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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05화 (205/323)

205화 관찰 (4)

“저것들은 물어야 해.”

김민수는 다섯 명의 후방 경계조를 일순간에 전멸시키고 나서 당장 공격에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리에 우뚝 선 채로 앞에 있는 것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거 잠깐 본다고 싹수 있는 놈을 골라낼 수 있나? 하는 의문은 무용했다.

이건 본능의 영역이었으니.

한없이 날카로워진 김민수의 직감이 구우준을 비롯한 식인종 무리를 훑고 지나갔다.

“야! 왜 뒤에서 총 안 쏴!”

전투 중이었다.

그것도 목숨을 건, 아차 하는 순간 모조리 죽어 나갈 수 있는…… 그런 전투.

생각해 보라.

아무리 총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해도 눈앞에서 라드 놈들이 날뛰고 있는 와중이지 않나.

벌써 두엇이 죽어 나간 마당이었다.

아니, 셋인가?

쇠꼬챙이가 아니라 돌멩이만 날아들어도 사람이 죽는다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저거……. 저것들……!”

그 와중에 라드 놈들이 거리를 좁혀 달려들게 되면 어떻게 될까?

몰살이었다.

어떻게 아냐고?

벌써 여러 번 봤으니까 알았다.

본 적만 있는 게 아니라, 겪어 보기까지 했더랬다.

겨우겨우 도망치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한 결과 이 무리를 이끌게 되었다.

무조건 접근을 저지해야 한다 이 말인데, 그러자면 당연하게도 이쪽에서 쏴 대는 총도 중요하겠지만 후방의 총이 더 중요했다.

애초에 그놈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여기까지 죽자고 튄 거잖아.

“이 시바아알!”

그런데 어째 총격이 좀 사그라들었다 싶어서 뒤를 돌아보니 라드 놈들이 있었다.

대체 어떻게?

언제?

이따위 의문은 들지 않았다.

그저 X 됐다는 생각만 들었다.

“야, 야!”

포위당했다.

앞뒤로.

그것도 뒤쪽에 있는 놈들은 건물 위에 있었다.

저기서 뭐라도 던지게 되면…….

아니, 그 전에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위에서 뛰어내리기만 해도 그걸로 죽음이었다.

“이런 시발!”

훅그런 와중에서도 구우준은 상황 파악을 완료했고, 그의 부름에 영철과 곽근영은 정신을 차리고 반격에 나섰다.

상황을 타개해 보겠다, 뭐 이런 건 아니었다.

셋의 시선은 그저 건물 옆 으슥한 곳에 웅크리고 있을 차량에 꽂혀 있을 뿐이었다.

저기까지만.

저기까지만 가면 도망갈 수 있다, 이 생각으로 총과 비도를 사방에 흩뿌리며 뛰기 시작했다.

“어, 어디 가십…… 윽.”

뒤늦게 그들을 따라나서려던 이는 구우준의 총에 다리를 맞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구우준은 다리에 총을 맞은 이를 사격이 멈춤과 동시에 달려들기 시작해 벌써 코앞에 당도한 라드 무리에게 던져 버렸다.

제아무리 규율이 있는 놈들이라지만, 죽은 것도 아니고 다리만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인간을 보면서도 즉시 정신을 차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상대를 물어 댈 뿐이었다.

“저것들이다!”

그 모습에 이미 셋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김민수의 눈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저기! 저기로 달려!”

“음!”

뭐가 있길래 저렇게 뛸까?

그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디로 뛰는지는 명확했다.

제아무리 셋이 대단한 놈들이라고 해 봐야, 이 와중에 시선까지 조작하는 건 무리였으니.

두두두두

뻔히 목적지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의 뜀박질이 라드의 그것을 이겨 낼 수 있을까?

사정을 자세히 모르는 사람도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것쯤은 알 수 있을 터였다.

장거리 달리기라면 또 모르겠지만…….

단거리에서는 절대로 이겨 낼 수 없었다.

“저, 저!”

“뭐야, 대체! 어떻게!”

“이……. 이!”

셋은 느린 편이 아니었다.

애초에 뭐라도 뛰어나니까 무리에서 위에 서지 않았겠나.

머리면 머리, 체력이면 체력 어느 것 하나 뒤처지는 게 없었다.

그러나 바로 뒤에서 겅중겅중 뛰어 어느새 눈앞을 막아 버린 거대 개체보다 빠르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죽여! 죽이고……!”

구우준은 즉시 달리기를 멈추고 총을 겨누었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기진 못했다.

놈의 손에 들려 있는 방패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방패는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이었던 것이라고 해야 할까?

후방을 맡겼던 부하 한 놈이 덜렁 들려 있었다.

훅곽근영이 비도를 던져 봤지만, 부하의 시신에 박힐 뿐이었다.

“끄어억!”

그사이 뒤따라온 놈에게 영철이 붙잡혀 갔다.

한가락 하는 놈이니만큼 총을 내던지고 즉시 발목에서 칼을 뽑아 라드의 팔뚝을 찔렀지만…….

“컥.”

라드 한 놈이 급작스러운 통증에 놀라 놓치는 것보다, 다른 놈의 주먹이 영철의 명치께에 꽂히는 것이 더 빨랐다.

한 방.

단 한 방에 영철은 무력화되었다.

푹그사이에도 곽근영은 평소의 그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 대신 끔찍한 얼굴을 하고 비도를 던져 댔지만 길을 뚫지 못했다.

역부족이었다.

“헙……. 으…… 으아아…….”

방패 대신 들고 있던 시신이 곽근영에게 날아들고, 그걸 몸을 굴려 피했지만.

그 뒤로 달려든 라드가 내지른 발길질까지 어찌하진 못했던 까닭이었다.

물론 만만한 사내는 아니었단 증거로 라드의 허벅지에 비도를 쑤셔 박긴 했지만, 각기 한 방씩 주고받았다고 웃기엔 이쪽의 데미지는 결정적이었다.

“아파.”

그에 비해 라드는 비도를 뽑아 던지고, 곽근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가 난 기색보다는 걱정하는 기색이 더 역력한 것이 의외였다.

통증 때문에 애초에 의도했던 것보다 더 세게 찬 것이 그 이유였다.

“죽었나. 아니군. 그래, 잘했어.”

아니, 그보단 죽었을 경우 김민수에게 당할 문책이 염려의 이유였다.

“뭐…… 뭐야. 넌…….”

신뢰하던 부하 둘이 붙잡히는 틈을 타 도망하려던 구우준은 라드의 우악스러운 주먹이나 발길질 때문이 아니라 김민수의 말에 멈추어 섰다.

라드 아닌가?

근데 어떻게……?

“넌…… 뭐지? 난……. 난…….”

처음엔 사무치는 두려움이 엄습했더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말을 할 수 있는 라드라니.

움직임이 남다른 놈들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리더가 이런 놈일 거라는 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라드가 되어도…… 저렇게 될 수 있는……. 있는 건가?’

그러나 뒤이어 찾아온 감정은 안도였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라드가 되는 게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비단 구우준의 것만은 아니긴 했다.

아니, 현실이 끔찍해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을 품었더랬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았던, 포기할 수 없었던 이들이 절대다수였다.

라드에 대한 본능적 혐오 때문이었다.

일단 같은 인간을 때려죽이고, 심지어 먹기까지 하는 놈들이잖아?

‘저렇게 될 수 있다면…….’

그러나 구우준은 이미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짓을 했던 놈이었다.

그가 두려워하고 있던 건 오직, 인간에서 더 열등한 존재가 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이 라드는…….

그래, 가까이서 보니까 눈알도 달랐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는 게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것도 보는 눈알이었다.

다시 말해 사람, 그중에서도 똑똑한 놈에 속하는 놈이었다.

“으음!”

어느새 구우준은 쥐고 있던 총을 늘어뜨린 채, 김민수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걸 위협으로 느낀 김민수의 수족들이 제지에 나서려 했지만, 김민수가 손을 들어 오히려 그들을 멈추어 세웠다.

“잠깐. 이 새끼…….”

다르다.

확실히 다르다.

이놈은…… 다르다.

‘이런 놈은 없었지.’

나쁜 놈?

드물긴 해도 처음부터 있긴 했다.

망하기 전 세상에도 나쁜 놈은 얼마든지 있지 않았나.

세상이 이렇게 망가진 후에는, 그러니까 법이라는 제약이 사라지고 난 후에는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사회적 약속까지 옅어진 후로는 그저 인외의 세상이었다.

그래, 김민수는 나쁜 놈이라면 얼마든지 봤더랬다.

그중엔 미친놈에 속하는 놈도 있었다.

여기만 해도…….

‘시신 꽂아 놓는 놈이 제정신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놈은.’

대부분은 자신을 보면서 대체 어떻게라는 말이나 주절거릴 뿐이었다.

아니면 아예 공포에 정신이 나가서 덜덜 떨고만 있거나.

“네가……. 네가 물어.”

여태까지 이렇게 나오는 놈이 있었나?

없었다.

있었다면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원한다면.”

김민수는 실로 오랜만에 포만감을 느끼며, 이미 짐승의 그것이 된 지 오래인 포효를 지르며 구우준의 팔뚝을 조심스레 물었다.

혹 덧날까 두려워서 그랬다.

이놈이라면 진정한 의미의 동료가 될 것 같아서 그랬다.

“미, 미쳤어?”

“대장! 왜……. 왜 그러는 거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영철과 곽근영은, 간신히 얻어맞은 충격에서 벗어나 있던 둘은 맞는 것보다 더한 충격에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도 대단해 보였던 대장이 알아서 물리지 않았나.

게다가 공포에 질린 기색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웃고 있었다.

진짜로 미쳤나 싶었다.

“니들도 이놈한테 물려.”

“왜……. 왜!”

“이놈은…… 인간보다 우월하잖아. 똑똑한 라드라니. 이건…… 어쩌면 진화야.”

“무슨…….”

“그게 뭔…….”

하긴 그들의 대장은 처음부터 미쳐 있었더랬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무리를 여기까지 끌고 올 수 있었겠어?

둘 중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영철이었다.

하도 오랫동안 미친 사람으로 가장해 있던 탓 아니, 덕일 터였다.

“뭔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대장 말 들어서 손해 본 적은 없지.”

그는 마지막으로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뒤쪽에 놓인 차량을 보다가, 이내 김민수 앞으로 다가갔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명치를 맞으면서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좀체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해서 기었다.

“저게 뭔……. 뭔 일이지?”

멀리서 그 꼴을 지켜보던 김태평이 저도 모르게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당최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유현 또한 넋 나간 얼굴이었다.

물론 유현의 당황이 조금 더 짧기는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현경을 물었던 그놈이 떠올라서 그랬다.

소름 끼치도록 끔찍스러운 웃음소리를 내면서 사라졌던 그놈…….

‘어쩌면…… 저놈.’

라드가 신체적으로 인간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 대가로 수명을 갖다 바치고 있다는 건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런데 이성까지 지킬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면 어떻게 될까.

기본 정보가 없는 유현이라면 어쩌면 저렇게 나설 수도 있겠다 싶었다.

뭐가 되었건 우수한 놈에게 물리는 편이 더 낫기는 할 테니까.

‘이런 얘기는 아무한테도 하면 안 되겠지.’

스스로 자평하기에도 너무 또라이 같은 생각이지 않나.

유현은 고개를 흔들고는 이제 넋 나감을 가장한 채 말을 이었다.

“대체 저게……. 저게 무슨 일이죠?”

마침 곽근영도 같은 놈에게 물렸다.

그 외에도 줄줄이 묶인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전투 과정에서 죽어 나간 라드 놈들도 적지 않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력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더 강해질 것이 분명했다.

죽으면 좀비가 되는 것보다는 낫지만, 물면 같은 편이 된다는 건 역시나 두려운 일이었다.

“중요한 건……. X 됐다는 거 아닐까요?”

“네, 생각보다 너무 못 죽였어요.”

“슬슬 튀죠. 수원 쪽에도 더 징징거리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야죠. 거참……. 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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