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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56화 (156/323)

156화 포위 (2)

쥐.

그러니까 호르몬이 통할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좀 부정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말씀드렸었나요?”

유현이 어두운 낯빛으로 말을 이었다.

애초에 간결한 말투였지만, 그럼에도 요약을 하자면 아마도 지금 일행을 공격하는 무리로 추정되는 놈들이 기존에 있던 라드를 사냥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곧 호르몬에 뭔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지금 무리를 이루고 있는 개체를 확보하지 못했으니.

“하……. 그렇군요. 쥐, 이게 근접전에서 도움이 될 거 같았는데……. 이런 망할.”

여기서 또 요약해서 한 단어로 축약하자면, 사실상 절망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김태평은 욕설과 내면을 숨기지 않았다.

제아무리 훈련을 받았다고 하지만, 오늘 상황이 좀 그렇지 않나.

죽자고 도망쳐 왔더니 더한 새끼들이 건물을 숫제 포위하고 있었다.

쿵그는 벽을 주먹으로 치고는 말을 이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대로는 안 됩니다.”

주변을 돌아보기도 했다.

보이는 것은 별로 없었다.

애초에 따로 얘기를 나누기 위해 모였기에 그랬다.

여기 있는 이들 외에 또 올 만한 이가 있다면, 글쎄 오예리 정도나 있을까.

그러나 모두의 머릿속엔 이 집단의 사람들과 밖을 에워싸고 있을 라드들이 떠올랐다.

“우리 일행이…… 정예병이라고 해도 전투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에요. 그나마 며칠 정도는 견딜 수 있겠지만……. 그쪽 일행은 안 됩니다. 벌써 한계에 부딪힌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흐음.”

유현 또한 여러 얼굴을 떠올렸다.

박원상의 아내는 애초부터 총을 쥐여다 줄 생각도 없었으니 지금은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재원과 김 주무관 등이 떠올랐다.

아니, 이진호 형사도 사실 좀 무리하고 있었다.

‘오예리 형사 아니었으면……. 벌써 무너졌을 거야.’

경쟁심일까?

아니면 호승심?

뭐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선배인 오예리가 굳건한 이상 버티긴 할 터였다.

하지만 버티는 것과 잘 싸우는 것은 좀 다른 얘기 아니겠나.

‘아니지……. 나부터도…… 야간엔 딱히…….’

솔직한 얘기로 오늘 몇이나 맞혔던가.

탄창 두 개를 갈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맞힌 건 몇 발 되지도 않았다.

오예리가 있어 다행이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오늘 끝났을 수도 있었다.

“안에서부터 무너지느니……. 차라리 도망가야 할 거 같습니다.”

유현이 생각에 잠긴 사이 김태평은 말을 이었다.

이순규는 다른 생각을 하는 대신, 김태평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유현도 얼른 현실로 돌아왔다.

도망.

선택지에 없던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너무 앞당겨졌다.

“낮에라도……. 도망가야 합니다.”

“낮이요?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밤이라고 안전하겠습니까? 이놈들……. 당장 오늘이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습격했다면 우리는 몰살이었을 겁니다.”

김태평은 나 하나쯤 몸 빼내는 건 가능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말은 이렇게 했다.

근접전으로 붙으면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어지간한 개체라면, 죽일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밤이고, 여러 놈이 움직이고 있을 땐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이쪽은 총을 쥐고 있으니 유리할 수도 있겠지만, 저쪽도 딱 한 방만 맞히면 될 일이었다.

물리는 것만 얘기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주먹에 맞아도 위험했다.

“하긴, 그것도 그래요. 게다가…….”

“날이 갈수록 불리해질 겁니다. 저놈들과는 달리 우리는 생각이란 것을 하니까요. 불안감에 취하게 되면, 인간은 납득이 가지 않는 행동을 하기도 하는 법이죠.”

김태평은 이와 비슷한 경험을 사실 여러 번 해 보았다.

그중 몇 번은 진짜 절망적이었던 때도 있었다.

남미에서만이 아니라,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지역에서도 그랬다.

버마의 정글을 꼴랑 권총 하나에 총알 7발만 쥐고서 며칠간 지나야 했던 적도 있었다.

추격이 따라붙어서 불도 피우지 못했는데, 그때 김태평은 가장 이뻐하던 후배 하나를 잃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후배 본인의 손에 의해.

‘그렇게 훈련받은……. 자질도 뛰어난 놈도 자살하게 되는 게 절망적인 상황이지.’

일반인들이라면 어떨까?

이미 한 명은 무너졌다.

전력에 도움이 될까 아닐까를 고민할 정도가 아니라 그냥 짐 덩이였다.

협상의 카드로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없었다면 이미 버렸을 터였다.

‘뭐……. 이 집단은 그러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약자를 품고 있는 게 유리할 수도 있었다.

사람은 의외로 마음이 무너지면 몸도 무너지는 법이라 그랬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예외일 터였다.

“그럼……. 어떻게 하죠?”

“차라리 낮에…… 집결지를 정하고 각기 따로 도망가는 걸 제안하고 싶군요.”

“아, 모두 다른 방향으로?”

“네. 세 차로. 이미 짐은 다 실어 두지 않았습니까? 내일 날 밝는 대로 도망치면, 어쩌면……. 어쩌면 그게 제일 안전할 수도 있을 겁니다. 놈들의 허를 찌르는 방법이 될 수도 있어요.”

“흐음…….”

유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허를 찌른다.

과연 찔려 줄까?

이런 고민이 들긴 했지만.

‘확실히……. 이대로 있으면 우리는 다 죽어.’

진짜로 다 죽는다.

예언이라기보다는 확정된 예고 아닐까?

그것보다는 차라리 도망이라도 쳐 보는 게 생존 확률이 더 높을 수도 있었다.

포위된 마당이다 보니 뭔가 날아올 가능성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전파……하도록 하죠.”

“네. 그럼……. 팀은 원래 나눴던 대로 갈까요?”

“네. 그래야죠.”

“네. 집결지는……. 기왕 도망치는 거. 차로 놈들을 완전히 따돌리려면 수십 킬로는 북상해야 할 겁니다. 오는 길에 봐 둔 곳이 경기도 초입 근처에 있으니 여기로 하죠.”

“아, 네. 그러죠.”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순규를 바라보았다.

그는 또 다른 팀장이면서 동시에 심현경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 대가라고 하기는 좀 뭐한데, 김현철 소위와 이진호 형사에 김태평의 팀원 하나를 배정받았다.

“어쩔 수 없지.”

내키지 않는 결정이었다.

본래는 겨울을 여기서 나고 봄에 올라가기로 했었으니까.

그러다 돌연 안락함을 죄 포기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라드 무리를 뚫어야 하게 되다니.

“후.”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보니 더더욱 우울했다.

“그럼 준비하죠.”

김태평 또한 비슷한 심정이었다.

‘정유현……. 이 인간이 있어야 협상에 나설 수 있을 텐데……. 그렇다고 지금 같이 갈 수도 없고 말이지.’

망할.

속으로 욕을 주워 넘기곤, 팀원들에게 향했다.

그러곤 김 주무관에게는 유현과 함께 움직일 것을 요청했다.

“아.”

김 주무관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외에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도망가는 게 이제는 거의 뭐 일상이지 않나.

연구소를 버리고, 은신처를 버리고 이번에는 보건소가 되었을 따름이라고 생각하면 편했다.

몸은 솔직한 법이라 떨림이 쉬이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일행 중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원은 전부 도망가는 것에 동의했다.

“후.”

이순규는 유현과 함께 박원상의 아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많은 한숨을 내쉰 마당이었지만, 이번 한숨은 그 농도가 달랐다.

“미안하다.”

유현은 사과부터 했다.

이순규는 평소와는 달리 대번에 그 사과를 받지 않았다.

‘내가 정신과라 제수씨를 받아야 한다, 이 말이지?’

망할.

도망치다가 난리를 피우면 어쩌지?

미리 구속을 해 둬야 하나?

‘다른 사람들이 반발하려나?’

그건 아닐 터였다.

김현철은 애초에 박원상만큼이나 심현경을 증오했으니까.

이진호?

다를 게 없었다.

애초에 유현조차 그리 달가워하지는 않지 않았나.

박원상이 싸지른 똥은 그만큼 어마어마하다고 보면 되었다.

‘반발이 없는 게 오히려 더 문제일 수도.’

어쩌면 미끼로 써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몰랐다.

‘유현이라면……. 별 망설임이 없겠지.’

유현은 더 많은 사람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희생을 감내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하자면 이순규도 그럴 수는 있었다.

문제는 후에 있었다.

유현은 후회하지 않을 터였다.

스스로가 옳은 일이라고 여기는 일이었다면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순규는…….

“하아.”

생각만으로도 고통이 찾아왔다.

“진짜 미안.”

“아니, 그런 이유가 아냐.”

“흠.”

그리고 그런 종류의 고통을 이순규가 겪고 있을 것이라는 걸 유추하는 것쯤은, 적어도 유현에게는 별일 아니었다.

워낙 많이 보아 오지 않았나.

다른 이에 비해 유독 양심적인 친구는 이 때문에 지금껏 많은 손해를 봐 왔음에도 여전히 그리 행동하고 있었다.

남들 같았으면 이를 이용하겠지만, 유현에게 이순규는 이제 하나 남은 친구였다.

“그럼 내가 데려갈게.”

“어?”

“오예리 형사 사격 알지? 우리가 훨씬 유리할걸. 요원도 하나 있고. 오히려 나한테는 지민이 데려가는 것보다 이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적어도 약으로 재울 수 있으니까.”

“너…….”

이순규는 버릴 작정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렇다는 말을 들으면, 결국, 자신 또한 유현에게 버린 느낌이 들 것 같아서였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지만 때론 이러한 아웅이 정신 건강에, 더 나아가 인간이 무너지지 않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는 법이었다.

주로 그 주체였지 대상이 된 적은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두고 싶었다.

너무 고통스러운 선택이 될 것 같아서였다.

“난 괜찮아.”

유현은 그런 마음을 안다는 듯, 이순규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죄책감을 덜어 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덜어 내려는 것인지는 본인도 알 수 없었다.

“어차피……. 도망은 운에 달렸어.”

“운이라.”

“운에 기댄 적은 처음인 거 같은데, 어쩔 수 없지. 그럴 수밖에 없는 세상이잖아?”

“그렇긴 하지.”

운이라.

세상에 이처럼 무책임한 말이 다 있을까.

지나고 나서 운이 좋았다고 하는 것과, 일을 진행하기 전에 운부터 좋기를 바라는 것은 천양지차였다.

그러나 유현의 말대로 그럴 수밖에 없는 세상이었다.

얼마간 체념을 해야만 하는 세상.

“동……터 온다.”

이순규는 여전히 잠들어 있는 심현경에게서 눈을 떼어 밖을 내다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일행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비쳐 나오는 빛을 보고 있었다.

해가 보이진 않았다.

어스름한 새벽이다 보니 이슬을 넘어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어 그랬다.

“운이 좋군요.”

찢어지기 전에 모인 이들 중 김태평이 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운이 좋다고 볼 수 있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겠지만.

이 정도면 라드들이라 해도 정확하게 뭘 던지긴 어려울 테니까.

“그럼…… 다들 살아서 봅시다.”

노인들까지 해서 물경 스물에 가까운 인원이 제각기 찢어져 차에 탑승했다.

짐이 적지 않다 보니, 죄다 봉고차 수준으로 큰 차량이었는데 출력이 아주 좋은 차량은 또 없어서 시동 걸 때부터 묵직한 느낌이 일었다.

특히 질량이 많이 나가는 이순규가 탄 차량이 그랬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말을 보태진 않았다.

그저 다들 살아서 보자는 말을 곱씹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당연한 순간에는 떠들어 댈 만한 말이 아니지 않나?

필경 누군가는 죽게 될 것이란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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