥상에서 주변부 경계를 해야 하겠군요.”
“여차하면 뜰 수 있게 준비는 해 놨으니, 그건 다행이에요.”
“네. 하지만…… 여전히 날씨가 너무 매섭습니다. 가서 주변 정찰하기에도……. 그렇게 유리한 날씨는 아니에요.”
“그렇죠.”
식량이 충분하다고 말은 하지만 그건 아껴 먹는 걸 가정하고 하는 말이었다.
영양 상태가 다들 좋은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운동 부족도 체력 부진에 한몫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추운 날씨를 견딜 수 있을까?
벽도 없고, 유리창도 없을 가능성이 컸다.
아니, 숫제 라드들에게 쫓길 가능성도 있었고.
심지어 일행 중엔 노인도 있고 아이도 있었다.
“올라가는 건 최대한 미루도록 하죠.”
유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김태평은 여차하면 다 버릴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볼 때 지금 굳이 그딴 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명분이 되기도 하지…….’
게다가 정말로 군과 마주하거나, 혹은 그 근처의 생존자 무리와 조우했을 때 아이와 노인의 존재는 거의 무조건 호감으로 작용할 것이 뻔했다.
인간의 본성이란 그러한 법이었다.
본인이 직접 약자를 돌봐야 하는 건 부담이었지만, 그걸 해내는 이에게는 호의를 표하는 것.
“정찰도 필요할 것입니다만……. 오히려 그러다가 인력을 잃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 생각을 뒤로하고 김태평은 말을 이었다.
아까 보았던 사체들을 떠올리면서였다.
적어도 정찰 나가는 인원 정도는 방탄복으로 무장시킬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게 의미가 있을까?
그만한 굵기의 날카로운 물체를 라드가 던진다면, 꼬치가 되어 죽는 건 맨몸이나 방탄복이나 매한가지일 게 분명했다.
“그렇군요. 그렇다고 무방비로 있을 수는…….”
“강도 높은 위력 정찰을 나간다면 또 얘기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놈들의 정확한 병력을 모르니……. 혹 그때는 몇이나 됐습니까?”
“저희가 목격한 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하지만 결국, 라드 무리를 다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면……. 엄청나게 늘어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무리예요.”
“그 정도의 무력을 지니고 있다면 소수라도 문제가 될 겁니다. 붙게 되면 이기고 지는 게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 그렇죠.”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태가 아니라면, 무리와 조우했을 때 이쪽에 사상자가 발생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실제로 마트에서도 그러지 않았나.
김병규를 죽인 건 지금 따라붙고 있는 무리라지만.
실제로 김병규를 잃게 만든 건 꼴랑 둘뿐이었던 라드 모자였다.
심지어 그중 하나는 다리를 움직이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채비를 갖추되……. 경계를 확실히 해야겠군요. 전투보다는 도망에 중점을 두고요.”
“네. 그래야 합니다.”
유현과 김태평은 결정을 내렸다.
정찰은 하지 않고, 옥상에서 경계하되 무언가 징후가 발견이 되면 싸우는 대신 도망치는 것으로.
이 내용은 모두에게 공유되었다.
“라드가 온다, 이 말인가?”
“네.”
“하아. 이 나이에 고향을…….”
“놈들은 여기 있던 놈들하고 다를 겁니다.”
“그렇겠지. 인제서 하는 말이지만 댁이 지금처럼 심각한 표정 짓고 있는 걸 본 적이 없네.”
“아……. 그렇습니까?”
유현은 눈치채지 못했던 일에 얼굴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얼굴 여기저기서 전에 없던 긴장이 느껴졌다.
그럴 만한 일이긴 했지만…….
“바로 나아졌구만그래. 대단해.”
“아뇨, 억지로라도 이래야죠. 말씀 감사합니다.”
유현은 적어도 이 집단에 대해서만큼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같이 지낸 세월 때문만은 아니었다.
칼 같은 성격을 지니고야 있었지만, 유현은 기본적으로 그리 나쁜 사람이 못 되었다.
‘이제…….’
오예리, 최우식, 우식의 아내 그리고 지민이 등등은 딱히 따로 말을 전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전하긴 해야 하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위로나 설득이 필요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박원상의 아내였다.
“내가 해? 아니면 네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이순규 또한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장난스레 묻기는 했지만 표정만은 심각했다.
이 둘에 박원상까지 셋이서 놀았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지 않던가.
근데 하나는 감염자가 되었고, 또 다른 하나는 세상을 멸망케 한 장본인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이 관계를 돌이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는 게 더 쉽지 않을까.
“같이 할까.”
그런 유현에게 박원상의 아내는 껄끄러운 상대였다.
박원상이었으면 차라리 마음껏 미워할 텐데, 이쪽은 그것도 아니지 않나.
아마 남편이 뭐 하는지 잘 알지도 못했을 터였다.
“그래, 그게 낫겠어.”
그건 정신과 의사인 이순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딸까닥
둘은 거의 동시에 안으로 들어섰다.
퀭한 얼굴의 현경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