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다시 수원 (1)
박중 대위는 픽업트럭과 함께 생존자들을 떠나보냈다.
군인들도 일부 붙여서였는데, 그럼에도 총기로 무장한 이가 아주 많지는 못했다.
“괜찮을 겁니다. 신호탄 쐈으니까요. 구조팀이 올 거예요.”
염려하는 이들이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바로 어제 다 뒤질 뻔하지 않았나.
그것도 무장한 이들이 이만큼이나 있었음에도 그랬다.
그러한 분위기를 감지한 박중 대위는 억지로라도 밝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 주변이 아주 깨끗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만한 인원을 어떻게 할 수 있을 만한 무리가 있진 않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네. 너무 걱정 마십쇼. 헬기도 중요하죠.”
“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군다나 일행을 이끄는 것은 유현이었다.
아까 잠깐 판단력이 좀 흐려지긴 했었지만…….
그럼에도 그를 잘 아는 이들에게 있어 유현은 여전히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다.
“어제는 진짜 다시 못 볼 줄 알았습니다.”
“저희가 걱정되셨군요.”
“아뇨. 우리가 죽을 뻔했어요.”
“팀장님이? 그건 믿기 어려운 얘긴데.”
“자세한 얘기는 가서 하죠. 지금 하기엔…… 좀.”
“아……. 네. 알겠습니다.”
거기에 더해 김태평까지 가세한 마당이지 않나.
유현에 비하면 아무래도 경원시되는 인물이었지만, 위기 상황에서 의지가 된다는 면에서는 오히려 더한 면도 있었다.
“형사님. 괜찮으세요?”
“아, 네. 근데…… 인원이 좀 많이 줄었네요…….”
“네. 어제…… 옥상에서……. 그나마 헬기가 와 줘서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무섭네요, 라드란 놈들은…….”
“그놈들이 무서운 거죠. 아마 일반적인 라드들이었으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을 겁니다.”
중구난방으로 뛰는 놈들이 뭐가 무섭겠나.
한쪽으로 몰아서 죄 쏴 죽이면 될 텐데.
물론 방심하면 멍청한 놈들이건 뭐가 되었건 간에 찢겨 죽겠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들 중 감히 라드를 앞에 두고 방심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아무튼, 다시 못 보게 될까 봐 진짜 걱정 많았습니다.”
“저도요, 교수님.”
“야야. 나는 걱정 안 됐냐?”
그렇게 둘이 회포를 풀고 있으려니 이순규가 끼어들었다.
일부러라도 섭섭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라드화가 진행되었던 탓에 안면 근육도 발달되어서 그런가 지독하게 과장스럽게 느껴졌다.
“걱정됐지, 인마. 하나뿐인 친구인데.”
“근데 왜 쳐다보지도 않아.”
“다 보여. 넌 근처라면 어디에 있어도 보인다고.”
“거…….”
“아무튼, 빨리 가자고. 이 근처에 라드 무리들이 형성되어 있진 않겠지만……. 그래도 밖은 위험해.”
“그래, 그렇지.”
시간이 지날수록 살아남은 사람들끼리의 반가움은 점차 옅어져 가고, 대신 잃어버린 이들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잃어버린 이들이 절반을 넘지 않는가.
게다가 살아남은 이들 태반은 선별되어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그 현장에 있었으니 모른 척 외면하기도 어려웠다.
수원에서 온 이들은 명백히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이들을 배제했다.
“차만 타고 가던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느낌이 이상하네.”
그 찝찝한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게 두어서는 안 되었다.
다른 누구의 생각이 아니라 이순규가 그리 여기고 있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
어찌 보면 참 잔인한 말이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게 사실이라서 그럴 터였다.
특히 이런 세상에서는, 마음에 빈틈을 남겨 두어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곧 죽음으로 이어질 테니.
해서 쓸데없는 소리를 꺼내서라도 화제를 돌리려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기 보니까…… 흠……. 학교도 있었네. 옥상이 날아가 버리긴 했는데…….”
원래부터 척 하면 척이었던 유현은 그런 이순규의 말을 잘 받아 주었다.
“흐음. 여기까지는 폭격이 이루어졌었나 봐.”
“상당히 가까운 지점인데…….”
“그래서…… 수원 내에서 구조된 생존자들이 수원 비행장에 대한 감정이 아주 좋지만은 않다고 들었어.”
“그땐 왜 그러나 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긴 하겠네.”
게다가 둘의 대화는 꽤 흥미로운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수원 비행장에서 온 군인들의 입장에서는 딱히 달가울 수 없는 대화겠지만…….
지금 일행의 태반은 본부 측 인원들이지 않나.
어떻게 보면 비슷한 일을 겪기도 했고.
해서 모두들 적극적으로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더라도 귀는 쫑긋 세우고 있었다.
“가족이나 하다못해 지인이나 친구들 중 하나라도 폭격에 희생되지 않은 사람들이 없겠어.”
“그렇겠지……. 아니면 직접적으로 폭격을 맞았던 사람들도 있을 거야.”
“대의에 의한 희생인가.”
유현은 희생이란 단어를 읊조리다가, 이내 본부장을 떠올렸다.
그는 사실 살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애초에 수원에서도 그걸 원했을 터였다.
일단 구조대원들에 대한 말발이 서는 사람인 데다가 사람 마인드가 진짜 훌륭하지 않던가.
이 지경이 된 세상에서 타인에 대한 측은지심을 갖고 있는 이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단 수원의 대령은 물론이거니와 이 자리에도 없지 않던가.
‘아마…… 죄책감을 견딜 자신이 없었겠지…….’
유현은 짧게 명복을 빌어 준 후,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분들 덕에 살아난 것은 사실이지.”
“그래. 난 너네 다 어떻게 되는 줄 알았어.”
유현의 말에 이순규는 유현을 비롯해 함께했던 일행을 돌아보았다.
최우식이나 그의 아내, 지민이를 비롯해 김 주무관이나 재원까지 모조리 살아남아 있었다.
모두라고 할 수는 없긴 했다.
이진호는 보이지 않았으니.
김태평이 말을 아끼는 것을 보면 어마어마한 위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굳이 그런 얘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
김태평쯤 되는 인간이 괜히 그러겠나?
이유가 있을 터였다.
사기를 깎아 먹을 만한 얘기겠지.
지금도 간신히 터덜터덜 걷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왜 그런 말을 하겠나.
“다 살아서 만나서 정말 다행이지…….”
“그래. 그러니까.”
둘은 알맹이를 쏙 뺀 대화를 잘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일행은 끊임없이 걷고 또 걸어서 이제 폭격에서 벗어난 지대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싹 변하는 느낌이 일었다.
묘한 느낌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오히려 폭격으로 엉망이 된 지대가 더 괜찮아 보이는 기이한 느낌이었다.
애초에 군부대 주변이다 보니 개발에서 배제된 탓도 있긴 했지만, 그보다는 중간중간에 부스럭대는 존재들 때문일 터였다.
“여기서부터는 주의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박중 대위로부터 일행을 위임받은 상사 하나가 입을 열었다.
원래 이런 인상이었는지 아니면 세상이 이렇게 되고 나서 이런 인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쟁터에서 닳고 닳은 군인이 이런 얼굴을 하지 않을까 싶은 인상의 소유자였다.
그런 사람이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곳을 가리키면서 주의하라는데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나.
“네.”
“사주 경계를 철저히 하시죠.”
“네.”
물론 상사는 그렇게 말은 했지만, 딱히 위험할 거란 생각을 하진 않았다.
우식의 아들인 지민을 제외하면 노약자라 할 만한 이가 아예 없어서 그랬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이들은 정예였다.
대원들뿐만 아니라 요원들도 있고, 또 유현이나 이순규, 오예리 등은 당장 군부대에 들어오더라도 가장 우수한 신체 조건 또는 전투 능력을 지닌 이들로 분류될 사람들이었다.
타박타박
하여간, 이전보다는 확실히 위험한 곳에 들어선 만큼 모두들 입을 다물고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어제 비가 와 날이 오히려 탁 풀려서 그런가 평소보다 움직임이 훨씬 많았다.
몇몇 대범한 놈들은 고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몸을 내밀고 일행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수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고, 덩치가 산만 한 놈들도 아니었기에 감히 달려들 생각은 못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주변에 있는 라드들은 멍청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총기의 무서움 정도는 뼛속 깊이 각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기분 나쁘네……. 저것들…….”
“수가 다 합쳐 보면 꽤 되는 거 같은데.”
“그렇겠지. 다 나와 있는 것도 아니니…….”
“그 자식들이 저놈들도 규합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규합은 어렵지 않나? 세대가 다르잖아.”
“그렇긴 한데…….”
유현과 이순규는 정예로 손꼽히는 일행 중에서도 체격이 좋은 편이다 보니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어디를 봐도 두세 놈은 눈에 띌 정도로 라드가 많았다.
이 근방이 폭격을 피했기 때문에 많은 수의 라드가 살아남았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주변에서 살아남은 놈들이 대거 이동을 한 결과물일 가능성이 더 컸다.
라드 놈들이 본능이 강한 놈들이라고 하지만, 하여간에 멀쩡한 건물을 더 선호해서였다.
“생존자들 모아서…… 또 오겠지?”
“모르겠어. 헬기도 봤겠다……. 지능이 있는 놈들이라면 이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긴 할 텐데 말이지.”
“근데 그 새끼들, 대체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냐?”
이순규는 볼멘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혹시 주변에 있는 놈들이 소리에 자극되어 꼬일 수도 있어서 하는 짓이었다.
덩치가 산만 한 놈이 그러고 있으려니 살짝 우스운 꼴이 되긴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 누구도 웃음을 터뜨리진 못했다.
“모르겠어. 집착하는 거 같은데…….”
“집착할 정도면 진짜 지능이 높은 거야.”
“그렇게 보이지 않았어? 우리가 옥상까지 밀릴 줄은 몰랐는데…….”
“그거야…… 그렇긴 한데……. 어떻게 한 거야, 대체?”
“시신을 방패로 삼고 뛰더라고. 처음엔 지들 거. 나중엔 우리 동료 시신을.”
“하……. 심리전이야?”
“몰라. 정작 뛰어드는 새끼들은 그렇게까지 머리가 좋아 보이진 않았어. 명령을 내린 놈이 그렇게 지시했겠지.”
“지시를 듣는 정도만 해도……. 하긴. 그때 우리 당할 때……. 장난 아니긴 했지.”
이순규와 유현은 본의 아니게 보건소 시절을 떠올렸다.
어떻게 보면 사태가 터지고 나서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때는 나름 동네 산책도 가능하지 않았나?
날씨가 개판이긴 했지만…….
적어도 한동안은 위험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더랬다.
그걸 한순간에 박살 낸 놈들이 이번에도 본부를 날려 버렸다.
심지어 이번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었다.
수십에 달하던 이들이…….
“이제 곧 입구가 나옵니다. 마중 나와 있네요.”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일행은 위험 지대를 문제없이 통과해 수원 비행장 입구 근처에 다다랐다.
앞에는 상사의 말대로 마중 나온 인원들이 있었다.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가용한 인원이 적어서일 터였다.
“잘 오셨습니다. 이제 안전합니다.”
그럼에도 입구 안으로 들어서자, 일행 모두는 방금 들었던 것처럼 안전함을 느낄 수 있었다.
본부 시절만큼의 아늑함은 없었지만…….
‘선택받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유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앞장선 이들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