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한겨울 (3)
“호흡이 너무 거친데…….”
지민이 문제였다.
괜히 어린아이들에게 백신을 그냥 맞혔겠나.
다 이유가 있었다.
노인과 아이들은 성인에 비해 독감에 취약했다.
노인이야 노화해서 그렇고, 아이들은 아직 덜 자랐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벌써 액세서리 근을 쓰고 있어.”
“흐음……. 지금 할 수 있는 건…… 일단 약을 쓰는 것뿐인데.”
순규의 말에 유현이 합류했다.
아무래도 이쪽은 정신과 아닌가.
좋아졌다, 안 좋아졌다 정도는 판단이 가능할지 몰라도 그 이상은 무리였다.
그에 반해 유현은 어떤가.
그야말로 감염의 전문가였다.
그는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는 안으로 들어가 지민을 살폈다.
‘확실히 폐 소리가 안 좋아졌어. 이거…… 좋지 않은데.’
그나마 노인보다는 나을 터였다.
아이들은 이러다가도 호전되면 한 방에 낫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아야 문젠데…….’
타미플루?
이건 이미 쓰고 있었다.
세포가 어떻게든 독감 바이러스와 싸우고는 있다는 얘기였다.
문제가 있다면 이길 때까지 숙주가 버텨야 할 텐데, 이건 시간 싸움이라는 점이었다.
‘중환자실로 내리면야…… 별 걱정할 정도의 수준은 아냐.’
호흡이 힘들어 보인다고 해도, 갈비뼈 사이의 근육을 쓰고 있는 것일 뿐 실제로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고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러니까 가스 교환은 된다, 이 말이었다.
아직 삽관을 고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얘긴데…….
“산소는 주는 게 좋겠어. 스테로이드도 더해야겠고.”
“약은 있을 거야. 근데 산소는…….”
“산소는 없지.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
“알겠냐?”
“요원님은?”
“저요?”
그래도 산소를 준다면, 부담을 확 줄일 수 있을 터였다.
가뜩이나 아프고 힘들어 죽겠는데 호흡에 필요한 열량마저 훅 올라간다면 어떻겠나.
이러다 입을 이용한 호흡이 시작되면 그때부터는 사실상 어려워진다는 얘기가 되었다.
그 전에 도움을 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순규도 김태평도 그저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망할. 그럼…… 기도라도 확장시켜야지. 벤톨린도 좀 가져와 줘.”
“어……. 알았어.”
산소.
늘 주변에 있는 거다 보니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막상 환자가 생기고 보니 절실했다.
“그…… 식물……. 식물이라도 들고…… 쿨럭.”
그의 얼굴을 보며 서하나가 말했다.
어머니의 표정을 하고서였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설령 그것이 비합리적인 일이라 해도…….
‘의미는 없을 텐데…….’
식물을 둬서 산소 농도를 높인다.
발상은 좋은데, 사실 의학적으로 사용되는 산소는 농도가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정상적인 대기 분포를 아득히 뛰어넘어야 해서 그랬다.
그걸 식물로?
‘그래도 안 된다고 하는 것보단 낫지.’
유현은 서하나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래, 제수씨. 내가 가져올게요.”
“네……. 꼭 좀…….”
“그사이에 지민이 등 좀 두드려 줘요. 가래가 많지는 않아도, 그렇게 제거를 해야 호흡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테니.”
“네.”
유현은 그렇게 잠시 환자를 맡기고, 식물을 들여다 놓았다.
그러곤 이순규가 들고 온 약을 주사하고, 벤톨린을 흡입하도록 했다.
산소를 직접 주는 게 아니다 보니 팍팍 좋아진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까보다는 한결 나아 보였다.
“그럼 좀 더 보죠.”
유현은 그 말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서하나는 유현을 붙잡고 싶었지만, 일단은 두었다.
다른 방에도 환자가 많다는 걸 모르지 않아서 그랬다.
그중에서도 심각해 보이는 이들이 몇 있었다.
노인 둘이 그랬고, 또 김현철 소위와 요원 하나가 위중하다고 들었다.
그에 반해 이쪽은 뭐가 되었건 우식이 있으니 남들보다는 나을 터였다.
“후…….”
회진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방마다 돌면서 환자를 보고, 필요한 조치를 취한 유현은 마지막으로 현경이 있는 방 앞에 섰다.
혼자서는 아니었다.
김태평 요원과 이순규가 함께했다.
진료가 문제가 아니라 위험할 수도 있어서 그랬다.
‘뭐……. 그럴 거 같지는 않은데…….’
제아무리 ARS 바이러스라 해도 비쩍 마른 숙주를 가지고 뭘 할 수 있겠나.
그래도 제대로 좀 쌓인 에너지가 있고 또 감염 이후 뭐라도 보충이 되어야 하는 법이었다.
심지어 현경은 지금 아프기까지 했다.
일행을 괴롭히고 있는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거의 확실해 보였다.
기침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호흡음도 좋지 못했고, 무엇보다 열이 어마어마하게 났다.
40도에 육박했는데, 약을 먹여도 잘 듣지 않았다.
덜커덕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러나 무기를 꼬나 쥔 채로 문을 열었다.
나머지 둘도 마찬가지인 데다가 다들 한가락씩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걱정할 건 없어 보였다.
“음?”
그렇게 안으로 들어선 세 명의 눈에 들어온 것은, 상대적으로 멀쩡해 보이는 현경의 몰골이었다.
격리된 방을 볼 수 있는 창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이렇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올 때만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확실히 어제보다도 더 나아 보였다.
그냥 몸 상태만 나아 보인다는 건 아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읍.”
정신도 정제되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일반적인 감염자하고는 확연히 달랐다.
아마 그럴 수밖에 없긴 할 터였다.
무리에 속한 놈이 물었으니, 바이러스의 종류도 상당한 변이를 겪은 놈일 텐데 숙주의 상태 또한 특이하지 않았나.
“안 되지.”
그렇다고 풀어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유현은 아직도 이 무리를 이루던 놈들이 어떤 식으로 공격을 했는지 눈앞에 선했다.
특히 마지막 놈.
그러니까 현경을 물고 통쾌하다는 듯한 웃음을 흘리며 사라졌던 놈.
놈이라면, 혹은 놈보다 더 지능이 높아진 놈이라면 이 정도 기만술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터였다.
“으으읍.”
현경은 말을 이어 나가는 듯했다.
태도가 너무 차분해서 그녀는 정말로 아프지 않아 보였다.
고열로 펄펄 끓던 것이 무색할 만큼이나 멀쩡해 보였다.
“이상한데…….”
독감에 걸린 지 이제 고작해야 이틀째였다.
정상적인 질병 경과라면 지금이 피크거나 피크 직전이어야만 했다.
타미플루를 쓰는 경우라면야 애초에 48시간 이후로는 호전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라지만, 현경에게는 타미플루가 아닌 흔한 약만 썼으니 정상적인 질병 경과를 보여야만 했다.
그런데.
“열이 안 나.”
“어…….”
“그렇네요? 너무 멀쩡해 보이는데요?”
셋은 체온계에 뜬 정상 온도를 믿지 못해 각기 손으로 현경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
여전히 쇠약해 보이는 몸이었지만, 일단 열은 없었다.
심지어 정신도 온전해 보였다.
사지가 결박된 탓에 제대로 된 관찰은 어려웠지만 쓸데없는 발버둥도 별로 없어 보였다.
“진짜로…… 검사를 해 보고 싶어지네.”
이게 박원상이 느꼈던 충동인가?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능한 기전을 떠올렸다.
현재 현경의 면역력이, 그러니까 외부의 침입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이 남들보다 더 뛰어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유전적인 요인이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뭘 먹어야 싸울 수 있을 테니.
‘카니발리즘……?’
안에서 혹 생존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ARS-24와 독감 바이러스 사이의 경쟁 때문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독감 바이러스가 죽어 나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단 얘기였다.
설마하니 둘이 죽자고 싸울 리는 없어 보이긴 했지만.
약한 무리는 단지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만으로도 죽어 나가기 마련 아니던가.
게다가 ARS는 인위적인 조작이 다분히 들어간 바이러스이니만큼 일반적인 행태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더 이성이 남았나?’
제아무리 약한 무리라 해도 뭐가 되었건 열이 나게 만들고 호흡음을 한때나마 망가뜨렸을 정도로 몸을 점거하지 않았나.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건 아무래도 열일 터였다.
40도를 넘나드는 열은 우리 몸을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병원균의 활동을 억제하니까.
‘교차 감염이라…….’
유현의 눈이, 즉 감염내과 전문의의 눈이 번뜩였다.
그와 동시에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쩌지?”
그만의 고민은 아니었다.
오히려 먼저 입을 연 것은 이순규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현경에게는 딱히 희망이 없어 보였다.
다른 이들보다 더 격렬한 반응을 보였던 데다가, 애초에 말라서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 보였다.
“뭘 어째?”
“밥을 더 줘야 하는 거 아냐? 확실히…… 체중이 줄었어, 오히려.”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도, 현경이 살아나고 있다는 하나의 반증일 터였다.
일반적인 환자였다면 당연히 밥을 더 줘야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러다가 저놈들처럼 되면 어쩌려고요. 이미…… 아마 저거 풀어 놓으면 몇 분 정도 만에 어지간한 성인 남자 하나 정도는 죽일 수 있을걸요?”
김태평이 반대하고 나섰다.
날뛰는 신경 전달 물질, 그중에서도 아드레날린은 고통을 잊게 만들어 몸이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싸울 수 있게 만들 수 있었다.
그게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될 현경이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아 더 강해진다면…….
“그렇다고 죽게 둘 수도 없어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상당히 특이한 경과를 밟고 있습니다.”
“제가 의사가 아니라…… 잘 모르겠는데. 독감 걸리고 저렇게 되는 게 특이한 겁니까? 저도 그랬던 거 같은데요.”
“백신도 맞고, 타미플루도 먹었겠죠. 우리나라가 개발 도상국도 아니고.”
“그건…… 그렇죠. 그 약이 그렇게 절대적입니까?”
“제수씨나 이진호 형사를 보세요. 상태가 확 안 좋아져서 약 주니까 24시간 만에 거의 감기 기운 정도로 좋아지지 않았습니까? 근데 저 환자는 그런 건 주지도 않았는데 벌써 제일 좋아졌어요.”
“아…….”
“이게 어쩌면 돌파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닐 가능성이 더 크기는 한데…….”
현경과 같은 상태의 숙주가 무리를 이룰 정도의 지능을 지닌 놈에게 물리고 독감에 걸린 채 추운 날씨에 밖에서 떨다가 방 안에 갇힐 가능성이 또 있을까?
남산이고 어디고 간에 작정하고 실험에 들어간다 해도 어려울 것 같았다.
약한 상태의 숙주가 물리는 거야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겠지만, 그게 뭐 인간의 눈에 관찰될 가능성이 있겠나.
“죽일 수는 없어요. 적어도 우리 손으로 그렇게 둘 수는 없습니다.”
상황이 허락지 않는데, 그러니까 뭐 다른 놈들이 쫓아온다거나 단순히 식량이 부족해진다고 하는 데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는 않았다.
뭐가 되었건 감염자고, 더 나아가 그 박원상의 아내니까.
연좌제는 옳지 않겠지만.
실제로 현경에게는 죄가 없었지만.
상황이……. 상황이 너무 그렇지 않나.
다만 그 전까지는 노력을 해 볼 참이었다.
“그럼 밥양을 늘려요?”
“네, 그게 좋겠습니다. 물론 너무 많이 줄 생각은 없어요. 저도 위험 요소를 키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네, 그럼 뭐…… 저도. 교수님 생각이 그렇다면 더 반대하지는 않겠습니다.”
유현은 그렇게 지침을 정하고는 이내 밖을 돌아보았다.
함박눈이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