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수원 (2)
골프장을 개간하고 있다고 하더니, 그뿐이 아닌 모양이었다.
활주로 주변에도 흙무더기가 잔뜩 보였다.
유현은 차 안에 앉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애초에 수원 비행장에도 제대로 돌아가는 차가 많이 없기도 하거니와, 기름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소방차는 그대로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긴 청주 비행장에도 남는 땅 엄청 많기는 했지.’
군부대라는 게 다른 건 싹 다 부족하지만 땅덩이 하나는 넓은 곳이지 않나.
안에만 들어가면 우리나라가 진짜 좁은 나라 맞나 싶을 정도로 널찍했다.
그렇게 빈 곳에 농사를 짓는다면…… 자급자족 아니라 수출도 될 것 같았다.
끼이익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차량이 멈춰 섰다.
내다보니, 아마도 사령관이 쓰던 건물인 듯해 보였다.
어떻게 아냐고?
유현은 소속과 관계없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보니 군의관 시절에 표창장 받을 일이 꽤나 있어서 사령관 볼 일이 많았기에 그랬다.
군대 건물이 다 그렇듯 낮고 넓은 건물인데 앞에 뭔가 멋져 보이는 장식품들이 있고, 공군답게 퇴역한 전투기가 있으면 하여간에 높은 사람 있는 건물이라고 보면 됐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
건물 한켠에는 이런 문구도 쓰여 있었다.
확실히 도움이 되긴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폭격이 없었다면 더더욱 생존은 어려웠을 테니까.
물론 그 폭격 자체로 생존자들도 많이 죽기는 했겠지만…….
덜커덕
하여간, 본부장은 다른 청년들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본부 앞에는 군인들이 서 있었다.
땅 파고 있던 사람들은 그나마 군복을 입고 있어도 그냥 사람들 같았는데,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정예인 모양이었다.
나름 절도가 있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아, 네. 하하.”
“염치없게…… 계속 얻어먹기만 해서 어쩝니까.”
“괜찮습니다. 다 나눠 드릴 만하니까 나눠 드리는 거죠. 그리고 저희도 기름이나 이런 거 받아 가지 않습니까?”
“뭐……. 같은 이유라고 보시죠.”
그 안쪽에 서 있던, 계급장이 꽤 높은 사람이 본부장과 대화를 나누며 건물 안으로 향했다.
여상한 대화였다.
매일같이 나누던 대화이기도 했고.
사실 이쪽과 사이가 불편해질 이유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본부장의 머릿속까지 편안할 수는 없었다.
‘정유현 교수님……. 으음.’
정부 측이 뭔가 뒤가 구리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일이 돌아가는 게 이상하지 않았나.
유현이 말한 대로 돌아갔다.
정부가 말한 것과는 정반대로 돌아갔고.
‘그분을 도와야 할 텐데…….’
그 양반이 말한 대로라면, 정부에서 연구를 방해하고 있지 않나.
남산 지하에 뭔가 있는 모양인데…….
아무리 국정원 요원들이 훌륭하다고 해도 수가 너무 적었다.
남산을 뚫기는커녕 공격받아 전멸당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 말은 곧 군인들의 도움이 필요할 거란 얘기였다.
‘나도 돕기야 하겠지만…….’
죄다 갈 수는 없지 않나?
게다가 상대는 총 쏘는데 이쪽은 새총 쏴서 뭐가 되겠나.
“오랜만입니다. 본부장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3층이었다.
기다란 책상 뒤에 앉은 대령이 눈에 들어왔다.
사령관이 자살하고, 사람들이 이탈하던 중 전권을 휘어잡은 인물이었다.
다행한 것은 그런 강단 있는 인물이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사령관을 위시해 대다수의 지휘 체계가 살아 있던 때보다도 훨씬 잘했고, 또 주변 인물들의 구조나 통합도 잘 해내고 있었다.
“아, 네. 대령님.”
“뭐 특별한 일은 없으시고요?”
벌써 왕래가 시작된 지도 두 달은 된 마당이었다.
처음 이곳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는데, 두 달간 가히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써도 좋을 만큼이나 많이 개선되었더랬다.
이젠 오히려 자신들 쪽이 더 후져 보일 정도였다.
식량이야 아무래도 훨씬 많지만, 이쪽도 씨레이션(비상식량)은 충분하니 꼭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긴 했다.
“아…… 그게.”
본부장은 저도 모르게 타고 온 소방차를 돌아보고는 말을 이었다.
“혹시 정유현 교수님이라고 아십니까?”
본부장의 말에, 대령은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죠. 모르겠습니까?”
요새 그 사람 모르면 간첩 아닌가.
아니, 간첩도 알 터였다.
아직 통신이 끊기지 않았을 때, 유현의 홈페이지는 확실히 일종의 지침서였어서 그랬다.
라드의 특성이나 대처법 등등을 알려 주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에야 TV나 라디오도 다 나왔고, 그건 정부가 독점했기에 그 내용을 더 신뢰했지만.
라드에 대해 겪으면 겪을수록 유현이 훨씬 정확하지 않았나.
오죽하면 군에서도 유현의 말을 참고했을 지경이었다.
“네네. 그분이 정부에게 공격당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네? 누구한테요?”
“그게, 저희 본부로 생존자들이 찾아왔거든요. 확인해 보니 좋은 사람들 같아서 받아들였습니다.”
“아……. 얼마나 됐습니까?”
“며칠 됐습니다.”
“으음.”
대령은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본부장을 향한 경계는 아니었다.
낯선 자를 마냥 환영하기엔, 시대가 악하지 않나.
총 들고 있는 부대 안에서조차 문제가 일어난 적이 있었다.
그중 몇몇은 도저히 해결이 안 되어서, 비밀리에 처리했던 적도 있을 지경이었다.
“정보의 신빙성이 있겠습니까?”
“아, 네. 공무원 출신입니다.”
“그게…… 아무튼, 말씀해 보세요.”
대령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지만, 하여간 본부장을 박대하는 것도 옳은 처사는 아니란 생각에 들어 주기로 했다.
덕분에 본부장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네네. 아시겠지만 정부와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사태 터지기 전에도 그랬고…….”
“뭐……. 네, 그런 얘기가 있죠.”
“지금도 노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와서요?”
“네. 정유현 교수님이 진행 중인 연구 결과를 노리고 있다고도 하고요.”
“연구……? 이 지경이 됐는데 연구가 가능하단 말입니까?”
대령은 폭격 지시가 있기 전을 떠올렸다.
그때 된통 당하고 나서는 통신 불안을 빌미로 청와대의 지시를 아예 따르고 있지 않지만, 그 전까지는 나름 성실하게 그들의 명을 이행했더랬다.
‘거기 말고 가능한 데가 있나……. 있을 수가 있나?’
대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청주 근방에 항의원이 있지만, 거기도 딱히 연구 시설이 있는 건 아니었다.
심지어 청주 비행단에서조차 항의원은 접수하지 못하지 않았나.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기도 하거니와, 전투 부대 없이 병원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보니 정부 명령에 의해 감염자들을 모으다가 한 번에 당한 듯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도 지옥에 가까울 터였다.
대전도 수도 병원도 아니, 군 병원은 다 상황이 비슷하다고 알고 있었다.
“네. 그렇습……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흐음.”
하지만 유현이라면 또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그의 통찰력은 대단하지 않았나.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이미 예고도 했던 모양이었다.
아니, 그랬던 모양이 아니라 그냥 그랬다.
부하 장교 중에 그걸 PDF로 떠서 들고 있는 녀석이 하나 있었더랬다.
‘보아하니…….’
대령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본부장에게 다가갔다.
‘이 양반이 그래도 꽤 신중한 사람이잖아.’
그렇지 않나?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 그야말로 절대로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터였다.
“본부장님.”
“네?”
그에게 다가간 대령은 빙그레 웃었다.
그러곤 물었다.
“교수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네?”
“본부장님……. 거짓말 못 하시는 분 아닙니까. 다 티가 납니다.”
“아니…….”
“아, 저기 계시는구나.”
대령은 무의식중에 돌아간 본부장의 고개를 따라 소방차를 발견했다.
아닌 게 아니라 본부장이 여기까지 온 게 오늘이 처음은 아니지 않나.
오늘처럼 저길 돌아본 적은 단연코 처음이었다.
“걱정 마십쇼. 위해를 가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오히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저희로서는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
본부장은 깜짝 놀라 대령을 돌아보았으나, 별 소용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미 밖으로 나서고 있었으니까.
혼자도 아니었다.
여럿을 대동하고서였다.
“음.”
같이 나가긴 했지만, 1층에서 대기 중이었던 청년들 그리고 김태평은 곧 대령을 마주할 수 있었다.
청년들이야 이게 뭔 일인가 했을 뿐, 즉시 움직이거나 하진 않았지만.
김태평은 달랐다.
‘곧장 소방차 방향……. 어쩌지?’
뭔가 예상했던 것과는 일이 틀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숨겨 두고 있던 권총을 꺼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기엔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상대편도 총을 들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총 들고 있건 말건 군인도 빈총 들고 있는 나라니 신경 안 썼겠지만, 지금도 그럴까?
그럴 리가 없었다.
‘여차하면…… 쏘고 튀든지 아니면 나만 튀든지 해야겠구만.’
김태평은 속으로 시발 거리면서 그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한편 유현도 이변을 알아차렸다.
“어쩌지?”
그는 뒤에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던 이순규에게 물었다.
“어쩌긴 인마 나한테 물으면 어째.”
답을 구하려고 물은 건 아니었다.
그보다 먼저 유현의 몸이 절로 움직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단 얘기였다.
“안녕하십니까, 대령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무슨 마음으로 내려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기호지세 아닌가.
나쁜 마음을 품었다면 어차피 안에 있어 봐야 별 소용 없을 테니, 좋은 마음을 먹었길 바라야만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좋게좋게 풀어 나가기 위해서는 일단 호감을 이끌어 내야만 했다.
“정말…… 교수님이시네.”
그런 유현을 본 대령은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쩌실…….”
“안녕하십니까, 황선우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러곤 옆에서 끼어드는 부하를 제지하고는 인사를 건넸다.
유현은 일단은 다행이라고 여기며 인사를 받았다.
“죄송합니다. 먼저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아, 아뇨. 이해합니다. 먼저 믿기가 어려운 세상이죠.”
대령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세상이긴 했다.
“하지만 교수님은 예외십니다. 저희도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았어요.”
그러나 방금 말한 것처럼 유현은 예외로 두고 싶었다.
사실 자신도 있었다.
어차피…….
이곳은 자신의 왕국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욕심이 있다면 더 잘 다스리고 싶다는 것 정도였다.
무엇보다 청와대에 있는 그 개새끼에게 넘겨줄 생각은 없었다.
‘정부 측의 공격을 받았다는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정부를 미워하게만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
청주 쪽을 통해 듣지 않았나.
아무래도 10비를 폭격할 생각도 있는 것 같다고.
말이 되냐고 했지만, 그럼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냐는 말에 답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원래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은 미친놈이지 않나.
‘내가 흘린 정보가 효과가 있었나.’
김태평은 호의적으로 흘러가는 상황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일련의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다름 아닌 대통령한테 있다는 자료를 군에 흘린 장본인이 그이기에 그랬다.
자료의 태반은 유현의 것을 참조하긴 했지만 하여간 다행 아닌가?
어느새 그들은 대령을 따라 건물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