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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95화 (195/323)

195화 생존자 무리 (5)

“이……. 이 새끼!”

의식이 멀쩡히 남아 있는 건 이제 몇 되지 않았다.

“으…….”

“으아…….”

그렇다고 해서 다 죽은 건 또 아니었다.

아니, 죽은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의도한 바였다.

“야야! 저 새끼는 그냥 죽여! 그러다 누구 하나 다치면 어쩌려고!”

“입 하나 줄면 좋지, 뭘.”

“그 하나가 네가 될 거란 생각은 안 드냐?”

“어차피 미련 없어.”

사시미를 든 사내는 킬킬 웃으며 오함마를 든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소름이 끼치는지, 완력에는 자신 있던 사내조차 몸이 움츠러들었다.

안 그래도 허벅지에 작살이 박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난 저런 게 맛있더라.”

“아까부터……. 이 새끼……. 대체 뭔…….”

맛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아득해지는 와중에도 도무지 그냥 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너희들은 쟤네 운반이나 해. 특히 저 새끼, 저거. 눈 돌아가는 게……. 빨리 피 안 빼면 상할 거 같은데?”

사시미를 든 사내, 즉 영철은 오함마를 든 사내의 반응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쓰러져 있는 이들을 세모난 눈으로 살필 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런 영철의 명을 잠자코 따랐다.

리더 격인 사내조차 일단은 입을 닫고 있었다.

‘눈 돌아간 건…… 너지.’

영철은 미친놈이라서 그랬다.

한번 수틀리면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드는데, 다음엔 그 대상이 이쪽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나.

실제로도 같은 편 중 하나를 도륙 낸 적이 있었다.

‘뭐……. 똑같이 미친놈이긴 했는데…….’

인육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건 아마 속설일 터였다.

물론 사람이 사람을 먹을 땐, 당연하게도 감염 이슈가 있긴 할 터였다.

일반적인 감염병 외에도 인간 광우병이라든지 하는 것들…….

하지만 그게 벌써 발병했을까?

‘인육을 먹는 행위 자체가…… 뭔가…….’

그건 아닐 터였다.

그보다는 금기, 인류가 역사적으로 정해 놓은 선을 넘는 그 행위 자체가 영향을 미치는 듯했다.

처음엔 이 그룹도 이러진 않지 않았나.

저 영철조차도 처음엔 배고픔에 못 이겨 살인을 저질렀고, 그날 그렇게 목 놓아 울었더랬다.

그러나 이제는…….

“으, 으아악!”

다른 이 중 하나가 쓰러져 있던 이를 거칠게 끌고 가더니, 허벅지에 칼을 박아 버렸다.

기가 막힐 정도로 절묘한 칼 솜씨였다.

칼을 뽑아내자마자 허벅 동맥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자, 나 도와줄 사람!”

“여기!”

시뻘건 피가 함부로 튀어나오는 와중에도 무리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그저 킬킬 웃으며 다가와 쓰러져 있는 사내를 잡아 탄탄한 플라스틱 기둥에 묶었다.

줄줄

어느새 사내는 의식을 잃었다.

아니, 죽었을 수도 있었다.

원래 사람은 바이털 사인만으로 죽는 게 아니라 쇼크만으로도 죽을 수 있는 존재이지 않던가.

하여간 피가 줄줄 빠져나가면서, 사내의 안색은 점차 창백해지고 있었다.

“이 미친놈들…….”

그걸 보고 나서야, 오함마를 든 사내는 사태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미친놈들이!”

아까까지만 해도 죽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먹히는 게 두려워졌다.

그래서일까?

힘이 어디서 났는지 모를 정도로, 다친 다리가 무색하리만큼이나 힘차게 오함마를 집어 들고는 영철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오! 진짜 맛있겠네, 이 새끼.”

물론 영철에게 위협이 되진 못했다.

애초에 누군가를 죽여 온 경험의 총량부터가 달랐다.

두려움에 심장이 뛰는 사내가 차갑게 식은 채 침착한 영철의 상대가 될 수 있을까.

맨주먹이라면, 상처가 없었다면 또 모를 일이겠지만.

“으악!”

영철은 슥 옆으로 피하면서, 사시미로 사내의 다친 쪽 반대편 허벅지를 그어 버렸다.

그리 깊지는 않았지만 원래 상처라는 건 종이에 베여도 아픈 법이지 않나.

망한 세상이라지만 이러한 종류의 통증에 익숙할 리 없는 사내의 무릎이 굽혀졌다.

“더 보여 주지, 왜. 벌써 먹히고 싶나?”

영철은 그런 사내를 조롱했다.

“아휴.”

“저 새끼…….”

같은 무리가 보기에도 딱히 좋아 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물론 말리는 이는 없었다.

무서웠으니까.

아니, 하나만은 예외였다.

웃는 얼굴이 보기 좋은 사내, 곽근영이 그랬다.

“야야. 빨리 서둘러. 거기 맛있어 보이는 애들 많다구. 이러다 눈치 까고 도망가면 어쩌려고.”

아니, 웃는 얼굴이 보기 좋다는 건 아까까지의 얘기였다.

지금은 소름 끼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겠다는 생각을 하면 얼굴이 어찌 변하는지에 대한 증거물 같다고나 할까.

“그럴까, 그럼. 난 부드러운 건 별로지만……. 취향은 존중해 줘야지.”

그 말에 영철은 낄낄 웃었고, 오함마를 든 사내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울상이 되어서였다.

“안 돼! 안 돼애!”

지금까지는 자기들만 죽어 나갈 줄 알고 있었다.

그게 자연스러운 상상 아닌가?

하지만 이제 보니 진짜 목적은 따로 있는 듯했다.

두고 온 이들.

아내 그리고 아이들.

“어어? 가족이라도 있나 보지?”

혼신의 힘을 다한 공격은, 이번에도 빗나가고 말았다.

쾅바닥을 있는 힘껏 때려 버린 사내는 몸을 발발 떨었다.

통증과 두려움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안 돼……. 제발.”

망치는 이미 놓친 지 오래였다.

잘못 때린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영철이 팔뚝을 그어 버려서도 그랬다.

통증과 흘러나오는 피의 양은 일반인에 속하는 이의 정신을 던져 버리기에 충분했다.

“진짜 가족이라도 있나 보네. 운이 좋았네. 아직도 살아 있다니.”

영철은 엉엉 울고 있는 사내를 내려다보면서,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가서 찾아볼게. 닮은 애들이 있는지.”

“아, 안……. 읍…….”

그러곤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듣기에 최악이라 할 수 있는 말을 흘리며 목을 그어 버렸다.

“으……. 으…….”

성대까지 그어 버린 탓에 목소리는 이제 나오지 않았다.

대신 쇳소리 비슷한 신음만 흘릴 수 있을 따름이었다.

“뭐라고? 안 들려.”

영철은 끝까지 그를 조롱하다가, 이내 고개를 털었다.

“아……. 그만 죽여 버렸네.”

초점이 없어져 흐려진 눈을 내려다보면서였다.

“망할. 빨리 토막이라도 낼까?”

그러곤 다른 무리 중 하나가 들고 있던 도끼를 가져갔다.

무기를 강탈당한 상대는 그걸로 자기를 칠까 봐 몸을 움츠렸다.

“병신, 뭘 겁내냐.”

영철은 그런 상대를 보고 웃다가, 이내 무심한 얼굴이 되어 오함마를 들었던 사내를 토막 내기 시작했다.

콱콱근육과 뼈가 잘리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아직 살아 있던 이들은 그 소리와 모습에 혼절해 버렸다.

의미 있는 소리를 내고 있는 건 곽근영이 유일했다.

그는 아까와 달리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아, 시간 없다니까!”

“기다려. 그럼 나 없이 갈 거야?”

“아니, 네 작살이 있어야 도망치는 놈들 잡지.”

“그러니까, 가만히 좀 있어 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곽근영 또한 딱히 뭔 반응을 바라고 했던 말은 아닌지 툴툴대기는 해도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침묵 속에 사람 하나가 토막이 났다.

시간이 짧게 걸린 것도 아니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과 후처리를 하는 건 아예 다른 종류의 일이라서 그랬다.

막말로 영철의 완력이 다른 사람을 압도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처음엔 공포스럽게 바라보던 이들조차 지루한 얼굴이 될 무렵에서야 일이 끝났다.

“거기 몇 놈이나 있다고?”

“꽤 많아. 남은 게 수십은 될걸.”

“뭔 셈법이 그래?”

“내가 어떻게 그걸 다 세고 앉았어. 하여간 한두 달은 너끈할걸.”

“그거 잘됐네.”

피와 비명에 질려 버린 해가 넘어갈 무렵, 무리는 롯데타워 근방에 도달했다.

안에 있던 곽근영이 인도했기 때문에 작은 시행착오조차 없었다.

이미 어둑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저기. 근데 이 새끼들 입구가 여기만 있는 게 아니야. 한 서너 개 있을 거야.”

“아까부터 셈법이 너무 구린데?”

“어쩌라고. 어차피 다 잡을 순 없어.”

“잘 때 들이닥쳐도?”

“나름…… 체계가 있더라고? 우리 중에 죽는 애들 나올 수도 있어.”

“너였으면 좋겠네. 맛있을 거 같아.”

“지랄.”

일행을 선도하고 있는 건, 곽근영과 영철이었다.

리더 격인 사내는 아까 잡았던 이들을 운반하기 위해 떨어져서 그랬다.

사실 그건 핑계고, 그는 여전히 사람을 사냥하는 데 어느 정도 회의적이어서 그랬다.

그래 봐야 잡은 사람을 먹지 않는 건 아니다 보니 일종의 자기기만에 불과하긴 했지만…….

“하여간 들어가자.”

“많이 도망가겠네.”

“그렇다고 더 기다릴 수는 없어. 이상하게 생각하고 다 토끼면 어쩌려고.”

“그건 그렇지.”

습격의 정석은 모름지기 잘 때 이루어져야 제격일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예외였다.

무언가 찾기 위해 나갔던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이상한 일일 테니까.

아무리 제법 좋은 환경에 노출이 되어 있던 놈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경험적으로 또 이론적으로 동의했기에 한마음 한뜻이 되어 입구로 이동했다.

어느새 두런두런 이어지던 잡담도 사라진 채였다.

자박자박

그저 발걸음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앞장선 것은 곽근영이었는데, 어느새 소름 끼치는 미소 대신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어.”

“어. 왔어? 늦었…….”

경비를 서고 있던 사내가 그를 보며 반가움에 손을 들었다가, 그 자세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눈가에 단검이 박힌 채로였다.

영철이 곽근영을 더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이유이자, 그가 늘 다른 무리에 투입되었던 이유였다.

또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그저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군대에 있을 때부터 대검 던지기 놀이를 했다던 그는 그야말로 비도술의 명수였다.

“뭐, 뭐야!”

그렇다고 해서 은밀한 기습이 완성되는 건 결코 아니었다.

애초에 경비가 하나가 아니기도 했거니와, 은신처라고 마련해 둔 구역 자체가 좁기도 해서 그랬다.

“흡!”

물론 당황하는 찰나를 놓치는 법 따위는 없었다.

곽근영은 입을 더 열지 않은 채 칼 하나를 더 던졌다.

방금 뭐냐고 했던 이 하나가 또다시 뒤로 넘어갔다.

“쳐!”

“지금 무릎 꿇으면 살려 준다!”

“살려 준다고 할 때 말 들어!”

이미 달려들고 있었던 영철과 그를 필두로 한 이들 또한 각기 나름의 무장을 이용해 사람들을 토막 내고 있었다.

처음엔 식량 운운하지 않고 그냥 쳐 죽였다.

“어, 어어!”

“살려 주세요!”

그게 처음 제압할 때 제일 효과적이어서 그랬다.

그 덕이라고 해야 할까?

몇몇이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저기! 저것들 잡아!”

곽근영이 눈독 들이고 있던 이들 중 일부를 포함한 열몇 명이 도망가고 있었다.

다른 입구를 향해서였는데, 그쪽으로 비도가 날았다.

“억!”

운이 좋았다.

맨 앞에 가던 이의 등판에 칼이 꽂히면서, 그 뒤로 있던 이들 또한 넘어지는 이 때문에 속도가 느려졌다.

그리고 그중에 현정이 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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