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준비 (3)
“그게 정말입니까……?”
요원 하나가 도무지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김태평을 바라보았다.
자기 팀장이라면야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렇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테지.
하지만 저 교수가…… 그런 부탁을 아니, 지시를 내렸다고……?
“그래. 내가 누누이 말했지. 저 사람은 나랑 같은 부류야. 좀 더 사회화가 되었을 뿐이지.”
“거……. 팀장님 같은 의사가 있다고 하면 너무 무서운데요?”
“왜? 사람이 아니라 균을 죽인다고 생각해 봐.”
“그렇게 생각하면 또 든든한 거 같기도 하고…….”
“하여간, 준비해.”
김태평은 그런 요원의 어깨를 툭 하고 두드려 주었다.
팔다리 성하지 못한 놈들이 태반이지만, 그럼에도 스무 명이나 충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숨통이 트이지 않았나.
이렇게 요원을 빼 갈 수도 있고 말이다.
“슬슬 해 떨어질 텐데요.”
“그 편이 유리해. 쟤들도 밤에는 쉬잖아.”
“그렇긴 한데…….”
“엄살 떨지 말고. 슬슬 날 풀리잖아. 너 쟤네 싸우는 거 봤지? 숫자도 많다고 생각해 봐라. 갑자기 수 불려 가지고 라드 놈들 고기 방패로 쓰고 달려들면…….”
“하. 엄청 죽어 나가겠죠.”
라드 놈들이 직선으로 뛰어올 때의 속도는 대략 시속 50km 이상이었다.
아마 60km짜리도 있을 터였다.
약 빨고 뛰는 거나 마찬가지인 데다가, 놈들의 아드레날린 농도 또한 어마어마하니…….
그래 봐야 위에서 보며 쏴 죽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수가 많다면 얘기가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뒤에서 멀쩡한 라드 놈들이 지원으로 돌 던지고 하면…….’
끔찍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주변에 있는 생존자들을 처리하는 건, 일종의 청야전술이 될 터였다.
물론 이 전술 또한 끔찍하긴 하지만…….
지금 있는 이 일행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김선태가 직접 정예를 끌고 오지 않는 이상……. 지금 정부에 있는 놈들 중에 여기 아무렇지도 않게 뚫을 수 있는 놈들은 없지.’
탱크 몰고 오면 되지 않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자동차도 푹푹 퍼지는데 탱크가 어찌 버틸 수 있겠나.
정비를 제대로 해 왔다면 또 모르겠지만…….
인프라가 박살 난 이상 어려운 일이었다.
‘수원의 지원을 받아서 남산을 뚫으면……. 희망이 있을 거야.’
더군다나, 이쪽엔 정유현이 있었다.
남다른 통찰력을 지닌, 감염의 스페셜리스트.
그 인간이 연구소를 장악하게 된다면…….
모르긴 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대통령도 함부로 나오지 못할 것이고.
“자자, 가자고.”
“네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김태평은 이내 몸을 일으켰다.
요원들 또한 그런 김태평을 따라나섰다.
이미 나설 채비를 하고 있던 마당이라,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일단…… 여기.”
김태평은 유현이 본부장에게 받아 온 주변 지도에 표시된 여러 엑스 중 하나를 가리켰다.
본부와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동시에 라드 놈들이 향했던 곳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기도 했다.
“네.”
수월한 곳부터 처리한다는 건…….
어찌 보면 합리적이지 못한 일일 수도 있었다.
오히려 저놈들과 가까운 곳부터 처리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겠나?
-제일 중요한 것은 팀장님과 요원들의 안전입니다.
그러나 김태평은 유현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분명 걱정하는 마음도 있기는 할 터였다.
‘그보다는…… 우리의 전력이 줄어드는 걸 염려하는 것일 테지…….’
라드와의 싸움에 있어 인간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쪽은 새로운 사람을 영입하기가 어렵지 않나.
당장 최근에 구출했던 현정만 생각해도 그랬다.
그 새로운 놈에 의해 보금자리가 사라져 버렸다.
같이 지내던 이들의 일부는 그때 죽었고, 살아남았던 이들은 대부분이 먹이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굴 믿고 영입할 수 있겠나.
그에 비해 라드 놈들은 일단 물면 그걸로 끝이었다.
여전히 이성보다 본능에 의해 끌리는 놈들은, 어지간히 흥분을 하거나 핀치에 몰리지 않는 이상 바이러스의 조종에 따라 절대로 동족을 배반하지 않았으니.
부우웅
그러한 연유로 김태평이 향하게 된 곳은 대략 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학교였다.
말이 학교지 서울에 있는 학교들처럼 커다랗지는 않았다.
“이미 폐교한 학교네요.”
“시골에는 이런 곳이 많다고 들었지.”
기껏해야 한 동이 다였다.
주변에는 논인지 밭인지 모를 것들이 펼쳐져 있었다.
굳이 담이 필요했을까 싶을 만큼이나 평화로운 농촌 그 자체였으나, 학교는 학교이니만큼 높다란 담장이 쭉 쳐져 있었다.
철제 정문 또한 굳게 닫혀 있었는데, 그 뒤로 무수히 많은 철제 책걸상들이 놓여 있어 들어가기가 그리 쉬워 보이진 않았다.
“선생님들이 주축이 되어 버티고 있다고 합니다.”
“젊은가?”
“아무래도 그렇겠죠. 저희도 신입이 주로 험한 곳으로 가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겠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서울에 발령이 났다면 아무래도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그쪽은…….
정말 아비규환이었으니까.
예상했던 것보다 라드 놈들이 더 무서웠던 것도 있지만, 권력에 미친 대통령이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의도적으로 더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름…… 경계를 서는 인원이 있습니다. 차 저쪽에 두고 오길 잘했네요.”
“뭐…… 지금까지 운만 좋아서 살아남았겠어?”
“그건 그렇죠.”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해는, 여전히 붉은빛으로 대지를 비추고 있었다.
세상이 아니, 인간들의 세상이 멈추자 이내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한 자연환경 덕에 석양은 그 어떤 때보다 아름다웠다.
어느 정도였냐면 경계를 서고 있던 이조차 거기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을 지경이었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재난 본부 사람들도 대개 그랬으니.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지 않나.
사상 초유의 재난 사태에서조차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이쪽.’
‘네.’
경계가 태만한 지금, 김태평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 속에서 침투를 시도할 수 있었다.
애초에 재난 본부와 아예 교류가 없던 곳이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이쪽에 몇 명이 있는지 대강은 알고 있었다.
‘모두 열 명……. 근처 노인들을 규합한 탓에 절반은 노인…….’
위급 상황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5명이 다였다.
무장 상태도 형편없었다.
칼?
낫?
아무튼 간에 농기구 정도에서 조금 더 발전한 게 다였다.
“어…….”
그런 생각을 하며 움직이고 있으려니, 이상 소견이 눈에 들어왔다.
무너진 담장.
앞서가던 놈이 괜히 힘 빠진 소리를 내는 게 아니었다.
이거…… 최근에 무너졌다.
아니, 최근도 아니고.
“조용히. 위험할 수도 있겠어.”
“네네.”
“일단…… 지금은 여기서 대기.”
방금 무너진 모양이었다.
주변으로 흩어진 조각 및 먼지 그리고 발자국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그러했다.
‘라드……. 적어도 다섯…… 아니, 그 이상.’
라드 놈들의 발자국은 신발 크기로 재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보다는 신발 자국 앞에 난 이상한 자국을 봐야 했다.
대개의 경우 자기 사이즈에 맞는 신발보다 턱없이 작은 신발을 신고 있는 만큼, 발끝 쪽이 터진 채로 다니거든.
그럼 필연적으로 걸어 다닐 때 그 앞에 발가락 등으로 인한 자국이 남기 마련이었다.
“대충 여섯? 아니, 일곱일까요?”
“초거대 개체도 하나 있어. 시발…….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재난 본부 쪽에서도 5킬로 이상 떨어져 있는 곳이니, 놈들이 있는 곳과는 거의 15에서 20킬로가량 떨어져 있을 터였다.
감시망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기는커녕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 돌아올 수야 있겠지만…….
“그보다는 진짜 지독하게 운 없는 사람들 아닙니까? 어떻게…… 여기로 바로 왔지?”
“바로 왔겠냐……?”
빛이 비치는 내내 밖에 다니며 이렇게 생존자들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놈들 입장에서야 밖이 딱히 위험할 일도 없지 않겠나.
더군다나 초거대 개체가 껴 있다면…….
이전 세대 라드 놈들과 마주친다고 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을 터였다.
와장창
그때 뭔가 박살 나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담장 뒤로 몸을 숨긴 채 들여다보니, 2층 창문 쪽에서 누군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팍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뒤로 또 무언가 떨어져 내려왔는데, 그건 라드였다.
“도망……. 못 간다.”
“이런 시발……. 뭐야! 이거!”
떨어진 사람 또한 맞아서 떨어진 것은 아닌지, 나름 몸을 일으켜서 대응하고 있었다.
아니, 대응이라기보다는 그저 마주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들고 있는 무기가 작대기에 지나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퉁분명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뜻밖에 구원군이 나선 상황이었다.
“크……?”
소음기를 장착했지만, 자동소총의 소음이 줄면 얼마나 줄겠나.
둔중한 소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고 감각이 예민한 라드는 이내 김태평 쪽을 돌아보았다.
별 소용은 없었다.
“크…….”
제아무리 라드라 해도 불의의 총격에는 무력할 따름이었다.
물론 한 방에 죽이는 건 무리였지만.
퉁퉁이미 한쪽 무릎이 나가 버린 마당에 뭐 어쩌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폭력적인 속도로 쿵쿵거리며 내달렸지만, 이내 명치에 연속으로 두 방의 총격을 맞은 라드는 내출혈로 인해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그러고도 죽지 않은 채 입가에 피를 흘리며 버티고 있긴 했지만.
“어……. 감……. 컥.”
“팀장님?”
“너 여기서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거 같냐?”
김태평은 그 모습을 보며 희망을 품었던 사내의 머리에도 총알을 박아 넣었다.
놀란 팀원이 물어 왔지만, 김태평은 옆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못 데려가.”
“이길 수…….”
“있을 거 같냐?”
“음.”
김태평은 슬슬 박살 나기 시작한 학교를 가리켰다.
이제 불까지 옮겨붙은 상황이었다.
아마…….
최후의 수단으로 불을 내지른 것이 아닐까?
쿵하여간 시커멓게 내뿜어 오는 연기나 시뻘건 불길은 라드에게도 위협적인 만큼, 이내 2층에서 몇몇 라드들이 뛰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중 둘은 아직 산 사람을 들고 있었다.
사람 하나를 든 채로 뛸 수 있다니.
그러면서 동시에 착지하며 무릎을 지킬 수 있다니.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완력이란 말인가.
퉁그런 생각을 하면서, 김태평은 침착하게 총을 쐈다.
나머지 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부우웅
이어지는 총격에 대강의 사태를 파악한, 차에 남아 있던 요원이 차를 몰고 담장 쪽으로 달려왔다.
여차하면 타고 튀면 되는 상황.
퉁퉁퉁
퉁퉁퉁
최대한 라드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김태평은 총격을 가했다.
생각 같아서는 조종간 연발로 바꾸고 긁고 싶었지만…….
“탄약 아껴! 어차피 저 새끼들 부상만 입어도 나중에 다 뒤져!”
“네!”
“자, 튀자!”
“네!”
대강 가까운 놈들만 맞히고 뒤도 안 돌아보고 튀어야 했다.
“크오오오오오!”
뒤에서 짐승 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시발.”
백미러로 보니, 초거대 개체가 뛰어오는 게 보였다.
거의 무슨 전차 같은 느낌인데…….
“병신.”
느낌이 그렇다 해서 반드시 빠른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