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80화 (180/323)

180화 수원 (1)

사흘.

그러니까 3일간 일행은 꽤나 잘 쉴 수 있었다.

유현의 일행이기도 하거니와 행색이 남루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훨씬 넉넉했던 본부 사람들이 배려를 해 준 덕이었다.

경계도 안 설 수 있었다.

“이렇게 있다가 살찌게 생겼네.”

일상으로 되돌아간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안락함은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김 주무관은 후후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손에는 코코아가 들려 있었다.

심지어 김도 모락모락 났다.

나름 발전기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요.”

재원 또한 씨익 웃었다.

옆에 있던 김현철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교수님 따라오길 잘했지…….’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다.

확실히…… 죽을 뻔했던 적도 있고.

솔직히 말해서 불만을 품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코코아 마시면서 돌이켜 보니 다 불가항력이었다.

유현만 한 리더는 아마 어디에도 없을 터였다.

“여기서 쭉 있을 수 있으면 더 좋을 거 같기도 한데…….”

김 주무관은 그런 말을 하면서 밖을 내다보았다.

사태가 터졌다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이나 평화로워 보이는 광경이었다.

겨울이라 더 그러했다.

비록 라드들이 인간보다 체온이 더 높기는 하지만, 하여간에 추우면 움직임을 줄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도시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살육이 벌어지고 있을 테지만, 어중간한 사이즈라도 일단 산에 둘러싸인 데다가 주변에는 시골이다 보니 애초에 라드도 적을 터였다.

“그래도 올라가야죠. 이 사태를 끝내긴 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냐, 교수님이…… 라드는 수명이 짧아서 몇 년만 견디면 될 거라고 했어.”

“몇 년…….”

재원 또한 김 주무관의 말을 떠올리며 밖을 돌아보았다.

분명 같은 광경을 보고 있기는 하지만 느낌은 전혀 달랐다.

‘몇 년……?’

이렇게 몇 년을 견뎌야 한다고?

차라리 세종에 있을 때는 오히려 자신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그렇게 있어도 될 것 같았다.

좁아터져서 답답했지만 하여간 살아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를 느끼고 있었으니.

하지만 이젠 시일이 많이 지나가지 않았나.

무엇보다 재원은 젊고 꿈이 있는 사람이었다.

전문의 따고 나름 성공한 삶을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사태가 진정이 되고 나면……. 난 정유현 교수님 제자로 이름을 날릴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세속적인 생각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간혹 이런 생각도 들었다.

확실히 최고의 스팩일 것 같았다.

직접 가 봐야 알겠지만, 서울은 박살이 났을 테니까.

그 말은 곧 실력 있는 의사들도 다 날아갔을 거란 뜻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유현의 말을 듣고 나름 준비했던 부산 쪽 의사들도 연락이 안 되지 않나.

‘뭐……. 통신 문제일 가능성도 있지만 하여간.’

대다수의 사람들은 유현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고, 어떤 이는 귀담아듣기는커녕 유현을 공격하기도 했기에 피해는 클 수밖에 없을 터였다.

세상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난…… 안전하기만 하면 서울로 가고 싶은데.’

재원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러나 입은 열지 않았다.

굳이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차피 유현의 뜻대로 가면 되지 않겠나 싶었다.

게다가 한동안은 떠날 것 같지도 않았다.

“이 차로 가는 거군요?”

“네. 튼튼하고 좋습니다. 어지간한 장애물은 밀고 갈 수 있어요.”

그 시각, 유현과 김태평 그리고 이순규, 오예리는 소방차를 보러 1층에 내려가 있었다.

아니, 단순히 보러 간 게 아니라 오늘 수원 비행장으로 갈 계획이었다.

사실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나름 준비를 했더랬다.

그쪽하고 약조된 날짜가 오늘이기도 했고.

또 하늘이 맑았다.

제설 장비가 돌아가지 않는 세상에서 눈이라도 쏟아지면,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어서 그랬다.

무엇보다 비행장 근처, 그러니까 세류역 인근은 인구 밀집 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부대와 너무 가까웠던 나머지 얼마간 폭격에서 벗어난 곳들이 있었다.

습격을 당할 수도 있단 얘기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총기가 있으니……. 뭐, 오히려 저쪽에서 오해할까 봐 걱정인데. 차가 같으니 그럴 일도 없을 겁니다.”

“네, 그래야죠.”

“그럼 가시죠.”

“네. 생각보다 안이 넓네요?”

“아…… 그렇죠. 1차적으로 진화에 나서는 인원들이 타야 해서. 펌프차라고 해도 낑겨 타면 10명도 탑니다.”

살짝 너무 낑겨 타는 것 아닌가 싶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량 수를 무작정 늘리는 게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하여간 차가 늘어나면 문제도 늘어나지 않겠나.

물론 달랑 한 대로만 가는 건 불안하기에 구조 버스 하나가 뒤따랐다.

그쪽엔 둘만 탔다.

어디까지나 예비로 가는 것이고, 무거우면 망가지기 쉬워서 그랬다.

“그럼 가시죠.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 원래대로면 20분도 안 걸려요.”

본부장의 말에 김태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겨 두고 가는 요원 몇을 향해서도 그랬다.

별일이야 생기겠냐마는서도…….

워낙에 한 치 앞도 알 수 없게 생겨 먹은 세상이 아닌가.

“걱정 마십쇼.”

요원들은 그런 김태평의 말에 알겠다는 듯 답했다.

나머지 사람들, 그러니까 본부 인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비록 손에 들린 것이 총은 아니었지만, 새총도 충분한 무기가 되긴 할 터였다.

게다가 육탄전도 불사할 수 있을 만한 체격들이었다.

부우웅

그렇게 짤막한 인사를 마치고, 차량은 본부를 빠져나가 그대로 북쪽으로 향했다.

본부장의 말대로 거리만 따지면 불과 20킬로도 안 떨어져 있었다.

어느 통계치를 보면 현대인들은 평균적으로 집에서 10킬로 이상 떨어진 직장에 매일 간다지 않나?

어찌 보면 이것도 운이 좋은 몇몇에 해당하는 일일 터였다.

숫제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원도 어마어마했으니.

“길이 엉망이군요.”

하지만 그것도 다 인프라가 제대로 깔려 있을 때의 얘기였다.

조선 시대에 20킬로는 날을 잡고 가야 하는 거리 아니겠나.

심지어 지금은 그보다 더 상황이 좋지 못했다.

“네, 폭격이 오산대역, 병점역, 새미역 따라서 다 이루어지긴 했는데……. 그래도 여기 주변엔 라드가 워낙에 많습니다. 생존자들도 많았긴 한데…….”

본부장은 유현의 말에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쾅벌써 작은 차량 몇 대를 밀고서 나가고 있는 와중이었다.

“하여간 신기한 일입니다. 벌써 몇 번째 가는 길인데 이상하게 매번 길이 이렇게 막혀요.”

“그렇군요. 흐음.”

본부장은 그냥 신기하다는 말만 하고 대강 넘어가고 있었지만, 바깥에서 온갖 어려운 일을 겪어 온 유현과 김태평, 이순규, 오예리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일부러 막아 둔 건 아닐까요?”

“네? 이걸요? 누가요?”

“라드나 생존자들이요.”

“아하하. 라드 놈들이 아무리 지능이 있다고 해도……. 게다가 막을 거면 제대로 막지 않았겠습니까? 이렇게 그냥 치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막을 거 같지는 않습니다. 우연이겠죠. 그리고 생존자들은 아닐 겁니다. 저희가 보이는 족족 구조했어요. 사실 뒤에 저 버스 비우고 가는 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구조를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유현은 운전하느라 앞을 보고 있는 본부장의 옆 모습을 바라보았다.

전형적인 호인의 인상이었다.

딱히 누가 말 안 해도 소방관을 할 것 같은 얼굴이랄까?

세상에 이런 사람만 있었다면 사태도 터지지 않았을 텐데.

문제는 그런 세상은 동화 속에서조차 존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실제 세상은 악의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주의해서 나쁠 건 없죠.’

그 악의의 주체로서 활동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태평은 속삭임과 함께 밖을 내다보았다.

사실 아까부터 그러고 있었긴 했다.

다만 좀 더 인상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 차이일 뿐이었다.

“자, 여기서부터는 길이 좀 더 험합니다. 도로가 끊겨서…… 돌아가야 하는데 거기도 폭격 지대라서요. 덜컹거립니다.”

“네, 괜찮……. 와, 장난 아니군요?”

유현 일행은 세종을 빠져나와 위로 온 몸 아닌가.

사실 거리로 따지면 20킬로보다 훨씬 긴 거리를 왔다는 얘긴데, 그럼에도 길이 이렇게 망가진 건 처음이었다.

인구 밀도가 적은 곳을 통과해 와서 그랬다.

도심이라고 부를 만한 곳은 거의 어김없이, 물론 서울을 제외하고 폭격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온통 엉망이었다.

심지어 얼마 전에 내린 비와 눈 때문에 뒤엎어진 길이 진창이 되어 있어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쿵그 큰 펌프차가 요철에 의해 뒤뚱거리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워낙에 엉망인 골목길도 뚫고 가라고 만든 차량이다 보니 이 정도 요철은 견딜 수 있단 얘기였다.

하지만 이대로 전복이라도 되면 큰일일 터였다.

폭격이 있었다지만, 핵폭탄을 떨어뜨린 것은 아니다 보니 콘크리트 건물의 잔해가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이런 이유로 현대전에서 시가전이 지옥이라고 들었는데, 라드와 붙는다고 해도 딱히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이제 곧이에요. 이 근방까지는 군인들이 꾸준히 나와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정리……. 그럴 이. 아, 이유가 있습니까?”

본부장은 덜컹거리는 차가 익숙한지 말을 잘도 해 댔지만, 유현은 그럴 수가 없어 혀를 한번 씹었다.

살짝이긴 하지만, 하여간 얼얼한 통증을 참고 있다 보니 본부장이 답했다.

“확실히 공군 기지가 다른 군부대에 비해 좋기는 좋아요. 거기 수영장도 있고요. 하지만…… 그만큼 인원도 많아서요. 농사를 왜 짓겠습니까. 먹을 게 없어요.”

“아……. 그럼…….”

“네. 저희가 완전히 옮기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식량 탓도 있습니다. 안전성이나 생활 반경 등은 거기가 훨씬 낫지만, 확실히 풍족한 건 저희가 더 낫습니다. 물론 농사가 잘되면 얘기가 달라지긴 할 텐데……. 겨울이 지나야 가능한 일이죠. 지금은 개간만 하고 있을 겁니다.”

“으음.”

뭐라 답을 하고 싶었지만 한번 혀를 씹고 났더니 용기가 안 나 고개만 끄덕였다

“저깁니다.”

“아……. 크네요.”

비행단 입구 주변은 폭격이 이루어지지 않아, 상대적으로 멀쩡해 보였다.

심지어 비행장 근처다 보니 건물도 다 낮아서 시야도 트여 있었다.

덕분에 전경은 아니더라도 대개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는데, 참혹한 광경들도 있었다.

“구조 과정에서 습격이 있었나 보네요.”

“이런 경우가 많습니까?”

“네. 이따금. 아무래도 군인들이다 보니……. 싸우는 건 잘하더라고요.”

“다행이네요.”

길 중간중간에 쓰러져 있는 라드들이 있었다.

치울 정도로 여유가 있진 않은지 각각의 라드마다 부패 정도가 달랐다.

덜커덩

하여간 소방차는 별다른 확인도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래도 됩니까?”

“한두 번 온 게 아니니까요. 제대로 된 상황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긴……. 그건 그런데.”

유현은 그렇게 안으로 들어서면서, 파견 근무 나간 적이 있는 오산 비행장을 떠올렸다.

거의 뭐 하나의 도시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는데, 여기도 만만치 않게 넓었다.

그러나 다 쓰고 있는 건 아니었다.

확실히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곳들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것이나 떠올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우선은 안에 계십시오. 제가 운을 떼 보겠습니다. 김태평 팀장님은 오시고요. 얼굴 모르는 거 맞죠?”

“네, 알 리가 없죠.”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협조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

실로 중요한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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