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포위 (1)
“수, 숙여!”
돌멩이만 날아들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따금, 공사장에서나 쓸 법한 철제로 된 창이 날아들었다.
콱유현은 방금 날아와 벽에 틀어박힌 포 같은 걸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게 대체 뭔 일이란 말인가.
“이런 시발.”
김태평은 그나마 좀 나으려나 하고 봤더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저 새끼, 강변에서는 이런 일을 겪지 못했던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변은 무너졌다.
김선태가 무너뜨린 것이긴 하니, 이놈들이 더 강하다고 해서 여기도 무너질 거란 예상을 하는 건 좀 지나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콱하여간 이따금 날아드는 창의 위력은 모골이 송연해지기에 충분했다.
“쏴! 어차피 저 새끼들은 우리 못 봐! 못 본다고!”
그 때문일까?
조금 전까지, 그러니까 돌멩이만 날아들 때는 그래도 조준 사격까지 하던 이들 중 김태평, 정유현 그리고 몇몇 김태평의 부하들을 제외하고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한 대 맞으면 아무리 옷을 두껍게 입고 있더라도 죽을 게 뻔했다.
“크아아아아!”
동시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괴성 소리 또한 사람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쏴! 병신아! 넌 훈련깨나 받았단 놈이!”
“어, 네. 네!”
그나마 팀원들은 김태평의 쪼임에 의해 소극적이나마 고개 들고 쏘고 있었지만.
재원이나 김 주무관 등등은 아예 총을 내려놓기까지 했다.
탕그나마 오예리가 있어 다행이었다.
그녀의 사격 솜씨는 나날이 늘어서, 이제는 이런 야간에서조차 두 방 쏘면 하나는 맞힐 수 있을 지경이었다.
라드들이 사방팔방으로 날뛰고 있는 와중임에도 세 방 중 하나는 꼭 명중시키고 있었다.
‘이 새끼들…….’
퍽 놀라운 일이라 볼 수 있었다.
김태평조차 오예리와 동률 또는 그보다 못하고 있었으니.
‘강변에 있던 놈들하고는 아예 다른데…….’
그놈들도 까다롭게 굴기는 했다.
매일 밤 와서 지랄했던 것부터가 그렇지 않나.
하지만 지금 이놈들처럼 하나하나가 무슨 정예라도 되는 것처럼 움직이진 않았다.
‘돌 던지는 것도 순서가 있나……?’
한 놈이 던지고 숨으면 또 다른 방향에서 날아들었다.
방향은 총구에서 튀는 불꽃 쪽이었다.
때문에 이쪽에서도 계속 위치를 바꿔야만 했다.
그 와중에 1층과 2층의 창도 계속 깨져 나가고 있었다.
탕그나마 오예리, 정유현 그리고 김현철 소위가 분전을 해 줘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아마 오늘 이 집단은 끝났을 터였다.
“물러난다! 그래도 방심하지 마!”
대략 열 개체 정도가 다친 듯했다.
그중 쓰러진 것은, 어두워서 제대로 확인이 불가했지만 유현이나 김태평이 파악하기론 두 개체 정도 되는 듯했다.
둘 다 오예리의 작품이었다.
“후…….”
머리.
머리를 맞혔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일행이 확보하고 있는 k2 소총의 화력으로는 한 발에 제압할 수가 없었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연사로 먹인다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 잔탄의 문제로 아껴 가면서 쏴 대는 경우엔 정말이지 쉽지가 않았다.
“다친 사람 있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저도.”
“저 살짝 유리창에 베였는데……. 이따 한 번만 봐주십쇼.”
그에 반해 이쪽은 사상자가 거의 제로라고 해도 좋았다.
그렇다고 해서 사기가 좋나?
그럴 수는 없었다.
“이런 미친…….”
군데군데 박혀 있는 창들.
그리고 놀려 있는 돌멩이들.
날아들 때는 그냥 띡 뚝 소리만 나서 잘 몰랐는데, 개중에는 이걸 과연 돌이라고 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것들이 있었다.
“이 근방에 이만한 돌들이 많이 있었나요?”
“그랬을 거 같지는 않은데……. 음.”
“그럼 이걸 들고 왔다는 건데.”
“무장을 챙겨 왔다고 생각하면…….”
정유현과 김태평은 야간 투시경을 벗고,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근거리에서 빛이 있는 곳을 볼 때는 오히려 에러가 발생해서 불편했다.
더 좋은 제품도 있기는 하다지만, 세상이 망한 마당에 그런 얘기가 의미가 있을 턱이 있나.
안 하느니만 못해서 애초에 다시 얘기를 꺼내는 사람도 없었다.
“군대인가.”
“원래도 이 정도였습니까?”
무장을 챙겨 포위 공격을 하고,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인 데다가 퇴각마저 질서 정연했다.
심지어 쓰러져 있던 동료 또한 수습해서 가지고 간 듯했다.
적어도 지금 봐서는 라드의 흔적만 보일 뿐 몸체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걸 군대라 하지 않으면 달리 무엇을 군대라 해야 할까.
김태평은 저도 모르게, 또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혀를 차고 있었다.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아니……. 아닌가.”
그런 김태평을 보면서, 유현 역시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과거를 헤집느라 그런 것도 아니었다.
방금 보였던 라드들의 모습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차를 타고 지금이라도 도망가는 것은……. 쉽지 않겠죠?”
“헤드라이트를 끄고 달려야 할 텐데……. 시골길인 데다가 정비도 안 되어서 개판이지 않습니까. 밤에는 절대 무리입니다. 어차피 소리가 커서…… 저런 거 날려 대면 정말 위험할 거예요. 장갑차라도 있으면 또 모를까.”
“그렇다고 낮에 도망간다면, 그건 더 위험하겠군요.”
“네. 농성을 택하는 것이 방법이 되기는 할 텐데…….”
농성이라.
둘은 농성이란 단어를 별 의미 없이 주워 넘기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엉망진창이라는 말이 실로 어울렸다.
옥상만 해도 그랬다.
아래층은 어떨까.
도저히 내려가 볼 용기가 당장은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런 망할.”
“어떻게 이런 일이.”
딱 하루.
그것도 온전한 하루도 아니고, 시간으로 따지면 한 시간 남짓한 습격이었을 뿐이었다.
“일단 내려가죠. 경계는…….”
“제가 계속 설게요. 진호랑. 원래는 양재원 선생인데, 저래서는 안 될 거 같아요.”
유현의 말에 오예리가 나섰다.
그녀가 턱으로 가리킨 재원은 말 그대로 안 될 것 같았다.
달달 떨고 있었다.
사타구니 사이에 누런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비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얼굴이 심각했다.
‘이런 망할.’
재원은 어떻게 봐도 전투원으로 써먹긴 어려울 것 같았다.
김 주무관 또한 겉으로는 재원보다 태연한 척을 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어기적어기적 걷는 것이 만만치 않게 겁에 질려 있는 듯했다.
“넌 고개 숙이고 있을 거면 뭐 하러 쐈냐?”
그사이 김태평은 잔탄 확인을 하고 있었다.
옥상에 넉넉히 준비해 둔다고 해 뒀는데, 예상보다 공격이 너무 격렬했다 보니 이쪽에서도 많이들 쏜 모양이었다.
당황하면 원래 실수를 하기 마련 아닌가.
아무리 김태평의 팀원들이 훈련이 좀 되어 있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 대한 훈련은 거의 되어 있지 않다고 봐야 했다.
“죄송합니다.”
“빨리 익숙해져. 매일……. 어쩌면 오늘 또 올 수도 있어.”
김태평도 훈련으로 이런 상황에 대비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남미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미로를 방불케 하는 빈민촌에서 북한 마약 브로커를 확보해 같이 도망치던 때.
그때 김태평은 중상을 입은 팀원 둘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만 했다.
“네.”
이번엔 얼마나 죽어 나가게 될까.
김태평은 떠올리기도 싫은 마음에 고개를 내젓다가 다시 잔탄을 바라보았다.
그 시간 동안 소모한 탄약은 각기 탄창 하나씩은 넉넉히 비웠으니 어마어마하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매일 이 정도만 쏜다고 해도 열흘이나 버틸 수 있을까.
‘대충 봐도……. 쉰은 되어 보였어. 그래도 열 놈이 맞기는 맞았어. 치료는 불가할 테니……. 이 싸움은 어차피 단기적이야.”
파상 공세를 일으킨다면 또 모르겠지만.
저 무리가 다라면, 아니, 다여야 했다.
하여간, 그렇다면 열흘까지 끌진 않아도 될 듯했다.
문제는 이 사태가 끝날까 하는 것인데…….
“으, 으아아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래로 내려왔다.
뭐가 되었건 잠은 자야 하지 않겠나?
오늘 또 온다고 해도 자야 했다.
잘 수 있을 때 자지 않으면, 상황은 더 어려워지기 마련이었다.
“뭐야.”
자려 했는데, 누군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
다쳤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열린 문틈 사이로 유현과 이순규가 들어가 있었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재원도 마찬가지였다.
우식도 있긴 했는데, 그는 지민을 보살피느라 안에 들어가진 못했다.
“아.”
박원상의 아내, 현경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하필 날아든 돌멩이에 맞았는지 피가 살짝 나고 있었는데, 신체적인 아픔은 비명의 이유가 아닌 듯했다.
동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공포에 질려 있었다.
완전히 열려서, 대체 무엇을 보고 있나 싶을 지경이었다.
“조용히…… 시켜야 해.”
의학에 있어서는 문외한이라 할 수 있는 김태평조차 심상찮음을 느낀 상황.
그러나 유현은 그보다는 밖을 두고 보고 있었다.
비명은 안 될 일이었다.
단순히 소음 때문에 노출이 될까 봐서는 아니었다.
그것도 문제는 문제겠지만, 이런 식의 비명은 약해 보이기에 십상이지 않나.
아무리 놈들이 무리를 이루고 지능이 있어 보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본능에 더 끌릴 터였다.
혹 오늘 또 이런 습격이 아니, 이보다 더한 습격이 이어지게 된다면…….
“일단 너무 놀랐어. 뭐라도…….”
“아니, 조용히 시켜. 우선은 약을 줘. 내일. 내일 해결해.”
“재우라고? 트라우마 생각하면…….”
그에 반해 이순규는 트라우마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액팅 아웃(Acting out, 자기 자신이 인식하거나 혹은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갈등을 표현하는 것) 할 때 재우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그 후에 생길 문제를 생각하면 찬찬히 봐야 했다.
“주변을 봐. 다른 사람들도 트라우마 생겨. 우리는 병원에 있는 게 아냐. 여기 의료진들이 아니라고.”
“그…….”
그러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니, 여유라기보다는 사치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빨리. 빨리 재워.”
“이런 망할.”
이순규는 잠시 고뇌하다가, 기어코 할돌을 꺼냈다.
“아아아아악!”
그동안에도 현경은 쉬지 않고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확실히 일행들의 질린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놀라운 건 재원이었다.
위에서는 그렇게 벌벌 떨더니 여기서는 또 꽤 의연했다.
‘하긴, 내과 레지던트가……. 하다 보면 훈련이 되지.’
이순규는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할돌을 찔러 넣었다.
약효는 대단했다.
“어. 어…….”
현경은 금세 고꾸라지듯 쓰러졌다.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제가 보죠.”
재원이 나서지 않았으면 곤란해졌을 터였다.
다행이었다.
다들 할 일이 있었으니.
김태평조차 잘 생각이 달아난 상황이었다.
그만큼 방금의 비명은 너무 처참했다.
말은 안 해도, 다른 이들 또한 무너지고 있을 터였다.
“잠시.”
“네.”
결국, 김태평은 유현과 함께 구멍 숭숭 난 창문 옆에 서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앉는 건 어려웠다.
사방에 깨진 유리 조각이 널려 있어서 그랬다.
겨울이라 칼바람까지 드나들고 있다 보니, 하루 만에 쉘터가 걸레가 된 듯한 느낌이 일었다.
“쥐……. 그거 범위가 얼마나 됩니까?”
“주변 몇 미터는 돼요.”
답은 중간에 끼어든 이순규가 했다.
신뢰감의 대명사라 해도 좋았다.
적어도 라드에 있어서는 그랬다.
“저놈들에게도 통할까요?”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는 답하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