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습격 (6)
5층 옥상.
그리 높은 건물은 아니라지만…….
이 근방에서는 제일 높은 건물이지 않나.
게다가 김태평과 요원은 동산 꼭대기쯤에 있었기 때문에, 고개만 돌려도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저 미친.”
“지금…… 부른 거죠?”
“그런 거…… 같은데.”
“이런 망할. 이런 미친.”
옥상에 있던 놈들이 잠시 웅성대는가 싶더니 박살 난 문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놈들이 어디로 올까.
뻔할 뻔 자였다.
목적지는 여기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본부가 5층 건물인 데다가, 산까지 거리도 꽤 있다는 점이었다.
“저……. 저 놓고 가십쇼.”
그래 봐야 유리해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시간문제지 않나.
정말로.
저놈들이 쇄도하는 순간, 둘은 죽은 목숨이었다.
아니, 죽은 목숨이라면 차라리 나았다.
‘물리면…….’
물리면 저놈들처럼 된다.
“닥쳐.”
김태평은 이상한 소리 해 대는 요원을 조용히 시킨 후, 방금 소리 지른 놈 쪽을 바라보았다.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저 나무 그리고 돌뿐.
그러나 저 뒤 어디엔가 있었다.
움직이면…… 쏘겠지.
잠깐만…….
쏴?
‘이상한데…….’
방금 사격 솜씨를 보면 그리 훌륭하다고 하기는 뭐하지만, 산에 들어오기 전에 쐈으면 분명 둘 다 죽은 목숨이었을 터였다.
아니, 산에 들어왔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 1, 2분간의 자신은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인간을 상대로 라드 둘이, 그것도 총을 쏠 수 있는 라드 둘이 왜……?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새끼……. 스스로 물린 놈 아닌가?’
찰나의 순간, 김태평의 머리가 마구잡이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도 이상하다 여기고 있긴 했다.
지금도 이상하긴 매한가지였고…….
거기에 더해 이들이 일행을 쫓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에도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위기의 순간 하나로 모이면서, 조립됐다.
‘그렇군……. 저놈……. 지능이 거의 사람이야, 역시. 그걸 알고 물린 거야. 자기도 그렇게 된다면 딱히 손해가 없다고 생각했겠지.’
구우준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세상에 미친놈들이 참 많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다.
요원 일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보니 다른 이들보다 그런 놈들을 훨씬 더 많이 목격할 수 있기도 했고.
그런데 이 정도로 미친놈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나는…… 물려고 작정한 건가?’
그 미친놈들이 왜 죽이지 않고 쫓아오고 있었을까?
그리고 왜 하필이면 아까 둘로 나뉘었을 때 부하 쪽으로만 총을 갈겼을까?
‘언제 나를 주시한 거지.’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동북 아시아에서만큼은 가장 많은 휴민트(정보기관 혹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얻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개인의 능력 또한 출중한 김태평을 노리는 건 적성국만이 아니었기에, 엄청나게 많은 제의를 받았다.
중국, 일본뿐 아니라 미국, 영국 등 동북아 또는 동남아에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하는 국가들은 하나같이 김태평을 원했다.
그런데 라드까지 이럴 줄이야.
기분이 좋아야 하나?
아니, X 같았다.
‘시발놈들이…….’
김태평은 총을 앞으로 겨눈 채, 옆을 돌아보았다.
본부 쪽에서 이제 슬슬 튀어나오는 놈들이 있었다.
한둘쯤은 그대로 옥상에서 뛰어내려 뒤졌으면 했는데…….
일사불란하게도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음.’
그중에는 현정도 있었다.
묶어 놨던 것을 누군가 풀어 준 모양이었다.
이진호와는 달리, 현정은 그저 라드로 화한 지 오래되지 않았나.
해서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았던 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기운이 나서 저렇게 뛸까.
저런 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역시 아니었다.
“야.”
“네?”
“튀자.”
“아니, 저…… 다리가.”
“엄살 부리지 마. 총 있잖아.”
“저놈들도 있잖아요!”
“일단 내가 미끼가 된다.”
“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물릴 순 없다.
도망가야 한다.
이대로 있다간 죽느니만도 못하게 될 수 있었다.
그런 생각에 김태평은 요원에게 말을 건 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팀장님! 앉아요!”
그 모습을 본 요원은 기함했지만, 김태평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 곧 총이 날아들 거라 생각해서 그랬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역시……. 난 포섭 대상인가.’
포섭이라는 게 돈이나 권력으로 회유하는 것이었다면 참 좋을 텐데.
아무리 봐도 물리면 그걸로 끝일 것 같았다.
시발놈들.
“저 새끼들 나는 안 쏴.”
“네? 무슨 그런…….”
“내가 엄호할 테니까, 넌 내 뒤로 뛰어.”
“뛸 수가…….”
“그럼 굴러가기라도 해! 명령이다!”
“그, 네. 네!”
안 그래도 열이 확 뻗치는데 요원도 답답하게 구니까 더 화가 났다.
해서 김태평은 아예 몸을 드러낸 채로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을 본 김민수는 혀를 찼다.
“저 새끼……. 역시 대단하지 않나?”
“지금 그런 말 할 때입니까? 어쩔 겁니까?”
“뭐……. 이제 와서 죽일 수는 없지.”
혀를 차다가 이내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었다.
이 판단력.
이 추론 능력.
역시 범상치 않은 놈이었다.
확실히…….
물면 자신과 같은 놈이 될 공산이 컸다.
“덮칠까요?”
“아니, 넌 안 돼. 총이라도 맞으면 안 되지.”
그렇다고 지금 당장 달려들어 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리에 총알구멍 나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놈은 총을 월등히 잘 쐈다.
직진으로 달려들었다가는…….
벌집이 될 수도 있었다.
그 말은 곧 구우준을 잃게 된다는 건데…….
수지 안 맞는 얘기이지 않나.
“그럼…… 이대로 두고 봐요?”
“따라붙자. 어차피 느리게 갈걸. 달려드는 건 저놈들한테 시키면 돼.”
“음. 알겠습니다.”
“가자. 읏.”
김민수는 다친 다리를 이끌고, 둘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쫓는다고 해 봐야 달려들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긴박한 느낌은 별로 없었다.
“근데 왜 팀장님은 안 쏴요?”
“몰라, 나도. 시발. 라드 마음을 어떻게 아냐.”
“아무튼, 다행이네요.”
요원은 다친 다리를 동여맨 채 거의 한 발로 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속도가 아주 느리진 않았다.
당연히 제대로 뛰는 거에 비하면야 느리겠지만…….
적어도 다른 라드 놈들이 산에 당도하기 전에 거의 다 내려갈 수 있었다.
“왼쪽!”
“왼쪽?”
“그래. 거기 차 있어.”
“아!”
그냥 그것뿐이었다면, 별수 없이 당했을 터였다.
하지만 김태평은 유비무환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하는 인간이었다.
요원 시절부터 그랬다.
일 다 해 놓고 탈출을 못 해서 뒤지는 것만큼 허망한 일이 어딨겠나.
해서 본부 근처에 무려 8대의 차량을 두었다.
물론 정비까지 한 건 아니라, 아직도 제대로 움직이는지 여부는 알 수 없긴 했다.
“저거!”
“네!”
하여간, 둘은 곧 차에 올랐다.
좋은 차는 아니었다.
모닝.
경차.
이런 시기에 타기엔 그닥이었다.
하지만 맨다리로 뛰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나?
“대장!”
“아니, 저 미친. 뭐야? 저걸……. 저거 설마 준비해 둔 건가?”
저 차.
김민수의 기억에도 있는 차였다.
이 주변을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저게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마 위장이었던 것 같은데…….
먼지란 먼지는 옴팡 뒤집어쓴 채, 심지어 와이퍼는 하나가 들려 있잖아.
드르르르륵
그러나 멀리서도 시동음이 확연하게 들렸다.
거기에 더해 곧 차가 앞으로 쭉 튀어 나갔다.
그러고 보니 차 앞을 가리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탕마음이 급해진 김민수가 총을 쏴 봤지만, 그게 맞겠나.
기본적으로 흥분도가 높은 라드의 특성상 장거리 타격은 불가하다고 봐야 했다.
그건 제아무리 지능이 높은 김민수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시발.”
“따라붙을까요?”
“일단 그래야지. 몰래 가는 건 텄구만그래.”
김민수는 허탈한 마음에 욕설을 내뱉다가, 이내 뒤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달려든 라드들이 그득히 서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가 늘어 있었다.
마구잡이로 물라고 했으니 당연한 일인데…….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좋진 않았다.
자신이 직접 가서 물어도 이게 될까 말까인데 이놈들이 물지 않았나.
‘대체 내가 문 놈들이 무는 건데 왜…… 병신들이 되냐고.’
으어으어 하고 있는 것이 역시나 열화판들이었다.
그 와중에 비쩍 마른 것도 있었다.
‘뭐야, 저건. 어디 갇혀 있었나? 음?’
유독 눈에 띄는 라드가 있어 다가가 보니, 양손과 발목에 붉은 상처가 나 있었다.
분명 어딘가에 묶여 있었던 것 같았다.
사람인데 갇혀 있다가 방금 물려서 라드가 됐나 싶어서 보니, 물린 상처가 있긴 한데 아주 오래된 흉터였다.
“어……?”
그리고 그 흉터가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이 치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구우준의 팔뚝에도 딱 같은 상처가 나 있었다.
“이 새끼들 봐라……?”
그래, 이제 기억이 났다.
이 여자.
그날 물었다.
어차피 못 잡게 된 거, 마음의 상처라도 주려고.
동료가 라드가 된다는 건, 그 어떤 사람이라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상처가 될 테니까.
그렇게 믿었으니까.
해서 깔깔 웃었는데…….
그렇게 라드가 된 동료를 묶어 둔 채 방치를 해 뒀지 않나.
‘그러고 보니 아까 라드가 둘이나 있었지. 우리랑은 또 다른 느낌의…… 라드였어.’
경황이 없어 생각지 못했는데, 총 맞아 죽은 놈 그리고 픽업트럭에 타고 있던 놈은 분명 라드였다.
물론 인간도 체격이 클 수는 있었다.
전에 봤던 놈도 그랬고.
하지만 그런 식으로 흉포한 움직임을 보이긴 어려웠다.
“쫓자.”
저 새끼들.
뭔가 더 있다.
김민수는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복수를 위해서 쫓고 있었다.
동생이 죽었으니.
하지만 이젠…….
‘뭐 하는 새끼들이지? 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
흥미가 더 큰 동기가 되었다.
어디서 나타난 놈들이길래 이런 기이한 짓거리를 한단 말인가.
“네.”
“크.”
“음.”
그런 마음으로, 김민수는 라드 일행을 끌고 모닝을 뒤쫓기 시작했다.
벌써 한참 거리가 벌어진 마당이었지만, 괜찮았다.
방치된 지 오래된 도로엔 흔적이 고스란히 남으니까.
게다가 이런 도로에서 모닝이 속도를 내면 뭐 얼마나 내겠나.
타이어라도 안 터지면 다행이었다.
게다가 이쪽엔 구우준이 있었다.
“이게 새로 난 흔적이네요. 이쪽입니다.”
사람 사냥꾼으로 살아온 이.
누군가의 흔적을, 특히 사람이 남긴 흔적을 쫓는 데 특화된 이였다.
더군다나 영철과 곽근영은 인간이었던 시절의 이지를 거의 다 잃었음에도 본능만은 여전해서 누군가를 쫓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었다.
“음!”
“오, 그렇네. 이쪽이구만.”
해서 라드는 별 어려움 없이 흔적을 따라갈 수 있었다.
“으음…….”
“왜 그러지?”
“이것도 새건데. 뭔가 흔적이 겹치는데요?”
“흔적이 겹쳐? 아, 아까 픽업트럭. 그거 아닌가?”
“아……. 맞는 거 같습니다.”
“이 자식들 집결지가 정해져 있네. 헬기도 같은 곳으로 갔나?”
“가능성은 있죠.”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