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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22화 (222/323)

222화 다시 수원 (2)

“잘 오셨습니다.”

대령은 껄껄 웃으면서, 유현을 비롯해 본부의 생존자들을 반겨 주었다.

도착하고 바로 나온 것도 아니었다.

박중 대위의 명으로 일행을 인솔했던 상사가 대령이 거주하는 건물 2층에 올라가고, 한참이 지나서야 내려왔다.

‘아마……. 이번 작전으로 인해 얻은 득과 실이 어떤지 따져 봤겠지.’

헬기를 완전히 유실했다면…….

그건 정말로 어마어마한 실이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헬기는 일부 고장을 일으켰을 뿐, 유실된 것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기장과 함께 있던 정비사가 그리 말하는 걸 들었다.

‘거기에 더해…… 우리 일행은 이제 쭉정이가 없다고 봐야 해.’

물론…….

저들에게 지민이 정도는 짐이긴 했다.

하지만 어차피 아인데 뭐 많이 먹을 수나 있겠나?

대신 최우식이라는 의사와 그의 아내이자 행정가를 얻었으니 이만한 규모의 집단에서는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다른 이들 또한 일반 병사들보다 훨씬 낫지 않나?

구급 대원 출신들은 마인드도 마인드이지만, 일단 체력적인 면에서 일반인들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면이 있었다.

‘식량하고…… 옮길 수 있는 장비까지 다 들고 왔지…….’

그래서일까?

대령의 표정은 정말이지 밝디밝았다.

그가 노렸던 대로 되었다고 하면 좀 그렇겠지만…….

하여간, 그간 있었던 여러 싸움과 투쟁 속에 가장 커다란 이득을 취한 것은 결국, 수원 비행장이었다.

아니, 대령이라고 해야 할까?

“네, 덕분에…… 살아서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유현은 그런 생각과는 달리 겉으로는 웃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대령님. 친구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저희를 받아 주셔서 또 감사드리고요.”

이미 오면서 말을 맞춘 바 있던 이순규도 감사 인사를 건넸다.

오예리, 양재원, 최우식, 김 주무관, 우식의 아내 그리고 지민이도 마찬가지였다.

그 뒤를 따라 구급 대원들 또한 감사 인사를 건넸다.

몇몇 표정이 어두워진 이들도 있긴 했지만…….

적어도 이 훈훈한 분위기를 깰 정도로 막 나가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 덕택이랄까.

대령은 아까보다도 더 만족스러운 얼굴이 되어 있었다.

“아닙니다. 다들 무사히 오셔서 다행입니다. 하하…… 고생 많으셨을 텐데, 일단 좀 쉬시죠.”

“네.”

“아, 유현 교수님은 잠시만. 김태평 팀장님도요.”

“아, 네.”

“죄송합니다, 피곤하실 텐데.”

“아닙니다. 전 박중 대위님 덕에 좀 잤습니다.”

잤든 못 잤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애초에 대령은 피곤하다고 해도 데리고 갈 작정이었다.

왜냐.

그 또한 이런저런 방면으로 알아본 바가 있기에 그랬다.

무엇보다 일전에 있었던 생존자 무리와 라드 무리와의 싸움 그리고 그 생존자 무리가 있던 곳에 대한 보고를 받았을 땐, 형언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았더랬다.

끼익

해서 대령은 본인이 거주하는 2층, 그중에서도 나름 격식 있는 자리를 위해 남겨 두었던 사령관실 안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모든 것이 부족한 시절이다 보니 중후한 느낌을 주는 탁자 위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군인 하면 청소가 떠오를 만큼 철저히 쓸고 닦는 존재들일진대 이 지경이라면…….

‘확실히…… 여기도 여유가 없긴 해.’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생각을 감추면서 자리에 앉았다.

굳이 이런 걸 티 내서 좋을 게 없지 않나.

무엇보다, 이런 때에 얘기를 하자고 부른 저의가 궁금했다.

그것도 이렇게 딱 둘만 불러서…….

“질질 끌면 궁금증만 도지실 테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 서울 쪽에서…… 남하하는 생존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대령의 말에 먼저 반응한 것은 김태평이었다.

명색이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와서는 숫제 암살 작전이나 피는 사람이 되고 말지 않았나.

특히 남으로 내려오고 나서는 북쪽, 서울 측 정보는 아예 손을 놓게 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원래 같았으면 인력을 나눠서 왔을 텐데…….

그 당시에는 그냥 살아남는 거, 그게 제일 급했더랬다.

물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이곳도 엉망이긴 했다.

‘최근엔 박원상 말고는 딱히 뭘 얻을 만한 소스가 없었지.’

그렇다고 박원상이 뭔가 쓸 만한 정보를 주었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사람도 아닌 데다가, 연구에 이제 막 끼어들었을 뿐인지라 전해 오는 정보는 형편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마 시간이 촉박했던 상황이었다면,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쪽도 한동안 제 코가 석 자였던 상황이지 않았나.

김태평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대령은 말을 이었다.

“다 받아 줄 수는 없어서……. 사실상 대부분은 내쫓았습니다.”

“아.”

이번엔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누군가 많이 왔다고 하기엔, 인원이 너무 없어 보였다.

이제 보니 오히려 그 사람들 내쫓으려고 외곽으로 병사들을 보낸 모양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지금도 식량이 없지만…….

곧 보릿고개지 않나?

제대로 된 수확이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지금 여기 있는 인원만으로도 식량이 부족할 터였다.

“몇몇은 받아 주었습니다.”

뭐…….

누구를 받아 주었을지는 짐작이 갔다.

뭔가 바리바리 지고 있던 이들 아니었겠나?

‘아니……. 아니지. 어쩌면 쫓아 내고 있는 게 아닐 수도 있어.’

유현보다는 아무래도 김태평의 생각이 좀 더 극단적이었다.

그라면 이렇게 했을 것 같았다.

어차피 망한 세상…….

자기 한 몸 또는 자기가 속한 집단만 챙기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지 않나.

라드나 식인종이 되게 하느니, 미리 죽이고 물품을 뺏는 것도 방법일 터였다.

힘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니.

“그 사람들 중에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말입니다.”

“이상한 말이요?”

“정유현 교수님을 안다고 하던데. 김일용 형사라고, 혹시 아십니까?”

“아, 압니다. 일전에 절 도와주었던 적이 있죠. 여기 있습니까?”

“믿을 만한 사람이 맞다는 말씀이시죠?”

“네.”

“흐음.”

유현은 반가움에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김일용과 딱히 뭐 깊은 교분이 있던 건 아니긴 했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 원래 알고 있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는 건, 어떤 식으로든 간에 반가운 일일 터였다.

물론 박원상 같은 놈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는 어쩐 표정을 짓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럼 그 말이 신빙성 있다는 건가.”

“어떤 말을……?”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같이 가시죠. 사실 김일용 형사라는 사람이 혼자 온 게 아닙니다.”

“아, 네네.”

대령은 뭔지 모를 말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저벅저벅 걸어 사령관실 밖으로 나갔는데, 건물 밖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2층 복도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

‘뭐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따라가죠.’

유현과 김태평은 서로 마주 보았다가, 뭐 어쩌겠나 싶어서 일단 그를 따라 걸었다.

주변으로 늘 있던 경계 병력도 확연히 줄어 있었다.

이 넓은 곳에 딱 둘뿐이었다.

물론 이 두 명조차 딱히 필요한가 싶긴 했지만…….

하여간, 서울에서 난리가 나긴 한 모양이었다.

‘박원상한테 뭔 얘기 들은 거 있습니까?’

‘아뇨. 연락은 정기적으로 주고받고 있는데……. 어제는 빼먹었습니다만, 그 전에도 이런 얘기는 없었어요.’

‘이 새끼 설마…….’

‘아, 아닐 겁니다. 그 사람이 그래도 아내 사랑은……. 아, 못 본 거 같은데……. 혹시 그 아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김태평의 말에 유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뜩이나 급한 상황에서 어찌 라드를 챙길 수 있었겠나.

옥상에 두기도 어려웠다.

처음엔 오락가락하기라도 하더니만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라드화가 진행되어 버려서 정신만 들면 난동을 피워 댔기에 그랬다.

또 다른 위험을 한 톨이라도 감수하기엔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고,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실제로 유현은 도망쳐야만 했다.

아마 옥상에 있었더라도 헬기에 태우지 못했을 것 아닌가.

‘결국, 우리도 박원상을 진짜로 이용만 하는 신세군요.’

‘뭐……. 어쩔 수 없죠. 처음부터 이럴 작정 아니었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라드화가 되었긴 해도 확보하고 있었던 것과 아예 유실해 버린 것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지 않을까?

김태평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대령 뒤에 섰다.

대령은 문 앞에 서 있었다.

밖에 걸쇠가 걸려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원래 있던 시설은 아니었지 싶었다.

뭔가 조악한 것이 사태가 터지고 나서 필요에 의해 만든 방 같아 보였다.

“가두어 두긴 했는데, 비인도적인 처사를 하진 않았습니다.”

“아, 네. 그러시리라 믿습니다.”

“네, 아무래도 외지인을 함부로 믿기가 좀. 꽤 반항도 하신 편이고요.”

“네네.”

“제가 열면 저항이 있을 거 같은데, 교수님께서 먼저 말을 좀 해 주시겠습니까?”

말은 자세히 안 하고 있지만, 확실히 뭔가 이벤트가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걸 얘기를 해 주었다면 모를 텐데, 일부러라도 자세한 언급을 피하고 있지 않나.

해서 유현은 굳이 뭔가를 묻는 대신 문가를 두드렸다.

“저저, 시발놈들!”

그랬더니 대번에 욕설이 튀어나왔다.

김일용의 목소린 아니었다.

그렇다고 또 처음 듣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순구 씨?”

욕쟁이 배달부.

그때 우연히 얻어걸렸던…… 그 사람인 듯했다.

“어? 뭐야. 이름을 어떻게 알아.”

“저 정유현입니다.”

“응? 형사님! 형사님! 교수님이라는데요?”

잠시 소란이 있다가, 김일용이 입을 열었다.

자고 있었는지 목소리가 좀 잠겨 있었다.

“정말 교수님입니까?”

그럼에도 반가움은 숨길 수 없었다.

그럴 만했다.

세상이 이리되었으니까.

피차 마찬가지 아니겠나.

원래 교분이 있던 사람이라면, 지독한 악연이었던 것만 아니라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네, 정유현입니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거 같은데, 문 열겠습니다.”

“아, 네네. 하…… 이 양반들. 누가 군인 아니랄까 봐 답답하기가…….”

정유현은 반가움에 내뱉는 넋두리를 들으며 걸쇠를 턱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옆에 있던 병사가 걸쇠에 걸린 자물쇠를 풀어 주었다.

끼기기긱

애초에 문도 관리가 안 되어 있었는지 자물쇠를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쉬이 열리지 않았다.

하여간 그렇게 문을 열자, 죽상이 된 사내 셋이 보였다.

둘은 아는 얼굴이고 하나는 모르는 얼굴이었다.

“아, 이쪽은 제 후배입니다. 우현이 낑겨서.”

“아.”

“아무튼, 반갑습니다. 시발 군인들이라고 믿고 왔다가 짐 다 뺏기고. 차도 뺏겼다니까요?”

욕쟁이는 평생 욕쟁이인지 오랜만에 보는데도 욕부터 박고 있었다.

오히려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 반갑단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에서 훨씬 수척해진 김일용이 나섰다.

“지금 그런 얘기 할 때가 아니지 않나. 그 새끼들 완전히 미쳐 버렸다고.”

“네?”

“군인들 말입니다. 개새끼들이……. 사람을 잡아가고 있다니까요?”

“자세히…….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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