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209화 (209/323)

209화 준비 (4)

퉁퉁얼마간 멀어진 후에는 다시 총을 쏘았다.

“크아아아!”

아깝게도 초거대 개체를 맞히진 못했다.

놈이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민첩한 몸놀림으로 옆으로 굴러서 그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뒤따라오던 놈들 중 한 놈 정도는 맞혔다는 건데…….

“이대로는 수지가 안 맞아. 그대로 가자.”

“아, 네.”

어둡기도 하거니와, 자세도 안 나오는 상황인데 탄약도 아껴야 되다 보니 뭘 맞히기가 어려웠다.

최악의 상황까지는 아니겠지만 그에 준하는 상황 정도는 되지 않겠나?

때문에 김태평은 빠르게 포기하고 그냥 내달리기로 했다.

“크오오오!”

한쪽 후미등이 깨진 채 달아나는 차량을 보면서, 초거대 개체가 포효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섬뜩한지, 지금까지 맞서 싸우던 이들의 심장조차 잠시 덜컥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같은 라드들이라고 해서 다르진 않았다.

아니,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우오.”

“으으으.”

몇몇 지능이 떨어지는 놈들은 지레 겁을 먹은 채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거나 숫제 오줌까지 지리는 놈들조차 있었다.

그러나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제길.”

의미 있는 언어를 내뱉는 놈이 있었다.

덩치가 크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작았다.

라드치고는 아주.

“몇 놈이나…… 있지?”

조금 체격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물론 눈에 감도는 기이한 기운이나, 쓸데없이 거칠어 보이는 발걸음 등을 자세히 보면 라드인 것을 알 수 있을 테지만.

애초에 그러한 것이 라드의 특징이라는 걸 아는 사람도 드물었다.

“둘…… 잡았다.”

“둘? 적은데……. 게다가 노인이잖아.”

“노인?”

“에이.”

게다가 이어지는 대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냥 사람처럼 보일 뿐이었다.

‘한 소리 듣겠군……. 죽어 나간 놈들까지 합치면 손해야. 압도적인 손해……. 하지만…….’

녀석은 쯧 하고 학교 쪽으로 돌아갔다.

고개를 이리저리 털기도 했다.

그러면서 주변에 널려 있는 돌부리 등을 의미 없이 후려 차기도 했는데, 그런 모습이야말로 라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보니, 인간과 라드가 뒤섞인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적어도 놈들이 밤에 이런 식으로 사보타지를 하고 있다는 건 파악했어. 수는…… 대략 넷? 아니면 다섯?’

그러나 고뇌에 찬 얼굴만은 확실히 인간의 그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꽤나 진중해 보이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총을 들었고……. 꽤 강해……. 숙련되어 있어. 병사들 수준이 아냐.’

아까 복도에서 봤다.

그 찰나의 순간에 동료의 무릎을 박살 내는 광경을.

암만 준비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렇게 순식간에 양측 무릎을 날리다니.

전문적으로 총 만지는 놈들임이 틀림없었다.

물론 영철이나 곽근영처럼 사태가 터지고 나서 재능을 개화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지만…….

‘나머지 놈들의 움직임도…… 확실히 달랐어.’

라드, 구우준은 이제 학교 안에 들어와 있었다.

아까 들었던 것처럼 노인 둘만이 살아남아 있었다.

다른 놈들은 다 죽었다.

젊고 팔팔한 것들이 좀 있었는데…….

“이거 누가 죽였어?”

“모른다.”

“몰라? 미친놈들이.”

죄 죽였다.

아마 이 자리에 그가 남아 있었다면, 통제가 가능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여기 남았어야 했을까?

차를 따라간 건 실수였을까?

아니, 실수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이거……. 이거 우리가 한 게 아니잖아?”

놈들이 얼마나 되는지, 어떤 수준인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 알아내지 않았나.

막말로 이까짓 라드들이야…….

어디서건 수급할 수 있을 터였다.

왜인지 모를 이유로 그 냉철한 리더 김민수는 서두르고 있지만…….

시간을 두고 찾는다면야 남아도는 게 사람 아닌가.

“흐음……. 그 새끼들도…… 보통내기는 아닌데……?”

구우준은 한때 식인종으로, 그러니까 사람 사냥꾼으로 살았던 만큼 생존자 무리를 찾는 데에는 도가 터 있었다.

제아무리 숨어 지낸다고 해도 정말 한 발짝도 밖에 나오지 않는 놈들이 아닌 이상 주변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여기도 그렇게 알았다.

하여간에 구우준은 작은 운동장에 널브러져 있는 청년의 시신을, 그중에서도 머리 쪽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총상이었다.

그놈들이 쏴 죽였다, 그 말이었다.

‘대장한테 들었던 거랑…… 좀 다른데?’

김민수 말에 의하면, 자신이 문 여자조차 버리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 말인즉슨 나약한 놈들이라는 얘기 아니던가.

그런데 이렇게 생존자를 쏴?

‘라드가 될 바에는 죽인다 이건데…… 흐음……. 이런 놈들이라면 쉽지 않겠는데.’

라드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라드라 해서 인간을 반드시 사냥감으로만 볼 수는 없는 법이라는 걸.

지금도 보면 저 총 든 놈들 말고, 여기 있던 놈들에게 한 놈이 당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호르몬인지 뭔지의 영향 때문에 암만 거대화 과정을 거쳤다 해도 호랑이나 사자가 된 건 아니지 않나.

아니, 그렇다 해도 인간은 꽤 거대한 동물이다 보니 상대가 쉽지만은 않았다.

약점이 있다면 문명화가 진행되어 상대가 라드임에도 불구하고 선을 넘지 못하거나 넘는 데 시간이 걸린단 점인데…….

‘이런 걸 알리면…… 한 소리 듣고 말겠네.’

구우준은 한숨과 함께 주변을 돌아보았다.

죽어 나간 라드만 무려 셋이었다.

어디 한 군데라도 총알이 박힌 놈들까지 더하면 여섯이었다.

저 셋이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아 보이진 않지만…….

글쎄.

치료가 될까?

철저히 운에 맡겨야 할 일이었다.

의사는커녕 수의사 출신도 없는 것이 이 집단의 현실이었으니.

“돌아간다.”

“으음.”

“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초거대 개체는 멀쩡하다는 점이었다.

지능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 힘이 세면 머리가 고생할 일이 잘 없는 법이었다.

-이런 놈들은 너무 윽박지르면 안 돼. 그러다 죽어.

툭 치는 것만으로도 사람 아니라 일반적인 라드조차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놈들이지 않나.

거의 무슨 전략 무기 취급이었는데, 한번 사용해 보니까 왜 그러는지 알 것도 같았다.

방금도 저 담벼락…….

한 방에 무너뜨리고 쳐들어가지 않았나?

그 과정에서 괜히 두 명을 죽여서 성과를 줄이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누구 하나 죽어 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끼이익

그렇게 구우준이 라드를 데리고 본거지로 돌아가는 동안, 김태평은 본부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착잡해서 그랬다.

“팀장님?”

실로 오랜만에 담뱃불을 당길 정도로.

“뭐.”

“아니……. 끊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 와중에 오래 살면 뭐 얼마나 산다고.”

“그래도…….”

하도 오랜만에 마시는 담배 연기라 그런지 머리가 핑 도는 느낌마저 들었다.

김태평은 차에 잠시 손을 얹은 채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다 죽이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그……. 도저히 무리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그렇긴 해.”

김태평이나 요원들은 군인이 아니지 않나.

교전이 벌어진다면, 우리가 누군지 모르게 하는 게 늘까지는 아니더라도 대개의 경우에 최우선이었다.

그래서 저격이나 독살 등의 방법이 선호되었고, 일이 틀어진다면 전부 다 죽이는 것이 원칙 아닌 원칙이었다.

그러나 라드를 상대로 그게 되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상대가 우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안다는 전제하에 움직여야 해. 함정이 있을 수도 있어.”

“그렇게까지……. 그렇게까지요?”

“상대는 일반적인 라드가 아냐.”

김태평은 초거대 개체 뒤에 있던 놈을 떠올렸다.

초거대 개체를 포함해서 다른 놈들 모조리 맹목적으로 차를 쫓고 있었더랬다.

잔뜩 흥분한 채 내달리느라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놈도 있었고.

지금 생각해 보니, 초거대 개체도 총을 피하려고 피한 게 아니라 그냥 넘어졌던 것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중에…… 명백히 다른 놈 하나가 있었는데……. 그 새끼…….’

전에 봤던 그놈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편에 있던 놈과 닮았다.

얼굴을 알아본 건 아니었다.

입고 있는 옷…….

점퍼가 같았다.

‘그 새끼는…… 우릴 보고 있었어. 차랑 우리 얼굴…… 그리고 총…….’

김태평만 상대를 관찰했던 것은 아닌 듯했다.

상대 또한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더랬다.

그게 소름이 끼쳤다.

생각하는 라드라니.

이게 대체 무슨 끔찍한 혼종이란 말인가…….

“일단 가자.”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김태평은 걱정만 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뭐든 간에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나?

게다가 어찌 보면 잘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참상을 듣고 난다면 아무래도 본부장의 태도 또한 변하지 않겠나.

더 적극적인 대응이 가능해진단 소리였다.

“네에? 여기에?”

“네.”

“아니……. 여긴…… 그놈들이 있던 곳하고 멀지 않습니까?”

“네. 하지만 습격받았습니다. 어쩌면 이 위쪽은 벌써…….”

“며칠이나 지났다고……. 이제 고작 사흘? 나흘? 이 정도 지난 거 아닙니까?”

“라드 놈들은 체력이 좋으니까요.”

“하지만 머리는 나쁘지 않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김태평이 말을 꺼내니, 무척이나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본부장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이들 또한 자러 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머리가 나쁘다는 것도 이제는 좀 생각을 달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우리보다 강한 적과 싸우고 있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거기에 정유현까지 거들고 나서고 있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아니……. 그럼…… 아이구.”

“일단 적극적으로 우리가 소재를 알고 있는 생존자 무리를 찾아야겠습니다. 저놈들이 그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 그렇긴 한데…… 그러다 이쪽의 경계가 허물어지면 어쩐단 말입니까.”

“차로 움직일 테니 금방이지 않겠습니까? 대신 봉화라도 마련해 두죠. 무슨 일이 생기면 올 수 있게.”

유현의 말에 김태평이 또 거들었다.

“봉화 대신 이걸 쓰죠.”

“아…….”

폭죽 비슷한 것을 들고서였다.

구조 요청 보낼 때 쓰는 물건인데, 김태평이 강변에서 도망치면서 챙겨 온 물품이었다.

“가시거리는 적어도 10km 이상입니다. 애초에 그 이상 나갈 게 아닌 데다가……. 이곳 본부가 상대적으로 주변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니 금방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놈들도 우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았다는 점입니다.”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겁나는 소리를 끊임없이 해 댔다.

평소라면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텐데…….

오늘은 둘 다 초조했다.

확실히 적은 강대했고, 또 똑똑하기까지 하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심지어 놈들은 한발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어쩌면 그날 목격했던 곳이 아니라 아예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럼 어쩝니까?”

“일단…… 주의해야겠죠. 조심스레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숫자도 더 늘리고요.”

“허어…….”

“이건 제가 김태평 요원과 함께 더 얘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알겠습니다. 네에. 하아.”

그렇게 대화가 진행되다 보니, 어째 점점 주도권이 유현과 김태평에게로 이동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본부장은 그 점에 있어 화가 난다기보다는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가 감당하기에 눈앞에 닥친 파도는 너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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