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변화 (3)
다음 날을 논하기엔 아직 하루가 많이 남았다는 걸, 일행은 곧 실감할 수 있었다.
“어때?”
“이제…… 마지막 숨이야.”
일단 노인 중 하나가 숨을 거두고 있었다.
이순규는 의사이기는 해도 이런 식의 사망 순간에는 익숙지 않았다.
다만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남들보다는 덜해서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에 반해 유현과 재원은 환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말한 것처럼 이제 환자는 턱으로 숨을 쉬려 하고 있었다.
소리도 잘 나지 않았다.
그만큼의 숨이 들어가고 있지 않아서 그랬다.
“결국…… 이렇게 되는 구나.”
이순규는 차마 더 보지 못하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다른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이들을 봤을 때만 해도 앞으로 몇 년은 거뜬하지 싶었다.
실제로 보건소 주변은 꽤 안전해 보이지 않았나.
그러나, 라드 무리가 따라붙으면서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거기 있었다면…… 독감이라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는 다 무용한 생각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보건소라는 곳의 의료 시설이 그리 좋은 것도 아니었다.
뭐가 있다고 해 봐야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데 할 수 있는 게 더 있을 턱도 없고.
“호흡음 들어 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유현의 말이 들려왔다.
유현은 상대적으로 차분한 얼굴로 경동맥을 짚은 채, 환자의 가슴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르내리는 기색도 없고 맥도 사라졌다.
물론 그것만으로 죽음을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네, 호흡음…….”
재원은 청진기로 환자의 호흡을 측정하고 있었다.
“없습니다. 1분간 전혀 측정되지 않습니다.”
“그렇군…….”
그런 재원을 보면서, 김태평을 비롯한 나머지는 처음으로 아 저 사람이 의사는 의사구나 하고 있었다.
확실히 숙달된 의사의 그것이었다.
하여간, 유현은 그의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사망 선고를 내렸다.
9시 23분.
아마 정확히는 21분쯤에 환자는 마지막 숨을 내쉬었을 터였다.
“옆에는……?”
“뭐……. 오늘 혹은 새벽 중에 돌아가실 거야.”
유현은 미리 준비했던, 이순규 등이 들고 온 흰 천을 얼굴에 덮어 주었다.
될 수 있으면 묻어 줄 요량이었다.
노인이 베풀어 주었던 은혜를 생각하면 그 정도는 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쓸데없는 짓이라는 생각도 들 수 있긴 했지만, 유현은 일행의 사기를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예리 형사는 충격을 받았어. 얘도 그렇고.’
살리기 위함이었다고는 해도, 라드에 물리게 했다는 건 어찌 보면 용납받지 못할 행동일 수도 있지 않겠나.
이제 와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고 또 되돌릴 이유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죽었을 테니.
다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이건 비단 남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유현은 유현 본인에게도 그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나는 아직 사람다움을 잃지 않았다는 걸…….
“내일 날 밝는 대로 묻어 드리죠.”
“아……. 그래, 그래야지.”
“그게 좋겠습니다.”
“네.”
유현의 말에 차마 안으로 들어오진 못하고 밖에 서성이고 있던 대다수의 일행이 화색을 띠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도 좀 그랬던 것이었다.
노인들은 누가 뭐라 하건 이들을 받아 줬던 사람들이지 않았나.
덕분에 겨울의 대부분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었다.
시간이 없고, 체력도 낭비되겠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일단 잘 사람들은 주무시러 가시죠. 경계도 서야 할 텐데, 무리하면 안 되죠.”
“아, 네.”
“네, 교수님.”
사실 상태가 정상인 사람이 많은 건 아니었다.
다들 무리하고 있다는 얘긴데,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그러니까.
설원을 보면 딱히 따라올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지만.
차량이 지나 온 흔적을 따라 걸어오면 또 모를 일이었다.
물론 그럴까 봐 공장에서 나올 때는 일부러 눈을 흐트려 놓고 오긴 했는데…….
“후우…….”
김태평은 박물관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관리인 숙소에서 운 좋게 얻어 낸 담배를 물고서였다.
불은 감히 붙이지 못했다.
아까워서 그랬다.
언제 또 이만한 장초를 볼 수 있겠나.
다행한 일인지는 몰라도, 추워서 입김이 나가는 게 꼭 담배 연기 같았다.
기분은 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팀장님.”
“응, 왜.”
“재한이……. 진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런 그에게 다른 팀원이 물어 왔다.
오늘 뒤따라오면서 여러 번 실수했던, 다시 말하면 아직 열에 시달리고 있는 녀석이었다.
어지간하면 쉬게 해 주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능한 배려는 그저 이른 시간에 경계를 서게 하고 나머지 시간에 자게 하는 것 정도였다.
“모르지. 운에 맡겨 봐야지.”
“그 말 진짜 싫어하지 않으십니까?”
“싫어하지. 근데 어쩌겠냐…….”
김태평은 입김이 마치 담배 연기라도 되는 양 푹 하고 내쉬었다.
그 끝에는 시발이라고 나지막이 욕설도 섞었다.
“혹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때는 내가 처리할 거야. 네가 할 일은 없어.”
“아……. 네.”
“이순규, 그 사람처럼 되기를 바라라. 박원상 마누라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고.”
“네, 팀장님.”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는 있었다.
망할.
그게 되면 사태가 터졌겠나.
대통령이라는 새끼가, 그리고 마트 책임자라는 새끼가 그런 짓을 했겠냐고.
‘시발.’
김태평은 그로서는 드물게 무용한 욕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거라도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살아남기는 했는데…….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지 않나?
물론 정유현 교수의 말에 따르면, 그리고 정황을 봐도 라드의 수명은 그리 길 것 같진 않았다.
그 말은 곧 버티면 된다는 건데…….
‘버틸 수 있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마치 뭐라도 해결이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농사를 짓고 있는 것도 아닌데 식량이 늘겠나.
단지 날씨가 호의적으로 변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김태평은 유현이 늘 그러하던 것처럼, 굳이 불길한 소리를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주술적인 믿음 때문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저 책임지고 있어서 그랬다.
‘교수가 없었으면……. 외로울 수도 있었겠구만그래.’
김태평이 입김을 담배 연기처럼 쭉쭉 뽑아내고 있을 때, 유현은 나머지 한 노인의 얼굴에 천을 덮어 주고 있었다.
둘이 죽었다.
하나는 라드가 되었고, 둘은 라드화가 진행 중이었다.
다시 말하면 일행 중 다섯이 치명적인 사고를 당했다.
‘거참.’
유현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봐야 보이는 건 미약한 빛에 비치는, 빈말로도 깨끗하다곤 할 수 없는 벽지뿐이었다.
안에서 담배라도 태웠는지 누리끼리한 색이 여기저기 배여 있었다.
그게 꼭 자신의 미래 같아서 기분이 좋지 못했다.
미신적인 생각인데…….
‘나도 지쳤나.’
유현은 한숨과 함께, 노인 둘을 돌아보다가 이내 방에서 나왔다.
은은한 담배 쩐내가 나기는 해도 제일 좋은 방을 시신에게 양보하는 게 옳나 싶기는 한데…….
그래도 뭐 어쩌겠나.
지금 치울 수도 없고.
무엇보다 시신이 있던 곳에서, 그것도 아는 사람의 시신이 있던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걸 다른 사람이 볼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이긴 한데…….
“아, 유현아. 재원아. 혹시…….”
“응, 그렇게 됐어.”
“네, 돌아가셨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이순규가 있었다.
그는 복도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쉬고 있었다.
“그렇군. 그나마…… 다른 사람들은 괜찮아서 다행이야.”
“응. 근데 앞으로 보건소나 병원 같은 데 가면 무조건 약을 많이 털어야 할 거 같아.”
유현도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았다.
재원도 그랬다.
그걸 보던 이순규가 피식 웃었다.
“이렇게 있으니까 꼭 병원 같네.”
“사망 선고 하고 나오니까 더 그렇네.”
“그러니까요. 병원 같네요. 그때는 진짜 지옥 같았는데……. 참……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재원은 레지던트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는 병원 밖으로 나가고 싶었는데, 막상 강제로 나와서 떠돌게 되니까 지옥은 여기였다.
망할.
“서울은 대체 어떻게 됐을까.”
이순규는 그런 재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는, 한숨처럼 말을 내뱉었다.
말만 안 했을 뿐 일행 대부분이 궁금해하던 얘기였다.
막말로 서울에 있다 온 김태평조차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하지 않나.
청와대 부근 그러니까 종로나 중구 쪽은 좀 알지 몰라도 그 외에는 정보가 없었다.
강변에 도착해서는 반쯤 갇혀 지냈고, 거기가 무너진 다음에는 도망쳐 나오느라 바빠서 그랬다.
“글쎄. 김일용 형사님은 살아 계시려나 모르겠네.”
“아……. 그 형사님. 살아 계시지 않을까? 보통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러길 바라.”
유현은 반쯤 진심이었다.
하지만 반쯤은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청와대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긴 했지만…….
글쎄.
그쪽의 라드들을 소탕했다는 말은 없지 않았나.
게다가 무리 지은 라드들에게 한번 당해 보니 바로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총기가 어지간히 있어도, 놈들에게서 버텨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여간, 좀 자자. 너랑 나는 좀 있다 경계 서야 하잖아.”
“아, 그래.”
물론 그런 말을 굳이 입 밖에 내진 않았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평온한 밤이 흘러갔다.
팍아침이 되고, 일행은 녹아내린 눈 때문에 질척해진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질척한 것도 잠시뿐이었고, 깊숙이 들어갈수록 땅이 얼어 있어 삽질이 어려웠지만 일행 중에 이순규가 있다 보니 그래도 구멍이 숭숭 났다.
“자……. 흙 덮기 전에 일단 묵념부터 합시다.”
누가 따로 요청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인을 보내 주는 일은 자연스레 유현의 몫이 되어 있었다.
사실 고인들과의 친분만 따지고 보면 김현철 소위가 제일 좋았지만, 그 또한 묵묵히 유현의 인도를 따랐다.
김태평도 그랬다.
유현은 명실상부한 이 집단의 리더였으니.
“그럼, 가 볼까요? 다행히 날이 좋군요.”
다만 묵념하고도 우울감에 빠져 있는 김현철 등과는 달리 주변을 돌아보며 계획을 세웠다.
유현도 그랬다.
뭐가 되었건 그는 리더 아닌가.
식량이 아직 꽤 남아 있기는 하지만, 풍족하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무엇보다 차량 하나를 아예 유실하게 된 것이 컸다.
어떻게든 벌충을 해야만 했다.
“순규야, 오예리 형사님. 같이 가시죠.”
“응, 그래.”
“형사님은 후방에서 지원해 주세요. 아무래도…… 사격이 우리 중에 제일 나으니까.”
“네. 기침도 이제 안 해서 괜찮을 거 같습니다.”
그런 일행을 보며 김태평이 말했다.
“좋군요. 남아 있는 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도 시골이니, 라드화가 되었다 해도 오래 살지 못했겠죠.”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럼 가죠.”
그가 앞장서자, 유현을 비롯한 나머지가 따랐다.
총기를 손에 손에 쥐고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