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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23화 (223/323)

223화 다시 수원 (3)

뒤를 돌아보니, 대령은 그럴 리가 있겠냐는 얼굴이었다.

물론 이 사람도 정부에 대한 신뢰 따위는 죄 무너져 내린 지 오래긴 했다.

하지만…….

민간인을 대놓고 잡아가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유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수락 마을을 떠올렸다.

의도적으로 1호를 풀어 두고 관찰했던…….

일종의 인체 실험장이었더랬다.

멀쩡했던 세상에서조차 그따위 짓을 자행했던 놈들이니, 이런 세상이라면 뭐 어쩌겠나.

“저는…… 합정 근처에 있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한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죠.”

“그랬죠.”

그런 유현을 보며 김일용이 말을 이어 나갔다.

잠시 회한에 찬 얼굴을 해 보이기도 했다.

확실히…….

홈페이지가 살아 있었을 때만 해도 세상이 이 모양은 아니지 않았나.

그때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긴 했지만…….

뭔가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더랬다.

아무 희망 없이 버티던 시절은 아니었다.

“그러다 폭격이 이루어지고 모든 것이 끊겼습니다.”

통신이 끊기기 전까지만 해도 전국각지에 우리처럼 살아남은 이들이 더 있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지만…….

폭격과 함께 모든 것이 끊기고 나서는 그저 홀로 살아갈 따름이었다.

유현이야 나름 커다란 그룹을 이끌고 있었다지만 김일용은 기껏해야 딱 셋뿐이었기 때문에, 또 서울이라는 지옥에 있었기에 느낌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그래도 버틸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의 조언대로 은신처를 마련해 둔 데다가 먹을 것도 충분했고……. 무엇보다 옥상에서 이런저런 걸 키울 수도 있었거든요. 나름 해도 쬐고……. 뭐 그랬죠.”

“저희도 비슷했습니다. 그때는 그래도 살 만했던 거 같습니다.”

유현은 솔직히 말하면 이런 감상은 나중에 들어도 되니, 아까 말했던 거나 좀 자세히 풀어 주면 좋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유현은 그래도 다른 사람들 눈치를 살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궁금하기도 했다.

하여간, 서울은 이곳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 않겠나?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니까 여유가 생겨서……. 또 막상 기다리던 군대는 오지 않아서 슬슬 밖으로 나돌아 보았습니다. 생존자 무리를 찾아서 구해 보고 싶기도 했고요.”

과연 경찰이다 싶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니.

꼴랑 셋이서.

그것도 나머지 둘은…… 그렇게까지 협조적일 리가 없어 보였다.

“시발……. 진짜 뒤질 뻔했다니까요. 그때.”

“조용히 좀 하게. 말하고 있잖아.”

“그런 얘기 길게 해서 뭐 한다고.”

“교수님도 서울이 어떻게 굴러갔는지는 알아야지.”

아니, 얘기를 들어 보니 나름 고생했던 것 같긴 했다.

하여간, 김일용은 잠시 끼어들었던 순구를 나무라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나가서 사람들을 확인했습니다. 근데 이게 그쪽 은신처도 꽤 괜찮아서 우리랑 같이 있지는 않고……. 그냥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로 있기로 했죠. 나름 위험한 일이 생기면 서로 돕기로 하기도 하고요.”

“그랬군요. 그래서요?”

“그러다…… 이상한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라드 놈들인데…… 무리를 이루고 있었어요.”

“아. 지능을 갖춘 놈들이 거기도……. 하긴, 그쪽이 강력한 변이 방향이기는 하겠어요.”

바이러스가 무슨 머리가 있어서 이런 방향으로 변이해야겠다, 이러는 건 아닐 터였다.

그냥 마구잡이로 변이하는데, 생존에 유리했던 놈들이 많이 남게 되어 다른 이들의 눈에도 띄게 되었을 뿐일 터였다.

대체 왜 그렇게 변이가 빠른 것인지는 의문이었지만…….

이 바이러스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실험의 산물이라는 걸 생각하면 뭐 그리 이상할 것도 없었다.

아마 억제기를 뗐을 터였다.

미친놈들.

유현이 그렇게 속으로 욕설을 내뱉고 있는 사이, 김일용은 참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 전까지는…… 라드가 그렇게까지 위협적이지 않았어요. 아니, 위협적이긴 했는데 진짜 큰 놈들 말고는……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무리를 이루니까, 딱 달라지더군요.”

김일용의 얼굴이 조금 더 일그러졌다.

참담한 느낌이 아니라, 끔찍한 느낌마저 주었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 과연 그럴 만했다.

원래 세상에서도 온갖 끔찍한 일을 겪어 왔을 것이 뻔한 전국구 형사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이토록 구겨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창문이 깨지고……. 비명이 들리고……. 그렇게 비명을 지르던 이의 눈빛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일원이 되고…….”

“흐으음…….”

사실 김일용이 보고 들었던 일이란 것이 유현이 겪었던 일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지능을 얻어 무리를 이룬 라드들이 할 만한 일이란 대체로 비슷하기에 그러했다.

그러나 중대한 차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인구수였다.

서울은 면적 대비 어마어마한 인구 밀도를 자랑하는 곳인 만큼, 그런 식으로 끌려가는 이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만큼 라드 무리들이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또 지들끼리 갈려서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라드는 좀 나았어요. 라드는…….”

“그렇습니까?”

“생존자들……. 그들이 문제였습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어요.”

“어떤……?”

“식량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저희야 뭐…… 좀 사정이 나았지만. 일부 생존자들 중에 라드를 잡아먹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아, 라드를.”

처음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라드는 아무리 봐도 인간이었으니까.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인간의 형태를 띤 것을 먹는다는 건 어지간한 비위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계속 그럴 수는 없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심지어 라드는 면밀히 살펴보면 인간과는 구분되는 특징들이 있었다.

얼굴이 너무 우락부락해진다거나, 손발이 거대해진다거나 하는 것들.

일례로 제아무리 지능을 갖춘 것들이라고 해도 신발을 제대로 신은 것들은 없지 않았나?

발이 너무 커서 그랬다.

“처음엔…… 저희도 이해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무리들이 점차 변하더군요. 아무리 라드를 잡아먹었던 놈들이라 해도 사실 라드 무리 앞에서는 상대가 되지 못했거든요. 근데…… 다들 호전적으로 변하는 건지 뭔지, 엄청 잘 싸우게 되기 시작했습니다.”

“흐음…….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거 같은데…….”

그러나 라드는 인간이었다.

많이 변했을지언정 인간이었다.

이게 왜 문제가 될까?

식인종, 또는 식인 행태가 있던 문화권이 아주 한정적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쉬웠다.

단순히 양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 사람을 먹는 행위 자체가 생존에 불리했다.

질병을 공유하는 존재니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았나? 아니면 호르몬……? 아냐. 조리하고 소화하는 과정에서 호르몬은 파괴될 수밖에 없는데…….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네.’

유현이 이런저런 가능성을 추론하는 동안에도 김일용은 말을 이어 나갔다.

“결국, 생존자 무리들이 식인종이 되더군요. 엄밀히 말하면 라드고 사람이고 가리지 않고 먹어 치웠는데……. 그래서 우리는 라드에게도 생존자 놈들에게도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개새끼들……. 한 번 구해 주기까지 했는데…….”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던 놈이 그 무리에 들어가고 나서가 진짜 위기였습니다.”

“아, 어떻게 도망 나오신 거에요?”

위치를 알고 찾아 왔다면…….

그 상대가 인간들이라면 사실 이겨 내기가 쉽지 않았을 터였다.

김일용이 형사였던 만큼, 그리고 대령에게 전해 들었던 대로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권총이라는 건 가까운 거리에서나 살상 무기가 될 뿐이지 대량 살상을 위한 무기가 아니었다.

“은신처 옥상에 다른 건물로 뛰어나갈 수 있게…… 널판지를 준비해 두고 있었죠. 아예 다른 건물에서 나갈 수 있게요. 널빤지야 치워 버리면 그만이니까.”

“아하…….”

“차량도 거기에 따로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나름 식량도 준비해 두었고.”

그 길로 바로 내려온 건 아니었다.

김일용은 꽤 치밀한 사람이었다.

아예 다른 지역, 그러니까 마포구 상암 쪽에도 방 하나를 마련해 두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치밀한 것만으로 뭐가 어떻게 될 만큼 만만한 세상은 아니었지만, 운도 좋았다.

우선 폭격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아직 라드 무리가 많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거기서 숨을 고르다 서울을 벗어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군인 새끼들이…….”

“군인?”

순구의 말에 유현은 그를 돌아보았다.

막상 멍석 깔아 주면 별말 못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순구가 딱 그 짝이었는지 그는 말없이 김일용 형사 쪽을 돌아보았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김일용은 딱히 당황도 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네, 군인들……. 군인들이 밤에 출몰하기 시작했습니다.”

“밤이요? 왜……?”

밤은 무서운 시간이었다.

어둠이란 누구에게나 위험한 존재였으니…….

그게 꼭 군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애초에 이쪽, 수원 군인들도 낮에만 움직일 따름이었다.

“저희도 그게 의문이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위험할 텐데……. 하여간, 저희는 군인들이라고 해도 섣불리 다가가진 않았습니다. 교수님께 들은 말도 있고……, 직전에 인간한테 당해서…… 놀란 것도 있었고요.”

“네, 그렇군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네. 밤에 무리를 지어서, 누가 봐도 제대로 된 군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놈들을 신뢰하지 않을 방도가 없었을 겁니다. 장비가 엄청 좋았거든요. 훈련 상태도 어마어마한 듯했어요. 그 야밤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더라고요.”

장비와 훈련 상태를 듣고, 유현은 김태평을 돌아보았다.

그러곤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김선태.

최강이자 최악의 군인.

그놈이 이끄는 부대라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엔 라드 놈들을 소탕하려나 했습니다. 실제로 거리에서 라드 놈들이 죽어 나가기도 했고요. 근데…… 낮에 파악을 해 둔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저희도 알 만큼 대놓고 생활하던 생존자들에게 우선 접근하더군요.”

“접근이라……. 구조는 아니었습니까?”

“아뇨. 구조는 아니었어요. 수갑 채워 구조하는 경우는 없을 테니.”

“수갑이라. 흐음.”

“가서 풀어 줬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닐 겁니다. 거의 죄수 취급을 하고 있었어요. 구타도 있었고.”

“음.”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김태평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생존자를 이용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청와대 측이 확보한 곳이 아닌 곳, 그러면서도 접근이 쉬운 곳에서 사람들을 데려가고 있다면 딱히 좋은 뜻은 없었을 터였다.

물론 확실한 건 없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미덥지 않기로는 이쪽도 매한가지긴 한데…….

“박원상과 오늘 한번 연락을 해 볼까요?”

“네, 그러죠.”

최근 실험 대상자가 늘었는지를 물어볼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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