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탈출 (5)
끼이익
농공 단지는 전체적으로 낡아 있었다.
사태가 터진 지 기껏해야 몇 달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망가진 곳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의 하나가 경첩이었다.
움직이지 않은 채로 방치된 경첩은 문을 여닫을 때마다 소름 끼치는 소음을 수반했다.
“흡.”
그 때문에 가뜩이나 지쳐 있던 몇몇이 진저리를 쳤다.
생각해 보면 차 타고 온 이들은 체력적으로 지칠 만한 일이 별로 없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나?
산을 넘어온 것도 아니고, 그저 차에 타서 뒤에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돌멩이, 그리고 그로 인해 깨져 나가는 창문이 여전히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무엇보다 이들은 새벽부터 내내 깨어 있는 상황이었다.
찰박
그런 일행을 뒤로하고 오예리와 김태평이 앞으로 나섰다.
이순규와 김현철 등이 일행을 지키기 위해 열린 문틈 그리고 창문 부근을 두리번거렸다.
사실 문 말고도 놈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은 많아서 그랬다.
돌멩이가 아니라 그저 주먹만으로도 이 정도 유리창은 박살 내고 들어올 수 있었다.
말이 농공 단지지 대개의 건물이 가건물이다 보니, 벽도 부서질 가능성이 있었다.
찰박
그 때문일까.
일행 전원의 긴장도는 더없이 높아져 있었다.
차 타고 도망치던 우식이 머리에 돌멩이를 맞아 살짝 다친 탓도 있었다.
재원은 그의 간호를 도맡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당장 뭐가 어떻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힘들 뿐이었다.
“거기 누구지?”
오예리와 김태평도 나서야 할 것 같아서 나섰을 뿐, 지쳐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유현이 아니라면 그냥 연사로 놓고 탄창 하나를 비울 작정으로 쏴 댈 작정이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교수님이시군그래.”
“오 형사. 김 요원……. 하.”
유현이었다.
“어, 어!”
그는 이 말을 끝으로 혼절하듯 쓰러졌다.
오예리는 앞뒤 잴 것도 없이 그를 받치기 위해 바로 튀어 나갔다.
다행히 유현이 바닥에 머리를 꼬라박기 전에 발등으로 받칠 수 있었다.
“물린 거 아닙니까?”
그에 반해 김태평은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그래야 하는 세상이기도 하고.
한번 물리면, 그가 누구였든 간에 적이 되어 버리지 않던가.
유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김태평은 유현도 이렇게 행동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안 물렸어요…….”
유현은 다리에 힘이 풀리긴 했지만, 의식까지 잃은 상황은 아니었다.
“근데 여기 이렇게 있으면 물린 것만큼 위험할 거 같긴 하네. 나 좀 부축해 줘요.”
“인간적인 모습이라니……. 진짜 안 물린 거 맞습니까.”
“인간적이라고 하고 그런 걸 물어요?”
“사람이 바뀌면 의심부터 하는 게 직업이라.”
“그만큼……. 힘들……. 후우.”
그렇다 해도 멀쩡하진 않았다.
당연하지 않겠나.
사람 하나를 끌고서 산을 탄다는 건 누구에게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비가 그렇게 내리는 상황에서, 우산도 뭣도 없이 넘어온 마당이지 않나.
유현은 끓어오르는 피로감에 한숨을 토해 내고는, 말을 이었다.
“일단 들어가죠. 할 얘기도 있으니.”
“그러죠. 읏차. 아유, 체격이 좋아서 그런가 무겁네.”
“으아아.”
그런 유현을 김태평과 오예리 둘이 부축하고는 비 오는 거리를 한 발자국씩 나가기 시작했다.
찰박
찰박
쉽게 그칠 비가 아니지 않았나.
애초에 물이 빠질 만한 설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던 곳인 데다가, 관리도 안 되어서 그런가. 사방이 물바다였다.
순식간에 옷이며 신발이며 죄 젖어 들어갔다.
그럼에도 일행 중 누구 하나 불만을 품는 이는 없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지.”
“네.”
“후우…….”
유현은 일단 불만이고 나발이고 품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미 죄 젖어 있었고, 물먹은 솜처럼 지쳐 있어서 그랬다.
나머지 둘은 상황이 꽤나 달랐는데, 그럼에도 그저 여상한 태도로 웅덩이를 밟아 나갔다.
그때마다 진흙과 물 그리고 차가운 바람으로 인해 X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도 그렇지만 그 새끼들도 고생이겠지.”
“그렇죠. 확실히……. 이성이 있다는 게 마냥 무서운 일인 것만은 아닌 거 같기도 해요.”
그 X 같은 기분을 그놈들도 느끼지 않겠나?
쫓기면서 봤는데, 그 자식들이라고 해서 무작정 달려드는 건 아니었다.
괜히 돌멩이 던지고 쇳덩이 던지고 한 게 아니란 얘기였다.
놈들도 나름대로 피해를 최소화하고 싶어 했다.
몸을 사릴 줄 안다는 얘기였다.
끼이익
하여간 일행은 유현을 부축한 채로, 역시나 삐걱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다고 딱히 온기가 끼쳐 오진 않았다.
겨우겨우 자리 잡은 마당에 뭐 어쩌겠나.
다만 유현을 웃게 만든 건, 다른 이들의 반응이었다.
“교수님!”
일단 우식을 보고 있던 재원이 달려왔다.
의학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데다가, 뭐가 되었건 심적으로 제일 의지하고 있는 사람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교수님. 걱정했습니다.”
“저도……. 정말 다행입니다.”
“휴……. 교수님 잘못되었으면 정말…….”
그 외에 이진호, 김현철 그리고 김 주무관 등등 모두가 유현을 반겼다.
“역시……. 이렇게 오실 줄 알았어요.”
우식의 아내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그녀만은 유현의 뒤를 바라보았다
허공뿐인, 그마저도 문이 닫히고 나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근데……. 현경 씨는요?”
딱히 둘 사이에 어떤 교류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우식의 아내는 현경과 나름의 유대를 느끼고 있었다.
같은 여자여서만은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힘든 상황이지 않나.
우식의 아내가 아무리 거뜬히 견디고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실상은 매일같이 울부짖고 싶었더랬다.
‘애가 있는데 어떻게 그래.’
그러나 엄마는, 자식을 앞에 둔 엄마는 힘들어도 힘든 티를 낼 수 없는 법이었다.
자신이 흔들리면 지민도 흔들릴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어서 그랬다.
지금도, 그러니까 우식이 다친 상황에서도 그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현경은 일종의 투사체였다.
“아.”
물론 유현은 그러한 내막을 전혀 알지 못했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고.
다만 얘기할 내용이 현경이긴 하지 않았나.
유현은 후 하고 한숨을 쉬면서 벽에 기대었다.
상당히 뜸을 들이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으나, 그 누구도 유현을 보채지 못했다.
따뜻함을 원해 지펴 둔 장작불에 슬쩍슬쩍 비치는 유현의 얼굴과 몸이 워낙에 엉망이라서 그랬다.
단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을 것 같은데, 눈에 비치는 모습조차 그러니 다들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하아.”
아닌 게 아니라, 유현은 정말로 지쳐 있었다.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하지.’
또 머리도 굴리고 있었다.
‘이게 이상해 보이긴 할 텐데…….’
모두에게 오픈할 수 있는 얘긴가?
‘안 되지.’
괜한 분란을 조성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지 않나.
아는 사람을 관찰하겠다는 건…….
그것도 심지어 일행이었던 사람을 관찰하겠다는 건, 어떻게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현경이는…… 놓쳤어요. 저도 쫓기느라.”
“아.”
“그렇군요.”
유현의 말에 나머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평조차 그랬다.
의심하는 것이 직업이자 특징인 그에게도 지금 유현이 하는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저 행색에 다른 사람을 챙겨서 같이 도망친다고?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물 좀 먹을 수 있을까요?”
“아, 네. 여기.”
“네. 그리고 잠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유현이 자신을 꼭 짚어서 물을 요청했다.
‘뭐…… 다른 일이 있었나? 하긴……. 할 얘기가 있다고 했었지.’
그 순간 촉이 왔다.
해서 물을 주고는 차분히 기다렸다.
은근슬쩍 구석으로 이동하면서였다.
그러곤 새 옷을 꺼내어 늘어놓았다.
“이쪽으로 오셔서 옷부터 갈아입죠.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입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자연스레 멍석을 깔아 주었다.
유현은 그렇게 그쪽으로 이동하면서, 오예리의 등을 쳤다.
신호를 알아들은 오예리는 이진호, 이순규를 불렀다.
의심하고 보면 참 수상쩍은 상황이었으나, 나머지 인원 중에 불만을 제기하는 이는 전혀 없었다.
어차피 누군가가 일행을 이끌어야 하지 않나.
유현은 지금까지 어찌 되었건 잘해 왔고, 또 오늘도 살아남았다.
그런 그에겐 자격이 있었다.
비밀 얘기를 대놓고 수군거릴 수 있는 종류의 그런 자격.
“후우.”
유현은 일단 외투부터 벗었다.
물에 푹 젖어 있어서 그런가, 그것만 벗었는데도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현경이는 죽지 않았어요.”
그는 웃옷까지 벗어다 옆에 늘어놓고는, 입을 열었다.
찰박거리는 소리에 이따금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까지 모든 것이 일행의 대화를 돕고 있었다.
“대신 물렸어요.”
“네?”
“쉿.”
“아, 네.”
오예리가 흠칫하고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일행은 쉬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니, 의식적으로 딴짓을 하고 있었다.
괜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일단……. 재갈을 물리고, 묶은 채로 끌고 오긴 했는데, 여기까지는 데리고 오지 못했습니다.”
“아니……. 교수님. 정말 대단하신데요?”
오예리와는 달리 김태평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을 했냐, 뭐 이런 태도였다.
“대단했으면 안 물리도록 했겠죠.”
“뭐……. 그렇긴 하지만요.”
일부러 물리게 했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말까진 하지 않았다.
김태평은 그렇게까지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하여간……. 무리를 이루고 있던 놈들 중에서도 유별난 놈이었어요. 지능이 뛰어난 놈이었죠. 아마 주축이지 않을까 싶은데…….”
“흐음.”
“음…….”
“그놈에게 물린 사람이 어떻게 될지. 그걸 알아야 대처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부담스러운 말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망설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 말을 아까부터 벼르고 있었으니.
오히려 말문이 막힌 것은 나머지였다.
특히 오예리와 이진호는 음 소리만 내고 있을 뿐, 의미 있는 음절은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야.”
처음 나선 것은, 그러니까 김태평을 제외하고서 말하자면 이순규였다.
“안정제로…… 재운 거지?”
“응.”
“제수씨는 몸 상태도 아주 안 좋은 상황이라……. 안정제가 잘 먹힐 거야. 다행히, 안정제는 많아. 영양을 충분히 공급하지 않는다면, 몸이 급속도로 불어나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 대처가 충분히 가능할 거야. 나는 우선적으로 대화가 되는지. 그게 궁금한데. 그렇다면…….”
이순규의 의도는 유현이나 김태평의 의도와 같지는 않았다.
그는 치료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니, 치료라고 하면 좀 거창했다.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터였다.
“뭐가 되었건, 지금 나무에 묶어 놨거든? 도저히 나 혼자서는 데리고 올 수가 없어서.”
“아……. 어디쯤?”
“일단 날 밝으면, 그때 나랑 같이 가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어차피 여기 있는 차나 물품 같은 거 뒤져야 할 시간이 필요해. 놈들이 올 수도 있긴 한데……. 기온이 뚝뚝 떨어지고 있잖아. 놈들한테도 불리한 조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