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77화 (177/323)

177화 재난 본부 (1)

다다닥

작은 발걸음 소리와 함께, 김태평은 팀원들과 본부 건물로 향했다.

말만 박물관이고 시골 건물이나 다름없었던 세종 민속 박물관과는 다르게, 이쪽은 말 그대로 어엿한 본부였다.

거대한 건물 여럿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때 헬기가 드나들었을 이착륙장 또한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착륙장 주변은 지저분했다.

헬기가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없는 건지, 아니면 운용 가능한 인원이 없는 건지는 모르겠군.’

무리하게 운용했던 정도가 아니라 혹사를 시키지 않았나.

조종사들도 죄다 죽어 나갔다고 보면 되었다.

물론 살아남은 이들도 있다지만, 그들은 청와대에 있었다.

가족들을 들이고 나서는 돌연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아껴 쓴다는 명목 때문이었다.

‘아무튼…… 너무 넓어서, 안에 누가 있어도 제대로 관리가 안 되고 있어.’

본거지라는 게 무작정 넓다고 좋은 게 아니었다.

강변을 봐도 그렇지 않나.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때, 그러니까 무작정 수를 늘리고 마구 나갈 생각을 할 때는 좋을 수 있지만 적이 있다면 규모에 맞는 곳이 더 나았다.

이곳은 어떤가?

지나친 규모인 듯했다.

‘애초에……. 강변만큼 사람이 모이는 일이 드물지…….’

김태평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창문 하나를 가리켰다.

안쪽을 들여다보고 난 후에 내린 결정이었다.

나름 잠가 두기는 했더랬다.

그러나 지키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찍

@찍

하여간 요원들은 그렇게 정해진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인 후, 주먹으로 깼다.

쨍그랑거리는 소리 대신 버석거리는 소리와 함께 창이 깨졌다.

물론 테이프를 미리 붙여 놓은 덕에 유리 조각이 아래로 떨어지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좋아.”

남은 건 테이프를 다시 떼는 것뿐이었다.

그럼 깨진 조각 대부분이 거기 붙어 나오니, 바닥에 버리면 끝이었다.

@끼릭

그렇게 난 구멍을 통해 잠금장치를 풀고, 일행은 안으로 들어섰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건물 특성상 창문에서 끼익거리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 정도 소리로 인해 누가 달려올 만큼 경비가 빽빽하게 서 있지 않아서 그랬다.

“같이 움직이자.”

“네.”

“소음기가 있어도 이런 건물에서는 꽤 시끄러우니까 어지간하면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하자고.”

“네.”

김태평은 박재한을 떠올리고 있었다.

신음을 흘리면서, 공격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생각이 없었지만, 마음으로는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더 잃을 수는 없지.’

딱히 가족이랄 게 없는 그에게 팀원들은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사람마다 소중함의 정도가 다르고, 김태평은 그게 좀 낮은 사람이긴 했지만.

여하간에 상대적으로 그렇단 얘기였다.

쓸데없이 잃을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아직 김선태라는 적을 두고 있지 않나.

인원을 잃기는커녕 충원을 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다다닥

1층엔 뭐가 없었다.

2층도 그랬다.

3층은 좀 달랐다.

“바리케이드가 있습니다.”

“경비 인원도 있고요.”

“무장은?”

“형편없습니다.”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무장은 말 그대로 형편이 없었다.

기껏해야 새총 같은 걸로 무장하고 있었다.

물론 저것도 사람이 맞으면 위험하긴 했다.

“둘이로구만. 딱히 이동을 위한 곳은 아냐.”

그걸 유념하면서 김태평은 안쪽을 살폈다.

바리케이드는 엄청나게 단단했다.

단시간에 밀어젖힐 수 있는 정도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막아 둔 곳이란 얘기였다.

“다른 곳으로 가 보지.”

“네.”

이동을 위한 곳이 하나쯤은 있을 터였다.

건물에 계단은 총 네 군데 있었으니, 하나는 뚫어 뒀을 거란 얘기였다.

뭐가 들어올 때 위험하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도 없을 테니까.

겨울이라고 해도 뭔가 얻기는 해야지 않겠나.

뭘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하여간, 무장한 인원들을 보니 나이가 젊고 체격도 괜찮았다.

이런 이들이 날씨 때문에 틀어박혀 있진 않을 것 같았다.

“여기군. 많은데…….”

뚫려 있는 곳이 하나 있었다.

지키는 인원은 총 넷.

그러니까 경비 서는 인원만 해도 열 명이라는 뜻이었다.

이 건물만 그렇다는 뜻인데, 건물이 총 세 개나 있으니 만약 거기에도 다 사람이 있다면 총인원은 물경 5, 60은 헤아릴 듯했다.

“어쩌죠?”

“일단 1, 2층에는 쓸 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었어. 당연한 일이겠지만……. 저쪽에서 다 쓸어 갔다는 건데.”

“밤이라면 습격이 가능하기는 할 겁니다.”

요원 중 하나가 창문 쪽을 가리켰다.

그래, 창문을 타고 올라가면 가능은 할 터였다.

저쪽도 설마하니 총 든 인간이 쳐들어올 거란 생각은 못 하고 있을 테니까.

딱 봐도 근접전에 대비하여 방비를 하고 있지 않나?

“습격은…… 일단 미루자.”

“네?”

“너무 많아. 싹 다 죽인다면…….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어중간한 무리였다면 그것도 옵션에는 들어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뭘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충돌부터 생각하는 건 좀 그랬다.

김태평은 괜찮았다.

그는 그런 학살을 벌써 몇 번이나 겪어 봤고, 딱히 마음에 충격이 있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다른 놈들은 알 수 없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지쳐 가고 있지 않나.

사태가 벌어진 것만으로도 그런데, 굳이 민간인을 대량으로 죽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우선은 대화를 해 보지.”

“대화를요? 그러다 공격에 나서면요?”

“그때는 합류해서 공격해야지. 명분이 생기는 셈이니까.”

“위험할 텐데요? 새총이지만…….”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김태평은 그렇게 말하곤 처음에 봤던 계단 쪽으로 향했다.

여전히 두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따다닥

그 주변 기둥을 김태평이 발로 찼다.

신고 있는 신발의 바닥은 군화와 달리 부드러운 소재로 이루어져 있지만, 발등은 거의 철이라고 해도 좋을 소재였기 때문에 요란한 소리가 났다.

“뭐지?”

“보이는 거 있어?”

지키고 있던 둘은 긴장한 얼굴로 이쪽을 살폈다.

보아하니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대로 둘 생각은 없었다.

@따닥

더 가까이에 있는 기둥을 두드렸다.

“시발…….”

“라드……인가?”

“아니, 밖에 보고 있던 놈들은 뭐 해?”

“몰라. 일단…… 내가 알리러 갈게.”

“나 혼자 있으라고?”

“1분이면 돼. 1분.”

“아이씨……. 빨리 가!”

그러자 잔뜩 긴장한 사람이 얼굴이 하얗게 뜬 사람 하나를 남겨 두고, 옆으로 달렸다.

‘시발……. 시발…….’

남은 경비는 바리케이드 뒤에 몸을 웅크린 채, 새총을 겨누었다.

말이 새총이지 호두만 한 쇳덩이를 쏘는 거라 근거리에서 제대로 맞으면 제아무리 라드라 해도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버석

@따다닥

그때 아까보다 더 가까이에서, 훨씬 더 크게 소리가 들렸다.

“으…….”

긴장하고 있던 그는 새총을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겨눴지만, 뭐가 보이는 것은 없었다.

“억.”

대신 누군가의 두꺼운 팔이 그의 목을 감쌌다.

김태평의 신호에 맞춰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요원이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창을 깨고 온 탓이었다.

@다다닥

무력화된 틈을 타 나머지 요원을 끌고 김태평이 달려왔다.

그러곤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 마세요. 혹 공격할까 봐……. 정부 요원입니다. 이봐, 놔드려.”

제대로 만들어진 미소였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배우에게 배우고 그 후로도 개인적으로 연습하여 만든 미소.

“어…….”

“실례했습니다. 국정원 요원 김진표입니다.”

다른 요원 또한 만들어진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김태평만큼 완벽하진 않았지만, 하여간 죽음을 각오하고 있던 이에게 이런 미소는 더없이 커다란 효과가 있었다.

더구나 국정원이라는 직함과 이들의 통일된 복장 그리고 훌륭한 장비 등은 더더욱 신뢰감을 주고 있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팀장 김태평이라고 합니다.”

“아……. 네, 저는 박지원이라고 합니다.”

“박지원 씨. 그렇군요. 일단은 안심하시죠. 다른 사람들이 왔을 때, 말만 좀 도와주세요.”

“어……. 네.”

김태평은 몇이나 있냐, 뭐가 있냐 등등을 묻지 않았다.

경계심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

“뭐야.”

“저놈들 누구야!”

머지않아 열 명이 넘는 인원들이 뛰어왔다.

대개 체격이 좋은 이들이었지만 중간중간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노인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있지는 않았지만.

뭐,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있다고 해서 내보내겠나.

그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어어! 나 있어!”

뛰어온 인원들이 새총을 마구잡이로 겨눠 대는 찰나, 방금 이름을 밝혔던 박지원이 나섰다.

“응……?”

“정부 요원들이래!”

“요원……?”

“이제 와서……?”

김태평은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을 차분히 관찰했다.

딱히 총구를 겨누거나 하진 않았다.

어차피 전투가 벌어지면, 이 거리에서는 바로 조준 사격이 가능해서 그랬다.

아니, 딱히 조준할 것도 없었다.

대충 연사로 놓고 긁기만 해도 엄청 죽어 나갈 게 뻔했다.

‘확실히 소방복을 입고 있는 이들이 있어.’

방호복으로도 꽤 쓸 만하긴 할 터였다.

겨울이니 덥지도 않을 것이고.

물론 총알을 막아 주지는 않을 테지만.

하여간 김태평은 무리의 다양성과 노인들의 행색이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을 미루어 일행의 성향을 대강 파악했다.

무조건 맞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의 직관은 꽤 정확한 축에 속했다.

어쩐지 유현도 비슷한 판단을 했을 거란 생각과 함께, 그는 입을 열었다.

“저희는 국정원 소속 요원입니다. 김태평 팀장이고요……. 혹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온 겁니다.”

“이렇게 잠입을 해서요?”

그러자 상대 중 하나가 나왔다.

생긴 것만 봐서는 그리 비범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가 꽤 있고, 옷도 소방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원래 이곳의 책임자였던 듯싶었다.

‘생각했던 대로 여기는 그렇게까지 생존이 빡세지 않았군…….’

애초에 뒤집혔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세상인데, 그 시절 직급이 남아 있는 듯했다.

노인들이 살짝 뒤에 있는 것으로 볼 때 노인 공경과 같은 풍습도 남아 있는 듯하고?

그렇다면 좀 더 안심해도 좋을 터였다.

긴장을 늦추진 않았지만 하여간, 김태평은 느긋해진 얼굴로 말했다.

“너무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어서요.”

“임무……?”

“정유현 교수님을 아십니까?”

“아…….”

통신도 아마 어느 정도 이어졌을 터였다.

그렇다면 정유현의 홈페이지 또한 알고 있겠지.

모르면 대강 포장하려고 했는데 아는 모양이었다.

“그분을 모시고 서울로 가고 있습니다. 배반자들도 있고 해서…… 지금은 우리밖에 없긴 한데.……. 그래서 더 주의하느라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분이 있다고?”

“어디?”

홈페이지를 봤는지 반응이 뜨거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에게는 원수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예언자 내지는 구원자급이지 않았나.

김태평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턱으로 밖을 가리켰다.

“저기 계십니다. 모르는 곳에 함부로 모시고 올 수는 없어서.”

“으음.”

상대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말이 그럴싸해서 그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