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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78화 (178/323)

178화 재난 본부 (2)

“일단……. 확인은 해 보죠. 얼굴을 아니까.”

회의가 시작되었다.

총으로 무장한 인원을 앞에 두고 하는 회의다 보니 딱히 회의라기보다는 발언권 센 사람들의 의견 교환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나름 존중받는 것으로 보였던 노인들이나 다른 이들은 조용히 있었다.

대신 나이 많은, 그러나 소방복을 입고 있던 이가 주도하고 있었다.

“얼굴을 알아?”

“네. 꽤 유명했어요. 인터넷 커뮤니티 중심으로는요.”

“그래? 홈페이지만 운영했던 게 아닌 건가?”

다들 유현에 대해서는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그가 이 사태를 예언해서만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알려 주었고, 거기서 최대한 많은 사람이 살아나기를 바란다는 것이 느껴져서 그랬다.

실제로 그랬으니, 부담스러워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네. 그때는 어그로꾼이니 뭐니 하면서 욕 많이 먹었었는데……. 세상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렇군……. 확실히 정유현 교수님이라면 나도 한번 보고 싶긴 한데.”

그중에서도 이곳, 소방 재난 센터에 있는 이들에게 유현은 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애초에 삶의 방향을 남을 살리는 것으로 정해 둔 사람들이 대다수이지 않나.

아무리 세상이 돈이 최고라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해도, 어찌 되었건 이런 사람이 계속 나고 자란다는 증거가 바로 소방관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대외적으로 비친 유현의 모습은 이상향에 가까웠다.

대학 병원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다 버리고, 심지어 수배까지 되면서까지 진실 규명을 위해 싸웠던 사람.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싸워 온 사람.

그런 이가 아직 살아남아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면,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니겠나.

“이렇게 하지. 정유현 교수님 얼굴만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면…… 여기서 머무를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다 내드리고요.”

“아…….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죠.”

반면 김태평은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살짝 억지로 이어 나가는 느낌이 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언제나 최악의 최악을 대비하도록 훈련을 받았으니.

‘얼굴을 드러냈을 떄……. 공격……? 아니, 그럴 가능성은 떨어져. 그럴 이유도 없어 보이고.’

하지만 지금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왜냐?

이들의 상황이 너무 괜찮아 보여서 그랬다.

노인들도 그렇고, 다른 이들 모두 영양 상태가 괜찮아 보이지 않나.

심지어 옷도 헐거나 하지 않아 보였다.

이쪽보다도 상황이 낫다 이 말이었다.

‘뭐……. 아무래도 이곳이 안전하긴 했겠지.’

주변에 뭐가 있나.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위험할 일이 적었을 터였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물자 수급이었을 텐데…….

어차피 재난 센터였으니, 이 안에 뭐가 많기도 했을 터였다.

다만 걱정이 되는 건 청와대였다.

뭔가 쓸 만한 기구가 있었다면 그쪽에서 다 들고 갔을 가능성이 있었다.

권력에 미친 놈이 눈치 볼 일이 사라지면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놈이랄까?

“그럼……. 저기 앞까지만 오시죠. 망원경이 있어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확인했다는 건 어떻게 알리실 생각입니까?”

“그건…….”

소방관 하나가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그럴 거까지는 없었다.

이쪽도 망원경이 있었으니까.

“오케이 사인만 보여 주면 우리가 확인하면 됩니다. 저희도 있으니.”

“아.”

“그럼 잠시 뒤에 보시죠.”

“아, 네네. 이렇게…… 번거롭게 해 드리는 점 죄송합니다.”

“아뇨, 시절이 시절이니까…….”

김태평은 그런 이들을 향해 연기를 이어 나갔다.

좋은 사람 연기였는데, 아까부터 내내 일관적으로 해내고 있었기 때문에 김태평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정유현 교수도…… 잘 해내겠지.’

김태평은 뒤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고, 들어올 때와는 달리 문으로 걸어 나와 일행에게 향했다.

일행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트럭 위에 선 오예리부터 해서 주변을 살피는 유현과 우식 그리고 김현철 소위까지.

재원이나 김 주무관도 나름 총을 들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물론 둘은 경계보다는 아무래도 라드화가 진행되는 이들을 살피고 있긴 한데…….

‘이만하면 어지간한 놈들한테 당하진 않겠어.’

김태평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나타나진 않았다.

그랬다가 총 맞으면 누구한테 하소연을 하겠나.

이미 한참 전부터 소리를 냈던 참이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유현은 그런 김태평에게 다가가면서 물었다.

행색을 살피면서였는데, 딱히 전투 흔적이 없어서 의아해하고 있었다.

잠입해서 정보만 빼 왔나 싶었는데, 그런 것치고는 들고 온 게 따로 없었다.

‘뭐지……?’

생각보다 방비가 너무 대단했나?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김태평이 입을 열었다.

“사람이 굉장히 많더군요. 상태도 좋고. 다행인 건 호의적이라는 겁니다. 특히 정유현 교수님을 알고 있더군요.”

“나를요?”

“네. 커뮤니티에 짤방 돌 때부터…… 제가 작업하지 않았습니까, 그거. 의도적으로 잘리는 타이밍을 늦추었던 보람을 이제야 느낄 수 있군요.”

“아……. 그때 그랬죠.”

둘은 잠시 아련한 얼굴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몇 달 된 것도 아닌데 엄청 옛날같이 느껴졌다.

하여간, 추억은 잠시뿐이었다.

그렇게 잠겨 있기엔 상황이 그리 좋지 못했다.

“아무튼, 저쪽에서는 교수님 얼굴만 확인하면 들여보내 준다고 했습니다.”

“상황 설명이 다 된 건 아니겠죠?”

“아닙니다만…… 교수님께서 직접 말씀을 해 주신다면 저쪽에서는 납득할 겁니다.”

“함정일 가능성은……?”

“대비는 할 겁니다만, 그럴 가능성은 적습니다.”

“그렇군요. 잘된 일이군요.”

“애초에 장비 자체가 그리 좋지는 못해요.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충분히 대응이 가능할 겁니다. 다만…….”

“다만?”

김태평은 유현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행색을 살폈다.

‘거지가 따로 없구만, 그래.’

생긴 게 멀끔해서 그렇지 옷은 거의 넝마였다.

차 하나가 아예 날아간 탓이었다.

날씨는 추워지고 있다 보니 진짜 아무거나 주워 입었더랬다.

“이거라도 걸치시죠.”

해서 김태평은 자기가 챙겨 두었던 외투를 건넸다.

그래 봐야 안에 입고 있는 옷들은 개판이었지만.

겉으로만 보기엔 꽤 괜찮아 보였다.

“온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정유현이 이동을 하고, 동시에 오예리는 상대가 보일 만한 곳에 따로 자리했다.

저격용 총이 아니라 그냥 k2 소총이었지만 그녀의 실력이라면 1킬로 밖에 있는 표적이라도 가만히만 있으면 충분히 맞힐 수 있을 터였다.

맞히는 것과 살상은 다른 얘기라는 걸 적어도 김태평은 알고 있었지만…….

‘뭐……. 훈련받은 놈도 아니고 총 맞았는데 멀쩡히 기능할 수 있으면 그게 특수부대지.’

애초에 총 쏠 일도 없을 것 같아서 태평하게 있었다.

“아…….”

“맞아?”

상대가 어떤 준비까지 하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는 재난 본부 측에서는 그저 망원경으로 살피고만 있었다.

“네, 맞습니다. 정유현 교수님이에요. 아니, 어떻게 얼굴이 똑같지?”

“똑같지, 그럼.”

“아녜요……. 대장님은 엄청 상하셨습니다.”

“인마…….”

위험한 일을 별로 겪지 못했다 보니, 특히 사람이 무섭다는 말을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일을 겪지 못했다. 그 때문에 재난 본부 측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태평해 보였다.

“오케이 사인 보낼까요?”

“응? 그래야지. 좋은 일은 돕고 봐야지. 우리가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고.”

“네.”

하여간 그들은 경계심 없는 얼굴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김태평은 망원경으로 그걸 확인하자마자 입을 열었다.

“됐군요. 가실까요?”

“오예리 형사는 일단 두고 갈까요?”

“네. 저만한 저격수도 없어요. 확실해질 때까지는 두죠.”

“네. 그럼…….”

일단 같이 이동하는 건 재원, 김 주무관 그리고 최우식이었다.

모두 정부 기관 소속이었던 사람이었거나 혹은 의사니만큼 갑작스런 질문에도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할 거란 판단 때문이었다.

나머지 요원들과 함께 입구로 향하자, 소방관 측 대장이 마중을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저는 임청원이라고 합니다. 원래 여기 본부장이었다가…… 그대로 저희 일행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예상대로 본부장이었던 모양이었다.

유현은 그에 맞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정유현이라고 합니다. 감염내과 의산데……. 지금은 연구 관련으로 서울로 이동 중입니다.”

“역시 그러시군요.”

“저를 아십니까?”

“물론입니다. 당연히 알죠.”

“좋은 일이군요.”

그렇게 안으로 들어간 일행은 바리케이드를 치울 수 있게끔 만들어 둔 3층 중앙 계단을 통해 4층으로 향했다.

안쪽은 감히 아늑하단 말까지 쓸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지내는 인원도 꽤 많았다.

“다른 건물에 있던 용품까지 다 모아 놨습니다.”

“아…….”

일단 숙소에 있던 침구류를 다 모아 놓은 덕에 푹신한 잠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물도 나왔다.

“이게……?”

“물탱크를 지속적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비가 엄청 내려서 수월했죠.”

“아하.”

처음엔 이런 식의 안내가 지속되었다.

호의 가득한 사람들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가지고 갈 만한 물품도 있긴 한데…….’

‘무엇보다 인력이 탐나는데…… 서울은 만만치 않을 거야.’

그런 이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김태평과 유현은 눈빛을 교환했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던데.

이쪽은 딱히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뭐라도 얻어 갈 수 있을지, 이 궁리만 하고 있었다.

‘아직 아픈 사람들도 있고……. 무엇보다 라드화가 진행 중인 사람들도 여기서라면 무리 없이 관찰할 수 있겠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세종시에서 따라붙은 놈들이 와도 이만한 인력이면 막아 낼 수 있을 거 같은데.’

둘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표정만은 세상에서 제일 정의롭고 선한 표정으로, 임청원 전 본부장이 말할 때마다 물개박수를 치고 있었다.

“대단하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을 구하시다니요.”

“시골이라서요.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칭찬받을 만한 일은 아닙니다.”

“아닙니다. 대단하신 거죠.”

“하하. 이거 과찬이십니다. 교수님께 그런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닌데요.”

물론 마냥 그러고만 있지는 않았다.

둘은 그렇게 투어 아닌 투어가 서서히 끝나 갈 때쯤, 자리에 앉으며 운을 띄웠다.

“그건 그렇고, 연구에 대해 살짝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기밀이라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 저희가 사실…… 도움을 청해야 하는 상황이라서요. 교수님.”

김태평의 토스를 유현은 자연스레 넘겨받았다.

“네. 절 아신다니 드리는 말씀이지만……. 이 사태의 책임은 정부에 있습니다.”

“저도 의심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지금도 방해 중입니다. 제가 성과를 내면 그쪽이 위험하다는 생각 때문이겠죠.”

“네? 이 지경이 되어서도요? 이런 미친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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